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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강화 102코스 역방향 제1부
창후항-막촌-만리장성-염점포-장성-
망월돈대-내가천-계룡돈대-황청포구
20241023
1.코스 소개(두루누비)
1)코스개요
- 역사가 깃든 문화유산과 서해안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코스
- 코스 대부분이 해안가를 걷는 코스로 바다와 낙조를 감상하기 좋음
2)관광포인트
- 비무장지대인 강화 최북단의 작은 포구 '창후항'
- 한양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로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망양/망월돈대'
3)여행정보(주의사항)
- 시점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547-73 (인천해양경찰서 강화파출소 옆)
대중교통) 강화여객자동차터미널에서 31, 37번 버스 이용, 외포리 정류장 하차 도보 100m
- 종점 :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창후리 산152-16 창후항 (인천해양경찰서 창후리출장소 옆)
대중교통) 강화여객자동차터미널에서 32번 버스 이용, 창후리 종점 하차
- 길이 10.9km, 소요시간 4시간, 난도 보통
- 주요 경로 : 외포항 2.9Km 황청저수지 1.7Km 계룡돈대 2.8Km 망월돈대 3.5Km 창후항
2.만리장성의 억새풀꽃과 망월평야, 계룡돈대
제1부 : 강화평화전망대에서 출발하여 창후항에 도착, 서해랑길 103코스 탐방을 역방향으로 끝냈다. 서해랑길 103코스를 정방향으로 탐방하여 강화평화전망대에서 장대한 서해랑길 탐방 종주를 완주하는 감격을 누려야 하는데, 안내측에서 역방향으로 진행하여 그 감격을 누리지 못한 채 창후항 편의점 앞에서 캔 맥주를 홀짝거렸다. 창후항 입구의 인천해양경찰서 창후리 출장소 옆 서해랑길 안내도 앞에서, 곧바로 서해랑길 102코스 역방향 탐방을 출발한다. 서해랑길 102코스 역방향 탐방은 하점면 창후리와 망월리, 내가면 구하리와 황청리 지역을 거쳐 내가면 외포리 강화파출소 옆에서 끝난다.
서해랑길 102코스는 강화나들길 16코스 '서해황금들녘길'과 동행한다. 동행한다고 하지만 강화나들길이 먼저 개통되고 서해랑길은 강화나들길을 따라가며 작은 변화를 준 길이다. 창후로에서 해안으로 나가서 긴 제방길을 따라간다. 이 제방은 하점면 창후리 무태돈대, 망월리 망월돈대, 내가면 황청리 계룡돈대를 지나 황청포구까지 이어진다. 이 제방에 의해 간척된 간척농지 망월평야는 광대하다. 망월평야는 하점면 창후리와 망월리, 내가면 구하리와 오상리, 황청리에 걸쳐 있으며, 간척사업은 고려 고종 때 강화 천도 이후부터 시작되어 우리나라 간척사업의 시초를 이룬다고 한다.
제방길을 걸으며 바라보는 풍경은 환상적이다. 동쪽의 망월평야와 산줄기, 서쪽의 서해 바다와 섬 - 교동도와 송가도, 석모도 - 풍경은 활짝 열려서 시원하다. 그 산줄기와 산봉들을 헤아리고 확인하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북쪽에는 별립산이 평야 지대에 우뚝 솟아 강화도 북쪽 전체를 거느리는 듯하다.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 선생이 칠언절구로 읊은 '별립산(別立山)' 한시를 음미한다. "別立山高石萬層(별립산고석만층) 별립산 높이 솟아 돌계단도 많구나./ 盤龍虎勢騰騰(반룡호세등등) 서린 용과 웅크린 호랑이가 뛰쳐 오르는 듯./ 大海環從西北注(대해환종서북주) 큰 바다 감아 돌아 서북쪽에서 흘러드니,/ 應使遐夷不可升(응사하이부가승) 응당 변방 오랑캐는 오를 수가 없었네." -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의 '별립산(別立山)' 전문
우뚝 솟은 별립산 동쪽에 봉천산이 나즈막하게 솟아서 북동쪽을 지켜준다. 동쪽에는 고려산이 서쪽으로 벋어 낙조봉을 세우고, 남쪽으로 벋어 혈구산, 퇴모산으로 이어지며, 더 남쪽에 강화 제3봉 진강산이 모습을 보인다. 바다에는 북쪽에 교동도의 화개산이 아담하고, 서쪽에는 석모도에 이어진 송가도의 상주산이 늠름하며, 남쪽에는 덕산과 국수산이 황청리를 지켜주고, 석모도의 해명산이 낙가산과 상봉산으로 이어지며 석모도의 존재를 드러낸다. 강화 본토의 망월평야와 별립산, 봉천산, 고려산, 낙조봉, 혈구산, 퇴모산, 진강산, 덕산, 국수산, 그리고 교동도의 화개산, 석모도의 상주산, 해명산, 낙가산, 상봉산은 제방길을 걷는 내내 시야에 들어와 강화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그로인 풍경이 제방의 한 풍경을 이룬다.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축조된 석축 '그로인(Groyne)'이 곳곳에 즐비하다. 그로인은 조수의 힘을 약화시켜 지반 침하와 토양 유실을 방지하여 제방을 보호하고 간척지를 지켜준다고 한다. 제방의 억새풀꽃은 군락을 이루어 바닷바람에 머리를 풀어헤치며 나부낀다. 죽음으로 가는 그 풍경이 아름답기만 하다. 그 풍경은 해탈하는 모습이다. 망월평야에는 하얀 색 곤포사일리지들이 곳곳에 모여서 황금물결이 넘실거렸던 망월평야의 풍요로웠던 시절을 노래한다. 이 길은 강화나들길 16코스 '서해황금들녘길'이라 명명되어 있으며, 서해랑길 102코스와 동행하는데, 가을 수확이 이루어지기 전 이 길을 걸을 때 '서해황금들녘길' 아름다운 풍광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제방길이 ㄷ자로 돌아가는 곳이 나오는데 이 포구를 염점포(鹽岾浦)라 이른다. 염점포는 내가천 하구(河口)인데, 현재는 하구 위쪽에 수문이 설치되어 있어 내가천의 물은 수문에 막혀 있다. 내가천 수문(水門)에서 갯골이 염점포로 이어지고, 염점포 갯벌에는 붉은 칠면초들이 군락을 이루어 장관을 이룬다. 염점포 위쪽 내가천 갯골 북쪽 제방에 망월돈대가 축조되어 있다. 망월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지역 해안선 방어를 위하여 축조한 48돈대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데, 사방이 탁 트인 곳에 나즈막하게 성벽을 두른 아담한 돈대이다. 염점포에서 망월돈대로 이어지는 제방을 장성(長城)이라 이르며, 장성은 고려 고종 때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면서 해안방어를 튼튼히 하기 위해 쌓아 올린 것이라 한다. 마을 주민들은 이 망월돈대로부터 북쪽 창후리 무태돈대까지의 제방을 만리장성(萬里長城)이라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1998년 대규모 해일로 인해 한국 간척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망월평야의 만리장성 둑이 일부 소실되었다고 한다.
