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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수도권 19곳 포함 36곳 지정, 전국 어디가나 공사판
발표 때마다 투기 광풍, 졸부 쏟아지고 집 없는 서민은 허탈감만
집값 안정효과에 대해선 의견 분분 … 세월 지나야 판가름 날 듯
인천 검단이 들끓고 있다. 지난 10월 27일 정부가 검단 신도시 건설 계획을 발표한 후 이 지역 일대에 투기 광풍이 불고 있다. 검단 지역에 미분양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들은 모델하우스 앞에서 장사진을 치고, 몇 달째 공인중개사에 내걸렸던 매물들은 자취를 감췄다. 아파트 값은 하룻밤 새 수천만원씩 오르고, 인근 지역의 집값까지 덩달아 춤을 추고 있다. 며칠째 쏟아지는 매수 문의로 공인중개사와 컨설팅 업체들의 전화통은 불이 날 지경이다.
큰돈을 벌게 됐다며 교회 헌금으로 수천만원을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옆에선 “대출이라도 받아서 집 사둘 걸 그랬다”며 허탈해 하는 서민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한켠에는 “앞으로도 신도시를 계속 짓겠다”는 정부 발표에 ‘혹시 다음엔 내 차례가 아닐까’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는 사람도 보인다.
검단 신도시가 발표된 지 일주일 사이 사회 곳곳에서 보게 되는 진풍경들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참여정부 들어 비일비재(非一非再)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 신도시가 발표될 때마다 으레 겪는 일로 치부될 정도로 잦은 게 문제다.
판교·동탄·김포 등 2기 신도시가 발표됐을 때를 돌이켜 봐도 그렇다. 판교와 김포의 신도시 계획이 확정되자, 이 지역 아파트의 평당 가격은 735만원과 521만원에서 각각 977만원, 671만원으로 바로 뛰었다. 뿐만 아니라, 판교 신도시의 후광 효과가 있을 것으로 지목됐던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금토동과 분당구 궁내동 일대의 땅값도 덩달아 매일같이 치솟았다. 강남과 판교신도시를 잇는 시흥동 일대의 땅은 가격을 묻지 않고 사겠다는 사람들로 부동산마다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였다.
“아파트가 더 이상 투기 수단이 아니라, 주거 수단임을 일깨워 주겠다”는 정부의 외침은 신도시가 발표될 때마다 공허할 따름이다. 국민들이 신도시 발표를 큰돈을 벌 수 있는 장(場)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 개발소식에 촉각 곤두세워
한 부동산컨설팅 업체 사장은 “투자 상담을 하러 오는 고객들의 대부분은 어느 지역이 가장 빨리 개발될지 자문을 구하는 수준”이라며 “그만큼 신도시 개발에 관심이 많다”고 말한 적 있다. 온 국민이 정부의 신도시 건설 움직임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신도시 발표는 이에 대한 화답(和答)이나 진배없다는 지적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신도시 공화국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상황이 이러니,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서 “정부가 전국 땅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참여정부 들어 전국에서 택지개발사업이 진행 중인 신도시만 19곳. 여기다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행정중심 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을 합하면 신도시라고 불릴 만한 곳이 무려 36개에 이른다.
현재 수도권에 건설 중인 신도시만 10곳이다. 오는 2009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되고 있는 성남판교·화성동탄·김포장기·수원광교·양주 옥정·파주 운정·평택·서울 송파 등에다 인천 검단과 파주 운정 3지구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지방에도 9곳이 신도시의 위용을 갖춰가고 있다. 충청권에는 대전 서남부·아산신도시·청주 동남 등 3곳이 들어서고,
영남권에 부산정관· 양산물금· 양산 사송 ·김해 율하 등 4곳이 건설된다.
호남권에도 목포 남악, 광주 수완 등 2곳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밖에도 충남 연기군에는 2212만평 규모로 행정복합도시가 들어설 예정이며, 전북 전주· 경남 진주 등 10곳에는 혁신도시가, 전남 무안· 충북 충주 등 6곳에는 기업도시가 들어선다. 인천 송도에는 이와 별도로 1611만평 규모의 국제신도시 건설도 추진되고 있으며, 서울의 웬만한 지역은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새 단장을 하고 있다.
