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5일 화요일 묵상
<26:1>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26:2>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26:3>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26:4>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26:5>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26:6>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26:7>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26: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26: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26: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26: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26: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26:13>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26:15>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26: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26: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본문 해석)
6월 25일 화요일 사도행전 26:1~18
1~3절
1절 아그립바가 심문을 주도한다. 아그립바가 바울의 변론을 허락한다.
2절 이에 바울은 아그립바 왕을 부르며 그를 향한 찬사로 변론을 시작한다. 바울의 찬사는 아그립바의 호의가 아니라 그를 위한 하나님의 호의다. 바울은 먼저 유대인들의 고발에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론할 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복음 전할 절호의 기회로 생각한다.
3절 특별히 아그립바가 친유대적 정서를 가지고 있어 모든 유대 풍속과 문제를 잘 알고 있다는 점에 맞춘다. 고발당한 것이 율법과 성전 등의 유대적 사안이라 자신의 무고 입증에 유리해서 던진 말이 아니다. 그 유대적 배경이 복음의 변증을 이해하는 데 밝은 빛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아그립바에게 너그럽게 경청해 주기를 요청하며 찬사를 마무리한다. 바울은 주눅 들지 않고 복음 전할 기회를 담대히 붙든다.
4~8절
4절 바울은 자기가 젊은 시절 어떤 신앙의 삶을 살았는지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얼마나 예루살렘과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자랐는지 강조한 것이다.
5절 우리 종교 곧 유대교 내에서 가장 엄격한 종파인 바리새파에서 율법을 배우고 율법적 삶을 실천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성장과 교육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충분히 증언해 줄 수 있다고 한다.
6절 지금 이렇게 심문받는 것은 유대교에서 변절해서 또는 이단 사상을 전해서가 아니라 과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주신 약속을 이루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울은 결코 유대교와 자신을 단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의 관점에서 연속성을 강조한다.
7절 그 약속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밤낮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토록 간절히 얻기 원했던 것이다. 자신도 동족으로부터 고소를 당하면서까지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 소망은 하나님 나라이다.
8절 하나님이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신다는 것을 왜 믿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묻는다. 이유는 일반적인 부활을 바리새인들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바울의 논리는 하나님이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실 수 있다면, 왜 예수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실 수 없었겠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부활은 그가 메시아이심을 입증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9~12절
9절 바울은 자기도 과거에는 유대인들처럼 생각했고, 따라서 예수에 관해 그리스도인들이 주장하는 것을 철저하게 반대했었다고 말한다.
10절 예루살렘에서도 대제사장들에게 권한을 받아서 많은 성도들을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찬성하는 표를 던졌다고 한다.
11절 모든 회당에서 신자들을 징벌할 뿐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박해 활동은 예루살렘에만 국한되지 않고 외국 도성에까지 확대되었다.
12절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할 권한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갔다.
13~18절
13절 정오쯤 다메섹 도상에서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일행을 둘러 비추었다.
14절 모두가 다 땅에 엎드러졌다. 그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소리를 들었다. 곧이어 앞선 이야기에서 공개되지 않은 표현이 등장한다.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고 하는 음성이다. 가시채를 휘두르며 동물들을 몰 듯, 예수 믿는 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바울을 향해,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며, 스스로를 파괴하는 어리석은 일이라 하신 것이다.
15절 바울은 ‘주님 누구시니이까’라고 묻는다. 그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는 음성을 듣는다.
16절 그리고 주님은 그에게 일어서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에게 나타나신 목적을 분명히 일러 주셨다. 주님이 바울에게 나타나신 목적은, 그를 종과 증인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주님은 이에 대해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주님을 본 일과 앞으로 보게 될 일에 대한 종이자 증인으로 세움을 받은 것이다. 네가 나를 본 일이란, 다메섹에서 주님을 경험한 사건을 말하고,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이란, 이 사건에 대한 더 깊은 깨달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17절 보냄을 받은 바울이 사명을 감당하려 할 때에, 그를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의 손에서 구원해서 이방인들에게 보내실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미래적 약속이라기보다는 그때 그때마다 직접 개입해 구원하시겠다는 적극적 의지의 표현이다.
18절 눈이 멀어 예수를 박해했던 과거 자신처럼, 여전히 예수를 박해하는 동족 유대인들의 눈을 뜨게 해,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방인들에게도 해당된다. 또한 사탄의 권세(이방 신)에 매인 이방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다.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어 죄 사함을 받고 거룩한 무리 가운데 기업(분깃)을 얻게 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