망월돈대 안으로 들어갔다. 성곽에는 총안(銃眼)이, 성벽에는 포혈(砲穴)이 설치되어 있다. 성곽으로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본다. 창후항에서 출발하여 지금까지 걸어온 제방길과 우뚝 솟은 별립산, 광대한 망월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제방길에서 조망한 섬들과 산봉들과 산줄기, 평야가 가리는 것 하나도 없이 탁 트여서 조망 풍경이 멋지다. 석모도의 해명산 산줄기와 상주산, 교동도의 화개산 풍경이 시원하다. 동쪽의 고려산과 혈구산 산줄기가 남쪽으로 이어지고, 낙조봉은 망월평야 쪽으로 몸을 내민다. 남쪽 내가면 황청리 지역에는 망산으로도 불리는 덕산과 국수산이 솟아서 내가면 외포리와 경계를 짓고 있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풍경을 흔들고 길손의 마음을 더 흔들어댄다. 이 풍경에 감동하지 않을 자 누가 있을까.
망월돈대 동쪽에 내가천과 내가천 수문이 있으며, 내가천은 강화군 하점면과 내가면의 경계를 이룬다. 내가천 수문에서 갯골이 염점포로 이어지며 갯벌을 펼치고, 서해랑길은 내가천 수문교를 건너 남쪽 제방으로 이어간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제방의 억새풀꽃들을 동쪽편으로 누이며 망월평야로 날아간다.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흐르고, 쇠기러기들이 떼를 지어 날아간다. 가을날 강화 망월평야의 한 풍경이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박목월 시, 김성태 곡의 '이별의 노래'를 바닷바람에 날려 보낸다. 가곡 '이별의 노래'처럼 마음은 쓸쓸하지 않고 몸은 가볍게 날아갈 듯하다. 오히려 쇠기러기떼를 만나는 환희에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멀리서 계룡돈대를 살피면 계룡돈대는 멋진 성채(城砦)처럼 보인다. 중세의 성채 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계룡돈대 성벽 아래로 갔다. 나뭇잎이 황갈색으로 물든 나무 한 그루가 북쪽 성벽 비탈에 위태롭게 서 있다. 그렇지만 의젓해 보인다. 성채라는 느낌 때문일까? 망월평야 남서쪽 언덕 위에 자리하는 계룡돈대는 1679년(숙종 5)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광대돈대’라고도 불리며, 성벽 하단에 축조 연대가 표시된 유일한 돈대라고 한다. 계룡돈대는 석모도 바로 앞에 있어서 석모도 산줄기와 그 앞바다를 가까이 살필 수 있으며, 북쪽으로 펼쳐지는 망월평야와 그 끝에 솟은 별립산을 모두 살필 수 있다. 그래서 계룡돈대의 위치는 해안 경비의 요지라는 생각이 분명히 들었다. 남서쪽으로 내가면 황청리 들녘과 황청리의 용두레마을, 황청포구가 내려다 보인다.
강화나들길 16코스 문주 앞으로 이어지는 제방길에서 억새풀꽃들이 바닷바람에 춤을 추며, 석모도 산줄기를 넘어오는 오후의 햇살에 은빛으로 반짝인다. 섬, 산, 바다, 억새풀, 바람, 햇살이 조화하는 풍경이 아름답다. 이 풍경을 노래하는 한 마디는 '아!' 탄성이 최고일 것 같다. 가야할 덕산 자락의 황청저수지와 국수산 자락의 '예수의 성모수녀원'이 동남쪽에서 손짓한다. 드디어 길고 긴 제방길 끝, 만리장성길 남쪽 끝에 강화나들길 16코스 문주 앞에 이른다. 아름다운 만리장성길 가을을 걸었다. 슬픔 없이 오직 환희에 찬 마음으로 이 길을 걸었다. 윤동주 시인은 가을날, 사랑처럼 슬픈 소녀 순이(順伊)의 얼굴을 떠올린다. 순이(順伊)는 죽음의 세계로 떠났을 것 같다. 길손은 슬픔도 없이 아름다운 소녀를 떠올렸다. 전학을 간 그 소녀는 지금 할머니가 되어서 어느 곳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아니, 죽음의 세계로 떠났는지도 모른다. 그 소녀는 길손의 마음 속에서 언제나 그리움의 기쁨으로 살아온다.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 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닦아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 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은 어린다.(1939년) - 윤동주(尹東柱, 1917~1945)의 '소년(少年)' 전문
3.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2.4km
전체 소요 시간 : 3시간 6분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창후리 창후항 입구 인천해양경찰서 창후리출장소 옆에 서해랑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서해랑길 102·103코스 안내도 오른쪽 기둥 위에 서해랑길 103코스 시작점 표지판이 붙어 있다.
