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무와 흙으로 지은 집 이젠 주거도 신토불이 시대
글·사진 / 박인호(전원칼럼리스트·작가)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말을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은 아마 없을 듯하다. 우리 몸과 태어난 땅은 하나라는 뜻으로, 자기가 사는 땅에서 산출된 농산물이라야 체질에 잘 맞음을 이르는 말이다.『동의보감』의 ‘약식동원론(藥食同源論)’에서 따왔다.
맞다. 우리 몸과 땅은 둘이 아니다. 사람의 몸은 태어난 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 몸은 이 하늘과 땅의 양기와 음기로 기혈의 순환이 이루어지는데, 동질의 기를 받고 자란 이 땅의 먹을거리가 우리 몸에 들어와서 동질의 기를 보충해주어야 건강이 유지된다. 반면 외국 땅의 이질적인 기를 받고 자란 수입 농산물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기혈의 순환에 상충이 발생해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진다.
이는 주택 또한 다르지 않다. 우리 나무와 흙(황토)으로 지은 집이라야 우리 체질에 맞고 건강한 주거생활이 가능하다. 이른바 ‘주거 신토불이’다. 우리 땅에서 난 나무와 흙으로 지은 가장 자연에 가까운 집을 말한다. 한옥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 전국의 산과 들, 강변과 계곡 옆에 지은 전원주택 중에도 이런 집들이 많다.
주거 신토불이, 한옥에 그 뿌리가 있다
한옥(韓屋) 하면 대개 고래 등 같은 기와집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그런 커다란 기와한옥에 사는 사람은 그야말로 소수에 불과했다. 웬만한 양반집도 초가지붕이 주류였다. 서민들은 주변의 나무와 흙, 돌, 짚, 억새 등 자연재료를 사용해 보금자리를 손수 만들었다. 초가집, 귀틀집, 너와집 등이 바로 그것이다. 넓은 의미의 한옥은 비단 기와한옥뿐 아니라 이들 서민한옥을 모두 포함한다. 국어사전을 보더라도 “한옥이란 우리나라 고유의 형식으로 지은 집을 서양식 건물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적고 있다.
사실 우리 기와한옥은 중국(당나라·송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우리 한옥의 독창성을 들자면 기와지붕이 아니라 온돌과 마루이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자연과의 조화이다. 우리 한옥은 주변의 자연환경과 어울리도록 집의 좌향을 잡고, 그곳에서 나오는 나무와 흙, 돌 등의 자연재료를 사용해 그곳의 지세에 맞는 형태로 지어졌다. 한옥이 가장 친환경적인 건축물로 꼽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렇듯 자연재료를 쓰는 한옥에는 철근 콘크리트 등의 현대 건축에서 생기는 공해가 거의 없다. 또한 나무와 흙, 돌 등 한옥 건축에 쓰이는 재료들은 대부분 재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한옥은 스스로 살아 숨 쉬는 에코 하우스(Eco House, 생태주택)이자 힐링 하우스(Healing House, 치유·건강주택)이다.
그렇다고 옛날 한옥을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다. 이를 현대 삶의 방식에 맞는 한옥, 즉 ‘신한옥’으로 재창조해야 한다. 신한옥이란 기존의 전통한옥을 계승·발전하고자 내건 ‘현대적 한옥’을 말한다. 이미 정부가 직접 나서 이를 주도하고 있다. 신한옥은 전통한옥의 멋과 맛을 살리면서도, 재료의 모듈화와 표준화를 통해 건축비는 낮추고 주거 편의성은 높인 집이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 중인 신한옥은 기와한옥으로 제한하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한옥은 기와한옥뿐만 아니라 귀틀집, 너와집, 초가집 등을 계승·발전한 서민 신한옥을 아우르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한옥마을 중 하나인 안동 하회마을에 가보면 고래 등 같은 기와한옥과 초가집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 살아 숨 쉬는 ‘에코·힐링 하우스’
이 대목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현재 기와한옥에 쓰이는 목재의 대부분은 캐나다 등지에서 들여오는 외국산이다. 통상 목조주택으로 불리는 전원주택 또한 마찬가지다. 한옥의 골조를 이루는 나무가 외국산이라면, 과연 그걸로 지은 집을 한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수입 쇠고기가 한우고기가 될 수 없듯이, 수입 목재로 지은 한옥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냥 목조주택일 뿐이다. 더욱이 ‘주거 신토불이’와는 거리가 멀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이게 우리 한옥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집 건축에 들어간 목재의 51% 이상은 국산 나무를 사용해야 맞다. 하지만 현재 한옥 건축에서 국산 목재를 사용하는 곳은 매우 드문 실정이다. 목구조 전원주택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다 보니 현재 우리나라의 목재 자급률은 20%에도 훨씬 못 미친다.
한옥의 기준을 품격 있고 화려한, 그래서 보기에 좋은 기와한옥으로 한정해놓고 그에 맞춰 건축을 하다 보니 목재가 커지고 가격이 비싸지는 것이다. 그런 나무는 대부분 수입목이다. 이런 수입목으로 지은 집은 ‘무늬만 한옥’일 뿐이다. 우리 나무와 흙을 사용해 지어야 진정한 ‘신토불이 한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목구조주택이나 통나무집 또한 마찬가지이다.
