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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오 시인의
시에 관한 에피그램
초판발행:2010년 12월 11일
펴낸곳:예일기획
정가: 8,000원
*약력
. 경북 포항 출생
. 건국대대학원 수료
. 1982년 시문학 등단
. 한국시문학문인회/한국문협 시분과 23대 회장 엮임/
현)국보시문학대학원/시소리문예창작대학 지도교수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동인당약품(주)회장
. 시집: 신의 수염/동화작용/두 사람에 관한 성찰/멀티 오르가슴/
사부곡/'명상집'여자 현상학/시인모독
. 수상: 현대시인상 우수상/시문학상/아시아시인상
* 시인의 말
"이 글은 월간'시문학'에 연재하였던 시에 관한 단상들을 엮은 것이다.
아주 전망 좋은 언덕 같은 데 두 다리를 쭉 펴고 편히 앉아 잠시 쉬어가는
셈 치고 아무렇게나 찢어진 흰 종이처럼 흩어져 있는 하늘의 뜬구름 조각
들을 보듯이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뒷쪽의
원로시인, 그러니까 지금은 다들 떠나고 없는 두 분의 '인터뷰' 역시 살아
생전의 육성으로 조금은 따뜻한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배려에서다.
언제나 그러하였듯이 아마 책을 내고나면 또 한 번 나의 눈웃음에는
오랫동안 쓸쓸함이 묻어 있을 것이다" 고 쓰고 있다.
작품 소개
* 김용오 시인의 시에 관한 에피그램이라는 제목으로 1에서 120 번까지
이어져 있고, 조병화 시인과 김춘수 시인, 두 번에 걸쳐 인터뷰한 내용
을 싣고 있다.
*김용오 시인의 시에 관한 에피그램*
김 용 오
1
멀고 먼 옛날부터 시의 학교에서는 입학생만 있었지 이제까지 명예로운
졸업장을 들고 빙그레 웃으며 만족한 얼굴로 교정을 나서는 시인을 어느
누구 한 사람 만나 본 적이 없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시의 미래를 위해서는 그것이 오히려 불행 중 다행한 일이라는 생
각이 들기도 한다.
2
시인에게 가장 행복한 사건은 시로 숨을 쉬고 시로 잠을 자고 시로 걸어다
니고 시로 살다가 시로 죽는 다는 것.
4
어차피 시인의 길은 혼자서 터벅터벅 걸어가야만 하는 멀고 험하고 외로운
영혼의 길, 이를테면 자신의 그림자가 아니면 그 어떤 사람과도 함께 동행
할 수 없는 안으로의 길고 긴 여행이리라.
사실은 어제도그 포장이 안 된 길을 이미 많은 시인들이 선험적으로 걸어
갔고 내일이면 또 많은 시인들이 운명처럼 뒤를 따라서 오게 될 길이 없는
그 길
10.
천하를 요란하게 울릴 듯이 잔뜩 화장을 한 시와
찬물로 세수를 한 맨 얼굴의 시도 있긴 잇느니.
26,
처음부터 시인들은 누가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천형의 고독을
하나씩 가슴에 품고 태어난 슬픈 짐승인지도 모르겠다
땅에 묻어 놓아도 영원히 썩지 않을
그런 알수 없는 고독을.
31
때로는 우리들을 슬프게 하고 화나게 하는 것은
시 보다도 시인의 이름과 시인의 모자에 집착하는 시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작금의 슬픈 문학적 현실에 있다.
55
<루카치>의 이야기처럼 시인들이 별들에게 길을 물으며 먼 길을 걷던 시절
은 그래도 아름다웠나니-
108
시인들이 늙어간다는 것은 한없이 넓고 깊어진다는 것이다.
맑고 맑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120
마음으로부터 나는 많은 것을 몰락 놓아버렸다. 다섯번째 시집 '사부곡'을
상재하고는 육친의 아버지를 놓아버렸고, 이미 그 이전에 미국으로 떠나
오랫동안 그곳에서 없는 듯이 살고 있는 피 붙이 큰 놈 '랑'이와 작은 놈'성'
이까지도 놓아버렸고, 명예나 돈 그리고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또 다른 사회
적인 인연들도 다 놓아버렸다. 아마 그것을 불교에서는 방하착(放下着)이라
고 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만 한 가지만은 아직 놓아버리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놓아버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진정 놓아버릴 수가 없었다는
말이 맞으리라.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만나고 헤어지는 그런 상대적인 관계
를 넘어 절대적인 관계 속에 놓여져 있기 때문이었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몰라도 오래 전부터 내가 놓아버리면 그 쪽에서 찾아오고 그 쪽에서 놓아버
리면 내가 기웃거리는 뗄 수 없는 내연의 관계가 되어 한평생 살아왔으니까
말이다. 언제라고 꼭 꼬집어 말을 할 수 없지만은 여전히 알게 모르게 끊임
없이 쉬지 않고 서로를 밀어내면서 끌어당기는 입자나 파동의 관계 즉 불일
이불이(不一而不二)라는,
이야기 하나,
출발부터 보수적이고 정통적인 것에 뿌리 내리고 시를 쓰는 시인과
처음부터 실험적인 시 쓰기에 평생을 바치는 시인을 두고 누가 옳은
자세인지에 대해 묻는 이에게 나는 즉답을 피하고, 본래부터 시가 내포하고 있는
양면성을, 그리고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 그뿐이라는, 평소 잘 알고 있는
어느 큰스님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두 스님이 길을 가는데 주검 하나가 내버려져 있었다.
한 스님은 걸음을 멈춰 그 주검을 거두어 땅에 묻어 주었고,
한 스님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쳤다.
우연히 그 두 스님의 광경을 지켜 본 행인이 훗날 절에 가서 노스님께 물었다.
"어떤 행위가 옳습니까."
"주검을 거둬 땅에 묻은 것은 자비요, 그냥 지나친 것은 해탈이다.
결국은 땅 속에서 개미 밥이 되나 땅 위에서 까치 밥이 되나 다를 게 무어냐."
이야기 둘,
화가 최북의 그림은 스스로 눈을 찌른 다음에 눈에 보이게 그림이 달라졌고
반 고흐는 스스로 귀를 자른 다음에, 레오날드 다빈치도 하늘을 날아오르려다
다리가 부러진 다음에 그림이 달라졌다. 사마천도 궁형을 당하고 나서야 사기를 완성했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부서지고 실패를 해야 자신의 작품세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은 생각에 빠져 본적이 있다. 그러다가 어제 일요일은 다시 한 번 더 그 생각을 꺼내어
손 안의 호두알처럼 쉼없이 어루만지며 하루 해를 보냈다.
이야기 셋,
최북이나 고흐나 디빈치나 사마천이나 그들이 고통을 통해 세계적인 인물로 거듭 나긴 했으나
누가 더 잘한다는 서열화나 점수화는 매길 수 없을 것 같다. 비록 이름 없는 이들이나 그들 나름대로
최선의 삶을 성실히 살았다면, 못하고 잘하고를 떠나 '다름'에 있을 뿐이다. - 박지평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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