서해랑길 102코스는 거리 10.9km, 소요시간 4시간, 난도 보통이다.
서해랑길 102·103코스 안내도와 함께 서해랑길 102코스 역방향 탐방 출발을 기념한다.
인천해양경찰서 창후리 출장소 옆 서해랑길 안내도 앞에서 출발하여 창후로를 따라 남진한다.
창후리종점 버스정류소 옆에 2011년 9월 21일에 세워진 한반도횡단울트라마라톤 출발점 표석이 있다. 강화↔강릉 308km 거리이다. 왼쪽 뒤의 건물은 창후항 어시장 건물이며, 그 오른쪽 옆에 서해랑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중앙 뒤에 별립산이 솟아 있고, 앞에 해주병원 건물이 있다. 해주병원은 정신치료 병원이라고 한다.
창후로를 따라 신화 유스호스텔과 종교 시설인 숨 영성센터(강화 클라라수도원) 입구를 지나간다.
창후로를 따라 신화 유스호스텔과 숨 영성센터 입구인 창후로288번길 앞을 지나왔다.
신화 유스호스텔을 지나서 오른쪽 길로 진입하여 막촌마을(벌말)로 나간다.
창후로에서 막촌마을(벌말)로 나간다. 서해랑길 102코스는 강화나들길 16코스 '서해황금들녘길'과 동행한다.
수문교를 건너 막촌마을(벌말)을 지나간다.
수문교에서 교동도의 화개산을 조망한다. 왼쪽 뒤의 섬은 서검도인 듯.
강화도는 북쪽과 가까워 검문소가 많은데 옛날에도 움직이는 수상한 배를 검문하던 섬이 있었다. 바로 동검도(東檢島)와 서검도(西檢島)인데 이 섬에서 세관검사를 해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서울로 향하는 배는 주로 동검도를 거쳐 염하로 해서 한강으로 들어갔다. 서검도는 예전에 서쪽으로 드나드는 배를 검문하는 초소가 있어 서쪽을 감시하는 섬이라는 의미로 서검도(西檢島)라 불렀다. 미법도에서 서남쪽으로 약 2km 거리에 있으며 섬 면적은 5.7km2이며 소규모 염전이 남아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갈림길에서 막촌마을(벌말) 오른쪽 길을 따라간다. 벌말은 막촌이라고도 하는데 막집이 있었다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막촌마을길은 수로 방죽길로 이어진다. 오른쪽 뒤에 석모도의 상봉산이 가늠된다.
수문동길에서 서쪽으로 석모도의 상주산을 조망한다. 오른쪽 맨 뒤의 섬은 서검도인 듯.
창후리 마을이 별립산 아래에 자리한다. 별립산에는 공군 레이다 기지가 있다고 한다.
창후리(倉後里)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에 있는 리(里)이다. 서쪽으로 서해와 바로 접해 있는 어촌 마을이다. 대부분의 지대가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 북서쪽에 작은 산이 솟아 있다. 자연마을은 뒷물, 벌말, 샛말 마을이 있다. 뒷물 마을은 뒤우물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뒷물 마을이라 부르며, 벌말 마을은 막촌이라고도 하는데 막집이 있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샛말 마을은 사태말과 욧골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 두산백과
왼쪽에 고려산, 그 오른쪽에 낙조봉, 중앙에 혈구산, 그 오른쪽에 진강산이 확인된다.
농토는 간척지인 듯. 해안의 제방 안쪽에 수로가 흐르고 그 안쪽에 농지가 있다. 중앙 뒤에 석모도의 상봉산이 보인다.
맨 뒤에 석모도의 해명산, 그 왼쪽 앞에 강화도의 국수산, 중앙 왼쪽에 덕산, 맨 왼쪽 뒤에 진강산이 보인다.
강화군 하점면 망월리 망월평야가 드넓다. 맨 오른쪽에 국수산, 그 왼쪽에 둥두렷한 덕산, 중앙 맨 뒤에 진강산, 그 왼쪽에 퇴모산과 혈구산, 왼쪽에 낙조봉이 보인다.
바로 앞 전신주 왼쪽 뒤에 고려산, 그 오른쪽 뒤에 낙조봉, 그 오른쪽 맨 뒤에 혈구산과 퇴모산이 가늠된다.
고려산(高麗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과 내가면·하점면·송해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는 436m로 강화읍내에서 5㎞쯤 떨어져 있는 산이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옛 명칭은 오련산(五蓮山)이다. 416년(고구려 장수왕 4)에 중국 동진의 천축조사가 이 산에 올라 다섯 색상의 연꽃이 피어 있는 오련지를 발견하였는데, 이 연꽃들을 하늘에 날려 이들이 떨어진 곳에 적련사(적석사)와 백련사·청련사·황련사·흑련사를 각각 세웠다고 한다. 이 산에서 인근 낙조봉(343m)으로 가는 능선에는 억새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적석사 입구에서 적석사로 오를 때에 적석사 축대 밑에서 왼쪽으로 올라야 낙조대를 거쳐 낙조봉으로 오를 수 있다. 서쪽 능선에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6호로 지정된 3기의 고인돌이 있으며, 낙조대에는 작은 해수관음보살상이 있다. 이곳에 바라보는 석양은 강화팔경 중 하나로 꼽힌다. - 두산백과
수로 방죽길에서 별립산을 뒤돌아본다. 별립산에는 공군 레이다 기지가 있다고 한다.
별립산(別立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에 있는 산. 높이 416m이다. 강화도에 있는 산의 능선이 연결되어 있는데 별립산은 별도로 떨어져 있다고 해서 별립산으로 불린다. 강화도 북서쪽 해안가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48번 도로가 지나며 교동도를 잇는 교동대교와 연결된다. 서쪽 사면에는 무태돈대가 있으며 창후리에는 해상여객터미널이 있지만 교동대교가 건설되면서 운영되지 않는다. - 두산백과
서해랑길은 강화나들길 16코스 '서해황금들녘길'과 동행한다. 망월평야의 황금들녘은 수확이 끝나서 황금빛은 사라졌다.
