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BhnNU2yMfS0
지금도 나날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는 그 내용을 청취하여 잘 아시겠지만, 내가 처음 들어간 산업현장 일선은 한 마디로 말해 빨리 죽기 딱 좋은, 이 세상에서 사람살기엔 너무나도 얼기설기하고 엉성한 구조를 가진 생의 터전이었다. 지금보다 월등히 많은 사람들이 정말 내가 보는 눈앞에서 많이 다치거나 죽었다.
정말 전쟁이 그런 전쟁이 없었다. 나도 손가락 발가락은 부지기수로 부러지고 붙이고, 여기 저기 찍히고 찢어져 살점 깨나 꿰맸으나 여태 죽지 않은 것만은, 여태 기일에 오셔도 밥 한 톨 전혀 안 자시고 오로지 아버님 입을 통해 구전되어 왔기에 지금도 전혀 믿어지지 않는 '조상님의 음덕' 외에 달리 설명할 그 무엇이 없다.
내가 처음 배정 받은 일은 플랜트 현장의 무슨 설비를 설치할 콘크리트 바닥이 울퉁불퉁하여 거의 총 쏘는 듯한 소리가 탕탕탕탕 들리는 대형 브레이커로 콘크리트를 깨는 일이었는데 도면이 반장이 보는 청사진 도면 한 장이라 오전 작업 투입 전 간단하게 10초 정도 그 일에 대해 설명 받는 게 그 날 작업지시의 모든 것이었다.
그 순간에 들을 수 있는 한 가지는 콘크리트 왼쪽 모서리를 가로 얼마 세로 얼마 높이 얼마로 콘크리트를 깨어 맞춰 놓으라는 거였다. 반장은 내가 플랜프 현장 처음입니다. 라는 말에 아주 초짜배긴 줄 알았던지, 니깐 놈이 오전 내내 버르적거려봐야 이것 하나 밖에 못하겠지 싶었던 듯, 처리 물량을 너무 적게 주었다.
그러나 나는 딱히 용 뺄 재주 없는 첩첩산중 집안 사정으로 그 전에 이미 아파트공사 3개쯤을 아르바이트 한 경험이 있으며, 거기 건설 현장 최하 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짐통 지는 일과 콘크리트 깨는 일이 전부였다. 예상 외로 수월하여 오전 9시 반에 할당 물량이 끝났다. 나는 도면대가 여러 장 겹쳐 걸린 현장 구석 합판으로 얼기설기 만든 골방으로 다음 작업 할당량을 받으러 갔다.
그러나 반장은 다른 업무로 자리에 없었고 마침 그 도면이 그 자리에 있는지라, 잡기장에 그 도면 전체를 그리고 있었다. 위치별로 가로 세로 높이 및 간격만 있는 도면이라 그리고도 말고도 할 것이 없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안전모 쓴 뒤통수에 어떤 물체가 쾅! 하고 부딪혔다. 뒤돌아보니 반장이었고 손에 대형 스패너를 쥐고 있는 것으로 봐서 그것으로 안전모 쓴 내 머리를 내려친 것이 분명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그들은 폭언 전에 그렇게 폭력도 같이 행사하는 사람들이었다. 핑계는 자기 허락 없이 도면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저런 행위 신고하면 현행범으로 바로 그날 부로 법정 구속이지만, 그 땐 저런 일 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목이 아프고 골이 띵해서 기가 막혔지만, 더러워도 참았다. 그 현장에 오려고 현장소장 아는 친구인 선배한테 술도 사 주고 며칠을 통사정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를 갈고 연속 잔업까지 자초해 가며 단시간 내 그 일의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배웠으며, 그 사람은 6개월 후에 현장소장 눈에 들은 내가 물량을 많이 올려 반장으로 진급함으로써 그를 자동으로 퇴출시켰다. 지금 곰곰 생각해 보자니 어쩌면 아직까지 이렇게 단 한 번의 이직도 생각해 본 적 없이, 선배나 친구, 직계 후배 3세대들까지 다 떠나보낸 이 거친 건설현장에서 43년을 지냈다.
