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으로 세상 살아가기’를 읽고
한명섭
평소 청각장애인의 인권에 대해 무지했던 본인은 이번 시간을 계기로 귀가 있어도 듣지 못 했던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인권은 우리 모두가 마땅히 누려야하는 것이지만 부당한 차별을 당하던 그들은 인권을 위해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다.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힘든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흔히 영화를 본다. 화려한 화면과 다양한 음향효과는 관객들을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 인도한다. 하지만 농인들은 이를 누리기에는 듣지 못하는 제약이 크다. 남들처럼 아무 때나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싶다는 한 농인의 말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모든 영화에 자막을 넣는다면? 어떤 사람은 “그들과 영화를 볼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하겠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거부감을 드러냈다. 본인은 어느 것도 상관없다. 하지만 영화를 즐기려는 측면에서 보면 자막이 영화에 대한 몰입감을 떨어뜨려 일부 관객들이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 현재로서는 상영관을 따로 두거나 농인들을 위한 상영시간대를 따로 두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2005년 장애인 영화관람 지원사업’으로 장소를 따로 두어 평일 2회 주말1회 상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장소도 많이 늘지 않고 횟수도 작아 아쉬움이 많다. '시·청각 장애인 전용 영화관 설립 추진' 이라는 2011년 기사는 있지만 완공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시작은 했을까. 미국에서는 2013년부터 영화관 내에서 자막안경을 제공했다. 그리하여 앞서 카메라에 외친 한 농인의 말이 미국에서는 이루어졌다. 이는 분명 우리나라에도 언젠가 보급될 것이다. 부디 그 시일이 속히 오길 바란다.
농인의 사생활 노출 문제도 심각했다. 감추고 싶은 것도 수화통역사에게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모두가 수화를 할 수 있다면 농인은 장애인이 아니라는 말이 떠올랐다. 안타깝게도 모국어가 아닌, 어려서부터 필수적으로 배워 온 영어조차 배워도 잘 쓰지 못 하니 모두가 수화를 쓰기는 힘들다. 하지만 기술혁신이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전화가 청각장애인이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염원하는 데에서 생긴 것임을 알았다. 그 기술이 청각장애인을 위해 쓰이지 못하는 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의 ‘스마트폰’에 이르러 분명 청각장애인에게 도움이 되고 있고 희망적이다. 문자서비스는 농인에게 아주 유용했지만 그 요금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데이터요금제 기준 3만 원대 이용료를 내면 무료다. 그리고 여러 SNS 어플들로 소통이 쉬워졌다. 보청기 기술도 크게 발전해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고 있다. 기술·개발자들의 공이 크고 그들을 존경한다. 하지만 문자적인 의사소통은 음성에서 비롯되는 감정전달은 힘들다는 한계점은 있다. 보청기 역시 난청의 정도에 따라 도움을 받는 정도가 다르다. 보청기 사용시 전화상 소통에 불편함을 많이 겪는다는 사람이 많았다. 지금은 완전히 누릴 수 없지만 통역 기술의 발전으로 문자 입력으로 음성으로 출력이 되는 때이므로 미래에는 지금의 한계점들이 해소될 것이다.
‘청각장애 공시생의 눈물’이 본인도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 눈에 더 띄었다. 공무원 인터넷 강의에 자막이 지원되지 않아 강의를 들어야하는 입장에서 공부하는 데 큰 어려움을 갖고 있었다. 정부는 동영상 강의 수강료와 교재비를 지원하였으나 듣지 못하는데 그게 무슨 소용일까. 그 사업을 추진한 사람도 착오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한다. 다행히도 2012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EBS가 제공하는 강의 콘텐츠에 ‘KEAD디지털능력개발원’이 자막을 삽입해 제공하도록 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시작은 아쉬웠지만 칭찬할 만한 일이다.
국가 내에서 인권을 지키기 위한 가장 실효적인 수단은 법이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2008년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실효성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의무이행소송제도’입법이 멈춰 있는 상황에서 행정처의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에 장애인의 권리구제는 어려웠다. 의무이행소송제도는 권력분립원칙에 위반의 여지가 있어 입법이 미뤄지고 있다. 그 뜻은 행정소송에서 장애인 측이 이겨도 행정처에서 이를 이행하지 않고 최초의 처분과는 다른 사유로 다시 처분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 앞에서는 한 없이 작은 개인에 불과한 ‘나’를 느끼곤 한다. 비록 지금은 갈등 상황 속에 있지만 불합리에 맞서 그것을 바로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음에 희망을 가져본다. 비록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되지는 못하지만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고 있고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것이 변화의 힘이고 작은 변화, 큰 변화로 이어져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염원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본인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사람들이 놀랄만한 큰일을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려고 한다. 청각장애인의 인권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하겠다고는 단언할 수 없지만 이 시간을 통해 생각의 폭을 또 한층 넓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