이처럼 전국적으로 펼쳐놓은 신도시로 인해 “전국 어디를 가도 공사판뿐”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신도시 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정부에서 말하는 신도시의 목적도, 성격도 제각각이기에 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떤 때는 수도권 인구 분산을 목적으로, 또 어떤 때는 강남 집값 안정을 목적으로 신도시 건설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걸 두고 하는 얘기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방 신도시 건설로 수도권 인구를 분산시키겠다더니 이젠 강남 대체 수요를 이유로 수도권에 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말하는 걸 보면, 정부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정부 정책이 계속 오락가락한다는 건, 정책의 무용성을 본인들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정부 정책 오락가락” 성토
이 같은 신도시 정책은 공급확대를 통한 집값 잡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간 공 들여 추진했던 수요억제정책과 함께 공급확대의 양공을 펴면서, 집값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실제로 이 같은 공급확대를 통한 집값 안정화 정책은 노태우 정부 때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1기 신도시 계획 발표 후 집값 하락세는 5년 간이나 지속됐다. <박스 기사 참조>
때문에 공급 확대는 집값을 안정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주장도 있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대표는 “단기적으론 수요억제정책이 나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보면 공급확대정책이 집값 안정에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미국 위스콘신대 제임스 실링 교수도 “신도시 정책이 장기적으로는 안정화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쪽에서는 ‘신도시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평균 집값 상승률을 웃도는 신도시 지역의 집값 상승률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닥터아파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참여정부 출범 직후부터 올해 10월까지 수도권 지역의 아파트 값은 평균 54.5%가 상승했으나, 신도시나 신도시 인근 지역 아파트 값은 무려 80%대의 상승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당은 2003년 2월 말부터 올해 10월까지 102.9%가 올라 수도권 지역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으며, 용인시도 참여정부 출범 이후 87.7%나 상승했다. 특히 판교와 가까운 성복동, 신봉동, 상현동 등은 100% 가까이 뛰었다.
기대심리에 무조건 사고 보자는 투기 세력과 토지 보상을 받은 지역 유지들이 신도시 주변 지역에 투자를 하고 있는 게 문제다. 프라임감정평가법인 김정민 이사는 “토지 보상으로 인해 현금 유동성이 생긴 사람들에게선 그 인근에 대체지를 사두려는 심리가 강하게 나타난다”면서 “이로 인해 신도시 지역의 집값 상승이 주변지역으로 계속 전이되는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책 발표의 시점과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시장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설익은 발표를 한 게 정책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투기 수요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유엔알 컨설팅 박상언 대표는 “집값이 급등할 때마다 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해 불난 집에 기름을 뿌리는 격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참여정부가 졸부들만 양산하고 있다는 비아냥거림도 흘러나오고 있다. 부동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어찌 보면 참여정부는 부동산 투자자들에게 있어 축복이다”며 “그 동안 투자를 제한하는 여러 규제도 많이 발표됐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렇게 호재를 많이 쏟아낸 정부도 지금껏 없었다”고 말했다.
신도시 효과 있었나
90년 21% 상승한 집값
1기 신도시 계획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의해 발표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수도권의 인구 집중을 우려하는 정책들이 주를 이뤘다. 지난 1964년 대도시 인구집중방지책을 내놓은 박정희 정부가 그랬고, 82년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제정한 전두환 정부가 그랬다.
하지만 노태우 정부 때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88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3저(유가, 환율, 금리) 현상 덕에 무역흑자가 늘어나면서 전국 집값이 큰 폭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이 시기 전국 집값 상승률은 88년 13.5%를 시작으로, 89년 14.6%, 90년 21.0%에 달하는 등 매년 상승률이 조금씩 높아졌다.
이 때 노태우 정부가 택한 집값 안정화 대책이 바로 공급확대정책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공급확대정책의 일환으로, 주택 100만가구 건설 계획과 일산· 분당· 평촌· 산본 등지에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1기 신도시 계획을 발표한다. 이 발표가 있은 후 전국 집값은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91년 전국 집값이 하락세(-0.5%)로 접어들었고, 이듬해에는 5.0%라는 큰 폭의 하락세를 나타냈다.
노태우 정부의 신도시 건설 효과는 김영삼 정부에도 이어졌다. 문민의 정부 시절 전국 집값 상승률은 93년 -2.9%, 94년 -0.1%, 95년 -0.2% 등 5년 간 하락세가 지속됐다. 특히 1기 신도시의 입주가 끝난 96년 이후 집값이 다시 올랐던 점이 눈에 띈다. 96년 전국 집값은 1.5%가 상승하더니, 신도시 입주가 끝난 이듬해인 97년에는 2.0%의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상승세가 이어졌다.
98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집값은 일시적으로 하락하는 모양새를 보였지만, 이후 신규 주택 공급물량이 줄어들고,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편 결과 시중 유동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게 됐고, 집값 상승세는 지속됐다. 99년 3.4%의 상승률을 기록했던 전국 집값 상승률은 이후 2000년 0.4%, 2001년 9.9%, 2002년 16.4%, 2003년 5.7%로 상승세가 지속됐다. 2004년에는 다시 집값 상승률이 마이너스(-2.1%)로 돌아서기도 했지만, 이 때는 2기 신도시의 영향보다는, 2003년 발표된 10·29 대책의 효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윤종성 기자(jsyoon@er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