또한 건설현장을 본사가 아닌 현장에서 견디는 마음의 저변에는 그들의 폭력과 폭언에 대한 무언의 오기로부터 출발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그의 그런 폭력과 폭언이 현재의 내게 무작정 나쁜 그 무엇으로만 작용되어 남아있지 않기에, 이제는 원망이나 섭섭함도 남아있지 않다. 만약 만난다면 술이라도 한 잔 사 드리고 싶다. 그 때까지도 정신 못차리고 세상 시건방지게 바라보던 나를 단 한 방의 매질로 다스려주어 새로운 눈을 뜨게 되어 정말로 고맙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러나 그런 나도 요즘은 폭언을 가끔 쓴다. 핑계를 대자면 국가와 짜고 치는 고스톱의 대가들인 대기업들의 전형적 건설풍토인 최저가 낙찰제가 원흉이지만, 내가 모를 물량 처리능력 향상과 원가절감 방안들이 있을 것이므로 나의 이런 폭언이 궁극적으로 옳은 것이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원인 모를 지속적인 처리 물량 감소, 원가투입 상승이 이어지면 자신이 현장 투입의 모든 현금을 매 때마다 구해 조달하는 사장의 닦달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도 자다가 일어나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 현장의 정상적인 궤도를 종용하였으며, 건설현장에서 43년 묵은 능구렁이인 나로써도 자다가 목이 졸리는 느낌을 받고 깜짝놀라 일어나 앉아서 진땀을 흘렸다. 며칠 참다가 퇴근 직전 10년 이상 묵은 팀장선 이상을 전부 불러 모아 놓고 처음엔 톤을 낮춰 이야기 했다.
에~또 가설라무네 다들 잘 알고 있을거여잉? 지난달까지 우리 현장 금전 현황이 마이너스 3억이 조금 넘었어. 이러기 싫지만 어쩔 수 없어. 내가 내일부터 각 팀별로 처리하는 일일물량에 우리 계약단가를 곱할거여. 거기에다 또 자네들 받아가는 팀별 하루 일당을 뺄 거여. 이 바빠 터진 시국에 내가 이 따위 개떡 같은 일 하는 거 달갑지 않은 거 알지? 이거 지금 내 성질에 내 조국의 5대 일간지에 자네들이 일을 겁나 잘한다고 공고를 붙였으면 좋겠지만 말이여. 내가 경주 김가 대안공파 48세손의 명예에 똥칠하지 싶어 많이 참는다.
그 대신 자네들 눈 나빠 서류 못 볼깨비 이 사무실에 A0 남대문만 한 종이에 자네들 위대한 업적을 견고딕 굵게로 적어둘 테니까, 요새 폰카메라들 좋쟈? 각자 그거 찍어 자손만대 남겨주라고. 그 잘난 삼성이나 애플이 돈다발에 묻혀서 만들어 낸 걸작품이여~ 어이, 거기 박팀장. 축하한다. 자네가 꼬래비여. 처리물량이 계약에 15%가 뭐냐? 발가락으로 일 한 건 아니제? 돌아가신 자네 할아버님 무덤에 묻어드린 곰방대 들고 나오실 판이여.
누구라고 밝히긴 그렇다만 정팀장이 일등인디 물량 대비 투입이 180%란다. 박팀장 맴이 어쩌냐? 나한테 욕하고 잡냐? 알었다. 허용해 주는데 결코 그럴 리 없겠지만 너 180% 올리면 내가 너한테 욕 얻어 묵으러 자진해서 갈께. 알았쟈? 그러나 그러기 전에 너 그런 사고방식으론 죽어도 안 된다.에 내 손가락 끝에다가 장을 지지고 싶다만.
내가 이런 폭언을 즐기는 이유는 딱 하나다. 실적이 좋아진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조금이 아닌 썩 많이. 그러나 이런 짓도 자주하면 마약과 같아서 사람을 두들기면 반드시 돈이 된다는 폭군의 환각에 빠진다. 무엇이 무작정 좋고 무엇이 무작정 나쁜 그런 것은 없다. 적당히 잘 사용하면 잘 하는 사람들에겐 상여금을 줄 환경도 조성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밑도 끝도 없는 농땡이꾼들도 일꾼으로 만들어 이러한 선순환 구조에 합류시켜 훗날 자신들의 성공이 고마웠던지 가끔 그런 눈물어린 감사의 전화도 받는다. 세상에 직설이라든가 생것은 정신건강이나 몸에 해롭다. 그리고 그 이후의 어떤 발전을 꾀할 빌미마저도 제공되지 않는다. 사람 할 일은 이 답 없는 세상에서 답 없다고 툴툴거리지 말고 폭언의 은유라든가 발효의 저 순기능을 믿고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 거기 까지다. 그 이후로는 그 시간을 또 기다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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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마도 그 현장이라는 곳에 있을 때가 마음이 편안했던 듯 싶네요.
