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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스특허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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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크랩 대마도의 역사적 진실
킴스특허 추천 0 조회 13 08.12.08 00:2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우리땅 우리魂 .. 영토분쟁 현장을 가다
 
<>대마도의 역사적 진실
 
 
“통한다!” 대마도 최북단 와니우라 해안의 한
국전망대에 오르면 부산이 손에 잡힐 듯 보인
다. 해질녘이면 부산의 야경이 빛나고, 카메
라 줌을 당기면 광안대교의 불빛까지 선명하
게 찍힌다. 여기 저기 휴대폰을 꺼내들고 문
자메시지를 받거나 통화하는 한국인 관광객
들의 모습이 보인다. 취재팀도 휴대폰을 켜보
니 액정화면에 안테나 5개가 기운차게 뻗어
올랐다. “휴대폰이 터지는 곳은 우리의 영토
입니다”라는 모 통신사의 광고카피가 떠올랐
다.
●서울에서 열차와 배로 6시간 거리
대마도와 부산 간 거리는 49.5km인 반면 대
마도와 일본 규슈(九州)는 147km나 떨어져
있다. 대마도 주민들은 1950년대 초반까지 저
녁 때 배를 타고 부산에 가서 술도 마시고 영
화도 보고 놀다가 이튿날 아침에 돌아왔던 것
을 기억한다. 이후 오랫동안 부산∼대마도 간
뱃길이 끊겼으나, 1999년 정기여객선이 운행
되면서 대한해협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특히 올해 서울∼부산 간 고속철도(KTX)가
개통되면서 대마도는 서울에서 반나절이면
갈 수 있는 섬이 됐다. 취재팀도 서울에서 오
전 6시에 KTX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 오전 10
시반에 여객선으로 갈아탄 뒤 정오쯤 대마도
최북단 히다카스 항에 닿을 수 있었다.
●한국의 자연과 역사가 숨쉬는 섬
대마도에는 산고양이, 말, 고려꿩 등 일본열
도에서는 볼 수 없는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고
이 섬의 웬만한 사찰에는 신라불이나 고려불
이나 조선의 범종이 모셔져 있다. 쓰라린 민
족사의 현장도 도처에 있다.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신라 왕자 미사흔을 탈
출시키고 처형당한 박제상의 순국비, 조선 숙
종 때 조난당해 목숨을 잃은 조선역관사(譯官
使) 108명을 기리는 역관사비, “왜놈들이 주
는 음식은 먹을 수 없다”고 버틴 면암 최익현
의 순국비, 정략결혼으로 대마도주(島主) 가
문으로 출가한 덕혜옹주(고종황제의 딸)의
결혼기념비 등등.
●본디 경상도 계림에 속한 우리 땅
“대마도라는 섬은 본시 경상도 계림에 속해 있는 우리나라 땅이다. 이것은
문서에도 기록돼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다만 땅이 몹시 좁은 데다 바다 한
가운데 있어 내왕이 불편한 관계로 백성들이 들어가 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자기들 나라에서 쫓겨나 오갈 데 없는 일본 사람들이 몰려 들어와
그들의 소굴이 되었다.”
세종실록의 기록이다. 또 16세기에 조선 조정이 펴낸 지리서인 동국여지승
람에도 “대마도는 옛날에 우리 계림에 속해 있었는데 언제 왜인들의 소굴
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쓰여 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비롯해 조선
시대에 간행된 지도는 거의 빠짐없이 대마도를 우리나라 영토에 포함시켰
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팔도총도’ ‘동국조선총도’ 등 조선시대에 제작된 대부분의 지도는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표시하고 있다.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해동지도는 ‘(우리 영
토는)백두산이 머리가 되고 태백산맥은 척추
가 되며, 영남의 대마(對馬)와 호남의 탐라
(耽羅)를 양발로 삼는다’고 명기했다. 심지어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가
만든 팔도총도라는 지도도 대마도를 조선 영
토로 표기했다.
●조선의 고을로 인정해 달라는 상소
대마도가 속주(屬州)라는 의식은 고려 때부
터 있었다. 고려 중엽 대마도주에게 구당관
(勾當官)과 만호(萬戶)라는 관직을 내린 사실
이 이를 뒷받침한다. 본격적인 속주화 작업은
조선 세종 때 이뤄졌다. 1419년 이종무 장군
이 병선 227척에 1만7000명의 대군을 끌고 대
마도를 정벌한 것이다.
1436년 대마도의 식량사정이 어려워지자 도
주인 소우 사다모리는 대마도를 아예 조선의
한 고을로 편입시켜 달라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이에 조선은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시키코 도주를 태수로 봉했다. 그래서 18세기 초 조선통신사를 따라 일본을 방문한 신유한의 ‘해유록(海游錄)’은 당당하게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 섬은 조선의 한 고을에 지나지 않는다. 태수가 조선 왕실로부터 도장을
받았고 조정의 녹을 먹으며 크고 작은 일에 명을 청해 받으니 우리나라에
대해 번신(藩臣)의 의리가 있다.”
 