하점면 망월리 해안 방죽길에 억새풀꽃이 바람에 날린다. 억새풀꽃 뒤에 석모도의 상봉산이 보인다.
안내판에 강화 간척지 개발 역사와 강화 해안선의 변화를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해안에 설치된 석축의 기능을 질문한다.
강화의 섬들은 대부분 넓은 평야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평야들이 고려 말부터 오늘날까지 800여 년간 이어진 주민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인공평야라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강화는 우리나라에서 간척사업이 가장 일찍이 체계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시행된 사업이며 간척지의 총면적은 130㎢입니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쌀은 2만 톤 이상으로 약 91,200가구(4인 가족 기준)가 먹을 수 있는 양입니다.
1.간척 이전 해안선 : 간척 이전의 해안은 해안선의 굴곡이 매우 심하며 많은 간석지가 섬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2.고려말 해안선 : 1232년(고종 19)에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시행된 강화 천도는 많은 난민들의 유입을 가져왔고 이들을 부양하기 위하여 간척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3.조선시대 해안선 : 조선 개국 초~임진왜란 전까지 약 200년 동안은 큰 규모의 간척사업이 시행되지는 않았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피폐해진 국토를 회복하기 위하여 나라의 계획 하에 간척사업이 전개되었습니다.
4.현재 해안선 : 일제강점기에는 간척사업이 주춤했으나 해방 이후와 휴전 직후 황해도 등지로부터 월남한 동포들 다수가 강화 지역에 정착하면서 간척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2014년에 개통한 사장교(斜張橋) 교동대교가 오른쪽에, 교동도 화개산이 왼쪽에 솟아 있다. 등간 오른쪽 뒤가 월선포인 듯.
교동도(喬桐島)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에 속하는 섬으로 강화도 북서부에 위치한다. 면적 46.90㎢, 해안선 길이 35.97km이며, 관광명소로는 교동 읍성, 교동향교, 화개산, 화개사, 달우물 온천이 있다. 최고점은 화개산(華蓋山, 260m)이다. 동서길이 10km, 남북길이 6km이며 교동면의 북부 해안선은 휴전선의 남방 한계선이 된다. 교동도의 역사는 꽤 오래되어 『삼국사기』에 달을참(達乙斬), 고목근(高木根), 교동(喬桐)의 기록이 나온다. 달을참이란 뜻은 ‘크고 높은 산이 있는 고을’이라는 의미를 가진 지명이라고 전한다. 그 외에 대운도(戴雲島), 고림(高林)이라고도 불렸다. - 한국의 섬, 인천광역시·경기도
오른쪽은 교동도의 해발 269m 화개산, 왼쪽은 석모도의 해발 264m 상주산이다. 화개산 왼쪽 자락에 남산포구, 그 왼쪽 뒤에 죽산포구를 가늠하며, 중앙 맨 뒤의 섬은 서검도인 것 같고, 상주산 오른쪽 자락 뒤의 섬은 기장섬인 듯.
화개산(華蓋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교동면 고구리에 위치하고 있는 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현 남쪽 3리에 있다. 이색의 시에, '바닷속 화개산은 푸른 하늘에 닿았는데, 산 위 옛 사당은 언제 지었는지 모르겠네. 제사한 후 잔 마시고 이따금 북쪽을 바라보니, 부소산(扶蘇山) 빛이 더욱 푸르구나.' 하였다. 응암(應巖) 월곶(月串) 바다 가운데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화개산성(향토유적 제30호)은 포곡식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산 정상 부분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훼손되어 있는 상태이다. 산 정상에서 서북쪽으로 50m 떨어진 연봉 정상에는 봉수지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고려 시대부터 사용되었던 봉수라 전해진다. 지금도 봉수대의 하부 석축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석모도(席毛島)의 왼쪽에 상봉산, 오른쪽에 해발 264m 상주산이 솟아 있다. 석모도와 상주산 사이는 간척되었다.
상봉산(上峰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席毛島)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316.1m이다. 석모도 남부에 솟아 있는 바위산으로 전망이 빼어나다. 상봉산, 해명산(海明山:327m), 상주산의 3개 산이 있다는 데서 지명이 유래한 삼산면에서도 가장 높은 산이다. 상봉산 단독 산행은 다소 짧은 편이며, 동남쪽 아래 자리한 낙가산 보문사(普門寺)와 해명산을 함께 오르는 4시간 코스를 흔히 이용한다. 산행하면서 서해바다의 아름다운 모습을 구경할 수 있고 특히 상봉산 정상에서 서남쪽 볼음도 방향으로 바라보는 노을과 올망졸망한 섬들의 모습이 널리 알려져 있다. 정상은 암봉으로 되어 있으며, 남쪽으로 해안선과 바다, 북쪽으로 넓은 평야지대를 볼 수 있고 동쪽으로 해명산에 이르는 주능선이 잘 바라보인다. 능선 곳곳에 암벽이 자리잡고 있고 해명산에서 낙가산으로 가는 구간에는 억새풀 군락이 멋지다. - 두산백과
방죽길을 따라간다. 방죽에는 간척농지를 보호하는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다. 뒤에는 석모도의 상봉산이 솟아 있다.
창후항에서 출발하여 걸어온 방죽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화도 창후항과 교동도 월선포를 오가던 여객선은 교동대교가 생겨나면서 끊어졌다.
