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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27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결단, 정체성 그리고 말씀
본문 : 에베소서 6장 16~17절
이 모든 것에 더하여 믿음의 방패를 손에 드십시오. 그것으로써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모든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새번역>
여러분들은 보통 외출을 준비할 때 어떤 것부터 하십니까? 먼저 샤워를 하거나 머리를 감는 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리고는 미리 생각해둔 옷을 입고, 머리를 단장하거나 화장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옷을 입고 머리를 단장하고 화장을 다 했다고 해서 외출 준비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점검한 후 다시 방으로 들어갑니다. 어떤 악세사리를 할지, 시계는 찰지말지, 가방이나 신발은 어떤 것이 어울릴지 또 한참을 고민하고 선택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끝은 아닙니다. 끝났을 것 같은 순간 조그마한 병을 집어 들고 한 바퀴 돌면서 향수를 뿌립니다. 그제야 드디어 외출 준비를 마치고 집 밖으로 나설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분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분들이 외출을 준비할 때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외출이라도 있는 날에는 아마 이런 순서가 더욱 세밀해 지고, 복잡해지게 될 것입니다. 준비 시간도 훨씬 많이 소요될 것입니다. 중요한 날이기에 더 잘 꼼꼼하게 준비해서 외출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세상 외출은 어떠할까요? 세상이라는 광야를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험 준비는 어떠할까요?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로 가슴을 가리고, 평화의 복음의 신을 신었다면 이제 그냥 세상 가운데, 광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일까요? 물론 그렇게 나아가더라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충분히 멋진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없더라도 부족함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너무도 잘 아시고 채워 주시고자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악세사리를 주시고자 합니다.
혹시라도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악세사리’라고 부르는 것에 노여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외출 준비에서 악세사리로 불리는 가방이나 모자나 머리띠, 시계나 향수는 결코 겉치장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아이템입니다. 어떤 악세사리를 하고 나가냐에 따라 패션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악세사리도 너무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완성시킬 중요한 아이템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안타깝게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진짜 그리스도인들에게 악세사리로만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이 악세사리들은 언뜻 보면 목걸이나 팔찌, 시계같이 화려한 도구들로 보일 수 있습니다. 만약 외적으로만 빛나게 사용된다면 그런 도구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아니면 스스로의 자신감을 위해, 패션의 완성을 위해 화려한 목걸이를 하고, 팔찌를 차고, 반지를 끼고, 시계를 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화려하게 빛나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사탄의 세력들도 하나님이 주시는 이 악세사리의 화려함만 보아도 겁을 먹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악세사리를 ‘하나님의 전신갑주’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아가 악세사리로써 끝나지 않고, 갑옷이 될 수 있도록, 그 외적 기능이 아닌 내적 기능으로도 잘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저 겉모양만으로도 겁은 줄 수 있지만 그 능력이 오래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악세사리들을 갑옷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진짜 그 악세사리를 주신 이유를 깨닫고, 잘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진짜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선물인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굳게 서서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나라를 구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놀라운 선물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선물은 바로, ‘믿음의 방패’입니다.
이 모든 것에 더하여 믿음의 방패를 손에 드십시오. 그것으로써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모든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6절, 새번역>
진리의 허리띠, 정의의 가슴막이, 평화의 복음의 신에 더하여 믿음의 방패를 손에 들어야 합니다. 이 구절은 공동번역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손에는 언제나 믿음의 방패를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 방패로 여러분은 악마가 쏘는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6절, 공동번역>
가장 중요한 단어는, ‘언제나’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허리를 동이었다면, 그 믿음은 반드시 발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속으로만 예수를 믿는 존재가 아니라 겉으로도 예수를 믿는 믿음이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수많은 세상의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살아가다보면 수많은 정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실이 아닌 것들로 손가락질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 끊이지 않습니다. 분명 믿음으로 허리를 동이고 굳게 서야지 생각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공격을 받다보면 어느 순간 ‘죄책감’이라는 녀석에 빠져 허우적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공격들을 효율적으로 방어해야 할 믿음의 방패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믿음의 방패는 한 마디로 ‘결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속에 있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나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나는 믿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선포가 ‘결단’이 되어 믿음의 방패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결단을 보였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을 리스펙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결단을 통해 언제나 수많은 불화살을 막아내는 믿음의 방패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 3장 16~18절, 개역개정>
이 구절에서 정말 닮고 싶은 믿음의 결단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결단입니까? 이 얼마나 위대한 믿음의 방패입니까? 그 결단이, 그 믿음의 방패가 어떤 결과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는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방장관들과 대신들과 총독들과 왕의 측근들이 모여서 이 사람들을 보니, 그 몸이 불에 상하지 않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않고, 바지 색깔도 변하지 않고, 그들에게서 불에 탄 냄새도 나지 않았다. 느부갓네살 왕이 말하였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돌보신 하나님을 찬송하여라. 그는 천사를 보내서 그의 종들을 구하셨다. 이 종들은 저희의 하나님을 의뢰하여, 저희의 몸을 바치면서까지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저희의 하나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도 절하여 섬기지 않았다. <다니엘 3장 27~28절, 새번역>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뿐이었겠습니까? 수많은 믿음의 선배님들이 보여주셨던 것이 ‘결단’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발현된 결단은 수많은 불화살을 막아 꺼뜨리는 것을 뛰어넘어 시대 시대마다 기적을 일으켰고, 간증거리를 만들어 냈고, 하나님께로 이어지는 믿음의 다리가 되게 하였음을 우리는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결단해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속사람과 겉사람 모두 그리스도인으로 살겠노라! 나는 이 세상을 세상의 방법이 아닌 믿음으로 살겠노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살겠노라! 이렇게 결단하고 선포할 때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게 만드는 훌륭한 전신갑주 중 하나가 바로 ‘믿음의 방패’인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로마서 8장 35절, 새번역>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8장 38~39절, 새번역>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결단의 순간이 찾아 왔습니다. 앞에 있는 믿음의 방패를 들어야 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결단하셨다면 이제 언제나 그 믿음의 방패를 들고 모든 공격을 멋지게 막아내시길 축복합니다.
