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포쯤 전 출간된 시집 한 권을 말한다. 김승강의 첫 시집 '흑백다방'(열림원)이다. 시집이 막 나왔을 때, 아마도 다른 책에 먼저 손이 갔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껏 책장 구석에 처박혀있었을 것이다. 그럴 만도 했다. 김승강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평론가 중에서도 그를 주목한 이는 없었다. 약력을 보니, 1959년 생이고 2003년 등단했다. 약력만 봐선, 새로움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며칠 전 빨강 표지의 시집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한동안 내려놓지 못했다. 시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덜 여문 듯싶다가도 잔뜩 삭힌 태가 배어났다. 일상을 이토록 섬뜩하게 묘파한 시가 진작에 있었는가.
'멀리서는/구층 여자가 나비를/날려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가까이 가보면/나비 날개를 떼어/구층 아래로 내던지고 있다.'-'나비'부분
시인에게 일상은 살풍경이다. 일요일 오전 아파트 9층 여자가 베란다에서 매트리스 터는 장면을, 나비 날개를 떼 아래로 던지는 것이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적고 있다.
'소주 두 병을 놓고/통닭 한 마리를 수습했다./수습한 뼈를/분리수거용 비닐봉투에 넣고/골목 어귀에 내놓았다./…/굶주린 고양이가 와서/비닐봉투를 뜯고/뼈를 수습했다.//고양이가 뜯어놓은/비닐봉투를 아내가 수습했다.'-'수습'부분
수사가 없다. 비유나 은유가 없다. 그저 지켜보고 적었을 뿐이다. 시각만 다르다. 그래, 뼈 바르는 걸 수습이라고 하지, 흩어진 물건 거두는 걸 수습이라고 하지. 시인에 의해 일상은 섬뜩한 무엇으로 탈바꿈한다.
그의 시는 요즘 한국시의 한 경향인 '생활의 발견'류와 다르다. 생판 다른 화법으로 발언하기 때문이다. 세련됐거나 고상하지도 않다. 그러나 또는 그러므로 일상은 다시 발견된다. 그 일상 속의 나는, 참으로 못났다.
'아무래도 개운하지 못한 섹스로/세상에 던져진 것만 같은 나는/나를 닮은 개운하지 못한/시 한 편 써놓고/요리조리 살펴보며/애써 잘난 구석을 찾고 있다.'-'차고 넘치는 시'부분
시인은 현재 경남 창원의 대학가에서 인쇄소를 한다. 20년 넘게 시를 썼지만 시인이 될 생각은 못했단다. 그리고 마흔을 넘긴 어느 날 문예지 '판' 신인상에 응모했다. 이름 때문이었다. 인쇄소 이름에도 '판'이 들어있다.
시인은 코끼리를 닮았다. 말수 적은 것도 그렇고, 덩치도 그렇고. '죽음을 예감하고 무리와 헤어져/자신만이 아는 곳으로 가서 죽는 코끼리'('별' 부분)라는 대목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고 보니, 순하디 순한 짐승에게 세상은 무시무시한 공포일 뿐이다.
손민호 기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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