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레이트지붕에서 기와지붕으로,
빗방울이 북소리같이 울리며,
전염병처럼 퍼져,
내게 전하는 소식,
가지고 싶지 않은 자에게
전달되는 밀수품-
벽의 바깥에 창문의 함석조각이 울리고,
자음과 모음이 달그닥거리며 한데 합치면,
비는 말한다
나밖에 아무도 알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언어로-
깜짝 놀라 나는 듣는다
절망의 소식을,
빈곤의 소식을,
그리고 비탄의 소식을,
이 소식이 내게 전해져 불쾌하다,
나는 아무 죄도 없는데.
나는 소리높여 외친다,
비도, 비의 고발도, 그리고 그것을 내게 보낸 자도
나는 두렵지 않다고,
적당한 시간에
밖으로 나가 그에게 대답하리라고.
-귄터 아이히 ‘비가 전하는 소식’ 전문
1975년 판 민음사 세계시인선 45 귄터 아이히의 『비가 전하는 소식』을 꺼내 펼치는데, 표지 앞 세로 부분이 한 조각 툭 떨어진다. ‘세계시인선 45’를 주워 풀로 붙인다. 세로 쪽은 30년 시간의 풍화로 누렇고 덕지덕지하다.
‘72년 10월, 유신이 나서, 몇 달 학교에 안 가도 됐지만, 앞으로 전개될 상황이 자못 궁금하고 불안했다. 제주시 용담동 자그마한 제주대학의 본관 담쟁이들도 가까스로 올라갔다. 비행기 모양의 김중업 건물 1층 그 자그마한 도서관의 얼마 안 되는 책들은 창살에 가려져 잘 볼 수가 없고, 수평선으로 막힌 내 자존과 객기는 흐렸다. 그 한 때, 이 시집이 왔다. ’73년 겨울, 高銀 역주의 민음사 세계시인선1 ‘唐詩選당시선’을 시작으로. 아이히(1907~1972)의 이 시집은 당시의 엄혹한 시절과 맞았다. 그 무렵 민청학련 사건으로 1년 복역하고 나온 강창일 선배를 맞아, 김용훈과 제주은행 본점 옆 작은 중국집에서 외상으로 환영회를 마련했던 기억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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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신이 가장 두려운 거 아니였나?
180회를 넘기는 시로 여는 제주아침. 다음은 누가 이 바통을 이어받을지 궁금합니다.
우리 살던 옛집 지붕 -이문재 시가 생각나네요
자음과 모음이 달그락거리며 나만이 아는 언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