두 번째 선물은 바로 ‘구원의 투구’입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와 세 번째 선물에는 특별한 수식어가 붙습니다. 바로 ‘받아’ 라는 말입니다. ‘받아’라는 말은 ‘주는’ 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허리띠, 정의의 가슴막이, 평화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는 자신이 직접 해야 하는 능동태였다면,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은 자신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닌 주어지는 수동태로 사용되어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구원의 투구가 첫 번째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주셔야만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쓰고 싶어도, 쓰려고 해도 쓸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 새번역>
구원의 투구야말로 직접적으로 밝히고 계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로 받으셔야 합니다.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이 선물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결코 받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구원의 투구입니다. 그리고 이 구원의 투구를 쓰지 않으면 당연히 머리를 보호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투구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투구는 당연히 머리를 보호하는 것이지만 구별을 하는 ‘표식’이 되기도 합니다. 투구는 어떤 나라의 군사인지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계급에 따라 다른 투구를 쓰기도 합니다. 지휘관일수록 더 크고 화려하고 멋진 투구를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군인들 사이에서 그 사람이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투구가 일종의 ‘표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투구는 자신이 만들어 쓰는 것이 아닙니다. 왕으로부터 부여 받는 것입니다. 왕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그 투구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가운데 나아가는 우리를 친히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것 이상으로 누구인지 보여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정체성’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성도입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분명한 표식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구별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새번역>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독생자 아들을 아끼지 않고 이 땅에 보내주셔서 죽을 수밖에 우리와 바꾸셨습니다. 죄의 담을 허무셨고, 죽음을 이기시고,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구원 받은 백성답게 사는 것입니다. 어딜 가든지 구원 받은 백성임을 알려야 하고 티가 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표식, 즉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이렇게 하나님이 선포해 주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3장 17절, 개역개정>
우리는 구원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쓸 수가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아야 합니다.
대망의 전신갑주 마지막이자, 세 번째 선물은 바로, ‘성령의 검’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혹시라도 ‘검’이라는 말에 오해를 할까봐 바로 이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에베소서 6장 17절B, 새번역>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말씀 드리지만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모두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지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사람들은 진짜 칼을 휘두르고, 어떤 방식으로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으로 힘써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공격 능력은 ‘말씀’에서 나옵니다. 마치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의 모습과 같이 우리도 말씀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에게 말하였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주님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 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모조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또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 <사무엘상 17장 45~47절, 새번역>
다윗은 물맷돌로만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미 돌을 던지기 전부터 승리한 것입니다.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바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말씀대로 하시는 분이십니다.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는 그 말씀으로 인하여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손에 붙들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말씀이 없이는 하나님과 전혀 소통할 수도 없고, 말씀이 없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그저 집에만 머물러 있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기력증에 빠진 그리스도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지금 영적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면 손을 살펴 보십시오. 분명 손에서 말씀을 놓고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받아 들고, 성령의 검을 들고 전진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수많은 말씀이 아닌 것을 무찔러 말씀을 세워가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 ‘복음’을 ‘말씀’으로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말과 경험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입니다. 오직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으로 가고, 온전함으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드실 것입니다. 생동감이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기쁨을 느끼게 하실 것이며, 살아가는 이유를 설명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바로 이 말씀이 아닐까요?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마가복음 12장 29~31절, 새번역>
그리고 성령의 검을 든 사람들의 반응은 이어지는 말씀을 한 이의 반응과 같아야 할 것입니다. 이 반응이 지금 말씀을 듣는 우리의 반응이어야 합니다.
그러자 율법학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밖에 다른 이는 없다고 하신 그 말씀은 옳습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낫습니다." <마가복음 12장 32~33절, 새번역>
이런 반응을 보였을 때 예수님의 대답은 정말로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든 자를 향한 격려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마가복음 12장 34절A, 새번역>
하나님의 주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 쥐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굳게 서서 승리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우리는 8월을 시작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갑옷을 입자’ 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결심에 응답하셔서 한 달 동안 우리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친히 입혀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믿는 믿음으로 허리를 동이셔야 합니다. 진리의 허리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가슴을 가리셔야 합니다. 정의의 가슴막이!
더 오래, 더 멀리, 하나님의 보호 아래, 갈 수 없는 길을 가도록 평화의 복음을 신어야 합니다. 평화의 복음의 신!
이제는 믿음으로 살겠노라 결단하고 모든 공격을 막아 내야 합니다. 믿음의 방패!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구원의 투구!
오직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검!
마치 새 옷처럼 처음에는 좋지만 어색할 수 있습니다. 익숙해 질 때까지는 내 옷이 아닌 듯 잘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알게 될 것입니다. 왜 이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왜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셨는지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잘 입고 있는 것입니다. 불편하다고 벗지 않으시면 됩니다. 벗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결코 벗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성숙을 위하여 유지할 수 있는 그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동역자들이 함께 도우며 손잡고 갈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신갑주 이야기가 마무리되며 이 구절로 말씀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해야 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 될 것입니다.
온갖 기도와 간구로 언제나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이것을 위하여 늘 깨어서 끝까지 참으면서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시오. <에베소서 6장 18절, 새번역>
결단 찬양 - 손 잡고 함께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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