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형상화 ③
뇌리에 박힌 토끼상
한반도의 형상을 토끼로 생각한 사람은 1903년에 일본의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이다. 그는 1900년부터 1902년 사이, 두 차례에 걸쳐 조선 일대를 답사하고 동경제국대학기요(東京帝國大學紀要)에 아래와 같은 내용을 조선산악론(朝鮮山岳論)을 발표했다(나두산, ‘토끼’로 식민지 근성 키운 조선총독부, 카카오스토리, 2023.1.4).
그와 그들이 우리나라 역사를 토끼 한 마리로 이해했던 것은 그들의 무서운 음모다. 고토분지로는 우리역사 범위는 두만-압록강을 결코 넘을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를 토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이 그는 우리역사와 지도를 토끼로 기막히게 규정한 장본인이다. 이를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사람들은 토기상의 의미를 알고나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1908년에 최남선이 소년 창간호에서 한반도의 형상이 호랑이라고 주장했다. 1908년 11월, 육당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은 18세의 나이로 ‘소년’지를 창간하게 된다. 그 창간호에 등장하는 삽화가 바로 한반도 호랑이 지도이다.
최초로 한반도를 호랑이로 그린 그림은 김태희의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像圖)인데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그의 그림이 최남선의 그림과 다른 것은 호랑이가 포효를 하고 있다. 그 후에 등장하는 그림은 1988, 운사가 그리어 낭산(浪山) 서상은(徐相殷)에게 기증한 그림이다(호미곶 등대박물관 소장). 운사의 그림은 호랑이 꼬리(호미곶)를 분명하게 그린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부분에 남북으로 길게 붙어 있는 한반도는 여러 가지 형상으로 비유되었다. 그런데 전통적인 한반도 지형론과 완전히 결이 다른 논리가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등장한다(참조).
고려대학교 박물관에는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像圖)’라는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호랑이가 대륙을 향해 웅장하게 포효하는 모습으로 한반도를 그린 이 그림(가로 46cm, 세로 80.3cm)은 ‘한반도 호랑이론’을 가장 실감나게 표현한 그림으로 평가된다. 백두산 부분을 호랑이의 머리 부분으로 표현하고, 함경북도 두만강 일대를 앞다리 오른발, 평안도 강계지역을 앞다리 왼발, 황해도를 뒷다리 오른발, 전라도를 뒷다리 왼발, 변산반도 일대를 꼬리 끝, 백두대간을 등줄기와 뼈대로 그렸다. 제주도와 울릉도 등 섬들은 별도의 채색과 방식으로 그냥 섬 모양으로 그려 놓았다. 김태희가 그린 것으로, 제작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략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다. 잡지 『소년』이 창간된 시기 한반도 호랑이론이 크게 유행하던 시기로 보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북한에서 한반도 지도를 조선 호랑이 모양으로 형상화한 ‘근역강산맹호기상도’가 그려진 우표를 발행했다(2017). ‘근역강산맹호기상도’에 대해 “조선을 강점하고 조선 사람의 성과 이름, 말과 글까지 없애 버리려고 미쳐 날뛰던 일제에게 항거하여 1920년대에 조선의 지형학적 특징을 용맹한 조선 범으로 상징화하여 창작되었다”고 하였다(북, 맹호기상도 우표 발행, 통일뉴스, 2017.03.02).
지금까지 한반도 지형의 동물형상을 노인, 토끼, 맹호를 주로 살펴보았는데 이미지가 좋아지는 방향으로 변하였다. 노인형과 토끼형은 더 이상 민족의 존엄이 허락하지 않아서 폐기되어야 한다. 그런데 호랑이는 어떤가? 불편한 자세의 호랑이 같아 답답하다. 웅크린 이미지와도 안 어울리고, 입을 벌린 모습은 꼬리를 내리고 살금살금 걷는 모습과도 다르고, 꼬리를 내리고 포효하는 호랑이는 노약한 맹호의 위엄과 같아 보인다. 나무를 타는 호랑이라면 꼬리를 뻗쳐야 되는데 . . . 좌우간 어색하다. 사냥을 위해 웅크린 호상이 아니라 한반도 형태에 억지로 맞추려는 고뇌의 흔적 같다. 그래서 대체할 형상화를 갈구하던 차에 새로운 아이디어의 형상화가 등장하였다. 바로 장구 치는 여자 무용수의 그림이 최근에 등장하였다. 무용수에 빗댄 그림은 간혹 있었지만 이번에 등장한 자유스런 춤사위가 훨씬 상징성과 친밀감, 호감도를 높여준다. [2023.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