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5 [이웃이 된다는 것] (눅10:30-37)

[김명현]

이웃이 된다는 것

2023.11.05.(성령강림후제23주일)

선한목자교회 김 명 현 목사

3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 31/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32/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33/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34/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35/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누가복음 10:30-37)

들어가는 말

이스라엘 남서쪽 해안을 따라 좁고 길게 자리 잡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가자의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전쟁 중입니다. 오래된 억압에 따른 분노로 폭발된 무력도발은 곧바로 복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원수에 의한 동족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은 기꺼이 피로 얼룩진 죽음의 바다에 뛰어듭니다. 무언가를 지키려는 본능은 분노와 복수심을 정의로 포장한 채 무기를 들게 합니다. 죽음은 곧 백 명, 천 명을 넘어 수만 명을 향해 갈 것입니다. 얻으려는 것은 무엇이며, 지키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죽음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지키고 얻어내려는 각자의 절박함이 있을 것입니다.

잠깐 동물의 세계로 눈을 돌려봅시다. 사자와 같이 집단을 이룬 포식자들은 같은 지역을 놓고 같은 종들끼리 싸움을 벌이곤 합니다. 죽는 한이 있을지언정 양보하면서 서로가 공존하는 법은 없습니다. 승리하는 집단은 땅을 차지하며, 패배한 집단은 땅을 잃습니다. 유인원인 침팬지의 집단 패싸움은 더욱 잔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죽인 상대를 전리품처럼 나누어 먹는 카니발리즘(동족포식)도 보여줍니다. 인간이라고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국가나 종교를 통해 연대를 맺은 집단은 다른 집단과 땅을 차지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웁니다. 여기에 평화란 없습니다. 평화는 인간의 본능이 아닙니다.

종교적 질문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이 죽음을 향해 뛰어드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땅 때문입니다. 민족적이며 동시에 종교적인, 그리고 오랜 역사 속에서 강한 연대감으로 뭉쳐진 두 집단이 하나의 땅을 두고 충돌해 왔고 오늘날 다시 충돌한 것입니다. 인간 사회는 동물의 세계 속에 보이는 ‘집단 패싸움의 법칙’을 깰 수는 없을까요? 아마도 인간이 무력을 합법화시키는 국가라는 가장 강력한 연대를 이루어 살고 있는 한, 전쟁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전쟁의 배후에는 종교도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국가주의를 부추기면서 집단의 연대를 강화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합니다.

게다가 종교는 국가를 넘어 동일한 종교를 가진 국가들의 참전을 부추기는 역할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종교의 존재이유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현실적 종교의 모습이 이러한 것은 힘을 추구하는, 즉 동물적 본능에 충실한 세력이 집단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종교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점에서 하마스의 지도자들이나, 이스라엘의 현 정부는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적 본능을 넘어 이성적이며 영적 존재라고 자부한다면, 국가라는 강제적이며 물리적인 연대를 세계를 향해 개방하면서 평화를 이루어 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종교의 힘이며 역할입니다. 종교는 연대의 장을 넓히면서 세대와 남녀, 인종과 국가 같은 집단의 벽을 허물어 이웃의 범위를 넓히면서 평화를 가져올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많은 종교가 국경을 넘어 존재하며, 국가와 인종에 국한되지 않는 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을 넘어 타인을, 자기 공동체를 넘어 타인의 공동체와 이루는 개방적 연대가 종교적 실천의 핵심입니다. 오늘날 벌어지는 전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모든 종교가 본질적 가치라고 말하는 사랑과 자비는 타자를 포용하고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는 이타성을 드러내야 합니다.

개념화된 실천은 위험하다

본질적으로는 초월적이고 이타적이어야 할 종교적 연대가 집단 이기주의로 나타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누가복음의 이야기는 종교가 집단을 한정하고 그 집단만을 위한 종교가 되었던 상황 속에서 던져진 종교적 질문입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25) 이것이 율법학자의 질문이라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습니다. 일단 율법이 무엇을 말하고 있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율법학자는 정답을 제시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27)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그대로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28) 그는 율법을 따르고 실천하는 율법학자였기에 논리적으로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 했습니다.(29) 그는 율법학자로서 자기가 올바르게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29) 여기서 율법학자는 이웃을 개념화시킵니다. 누가 이웃인가, 누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따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웃은 필연적으로 점점 축소됩니다.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미 이웃이 아니었습니다. 나아가 순수한 자격의 이웃은 유대 사람에서 신앙의 동료로, 나아가 정치적 동지로 축소됩니다.