현장에서 누가 시키는 단순한 일 할 때가 몸은 힘들어도 심간이 편하고 머리 커져서 돈에 관련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턴 몸도 불편하고 골도 짜개지고 그렇습니다.
43년 건설 현장. 배알님 처음 뵐때는 돗배기 안경에다 술도 잘 먹고 무슨 행사가 원동에서 있다 하면
마음씨가 여유가 있어 바리바리뭔가를 싸오는걸 봤거든요
건설현장에 노가다로 보이진 안았어요 가끔 글에 건설현장 얘기가 나올적마다
뭔가 전기 계통에 아니면 건설현장에 각종 기계들을 다루는 기술자인 줄로 알았습니다.
지금 보니 뭐든지 다한다. 다했다. 그소리 같아요. 그런데 왜 아직까지 사장이 안됐는지
그게 굼금해요. 43년을 현장에서 언젠가는 사람도 없는 오지에서. 접근도 안되는
특별한 오지에서 그런 소리가 있었는데 왜 큰 건설사를 이르키지 않았는지.
대체 올해 몇이요. 60.70 ?
글은 언제 배운건지. 쉬는 날에 글을 공부를 한것인지. 노는 날은 건설사람들은 모두 술독에서 사는것 같던데.
외곬으로 건설로 살아 온것 보면 그럼 지금은 사장이신거요
어그제 광주에서 변이 있었던데 그런 현장에서 무사하게 지내온걸 보면 신기하기도 해요.
대단하기도 하고. 사장이었으면 좋은데 몇백명을 거느리는 장군처럼 앞에서 소리치는
배알님을 뵐날이 있을 런지 소풍한번 가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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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사람이야 줄잡아서 10명 미만인데 언제 날자 한번 잡아요 소풍가게 바쁘지 않을 때.
배알님 신상에 대해 소설한번 써보게 이런 사람도 있다.
난 언젠가는 결혼을 20여번 해본 여인이 있던데 그애기를 들아볼까 생각을 했는데
그얘기보다는 배알님 인생이 더 멋지지 않겠어요 구구절절히 어떤공사는 어떻게 완공을 했다
어떤 공사는 어떻게 어렵떠라. 얼마전에 어떤 분의 얘기를 썼던데 무슨 기계를 코치는 사람얘기등
글을쓰는 재주는 없지만 한번 들어서 남겨두고 싶네요. 마지막 인생에 베스트 셀라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렵다면 이제까지 지내온 인생 나락을 책으로 써서 보내줘요. 기다리라면 가디릴껏이니
저는 플랜트현장(발전,제철,원자력,석유화학공장 등등)의 전기,통신,소방,계측제어공사 쪽으로 43년쯤 한 것 같습니다. 이런 회사는 일반 회사와 달리 한해 최하 300억 이상의 현금이 있어야 서너 개 공사를 굴립니다. 저는 택도 없지요. 그리고 말만 사장이지 눈만 뜨면 돈 빌리러 다니는 게 주업무인 사장은 천금을 준대도 싫습니다. 힘들어도 재미가 있고 보람이 있어야지요. 그 바닥 일은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다해 봤구요. 지금은 사람 넣고 빼는 일과 계약되지 않은 숨은 돈 찾아 만들어 갑측으로부터 뺏어내는 일을 담당합니다. 갑측이 저더러 칼든 강도라고 하지요. 지들 약점 잡아 돈 뺏어내니까요. 서류상 나이는 접때 세상 떠난 만세랑 동갑이구요(곧 70)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는 곧 죽어도 아직 40대처럼 삽니다. 글은 제가 원래 인문계 출신인데 집구석이 너무 가난해서 바꿨습니다. 글에 대한 욕심은 좀 있는데 사실 책에 대한 욕심은 없습니다. 모르겠어요. 애들이 셋 있는데 나 죽을 때쯤 시집 한권과 산문집 한권 내 줄런지? 내 글은 내 머리속에 있으니 나는 그저 살 때 열심히 살다 가면 그 뿐, 추억은 남은 사람들 몫일 테니까요.
만세가 ?.
저 위에서 불러서 먼저 갔습니다. 바빠서 노을님께 인사도 못 드리고 갔나 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