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지도자가 달성한 인보사업
대구 동구 효목 1동
부녀지도자 윤 춘 례 (48세)
고난을 이겨내고 자립의 터전마련
효목 1동은 동북 편으로 금호강이 흐르고 강기슭에는 동촌 유원지가 있다. 유원지를 인접한 망우공원에는 홍의장군 곽재우 동상이 우뚝서있고 대구의 관문지인 영남제일관이 건립되어 영남의 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마을의 윤춘례 부녀지도자는 포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1959년 이곳 마을에 시집을 왔었다.
당시 이곳 마을은 청석 밭과 미나리 논뿐인 허허벌판에서 초가집만이 드문드문 벌판을 지키고 있었기에 말이 도시였지 오순도순 인정 있게 살아가는 농촌마을에 비하면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하루 세끼를 잇지 못하는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남편을 비롯하여 아홉 식구가 초가집 방 2칸에서 일정한 직업도 없이 겨우 밭 300평에 생계를 의존하고 있었으며 게다가 시할머니께서는 중풍으로 문밖출입조차 할 수 없어 손수 대소변을 받지 않으면 안 될 처지였다.
윤 부녀지도자는 이 어려운 가정에서 어떻게 하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을까 꼼꼼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당시 갓 결혼한 윤 부부는 용기를 내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남의 집 가내수공업 일을 도와주고 남편은 우유배달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이들 부부는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굳은 신념을 머리에 되새기며 3년간 하루 한 끼를 굶어 가면서까지 저축을 하는 등 피땀 흘려 열심히 일해 온 보람으로 어려운 가정을 무난히 이끌어 나갈 수 있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곳 효목 1동 마을에도 현대식 건물이 점차 신축되고 인구도 점점 늘어만 갔다. 이 무렵 이 마을에도 새마을운동의 열풍이 서서히 일기 시작하자 억척부인으로 소문난 윤춘례씨를 74년 1월 부녀지도자로 선출하였다.
부녀지도자로 선출된 그녀는 지난달 어려운 가정을 이끌어온 경험을 토대로 마을발전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할 것을 결심하였다.
구판사업으로 인보협동에 앞장
윤 부녀지도자는 우선 모든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혼자의 힘보다는 여러 사람의 힘이 모아져야만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회원을 확보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끈질기게 설득을 거듭한 결과 70여명의 부녀회원을 확보하는데 성공하고 회원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데 안간힘을 다했다.
75년부터 동 부녀 회장직을 맡게 된 그는 어떠한 일을 어떻게 추진해야 마을을 위한 길인가를 토의한 끝에 우선 손쉽게 할 수 있는 구판사업을 선정 추진토록 합의를 보았다. 손수레 1대를 구입하고 생활필수품인 비누와 하이타이 등을 싣고 이집 저집 대문을 두드리며 행상을 시작했다. 막상 시작은 했지만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부녀회원들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한 일부 가정에서는 대문을 아예 열어주지 않는가하면 여자들이 아침부터 찾아와 재수가 없다는 등 갖은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며칠 동안 계속 싫은 소리를 들은 부녀회원들은 이렇게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구판사업을 할 수 없다며 회원직을 그만두겠다고 할 때 윤 부녀지도자는 눈앞이 캄캄하였다.
그러나 부녀회원들에게 마을발전을 위해 헌신하기로 스스로 작정한 우리가 아니냐? 고 격려하여 다시 구판사업을 실시하였다. 3개월 만에 8만여 원의 순이익을 얻어 보람을 느낀 부녀회원들은 포항으로 내려가 멸치 80포를 구입 판매하여 또 7만원의 이익을 얻게 되었다. 윤 부녀지도자와 부녀회원들은 애써 모은 이 적은 기금을 값있게 쓰기 로하고 동구 신천 3동에 소재한 불우시설 수용소인 대천보육원을 위문하여 떡 2말과 선풍기 1대를 전달하고 원생들과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등 인보협동 사업을 펴 나갔다.
또한 76년 어느 겨울날 마을에 불의의 화재가 발생하자 전 부녀회원들은 합심하여 진화작업을 돕고 화재로 인해 오갈 데 없는 주민에게 거처를 마련 해 줌은 물론 쌀 3말, 소맥분 2포, 연탄 100장을 전달하면서 가족을 잃은 아픈 마음을 달래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부녀회원들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전 주민은 그간의 노고에 찬사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으며 윤 부녀지도자와 남편인 차상록 씨도 79년 1월 새마을지도자로 선출되자 부녀회의 일에 적극 지원하여 주었다. 부녀회원들은 날이 갈수록 가정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노인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하여 부녀회 기금 20만원으로 연탄 600장과 방석 40개를 만들어 경로당을 방문 전달하여 편히 쉴 수 있도록 정성을 다 하기도 하였다.
77년 7월 29일 뜻밖에도 윤 부녀지도자에게는 청천벼락이 떨어졌다. 의사로부터 자궁암이란 무서운 병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수술을 받은 후 1개월간의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도 부녀회 구판사업을 걱정하기까지 하였다. 당시 암에 걸리면 생명을 구하기란 극히 어려운 실정이었지만 하느님의 은총인지 천만다행으로 생명을 구한 것이었다.