교동대교(喬桐大橋)는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다리로, 2008년 9월 25일 착공하여 2014년 7월 1일에 개통하였다. 교각을 탑에서 연결한 케이블로 지탱하는 사장교(cable-stayed bridge, 斜張橋)로 만들어졌다.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와 교동면 봉소리를 연결하는 다리로 길이는 3.44km이고 2차로로 만들어졌다. 교동도는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으로 관할 부대의 통제를 따라야하고 출입증을 받아야 교동도로 진입할 수 있다. - 두산백과
망월평야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맨 왼쪽 뒤에 진강산, 앞쪽에 덕산, 그 오른쪽에 국수산, 맨 뒤 중앙에 해명산이 보인다.
왼쪽 뒤에 고려산, 그 오른쪽에 낙조봉, 중앙 뒤에 혈구산, 그 오른쪽에 퇴모산, 오른쪽 뒤에 진강산이 확인된다.
퇴모산(退帽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불은면, 양도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 높이는 338m이다. 혈구산(穴口山:466m) 정상에서 서쪽으로 세번째 자리한 봉우리이다. 고려산(436m) 정상에서 혈구산을 거쳐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위치하며, 이 능선은 계속 덕정산(325m)·진강산(443m)을 거쳐 마니산(469m)까지 이른다. 혈구산 정상과 퇴모산 정상 사이에 있는 봉우리가 퇴모산 정상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혈구산과 퇴모산은 정상에서 서로 보이지 않으며, 두 산을 잇는 능선길에는 통일신라시대의 혈구산성터가 있다. 산 위쪽에 반지하식으로 축조된 고려시대의 돌방무덤인 강화 인산리 석실분(石室墳)이 있다. - 두산백과
석모도의 상주산이 계속 눈길을 끈다. 오른쪽 끝은 교동도의 죽산포구, 그 뒤는 서검도일 것이라 추정한다.
해안에 그로인(Groyne)이 축조되어 있다. 왼쪽 뒤에 해명산, 오른쪽에 상봉산, 그 왼쪽 아래의 뾰족한 산봉이 낙가산인 듯.
그로인(Groyne) : 방조제로부터 수직으로 바다 쪽을 향하여 축조된 석축은 조수의 힘을 약화시켜 지반 침하와 토양 유실을 방지하는 기능을 가진다. 간척지가 많은 강화도는 강화 곳곳에 수십 기의 그로인이 설치된 것을 볼 수 있으며, 이 그로인은 800여 년에 걸쳐 일구어낸 간척지를 지키고자 노력했던 강화 주민들의 소중한 유산이다. - 설명안내판
강화나들길 교동도 9코스와 10코스를 안내하고 있다. 현재 16코스에서 교동도와 석모도를 바라보면서 탐방하기에 안내도는 교동도와 석모도의 위치를 확인하는 데 유용하다.
방죽길에 강화나들길 문주가 몇 곳에 조성되어 있다. 서해랑길 102코스는 강화나들길 16코스 '서해 황금들녘길'과 동행한다. 맨 오른쪽 뒤에 상봉산, 그 왼쪽 아래 쏙 들어간 곳에 솟은 낙가산, 문주 왼쪽 뒤에 국수산, 맨 왼쪽에 덕산을 확인한다.
서해랑길은 덕산산림욕장 언덕길까지 강화나들길 16코스와 동행하며, 이곳에서 헤어졌다가 외포항에서 재회한다.
강화나들길 '서해황금들녘길' : 창후여객터미널- 계룡돈대- 용두레마을- 덕산산림욕장- 외포여객터미널. 거리 13.5km, 소요시간 4시간. 용두레마을의 소담스런 시골풍경을 감상하고 덕산산림욕장 가는 언덕길로 들어서면 숲이 반깁니다. 곶창굿당에서 잠시 쉬면서 외포항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 설명안내판
망월평야가 펼쳐지고, 하점면 창후리·이강리·신봉리 지역이 분포한다. 왼쪽에 별립산, 중앙 뒤에 봉천산이 솟아 있다.
봉천산(奉天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하점면과 양사면 사이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고도:291m). 봉두산(鳳頭山), 하음산(河陰山)이라고도 부른다. 『강도지』에 "봉두산은 곧 하음성산(河陰城山)인데 봉수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 하음산이라 표기되어 있고 정상부에 봉수, 산 남쪽에 하음현 치소(治所)가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산 사면이 하점면 신봉리·장정리·양사면 교산리·덕하리에 걸쳐 있다. 고려 시대에 하음백(河陰伯)으로 봉해졌던 하음 봉씨(河陰奉氏) 봉천우(奉天佑)라는 사람이 봉천대를 쌓았다고 전하는 산이다. 봉천우는 봉천대에서 자신의 조상을 도와준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강화부지』에 "봉두산은 강화부 북쪽 이십 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 하음산이라고도 한다. 산 위에 방대(方臺)와 석축이 있으며 옛날 하음현이 그 아래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 산의 정상부에는 봉수가 설치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하음산 봉수는 동쪽으로 송악산에 응하고 서쪽으로 교동현 화개산에 응한다."고 되어 있다. -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내가천이 서해 바다에 합수하는 염점포(鹽岾浦)에 붉은 칠면초가 군락을 이룬다.
염점포 갯벌에 칠면초들이 군락을 이룬다. 맨 왼쪽에 해명산, 중앙 움푹 파인 곳에 낙가산, 오른쪽에 상봉산이 솟아 있다.
내가천 갯골 왼쪽에 망월돈대가 있으며, 돈대 북쪽의 이 제방을 장성(長城)이라 이른다. 중앙에 덕산, 오른쪽에 국수산이 있다.