이즈하라의 슈센지에 있는 항일의병장 면암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최익현 순국비
●일본의 대마도 편입은 19세기 후반
19세기 후반 일본 메이지 정부는 대마도를 일
본에 편입시켰다. 1868년 대마번(藩)이 메이
지 정부에 올린 봉답서를 보면 대마번이 조선
의 번속국이었다는 사실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조선에 대해 번신(藩臣)의 예를 갖추어 수
백 년 간 굴욕을 받았으니 분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지금의 서계부터 조선이 주조해 준
도서 대신에 일본 조정이 만들어주는 새로운
도장을 사용하여…”
이와 관련, 전북대 하우봉(河宇鳳) 교수(사
학)는 “일본과 청(淸) 양쪽에 조공을 바친 오
키나와의 류큐(琉球)왕국처럼 조선후기의 대
마도도 조선과 일본 양쪽에 예속된 ‘양속(兩
屬)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
다.
●이승만의 “대마도는 우리 땅” 선언
정부수립 직후인 1949년 1월8일 이승만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일본
에 대마도 반환을 요구해 현해탄에 거센 파도를 불러일으킨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이었다. 이에 당황한 일본의 요시다 내각은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맥아
더 장군에게 이 대통령의 요구를 막아달라고 손을 내밀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이후 공식 문서나 외교채널을 통해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각국의 외교사절을 만날 때마다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그와
함께 이 대통령은 바다에도 ‘이승만 라인’이라는 어업구역을 설정해 이를
침범하는 일본 어선을 붙잡도록 했다.
재일조선인 거류민단 대마도본부 이신연(李新演) 단장은 “이 대통령의 선
언이 나왔을 때 대마도에 살던 일본 주민들은 ‘한국이 독립을 해서 미국의
힘을 업고 대마도를 차지하려고 한다, 이제 곧 일본사람들은 쫓겨나게 생겼
다’며 크게 불안해했다”고 회고했다.
대마역사민속자료관 입구에 있는 고려문(高麗門). 대마도 번주가 살던 ‘사지키바라’ 성의 제3문으로서 조선과의 선린외교를 위한 영빈문으로 사용됐다. 왼쪽은 조선시대 후기 한일간 조선통신사의 친선교류에 공로가 컸던 일본의 유학자 아메노모리호슈(雨森芳洲)가 주창한 외교원칙 ‘성신지교린’(誠信之交隣)을 기리는 비.-대마도=특별취재팀
●독도문제보다도 입증할 자료 많다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면
서 제시하는 증거보다는 대마
도가 한국 땅임을 입증할 수 있
는 사료가 훨씬 풍부하다. 또한
독도에 대한 일본인의 역사적
인식보다도 대마도에 대한 한
국인의 역사적 인식이 훨씬 깊
다.
하 교수는 “섬을 비워놓는 ‘공
도(空島)정책’ 탓에 조선이 대
마도를 영토적으로 복속시킬
기회를 놓쳤다”며 “그러나 일
본의 독도영유권 주장근거보다 한국의 대마도영유권 주장근거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는 차원에서 이 대통령의 선언이 나왔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대마도=특별취재팀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역사가 증명하는 우리땅 대마도!!

경상도(慶尙道輿地圖)



고지도(古地圖)



대동여지전도(大東輿地全圖)


대한여지도(大韓輿地圖)



동국대총도(東國大摠圖)




조선내란지도(朝鮮內亂地圖)



조선방역도(朝鮮方域圖)



조선전도(朝鮮全圖)




조선전도(朝鮮全圖)



조선팔로지도(朝鮮八路地圖)


조선총도(朝鮮總圖)



해좌전도(海座全圖)


신라 시대부터 우리 고유의 영토였다. 그러던 것이, 본국에서 멀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자 열도에서 사람들이 불법으로 건너와 살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려, 조선에
걸쳐 그들을 토벌하고 다시 경상도 관할에 두었다. 조선의 영토로 그려진 대마도
 

 
위의 두 지도는 같은 것이다. 1402년에 '권근(權近)'이라는 사람이 그린 지도이다. 분명히 조선의 영토로 그렸다. '혼일    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의 일부.
 '양성지(梁誠之)'의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地圖)'. 역시 조선의 영토로 그리고 있다.
 '정상기(鄭尙驥)의 '조선전도(朝鮮全圖)'
'대동여지전도(大東輿地全圖)'이다. 김정호가 그렸다고 하는 설이 있지만, 누가 그렸는지는 모른다. 아래 사람들이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라고 한 것이 바로 이 지도인데,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대동여지도'는 아니다.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混一歷代國都疆理之圖)'
   
   '여지도(輿地圖)'
   
 
 '아국총도(我國摠圖)'
http://www.angangi.com/drd-gsd(015).jpg
 '동람도(東覽圖)'에서 '경상도 지도'.
http://www.angangi.com/drd-gyd(012).jpg
 '동람도(東覽圖)'에서 '강원도 지도'.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로 되어 있다.
 
 '팔도총도(八道總圖)' 
    '해좌승람(海左勝覽)'에서의 '경상도'
 '동래부지도(東萊府地圖)'에서의 대마도. '동래부(東萊府)'는 현재의 부산이다.

 

 

 

 

 <출처;empas.com/sonsang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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