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짐장수 등짐장수
제가 어릴적에는 트럭이나 승용차가 아주 귀했기에 걷는 것이 일상생활이었으며, 짐은 지거나 이거나 들고다니는 것이 일상생활이었습니다.
오일장이 되면 보따리에 쌀, 깨, 콩, 마늘, 고추 등등, 집에서 지은 농산물을 보따리에 싸서 남자들은 지개에 지거나 봇짐을 만들어 등에 매어 장에 갔으며 여자들은 머리에 이고 많이들 갔습니다. 장사하는 분들 중에는 가게가 없이 오일장을 찾아다니면서 장사를 하거나 동네를 다니면서 장사를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장사하는 분들을 보부상(褓負商)이라 하였습니다. 보상(褓商), 곧 봇짐장수와 부상(負商), 곧 등짐장수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 보부상입니다. 등짐장수는 주로 나무나 숯이나 그릇, 옹기, 젓갈 같은 것을 지게에 지고 다니면서 팔던 사람이고, 봇짐장수는 이와 달리 비교적 값비싼 필묵, 귀금속, 화장품이나 놀이개 같은 물건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니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팔던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 보부상들에게는 다른 이름이 또 있습니다. 장을 돌면서 장사를 한다고 장돌뱅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이고 지고 산을 넘고 내를 건너다니느라 그들에게는 숱한 인생의 애환들이 있습니다. 장돌뱅이는 한 곳에 터를 잡아 살지 못하고 타향을 떠돌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짊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부초처럼 떠다니는 불행한 삶을 살았던 장돌뱅이들의 애환들은 노래로 혹은 옛 소설들에 많이 실려 있습니다.
새우젓 사려 조개젓 사려
초봄에 담은 쌀새우는 세하젓이요
이월 오사리는 오젓이요
오뉴월에 담은 젓은 육젓이요
갈에 담은 젓은 추젓이요
겨울 산새우는 동백젓이요
이 노래는 이 장터 저 장터로 옮겨다니며 장사를 하던 보부상의 '새우젓 타령'입니다. 단순하게 새우젓 사려하지 않고 젓갈을 담는 계절을 이야기 하는 그들의 재치를 보게됩니다. 이런 재치가 그들의 고달픈 삶에 위안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 인생들은 모두 등짐을 지고 봇짐을 지고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우라 모두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짐들이 있습니다. 떨치고 싶어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짐이 있습니다. 몸에 난 혹처럼 내 몸의 일부분인냥 같이 살아가는 무거운 짐들이 있습니다.
죄의 짐이 있습니다. 삶의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이 짐을 대신 져주신 분이 계십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무거운 짐진 자](포르티스메노이)라는 말은 <타인에 의해 무거운 짐을 진 채 계속해서 지쳐있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죄와 염려의 고통이나 육체적 의무 외에 특별히 전통적으로 부과되고 있는 율법과 유전(遺傳)의 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남편으로 인한 여자들만이 져야하는 짐도 있습니다. 사회적인 약자이기에 져야 하는 짐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사람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운다고 책망하신 적이 있으셨습니다(23:1-4).
그러나 이런 짐을 내려놓을 길이 있습니다. [다 내게로 오라]하고 주님이 초대(invitation)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께 마음을 두고 나아오는 그 어떤 사람도 모두 받을만한 넓은 사랑과 모든 인간을 친히 부르실 만큼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시고 구원과 안식(rest)에의 초대를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감격스러운 일은 세상은 누구를 초대할 때 아주 근사한 사람을 초대하기 원합니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을 초대하여 나의 사회적인 지위를 과시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마11:25)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 그리고 '아이같이 지혜는 없으나 순박한 자들'을 모두 초대하신다는 사실입니다.할렐루야
예수님은 우리르 초대하여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지막날의 영원한 안식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의 모든 갈등을 해소(解消)한 후의 평화와 안식까지도 가리키고 있습니다. 즉 신자가 주께로 가면 신자는 죄에서의 해방과 율법의 속박에서의 해방, 불안과 염려, 고통에서의 해방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인생들을 초대하시는 분이 [내가](카고)라는 말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심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인간에게 무거운 짐을 맡겼던 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예수께서는 친히 권위에 찬 초청에 걸맞게 절대적인 안식을 약속하셨던 것이다.
지구 전체가 온도상승으로 여름이면 과거와 달리 무덥다 합니다. 남극의 빙하가 녹아 갈라졌다라는 소식도 전해옵니다. 이런 더위 소식조차도 우리에게는 마음의 짐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초청해 주셨습니다. 이 여름 무거은 짐을 지고 등산 혹은 바닷가로 가는 것도 피서지만 무거운 짐을 지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영육간의 피서입니다. 이 여름, 봇짐도 등짐도 모두 예수님께 내려놓는 시원한 피서를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