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공 교 통 네 트 워 크 [참여단체] 녹색교통운동,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 사회공공연구원, 서울환경운동연합,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 안전사회시민연대,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YMCA전국연맹 | 논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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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영제를 전제로
‘시내버스 필수공익사업 지정’결의안,
고작 파업금지가 대안인가?
- 헌법재판소 판결 및 ILO 권고를 무시…97년이 아니라 06년 법개정에 주목해야
- 시의회의 적극적 감시 및 조정역할 고려 못한 ‘파업금지’ 만능주의 보여줄 뿐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 특히 입법권을 지닌 대의기구의 경우에는 권리의 제한을 용이한 방법으로 택해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의회 영등포구 출신 김종길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국민의 힘 의원 24명이 함께 이름을 올린 ‘시내버스 필수공익사업 지정을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개정 촉구 결의안’은 부적절한 수준을 넘어서서 시의원이라는 자격에 대한 의구심이 들 정도다.
공공교통네트워크는 시내버스를 포함한 지하철 등 대중교통의 공공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 배경에는 시민들의 기본권에 가까운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과 동시에 기후위기 시기에 자가용 중심의 교통환경을 급격히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교통 수단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이들이 일을 하러가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사회적 형평성이라는 측면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시내버스는 필수적인 공익 서비스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김종길 시의원이 주장하는 맥락은 틀렸다.
우선, ‘준공영제’이기 때문에 공익성이 중요해졌다고 보는 관점은 넌센스다. 준공영제는 기존에도 있던 재정지원금의 특수한 지원방식일 뿐이다. 시내버스가 갖는 공익성은 준공영제냐 아니냐가 아니라 시내버스라는 공공교통서비스 자체에 대한 판단이어야 한다. 특히 ‘준공영제’라는 맥락을 강조하면서 사업자가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 제한에만 주목한 것은 김종길 시의원이 해당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미 사업자들은 코로나19시기를 포함하여 매년 수백억원의 배당을 해왔다. 당장 2022년 기준으로 700억원이 넘는 순이익이 확인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즉 문제는 사업자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보호하여 사업 적자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사업이윤을 가져갈 수 있는 준공영제 자체다. 준공영제 제도는 노동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사업자에겐 막대한 이윤을 보장하는 황금거위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준공영제=공익사업이라는 단순한 논리를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렇게 공익적인 서비스를 어째서 서울시가 직접 제공하지 않고 민간사업자를 통해서 제공하나?
다음으로 이를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하자는 주장은 퇴행적이다. 김종길 시의원은 결의안 제안문을 통해서 원래 시내버스가 1997년 법개정에 들어가 있었으나 국회의 방치 속에서 폐기되었다고 말했다. 우스운 논리다. 오히려 1997년 환경노동위원회 안으로 제안된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안에는 한국은행을 제외한 은행과 시내버스에 대한 필수공익사업 지정을 2000년까지만 유지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해당 시기에 의원 발의되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된 법률은 조성준 의원안, 방용석 의원안, 허남훈 의원안을 비롯해 정부발의안까지 총 4건에 달했다. 김종길 의원은 이런 맥락을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에 걸맞는 단 하나의 폐기안을 가지고 ‘무관심’ 운운했을 뿐이다. 심각한 건 이마저도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한국의 필수공익사업 지정을 통한 파업권의 제약은 ILO를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권고를 받아온 항목이다. 국제적으로는 생명, 안전에 해당하는 제한적인 업종에만 적용하도록 한 것을 한국은 공익성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교통 등을 임의로 확대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996년에는 기존 노동위원회를 통한 직권중재 자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선 위헌 판단이 더 많았다. 그러니까 김종길 시의원이 주장하는 것처럼 당시 상황에선 노동관계법 상 필수공익사업 지정과 관련한 쟁점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오히려 사회적 논의를 통해서 시내버스가 배제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실 이런 사실 관계도 문제지만 공공교통네트워크 차원에선 시내버스 파업 이후에 시의회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파업을 금지하는 것’ 밖에 없는가라는 점에 더욱 큰 문제의식이 있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현재 사업자와 노동자의 비대칭적인 관계는 준공영제 때문에 발생한다. 시내버스 사업자마다 사업 이익이 다를 텐데도 불구하고 재정지원금 지급 기준에 불과한 표준운송원가에 따라서 동일한 임금을 지급받는다는 것은 분명 이상하다. 이익이 많이 나는 버스회사는 더 많은 임금을 주어야 하는 것이 맞고, 수입이 덜 나는 버스회사는 적정한 임금 수준에 대해 노사간 합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노사간 논의는 늘 형식적으로 끝나고 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가면 서울시가 개입해서 임금 상승분에 대해 중재하는 방식으로 타결되어 왔다. 너무 반복하니 뻔한 연극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리고 이런 사태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준공영제라는 허술한 제도를 20년 동안 운영해온 서울시다. 그리고 이런 서울시의 행정을 감독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시의회의 책임이다. 그런 점에서 시의회는 현행 버스 준공영제를 개선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해왔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공공교통네트워크는 이번 결의안은 사실관계의 무지나 왜곡이라는 맥락과 함께 시의원 스스로 시의회의 역할을 도외시하는 무책임하고 후안무치한 행태로 볼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준공영제에 있다. 왜 버스노동자의 임금을 서울시가 재정으로 지원해야 하는가, 그리고 사업자들은 매년 수백억원의 영업 이익이 나는데도 추가적인 재정으로 임금 상승분을 제공해야 하는가. 서울시의회가 살펴보고 개선해야 할 부분은 이런 것이다.
누군가의 권리를 제한하여 문제를 해결한다는 발상은 민주적이지도 않고, 특히 이 건과 관련해서는 실효성도 낮다. 결의안이 국회로 전달되어 봤자 제대로 논의될 가치 조차 없이 폐기될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김종길 시의원의 주장을 검증없이 기사화하는 언론들의 행태를 보고 논평을 낼 수 밖에 없었다. 이 점은 추가로 유감을 표한다. [끝]
2024년 4월 8일
공공교통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