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마당에 올리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네요.
제가 자주 보는 블로그(무터킨더의 독일교육이야기)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도덕책에 나오는 모범답안 같을 수도 있지만, 독일에서 교육이 추구하는 방향을 보는 것 같아 옮겨보았습니다. 김나지움은 인문계 중등교육 과정입니다.
기독교적 의식이 전혀 없는 입학식 예배
오늘 작은 아이가 김나지움에 입학하는 날이었습니다. 독일이 과거 중세를 거친 기독교의 나라였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라도 하듯 드물게 교회에 가볼 수 있는 날이기도 하지요. 독일학교는 학년이 시작하는 개학식과 종강하는 날은 형식적이긴 하지만 교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물론 강제는 아니고 원하는 사람만 참여하지요.
평소엔 이런 의식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우리도 참석했습니다. 학교가 시작하기 한 시간 전에 교회에 갔지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교회에만 들어서면 높은 천정에 제압당해서인지 마음이 착 가라앉고, 근엄한 복장을 한 신부님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엄숙해 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입학식 예배는 목사님이나 신부님이 집도하지 않았습니다. 이 학교의 종교 담당 선생님 세 분이 기타를 치며 찬송가를 부르기도 하고 설교 비슷한 말씀도 들려주셨습니다.
기도는 언제 하려나...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지만 끝까지 없었습니다. 기도는 할 사람만 각자 알아서 하라더군요. 전혀 내가 생각했던 교회 분위기가 아니라 좀 뜻밖이었지요. 장소만 교회였지 기독교적인 의식이 전혀 없었던 입학식 예배는 자유로운 것 같으면서도 선생님의 의미심장한 강의가 있는 동안은 가슴이 따뜻해지기도 했습니다.
함께 가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 학교
오늘 강의를 해주신 엥앨만 선생님은 큰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수학선생님이기도 했고 개신교 수업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강의에 앞서 선생님은 신입생들에게 의자 밑 여기 저기에 숨겨 둔 커다란 퍼즐 조각을 찾은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들과 함께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간신히 맞추기는 했는데 가운데 하나가 비었습니다.
“어, 퍼즐조각 하나가 없네? 다시 잘 찾아보세요. 한 조각은 어디에 있는지.”
아이들이 웅성이며 두리번거렸지만 쉽게 찾지 못했습니다.
그 때 한 아이가 “아, 저기 있어요.”하고 손가락으로 중앙에 있는 높은 탁자 위를 가리켰습니다. 아이가 달려 나가 그 한 조각을 가져와 끼워 넣으면서 퍼즐 맞추기는 끝났습니다.
완성된 퍼즐을 물끄러미 보던 선생님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함께 노력한 이 퍼즐 맞추기는 우리 삶의 여정과도 같습니다. 모든 퍼즐이 하나도 똑 같지 않지요? 모난 것도 있고 꼬불꼬불 위아래를 알 수 없는 조각도 있습니다. 우리들 하나하나의 모습과 같습니다. 따로 떨어져 있으면 모두 다르지만 모두 힘을 모우고 손을 잡으면 하나의 훌륭한 작품이 만들어 집니다. 그리고 서로 맞물리면 흩어지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선생님은 몇 명 아이들을 불러내어 완성한 퍼즐을 들어 올렸습니다. 퍼즐들은 정말 흩어지지 않고 올려 졌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같이 가야 합니다. 마지막에 가장 높은 탁자위에 홀로 있던 퍼즐도 만일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았다면 그 힘도 미약할 뿐만 아니라 아무 쓸모없는 조각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모두 함께 가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 바로 학교지요. 학교는 지식을 연마하기 위해서만 오는 곳이 아닙니다. 옆 사람과 함께 가지 못하면 큰 뜻을 이룰 수 없다는 진리를 배우기 위해 학교에 오는 것입니다.”
학교는 부족하고 문제 많은 학생을 위한 곳
그리고 그는 또 한 가지 교육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는 학생은 어떤 사람이지요? 물론 성적도 좋고 친구관계도 좋고,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고, 착하고, 남을 위해 봉사도 잘하는 그런 사람일 것입니다. 그럼 환영받지 못하는 학생은 누구일까요? 말할 필요도 없이 공부는 항상 가장 못하고, 수업시간에는 떠들고, 매일 친구나 괴롭히고,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는 사람이겠지요.
항상 모범생이기만 한 사람은 자기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모범생이야, 누구에게도 배울 건 없어.’라고요. 문제 많고 부족한 친구들 또한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 보다 부족해, 이 세상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이 너무 많아.’라고요.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고 착한 모범생을 좋아할지는 모르지만, 어떤 사람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주고 싶어 할까요? 스스로 너무 잘하는 사람에게는 많은 도움이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의 지도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항상 부족하고 문제 많은 학생이지요. 학교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아, 오늘 입학식 예배에 가길 잘한 것 같습니다. 작은 녀석 덕분에 너무 좋은 강의를 들어 가슴이 뭉클해진 하루였지요.^^
첫댓글 "옆 사람과 함께 가지 못하면 큰 뜻을 이룰 수 없다는 진리" 정말 공감되는 말입니다.
문득 이글을 읽다보니 영국에 살때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던 여러 영국엄마들과의 대화가 떠오르는군요. 우리부모들과 달리 긴장하지 않고 담담한 엄마들에게 어떻게 그럴수있냐고 물었더니 '학생들이 치루는 시험은 학생이 아니라 그 학생을 가르친 선생님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학교와 선생님의 몫'이라고 말하더군요. 학교와 선생님의 역할에 대해 좀 더 고찰하게 만드는 좋은 글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