결국 이웃이란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으로 얼마든지 축소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개념화된 이웃을 무너뜨리셔야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어떤 사람(30)은 유대인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족인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그를 피했습니다. 이웃을 개념적으로 이해했던 그들은 동족조차도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그를 보자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33) 개념이 아닌 태도야말로 이웃을 받아들이는 기준입니다. ‘누가 이웃인가’가 아니라 ‘누가 이웃이 되어 주는가’(6)가 본질입니다.

실천은 나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물론 전쟁의 현실 속에서 유대교와 이슬람교에 충실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당장 서로를 향한 형제애를 발휘하면서 이웃이 되어 하나의 땅을 공유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들은 아브라함의 두 아들인 이스마엘과 이삭의 후손들이니 정말 형제 사이인데도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도 오랫동안 땅을 놓고 원수가 되어 싸웠습니다. 이긴 쪽이 그 땅에 사는 모든 시민들의 종교를 결정했습니다. 똑같은 신앙고백, 즉 사도신경을 고백하면서도 말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가톨릭과 개신교는 자기 집단을 무장시키면서 상대방의 땅을 빼앗는 전쟁을 하지는 않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도 언젠가는 전쟁을 멈출 날이 올 것입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도 보편적 진리를 향한 진정한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종교가 본질에 충실한 역할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나치 시대 독일 기독교의 주류는 나치즘을 떠받치는 역할을 했습니다. 교회는 나치가 내세운 민족주의와 인종우월주의를 선전하는 도구가 되었으며, 유대인 학살을 합리화시키는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제공했습니다. 종교는 사실 어느 시대나 정의의 이름으로 폭력을 합리화시키면서 집단 이기주의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곤 했습니다. 단지 그 가운데서도 신념과 희생을 바탕으로 종교의 본질을 지켜낸 종교인들이 있었을 뿐입니다.

당장의 세계는 암울해 보이며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입니다. 세계는 밀려오는 이슬람 이민자들을 점점 배척할 것이며, 한편으로는 유대인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도 재등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슬람교도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일 것이며, 기꺼이 연대하려는 공동체는 그들을 환대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유대인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같이 슬퍼함으로써 복수심을 누그러뜨릴 것이며, 자기희생 위에 세워진 공동체들은 그들을 향해 평화의 힘을 증거 할 것입니다. 이들과 이와 같은 공동체는 소수일 테지만, 이들의 참된 영성은 이웃을 받아들이고 돌보면서 인간을 인간답게 할 것입니다.

나가는 말

한국의 종교, 특히 한국교회는 이타적인 사랑과 타자와의 연대를 위해 자기희생을 감수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복음주의를 자처하는, 실은 복음 대신 교리를 신앙의 척도로 내세우는 근본주의자들이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라고 말할 뿐이지만,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성장과 힘을 추구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보편적 인류애나 자연과의 공존 등 인류가 이타적인 연대를 필요로 하는 지금, 한국교회는 자기희생을 기쁨 삼아 더 넓은 세상과 연대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한국교회의 타성을 보면, 오히려 갈등을 이용해 힘을 얻고자 폭력을 부추기는 세력의 앞잡이 노릇을 기꺼이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면, 시작은 언제나 간단합니다. 시점은 ‘지금’이며, 출발은 ‘나’입니다. 사실 이런 말은 누구나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연대와 공존을 통해 평화를 이루길 원한다면, 거기에는 네 가지 길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 평화를 위한 일에 기부하는 것, 평화를 위한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것, 평화를 위한 공동체를 만들거나 참여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어느 단계든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 시작한다면, 우리는 곧이어 더 넓은 세상과의 연대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