망월돈대와 함께 있는 이 장성(長城)은 고려 고종이 이곳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면서 해안방어를 튼튼히 하기 위해 쌓아 올린 것으로, 누각을 설치한 출입문이 6곳, 물길이 드나드는 문이 7곳 마련되어 있었다. - 국가유산청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망월리에 있는 망월돈대 및 장성이다. 중앙 뒤에 덕산, 오른쪽에 국수산이 보인다.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쌓은 소규모 관측·방어시설이다. 병사들이 돈대 안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외적의 척후 활동을 비롯한 각종 수상한 정황을 살피고 대처한다. 적이 침략할 때는 돈대 안에 비치된 무기로 방어전을 펼친다. 망월돈대는 40∼120㎝의 돌을 직사각형으로 쌓아 올린 것으로, 성곽 위로는 흙벽돌로 낮게 쌓은 담장이 둘러져 있었으나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망월돈대는 1679년(숙종 5)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진무영에서 직접 관할하는 영문 소속 돈대였다. 방형구조로 둘레 124m, 석벽의 높이는 180~300㎝이다. 대개 돈대들이 해안가 높은 지대에 위치하는 것과 달리 망월돈대는 갯가 낮은 지대에 설치됐다. 그래도 시야를 가리는 방해물이 없어 경계초소로 부족함이 없다. 남쪽으로 계룡돈대, 북쪽으로 무태돈대가 있다. 돈대와 함께 있는 이 장성은 고려 고종이 이곳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면서 해안방어를 튼튼히 하기 위해 쌓아 올린 것으로, 누각을 설치한 출입문이 6곳, 물길이 드나드는 문이 7곳 마련되어 있었다. - 국가유산청
장성은 고려 고종 때 축조되었고, 돈대는 조선 숙종 때 축조되었다. 장성에서 내려가 망월돈대로 올라가며 망월평야 뒤의 산줄기를 확인한다. 억새풀꽃 뒤에 고려산의 군시설물이 살짝 보이고 왼쪽 앞에 낙조봉이 자리한다. 그 오른쪽 뒤에 혈구산, 그 오른쪽 중앙에 퇴모산이 보인다.
혈구산(穴口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불은면, 양도면, 내가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는 466m이다. 예전에는 혈굴산, 설구산, 열구산이라고도 하였다. 강화도 중앙부에 위치한 산으로, 높이에 비해 산세가 힘차며 험준하다. 고비고개를 사이로 하여 고려산(436m)과 남북으로 이어져 있다. 상고시대에는 강화도의 주산(主山)이며 상징이었다. 산이름은 강화군의 옛이름인 혈구군에서 나왔거나, 문헌상에 혈구진으로 기록되어 있는 오래된 성터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산이 섬 중앙에 위치한 탓에 정상에 서면 섬 전망이 매우 좋은데, 동쪽으로 강화 시내와 강화대교, 문수산성, 남쪽으로 마니산 주능선, 서쪽으로 내가저수지와 외포리·석모도·교동도 등 주변 섬들, 북쪽으로는 강화도 북쪽에 위치한 여러 산이 보인다. 고비고개부터 정상까지의 능선에는 4개 봉우리가 있는데 네 번째 봉우리가 정상이다. - 두산백과
망월돈대 동쪽 성벽 옆길을 따라가 성벽 출입구 앞으로 이어간다.
망월돈대 출입구 옆에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안내판을 살피고 출입문을 통해 돈대 안으로 들어간다.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1호 망월돈대(望月墩臺)는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지역 해안선 방어를 위하여 축조한 것이다. 0.4~1.2m의 돌을 장방형으로 다듬어 가로 38m, 세로 18m, 높이 2.5m 규모로 축조하였다. 돈대 북측 장성(長城)은 고려 고종 19년 (1232)에 강화로 천도하면서 해안 방어를 위해 처음 쌓았다고 한다. 조선 광해군 10년(1618) 안찰사 심돈이 수리를 하였고, 영조 21년(1745) 유수 김시환이 다시 고쳐서 쌓았으며 '만리장성' 이라고도 불렀다고 전한다.
망월돈대 동측 성곽에서 돈대 내부와 걸어온 제방길을 살핀다. 북쪽에 장성이 있고, 바다 건너에 교동도 화개산이 보인다.
맨 왼쪽에 혈구산, 그 오른쪽에 퇴모산, 중앙에 덕산, 맨 오른쪽에 국수산이 조망된다. 갯골 수로 오른쪽은 내가면 구하리, 그 왼쪽은 하점면 망월리 지역이다.
망월평야가 드넓다. 앞쪽에 낙조봉, 그 왼쪽 뒤에 고려산 머리가 살짝 보인다. 중앙 오른쪽에 혈구산이 보인다.
하점면 망월평야가 드넓게 펼쳐지고 그 뒤에 하점면 이강리, 망월리, 오상리 마을이 자리한다. 왼쪽 뒤에 봉천산, 오른쪽에 낙조봉, 맨 오른쪽 뒤에 혈구산이 보인다.
하점면 망월리에 드넓은 망월평야가 펼쳐지고, 중앙에는 별립산이 우뚝하며 그 아래 창후리 마을이 자리한다.
창후리에서 망월리 망월돈대로 이어지는 제방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제방을 마을 주민들은 만리장성이라 이른다고 한다.
오른쪽에 장성(長城)이 있고, 바다 건너 왼쪽에 석모도의 상주산, 오른쪽에 교동도의 화개산이 바다를 지킨다.
염점포(鹽岾浦)의 붉은 칠면초 군락이 아름답다. 왼쪽의 송가평(松家平) 제방에 의해 송가도(松家島)와 석모도(席毛島)가 이어졌다. 석모도의 상봉산과 멀리 떨어져 상주산이 홀로 솟아 있는 것이 이해된다.
왼쪽 앞에 강화도 국수산이 있고, 그 오른쪽 뒤에 해명산, 맨 오른쪽에 상봉산, 그 왼쪽 두 번째 파인 곳에 낙가산이 있다. 앞에는 내가천 수로의 물이 염점포(鹽岾浦)로 흘러드는 갯골이 형성되어 있다.
