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집주(孟子集註)>를 읽고
<맹자>를 이독(二讀)했다. 2019년 12월 7일에 일독을 했고, 2021년 5월 22에 이독을 했다. 일독하는 데는 34년, 이독(二讀)에는 일 년 육 개월여가 소요되었다. 읽은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주석까지 한 자 한 자 문구를 쓰면서 보았다. 모르는 한자는 사전을 찾아 책의 상하에 있는 여백에다 적으면서 한문 문구를 번역문과 비교해 가며 본 것이다.
내가 <맹자>를 접한 것은 대학 1학년 때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2학기에 복학해서 ‘한문 강독’ 시간에 <맹자집주(孟子集註)>라는 교재를 처음 접한 감회는 답답함과 황당함 그 자체였다. 조선 시대 학습서로 간행된 판본을 그대로 영인(影印)하여 인쇄한 책이었는데, 펼치기만 하여도 절로 주눅이 들 정도로 원전의 큰 글씨, 중세 때 쓰던 그 훈민정음으로 번역된 글씨, 작은 한자로 쓴 주석까지 글자가 세로로 빽빽하게 박혀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공부하면서 그저 주눅만 든 것은 아니었다. 이제야 대학생 수준에 맞는 뭔가를 한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또 나에게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미약하기는 했으나 한문 공부에 대한 흥미가 남달랐다. 한문 교과서에 나오는 한시(漢詩)나 국어책에 나오는 두시언해(杜詩諺解)의 시들을 모두 통째로 외우고 또 쓰는 것이 나의 취미이자 특기였었다.
나는 노트를 하나 마련하여 세 줄 간격으로 정리를 했다. 가운데 줄에는 원문을 쓰고, 그 윗줄에는 한자의 음과 뜻, 원문의 아랫줄에는 한글 번역을 썼다. 한 줄 한 줄, 한 장 한 장 노트가 채워져 가면서 한문 경전을 읽는 재미가 더해 갔다. 가끔 술을 먹고 취한 상태에서도 책을 펼치곤 했다. 처음에는 글자가 겹쳐 보이고 또 글씨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마음은 안정되고 글씨는 그 본모습을 찾는 것이었다. 이것은 나에게 특이한 경험이었는데, 술에 취한 상태로 더 엄청난 무술 실력을 발휘하는 당시 개봉하여 인기를 끈 취권(醉拳)인 듯, 한문 공부의 맛을 또 다른 방식으로 느끼게 했다. 나의 두툼한 대학노트가 절반쯤 채워져 갈 무렵에 ‘한문 강독’의 강좌는 끝이 났다. 교재의 십분의 일도 진도가 나가지 못한 채……. <맹자집주>의 강의는 그렇게 중단된 채 책만이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애초부터 누렇던 표지는 더 빛이 바래 고색창연한 자태로 자신의 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국어 교사가 되었다. 고교 시절에 배웠던 두시언해를 이제는 내가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되었다. 그러다가 동료 교사 중에 안동 출생이며 안동김씨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후배 한문 교사를 만났다. 그는 경전 해석과 한문 번역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모든 면에서 적극적이었다. 한마디로 그와 나는 죽이 맞았다.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맹자집주>를 원문과 주석까지 윤독(輪讀)하기로 했다. 우리는 상하 두 권으로 된 <맹자>의 상권을 구입하여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후에 상권을 마쳤다. 이어서 하권을 구입하여 들어가려다가 잠시 <삼국유사> 원문을 먼저 보기로 했다. 사실 우리는 그때 <맹자>에 너무 지쳐 있었다. 서로가 자존심을 걸고 경쟁하듯이 ‘맹자’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것이다. 잠시 쉬고 싶었다. 이러한 연유로 우리는 <맹자> 하권을 읽지 못하고, 학교 이동으로 서로 헤어져야 했다.
십 년 전 안동으로 가족여행을 갔다. 하회마을과 도산서원을 둘러보다가 안동 출신 그 안동김씨 후손의 한문 교사를 떠올리고, 읽지 못한 <맹자> 하권을 생각했다. 그때 내친김에 하권까지 마저 읽었어야 했다는 회한의 심정이 밀려왔다. 나는 안동대학교 구내서점에 들러 <맹자집주> 하권을 샀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맹자> 하권을 혼자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생각날 때마다 쉬엄쉬엄 읽어 칠 년 만에 드디어 하권을 마쳤다. 그날이 2019년 12월 7일이다. 생각해 보면 <맹자집주>를 대학 때부터 읽기 시작했으니까 상하권 전체를 읽는 데 대략 삼십육 년이 걸린 셈이다.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그동안 맹자의 일대기를 기록한 평전(評傳)도 보았고, 또 그의 왕도정치나 호연지기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그러나 누가 나에게, <맹자집주>를 주석까지 보아서 맹자에 대해 전문가가 되었겠다고 말한다면, 나는 두 손으로 손사래를 치며 극구 부인할 것이다. 사실 나는 한문 문구의 번역에만 함몰되어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맹자의 말과 사상을 이해하고 정리하기 위해서는 정말이지 4독이나 5독쯤은 해야 되지 않을까? (2021.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