배가 고프니 맛이 있더라.
박외도
‘배가 고프면 맛이 있다.’ 누구나 잘 아는 보편적인 말이다. ‘시장이 반찬’이란 속담도 있지 않은가, 배가 부르면 진수성찬을 차려놓아도 별생각 없지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록 온종일 굶주린 사람은 음식을 보면 걸신들린 듯 먹게 되는 것이 정상이며, 배가 고프면 무엇이든 맛이 있다.
오늘날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으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지”? 라고 한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나의 어릴 때 고향은 경상남도 김해시 (그 당시에는 김해군이었다) 한림면 가산리 신전으로 북쪽으로는 1km쯤 떨어진 곳에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지류인 샛강이 마을 앞으로 흘러
조그만 평야를 이루고 있었고, 우리 마을은 50여 호가 조그만 야산을 등지고 대부분 얼마 안 되는 땅으로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40km쯤 떨어진 김해 대저(지금은 부산으로 편입되었음)에서는 선진 농업을 받아드려 과수며 비닐하우스 재배로 부유한 농촌을 이루고 살았으나 교통이 발달 되지 못한 우리 마을은 오직 벼농사 보리농사밖에 몰랐다. 일본인들이 우리들의 곡식을 수탈해 가기 위하여 낙동강 둑을 만들기 전에는 “여자아이가 태어나서 시집가도록 까지 쌀 두 말을 못 먹었다”는 말이 있었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엔 어찌 그리 먹을 것이 부족하고 입을 것도 부족 했던지, 해마다 보릿고개엔 들에 나물케는 여인들이 많았고 나물 반찬에 쑥국 무밥, 하루 세 끼를 먹는 집은 그나마 조금 형편이 나은 집이었고 더 가난한 집은 하루 두 끼 챙겨 먹기도 힘들었고 멀건 죽으로 연명하였다.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이었다. 사흘 굶으면 정승도 남의 집 담을 뛰어넘는다. 는 말이 있다. 식욕이 오욕(五慾) 중의 하나가 아니던가, 지독한 가난으로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이 미군 지프를 따라가면서 헬로우(hello) 헬로우(hello)하면 초콜릿, 껌, 통조림, 같은 것들을 던져주었다. 미군 구제품 옷가지 등 우윳가루 등을 얻어먹던 시절이라 밀 살이 콩 살이는 물론, 소나무 속껍질 벗겨 먹기, 찔레 새순 꺾어 먹기, 논갈이할 때는 올비 캐어 먹기, 여치 메뚜기 잡아먹기, 개구리 뒷다리 구워 먹기, 좀 큰애들은 닭서리, 참외 수박 서리, 를 하였다. 심지어는 옻나무 속껍질을 입으로 벗겨 먹고는 몸에 옻이 올라 학교도 못 가는 친구도 있었다.
이들이 자라서 상급 학교에 진학도 못 하고 공돌이 공순이라고 비하하는 칭호를 들어가며 가족을 먹여 살리고 산업 일꾼이 되어 우리나라의 근대화 산업화를 이끌며 우리나라의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는 것을 그 시대를 살아온 어른들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다. 요즈음엔 먹을 것이 너무 많아 탈이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의 키가 옛 어른들에 비하여 훌쩍 컸으나 인내심과 지구력은 부족하다.
3D업종, 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일들을 기피하는 것은 이미
옛말이 되어 그 자리를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날은 장마로 밤새도록 비가 많이 왔고, 날이 밝자 비는 멈추었다.
‘명견 늪’이라는 조그만 연못에 요즈음은 보기 드문 가시연꽃과 말 밤이 자라 그 씨앗 알갱이들을 까먹기도 했는데 그곳에 물이 차고 넘쳐나서 옆의 볏논과 수위가 같아 논에는 수많은
잉어 떼가 온 논에 헤엄치고 있었다. 그 논은 희한하게도 연못 쪽은 논두렁이 낮고 양옆과 뒤쪽은 논들이 높아 둑이 높았다. 높은 쪽 논두렁 삼면에는 낚시꾼들이 몰려들어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나보다 일곱 살 위의 삼촌과 나는 삽과 손으로 흙을 끌어 올려 연못과 접한 낮은 논두렁을
높이고 양철 동이와 대야로 물을 퍼내기 시작하였다. 삼촌과 나는 진흙투성이가 되어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해도 힘든 줄도 몰랐다. 두어 시간 정도 지나니 논바닥의 물은 잦아들었고
고기들의 움직임도 한결 둔하여졌다.
삼촌과 나는 큰 양철 동이에 고기들을 잡아넣었다. 힘이 좋은 놈들은 이리저리 피해 달아나기도 하였으나 큰 양철 동이에 가득 잡아 집으로 가져오니, 마치 개선장군이 된 기분이었다.
머리와 지느러미와 내장을 들어내고 뼈는 발라내지 않고 토막을 내어 붉은 초장에 비벼 이웃 사람들과 함께 먹으니 그 맛이란 맵고 시고 달콤하고 고소하던 감칠맛, 고기 뼈가 입천장을 찔러도 정말 꿀맛 같았다. 정말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고돌고돌 한 식감을 잊을 수 없다.
나는 평소에 광어가 좋은 횟감인 줄 알았으나 고급 횟감은 시마다이, 능성어, 겨울에는 대방어, 참숭어, 돌돔, 등이 있으며 여름에는 개도 안 먹는다는 광성돔이 겨울 찬 바람이 불면 좋은 횟감이란다. 광어는 눈이 왼쪽에 있으면 광어, 오른쪽에 있으면 도다리, 이라는데 나는 오른쪽 왼쪽 아무리 보아도 잘 구분을 못 한다.
시원한 국물 맛이 좋은 물메기, 탕은 옛날에는 어부들이 고기 취급도 안 하고 버렸다고 하고
바닷장어도 나는 기름기가 많아 얼마 먹지 못한다. 동창들끼리 자갈치 시장이나 다대포 어시장 등에서 모둠회와 초장과 상추 깻잎 등을 준비하여 다대포의 야외 소나무 밑에서 해풍을 맞으며 먹어도 보고 찌개도 맛보았으나 어릴 때 먹어본 그 잉어, 같은 맛의 생선을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아직 보지 못하였다.
구포시장엘 가면 민물 잉어, 가물치, 뱀장어, 미꾸라지, 등을 파는 곳이 있다.
옛날에는 디스토마(distoma) 에 걸려 죽은 사람도 더러 있으나 요즈음은 좋은 약도 있으니
한번 가서 옛 추억을 더듬으며 그 기막힌 회 맛을 보아야겠다.
첫댓글 장산님
귀한글<배가 고프니 맛이 있더라>고운글 올려주심
감사합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꿍을 향해 달려가야지요
오늘도
고운날 되세요!~~~~~
시장이 반찬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배가 고프면 무엇이든 다 맛있죠
근데 웅덩이를 퍼내고 물고기를 잡아
회로 먹는 맛이란 꿀맛이지 않을까요
오늘은 회가 먹고 싶으네요 ㅎ
비 소식이 있는 날입니다
코로나 50만 시대 늘 조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