해명산(海明山, 320m)에서 낙가산을 지나 상봉산(上峰山, 316m)까지 이어지는 산줄기가 섬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며, 북쪽에는 상주산(264m)이 고립된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다. 상주산이 분리되어 있는 이유는 상주산과 상봉산 사이의 송가평이 간척을 통해 형성된 농경지이기 때문이다. 남쪽의 어류정도(魚遊井島)도 간척사업을 통해 석모도에 연결되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망월돈대 성곽에서 사방을 조망한 뒤 망월돈대 동쪽의 출입구로 나와 뒤돌아본다. 망월평야가 드넓고, 별립산이 우뚝하다.
서해랑길은 내가천 갯골 제방을 돌아 맞은편 제방으로 이어간다. 중앙에 덕산, 오른쪽에 국수산이 솟아 있다.
내가천 갯골 북쪽 제방에서 남쪽 제방을 바라본다. 내가천 북쪽 제방에서 수문교를 돌아 남쪽 제방으로 넘어갈 것이다. 맨 뒤에 상봉산과 낙조산이 보인다.
위쪽에 내가천 수문이 있다. 서해랑길은 내가천 갯골 북쪽 제방에서 수문교를 건너 남쪽 제방으로 넘어간다.
내가천 갯골 북쪽 해안에 망월리(望月里) 망월마을 역사와 유래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고려 후기부터 20세기까지의 간척 사업의 결과물로 얻어진 망월평야는 오늘날 강화에서 단일 간척평야로는 가장 넓다. 망월마을은 간척평야에 설립된 마을 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깊은 마을로, 마을이 벌판 기운데 있어 달을 먼저 바라본다고 하여 망월동이라 하였다. 전체 면적 약 130만 평의 65%가 벼농사를 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연간 약 760톤의 쌀을 생산한다. 망월리에는 망월돈대부터 무태돈대까지 이어진 만리장성이 있었으나 1998년 대규모 해일로 인해 한국 간척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망월평야의 만리장성 둑이 일부 소실되었다. - 설명안내판
서해랑길은 오른쪽 내가천 수문교를 건너 내가천 갯골 남쪽 제방으로 넘어간다. 내가천은 하점면과 내가면의 경계이다.
하점면 망월리에서 내가천 수문교를 건너 내가면 구하리로 넘어왔다. 왼쪽에 별립산, 중앙에 봉천산이 보인다.
내가천(內可川)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내가면에 위치하며 고천리 고려산에서 발원하는 고부천과 혈구산에서 발원하는 혈구산천을 주요 지류로 하는 하천이다. 1696년에 편찬된 『강도지』에 "근원은 고려산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흘러 염점포(鹽岾浦)로 들어간다."고 기록되어 있다. 내가천 하구를 염점포라 불렀음을 알 수 있다. 『대동지지』에는 고려천(高呂川)이라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 고려산과 혈구산 사이에서 발원하여 망산 위쪽을 통과해 황해로 유입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망산(望山)은 현재의 내가면 서남쪽에 위치한 봉우리를 말한다. 하계망은 수지상 형태이며 동쪽은 나레현을 분수령으로 강화읍과 경계하고 남쪽으로는 혈구산·퇴모산·길마재로 이어지는 줄기를 분수령으로 하고 있다. 유로상에는 1967년에 완공된 강화도 최대 저수지인 고려저수지가 소재한다. -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구하리(鷗下里) 농지가 앞쪽에 펼쳐지고 오른쪽 뒤에 구하리 마을이 자리한다. 왼쪽 낙조봉 아래는 내가면 오상리(鰲上里) 지역으로 오상리 마을이 자리한다. 중앙 맨 뒤에 혈구산, 그 오른쪽에 퇴모산이 있다.
왼쪽은 내가면 구하리(鷗下里) 농지와 구하리 마을이 자리하고, 오른쪽은 황청리(黃淸里) 농지와 황청리 마을이 자리한다.
서해랑길은 내가천 갯골 남쪽 제방길을 따라간다. 제방 안쪽에 내가면 구하리와 황청리 농지가 펼쳐져 있다. 맨 왼쪽 뒤에는 황청리의 국수산, 맨 뒤쪽에는 석모도의 해망산, 낙가산, 상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동서로 벋어 있다.
위쪽에 내가천 수문교가 있고 내가천 갯골이 파여 있다. 중앙에 낙조봉 아래 내가면 오상리 마을이 자리하고, 그 오른쪽 맨 뒤 혈구산 아래는 내가면 고천리, 그 오른쪽은 양도면 인산리 지역이다.
내가천 갯골 북쪽에 망월돈대가 있고, 그 왼쪽으로 장성이 이어진다. 맨 뒤에는 별립산이 솟아 있다.
붉은 칠면초 군락이 펼쳐져 있다. 내가천이 서해 바다에 합수하는 이 포구를 염점포(鹽岾浦), 망월돈대에서 북쪽으로 창후리 무태돈대까지 이어지는 제방을 만리장성이라 이른다. 왼쪽 뒤에 교동대교, 중앙에 별립산, 오른쪽 뒤에 봉천산이 솟아 있다.
염점포 남쪽에서 조망한다. 교동도가 길게 누워 있고 남쪽에 화개산이 솟아 있다. 오른쪽 뒤에 교동대교도 보인다.
앞에는 그로인(Groyne) 석축이 있고, 바다 건너 송가도에 상주산이 솟아 있다. 왼쪽 뒤의 송가평 제방에 의해 송가도와 석모도가 이어져 있다.
내가면 구하리 제방길을 따라 내가면 황청리로 넘어가 계룡돈대로 이어간다. 건너편에 석모도 산줄기가 벋어 있다.
내가면 구하리 간척농지가 펼쳐지고 하얀 원형 곤포사일리지들이 곳곳에 모여 있으며, 오른쪽 뒤에 구하리 마을이 자리한다. 낙조봉 아래에 내가면 오상리 마을, 중앙의 혈구산 왼쪽 아래는 내가면 고천리 지역, 그 오른쪽은 양도면 인산리 지역이다.