윤 부녀지도자가 병원에 입원한 기간에 부녀회활동이 다소 부진하게 되자 몸조리하라는 회원과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새마을사업에 또 다시 앞장섰다.
마을 앞 아양로 변 언덕길에는 하수구가 없어 길이 온통 빙판을 이루어 지나가는 행인이 넘어져 다치기가 일쑤였다. 인근 주민 중에는 생활의 여유가 있어 주민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어느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아 부녀회 기금으로 자율추진하기로 하여 30만원으로 자재를 구입하고 부녀회원들과 회원 남편들이 솔선 참여하여 길이 50m의 하수도를 설치, 주민통행의 편익을 제공하였다.
할머니 경로당을 마련하고
흔히들 사람이 늙으면 어린이와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말 한마디 잘못하여도 서운해 하는 노인들에게 여생을 보다 즐겁게 보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하여 할머니들이 모여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경로당을 설치하기로 하고 부녀회원들은 관내 서정수씨 댁을 찾아 방 한 칸을 무료로 빌려 줄 것을 얘기하였더니 좋은 착안이라면서 쾌히 방 두간을 사용토록 승낙하였다. 부녀회원들은 81년 3월 방을 깨끗이 정비하여 경로당으로 제공하는 한편 구판사업 이익금으로 동절기에는 연탄을 지원하고 수시로 불편한 것이 없는가. 방문하기도 하였다.
매년 어버이날을 기하여 경로잔치를 베풀고 있지만 특히 81년 5월에는 금호강변 동촌유원지 동아식당에서 노인 300명을 초청하여 푸짐한 음식을 장만 여생을 즐겁게 살으시라고 위로를 해드렸다.
일선장병을 찾아서
77년도에 대구시 주관으로 부녀회원들은 전방지역 견학을 한바 있어 이때 북괴가 두더지처럼 파놓은 땅굴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때부터 부녀회원들은 군인들에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일선장병은 물론 향토방위의 역군인 예비군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다. 부녀회원들은 여자는 일평생 총도 한번 만져보지 못하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 면서 지역 예비군 중대장을 찾아 총검술 및 제식훈련을 받아 전 회원들에게 반공의식을 더욱 고취시키겠다고 건의하자 그 용기에 감동되어 군 당국과 협조하여 77년 5월 아양국민학교에서 부녀회원과 예비군중대장, 경찰관계관, 군부대장을 모신 가운데 보기 드문 예비군 훈련을 받게 되었다. 윤 부녀지도자는 제식훈련과 총검술에 참여한 회원들에게 예비군복 25벌을 전달하였다. 이 훈련을 계기로 부녀자들은 반공의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79년에 1월에는 부녀회원과 남자 지도자등 46명이 대형 버스를 이용하여 영덕해안 초소 장병들을 위문 300명의 장병에게 떡국을 끓여주고 TV 1대와 과일 등 푸짐한 선물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81년 1월에도 45명의 남녀지도자가 강원도 양구의 일선장병을 찾아 부녀회 기금 52만원으로 TV 1대와 떡과 과일 등을 준비하여 전달하고 위로 격려하였다.
생활화된 질서운동
대구시민의 휴식처인 동촌 유원지가 이 마을에 위치하여 행락인파가 몰려들고 있는 곳이다. 수년전만 하여도 쓰레기투성이고 술주정꾼이 거리를 활보하고 불량배들이 모처럼 가족과 함께 나온 행락인을 괴롭힌 무질서한 곳이었으나 부녀회원들의 계속적인 캠페인과 유원지 자연보호 활동으로 품위 있고 깨끗한 유원지로 변모하여 누구나 마음 놓고 하루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공휴일과 토요일 오후는 행락인파가 붐벼 항상 15명 이상의 부녀회원들이 캠페인을 전개하며 휴지를 줍고 나무를 돌보고 있다. 또한 거리질서 지도 당번 조를 편성하여 아양교와 만촌 파출소 입구에서 매일 아침저녁 2시간씩 지도에 임하고 있어 인근주민들은 윤 부녀지도자를 “거리의 신호등”, “인간신호등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매월 1일과 15일에는 부녀회에서 준비한 빗자루 200개를 들고 범시민적으로 조기청소도 실시하고 불량 청소년 선도에도 힘을 쏟고 있다.
마을회관 건립의 꿈을 키우며
지금까지 부녀회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구판사업을 운영하여 얻은 이익금이 무려 800만원이 넘었으나 그동안 불우이웃돕기, 장병위문, 경로잔치 등 인보사업에 사용하고 560만원의 기금이 남아 있다. 보다 보람된 일을 해보겠다는 윤 부녀지도자와 회원들은 계속 구판사업을 실시하여 83년도에는 기필코 마을회관을 건립할 것을 꿈꾸며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며 이집 저집으로 구판사업에 열중하고 있다.
또한 조화 있는 마을을 가꾸기 위하여 꽃길 가꾸기, 화분 내놓기, 가정과 골목길에 나무를 심는 일 등 부녀자들이 할 수 있는 손쉬운 일들을 새마을운동의 구심사업으로 추진하자고 윤 부녀지도자와 부녀회원들은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자료출처 : 새마을운동 1982 내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