현대인의 최대 관심거리 가운데 하나가 건강이다. 우리는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란다. 나무와 흙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우리 나무와 흙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건축 재료로써 나무는 습도 조절 및 단열 효과가 뛰어나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주거공간을 만든다. 또한 몸에 좋은 원적외선이 다량으로 나오며, 피톤치드 등 산림욕 효과로 심신의 피로를 풀어준다. 에코 하우스가 주는 장점이다.
나무로 지은 집의 또 다른 장점은 요즘 건강화두인 힐링, 즉 자연치유의 기능이다. ‘쉬다’라는 뜻의 휴(休)라는 글자는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쉬고 있음을 나타낸다. 영어의 숲(Forest) 역시 For+Rest, 즉 휴식의 장소라는 의미이다. 동물인 인간은 식물인 나무와 함께 살아감으로써 평온함과 침착함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이 밖에도 나무로 지은 집은 지진과 화재에도 되레 안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와 함께 한옥의 주재료로 쓰이는 황토는 전국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다. 수입하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한옥의 목재료는 소나무를 주로 사용하지만 귀틀집, 초가집, 너와집을 계승·발전한 서민 신한옥은 다양한 수종의 나무를 활용한다. 소나무, 낙엽송, 잣나무, 참나무는 물론 밤나무와 아까시나무까지 너와 지붕재로 요긴하게 쓰인다. 심지어 휘어지거나 나무 밑동(원구)과 맨 위쪽(말구)의 굵기가 크게 차이가 나도 이를 건축재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나무를 일정한 크기(예를 들어 40∼60cm)로 잘라 만든 ‘통나무벽돌’을 황토와 함께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지으면 버려지는 나무가 거의 없다.
우리 산림자원 활용 ‘시너지 효과’ 창출
우리나라는 임야가 국토의 64%나 차지한다. 하지만 산림은 급속히 고령화하고 있다. 나무를 베지 않은 지 40년이 넘었다. 나무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산소를 만드는 활동은 28∼40년 사이가 가장 활발하다. 그 이후에는 나무도 늙어 산소 발생이 저하되고, 뿌리와 가지 일부분이 죽어 숲에서 퀴퀴한 냄새가 난다.
인간의 노력으로 통제할 수 있고 환경 부담이 없으며 지속가능한 자원은 나무에서 얻는 목재이다. 나무는 절대 베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나무도 수명이 있으며 일정 기간이 지나면 벌목을 하고 그 자리에 묘목을 심어야 지속가능한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나무를 심어 푸르게 가꾸되 성장을 다한 나무는 베어 유용하게 이용하고 다시 나무를 심는 순환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 순환고리 중 하나가 바로 우리 나무와 흙을 사용해 집을 짓는 ‘주거 신토불이’이다. 이렇게 하면 홀대받는 국산 나무의 부가가치가 높아지기에 산주와 임업인에게는 소득과 일자리를, 그리고 국민들에게는 건강주택을 선물하게 되는 등 큰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지난 2010년 이후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758만여 명)를 비롯한 도시인들의 귀농·귀촌행(行)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또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는 우리나라의 주거문화도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서서히 단독주택 쪽으로 옮겨가는 추세이다. 이에 따라 단독주택과 전원주택 시장에서는 ‘생태·건강·치유주택’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나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즐기고자 하는 귀촌인들은 이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한옥과 전원주택 건축은 모두 친환경성(생태·건강·치유)과 저에너지(단열·기밀)라는 기능성을 어떻게 저렴한 비용으로 구현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는 우리 나무의 대량 소비처를 지속적으로 발굴함으로써 가능해질 수 있다. 현재 정부와 일부 한옥업체들은 3.3㎡(1평)당 1,200만∼1,400만 원에 달하는 기존 전통한옥 건축비의 절반 수준인 ‘반값 한옥(신한옥)’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3.3㎡당 600만∼700만 원대를 목표로 한다. 귀틀집 등을 계승한 서민 신한옥은 3.3㎡당 300만∼400만 원대 수준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현재 귀농·귀촌인을 유치하기 위해 전원마을(20가구 이상)과 농어촌뉴타운(100∼200가구) 사업을 펼치고 있다. 2013년에는 10∼19가구 규모의 중규모 전원마을 시범사업도 벌인다. 또 세종특별자치시 중앙공원 인근에 30만㎡ 규모의 한문화마을과 서울 은평뉴타운 내 약 10㎡ 규모의 한옥단지를 각각 조성한다. 개별적인 단독·전원주택뿐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가 조성하는 각종 전원·생태마을과 한옥단지를 국산 나무와 황토를 사용하는 ‘주거 신토불이’ 단지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아울러 과거 슬레이트 지붕과 시멘트벽돌, 슬래브 구조로 지어진 낡은 농가주택의 경우 재건축할 시점이 도래했는데, 이 또한 국산 나무 활용도를 높일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적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오대산 소나무들. 한옥의 목재료는 소나무를 주로 사용한다.
전남 장흥군 사자산 자락에 들어선 한옥의 모습.
주거 신토불이’ 시대를 맞아 우리 나무와 황토로 지은 한옥이나 전원주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의 고택들.
자연미가 물씬 나는 편백나무 숲속 둥지
강원도 홍천군 내면에 위치한 살둔산장
첫댓글 살둔산장은 특이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