구하리(鷗下里)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에 있는 리(里)이다. 서쪽으로 바로 서해와 접해 있는 전형적인 어촌 마을이다. 마을 북쪽으로도 서해의 지류가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은 구하, 냉구렁, 대흥당 마을이 있다. 구하 마을은 개가 있어 구갯골이라 하였는데 후에 구하라고 개칭되었다. 냉구렁 마을은 낭떠러지 밑이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대흥당 마을은 뒷산에 당집이 있어 지명이 유래되었다. - 두산백과
앞쪽은 내가면 구하리 농지, 왼쪽 뒤에 구하리 마을, 위쪽은 내가면 황청리 농지, 중앙 뒤에 황청리 마을이 자리한다. 중앙 뒤의 둥두렷한 산은 망산(望山)이라고도 불리는 덕산(德山), 그 오른쪽 뒤의 산은 국수산(國壽山)이다.
제방길에 군락을 이룬 억새풀꽃들이 바람에 머리를 풀어 헤치고 휘날린다.
황청리 제방 해안에 그로인 석축들이 늘어서 있고, 왼쪽에 국수산이 솟아 있다. 건너편 석모도에는 왼쪽의 해명산이 맨 오른쪽 움푹 파인 곳의 낙가산으로 이어진다.
앞쪽의 계룡돈대가 멋지다. 왼쪽 뒤에 용두레마을과 덕산, 중앙 뒤에 국수산, 오른쪽 뒤에 해명산이 보인다.
계룡돈대는 망월평야의 독립된 고지 위에 위치하고 있다. 당시 돈대 축조 공사는 왕을 호위하는 부대인 어영군을 포함해 12,222명이 투입되고, 운반선 84척이 동원되는 대규모 공사였다. 계룡돈대의 바깥벽 측면에 여영군 명문이 발견되었는데 1679년 4월에 경상도 군위현의 어영군이 계룡돈대를 축조했다라고 적혀 있으며, 강화 53 돈대 중에서 유일하게 축조 연대가 표시되어 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황청리 계룡돈대(谿龍墩臺)는 축조연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돈대라고 한다. 계룡돈대는 1679년(숙종 5)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광대돈대’로도 불리며, 이후 5개 돈대가 추가로 지어졌다고 한다.
계룡돈대 동쪽 성벽에 출입구가 있으며, 그 오른쪽에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계룡돈대(谿龍墩臺)는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2호이며, 동벽 석축 하단에 축조연대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토내 접경지역이나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설치하는 초소로, 대개 높은 평지에 쌓아두는데 밖은 성곽으로 높게하고, 안은 낮게하여 포를 설치해두는 시설물이다. 이 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가 해안 방어를 목적으로 함경·황해·강원 3도의 승군 8,000명과 어영군 4,300여 명을 동원해 80일 동안 쌓은 48개의 돈대 중 하나이다. 긴네모꼴 화강암으로 길이 30m, 너비 20m, 석축 높이 3~5m 규모로 쌓았는데, 동벽 석축 하단에 '강희 18년 4월 경상도 군위어영(康熙一十八年4月日慶尙道 軍威禦營)'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강화 지역 54개 돈대 중 유일하게 쌓은 연대를 알 수 있다.
성곽에는 총을 쏘거나 전망하는 총안(銃眼)이, 성벽에는 포를 쏠 수 있는 포혈(砲穴)이 설치되어 있다.
내가면 황청리와 구하리, 하점면 망월리와 창후리에 걸쳐 망월평야가 드넓다. 맨 오른쪽 뒤에 봉천산, 중앙 뒤에 별립산, 왼쪽 뒤에 창후항과 교동대교가 보인다. 곤포사일리지들이 망월평야에서 장관을 이룬다.
창후항에서 이곳까지 걸어온 제방길과 교동대교, 화개산과 상주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에 송가평의 제방, 오른쪽에 송가도의 상주산이 보인다.
섬돌모루도가 앞에 누워 있고, 그 왼쪽 뒤에 상봉산이 솟아 있다. 중앙의 송가평 제방에 의해 석모도와 송가도가 이어져 있다.
계룡돈대의 성곽에 총안, 성벽에 포혈이 설치되어 있고, 해안에 황청포구, 왼쪽 뒤에 해명산, 맨 오른쪽에 낙가산이 있다.
오른쪽 맨 뒤에 석모도 해명산, 중앙 뒤에 황청리 국수산, 왼쪽 뒤에 덕산이 보인다. 오른쪽 뒤는 황청포구이다.
서해랑길은 황청리 제방길을 따라가다가 황청포구 앞 중앙의 집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도로로 나간다.
황청리(黃淸里)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에 있는 리(里)이다. 서쪽으로 서해와 가까이 인접해 있는 마을이다. 대부분의 지역이 평탄한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은 갯말, 두문동, 용에머리 마을이 있다. 갯말 마을은 황청개 가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갯말이라 명명되었으며, 두문동 마을은 고려에 벼슬하던 선비들이 조선 태조의 개국을 반대하여 이곳에 와 숨어 살았다 해서 유래된 지명이다. 용에머리 마을은 용머리산 밑에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두산백과
억새풀꽃이 바람에 나부끼는 황청리 제방길을 따라간다. 오른쪽 뒤에 황청포구, 왼쪽 맨 뒤에 해명산이 보인다.
억새풀꽃이 바닷바람에 춤을 추는 황청리 제방길을 따라간다. 왼쪽 뒤에 국수산이 듬직하다.
서해랑길은 앞 농로를 따라 왼쪽으로 나가 용두레마을을 돌아 덕산과 국수산 사이의 안부를 넘어 외포리로 넘어간다. 왼쪽 덕산 자락에 황청저수지 제방, 오른쪽 국수산 왼쪽 자락에 예수의 성모수녀원이 보인다.
황청리 제방길의 강화나들길 16코스 '서해황금들녘길' 문주를 나가서 왼쪽으로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