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타샤튜더 할머니
최 화 웅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한다는 절후, 소설(小雪)이 가까운 날. 아내와 함께 영화의 전당에서 <타샤 튜더(Tasha Tudor)>를 보았다. 영화는 일본 마츠타니 미츠에 감독이 10년간 취재한 타샤튜더(1915~ 2008)의 공간과 라이프 스토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타샤튜더가 태어난 지 100주년을 맞아 제작한 이 영화는 타샤만의 동화 같은 공간, 사계절 꽃이 지지 않는 환상의 정원, 그녀가 직접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까지, 꿈꾸는 대로 살았던 행복한 사람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았다. 타샤는 쉰여섯 살에 그림책의 인세로 사들인 버몬트 주의 30여만 평의 넓은 땅에 40여 년간 정원을 가꾼 삶의 공간과 라이프 스토리를 낱낱이 소개했다. 영화의 시작은 꽃이 만발한 정원이 아니라 눈부신 은빛세계로 뒤덮인 겨울로부터 시작했다. 어떤 의도였을까? 감독은 말한다. “처음부터 영화의 시작을 '겨울'로 결정했습니다. 타샤는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시했고 그 시간은 '고독'이 아니라 '자립'이었습니다. 홀로 산 타샤의 강인함이 그녀의 삶을 이루는 근간이라는 의미에서 '한 사람'으로의 타샤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서 겨울로부터 시작했습니다.”라고 밝혔다. 평생 자신이 쓴 동화처럼 살았던 작가 타샤튜더는 미국 버몬트주 말버러의 산속에 정원을 가꾼 예술가다. 그녀의 이름은 그녀의 아버지가 톨스토이의『전쟁과 평화』의 여주인공 나타샤의 이름을 따왔고 어머니는 타샤를 데리고 친구들을 만날 때면 “여기 튜더 왕조의 딸이 왔노라”라고 한 우스갯소리에서 연유했다고 한다.
튜더왕조는 헨리 7세로부터 엘리자베스 1세에 이르는 16세기 중엽으로부터 17세기 초에 이르는 대영제국의 절대왕조다. 그녀의 집은 마크 트웨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아인슈타인, 에머슨 등이 출입한 명문가였다.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살던 타샤는 아홉 살에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 친구 집에 맡겨졌고, 열다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동물을 키우며 화초를 가꾸는 일에 열중했다. 스물세 살에 첫 그림책 〈호박 달빛(Pumpkin Moonshine)〉이 출간되면서 타샤의 전통적인 그림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동물, 자연을 그린 따뜻한 그림, 사계절 내내 꽃이 지지 않는 아름다운 정원, 19세기 생활을 좋아했던 그녀가 수집한 골동품 옷과 가구, 식기 등 타샤만의 개성이 담긴 스타일은 많은 이들을 매료시켰다. 별다른 내용은 없고 그저 할머니의 평화로운 시골생활을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시선을 끈 것은 그녀의 라이프 스타일과 삶에 대한 태도였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에요"라고 항상 말한 그녀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갔고 그런 삶을 충분히 즐긴 것이다. 19세기의 생활방식을 동경했던 타샤는 스스로 불편함을 택했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정신없이 살아요. 차를 마시고 저녁에 현관 앞에 앉아 개똥지빠귀의 고운 노래를 듣는다면 한결 감미로운 인생을 즐길 수 있을 텐데."라고 말하며 자연과 함께하는 소박한 삶을 살았다.
영화중에 개 키우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고 새장에 하얀 비둘기를 키우면서 새끼를 스웨터 품속에 넣고 재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늘 기쁨이 가득한 삶을 살며 진정한 슬로 라이프를 실천한 타샤의 삶은 누구나 꿈꾼 행복으로 가득 찬 것만은 아니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타샤는 남편과 이혼 후 홀로 네 아이를 키우며 생계를 꾸려 간 강인한 여성이었다. 매 순간 현재에 충실하고 90세를 넘긴 망백(望百)의 노령에도 '장미전문가'를 꿈꾸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온전히 행복한 인생을 꿈꾸었던 그녀의 인생 스토리가 보는 이의 영혼을 두드렸다. 타샤튜더는 가족들과 밀초를 만들어 어둠을 밝히며 1938년〈호박 달빛〉(1938)을 시작으로 작가 겸 삽화가로 활동했다. 100여권에 달하는 동화책을 집필하며 직접 삽화를 그리는 동안 1945년 <머더 구스> 1957년 <1은 하나>로 각각 콜더컷 메달 우수상을 받았고, 1971년에는 가톨릭도서관협회가 수여하는 레지나 메달을 받기도 했다. 그 시절 미국의 생활방식은 그녀에게 행복, 그 자체였다. 이를 생생하게 보여준 다큐멘터리 <타샤튜더>는 일본 'NHK'가 제작한 다큐멘터리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영화 연출진은 10년간 타샤튜더의 집과 정원을 카메라에 담았다.
영화는 한 예술가의 일상을 통해 그녀의 작품이 작가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타샤튜더의 <타샤의 특별한 날>에 마리오네트 인형극이 나온다. 아이들이 직접 인형과 무대를 꾸며 어른들에게 선보이며 그녀의 어린 시절을 재현했다. 10월 마지막 날에는 핼러윈 호박 등(燈)을 만들어 파티를 열었다. 여기서 출발한 작품이 바로 <호박달빛>이다. 타샤튜더의 작품은 모두 곁에 있는 인물과 동물 그리고 현실의 모습이었다. 영화에서 타샤튜더는 그림을 그리고 차를 마시며 정원을 가꾼다. 특별할 것 없는 그녀의 생활이 매일 반복된다. 계절이 바뀌며 달라지는 건 오직 풍경뿐이다. 그녀는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사교계에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딸의 생활에 실망했지만 타샤튜더는 인형놀이를 하며 시골에서 농사짓기를 좋았다. 인형놀이는 그녀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다. 80년간 인형을 만들어 인형의 이야기를 발전시킨 작가는 같은 일을 새롭게 하는 생활 속에서 변화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빵을 구웠다. 또한 남 앞에 나서지 않아도 되는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유지했다. 생전 <비밀의 화원>, <소공녀> 등 100여 권의 그림책을 그렸다. 그녀는 중년이 됐을 때 자연이 좋아 사계절이 뚜렷한 버몬트주로 이사했다. 아들에게 1830년대의 고색창연한 집을 지어달라고 하고는 그 집에서 평생을 살았다.
아들과 손자들이 함께 일군 정원이 무려 30여만 평으로 낙원이었다. 어디부터가 산이고 숲이고 집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녀는 자연 속에 묻혀 살았다. 정원을 가꾸는 일은 그녀의 인생철학이었다. 꿈은 어느 날 갑자기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과정을 묵묵히 꾸준히 유지하며 즐겨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녀는 영화를 통해 메시지를 던졌다. "만약 좋아하지 않는 곳에 살고 있다면 떠나세요. 꽃도 잘 자라는 곳에 두는 것처럼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았어요. 그러고는 날마다 행복과 이상을 붙들어야죠." 영화 중간에 아들이 어머니에게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을 하겠느냐?”라고 묻는다. 행복이란 마음에 달려 있음을,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행복이라고 자신의 삶 그대로 보여주었다. 영화를 통해 한 편의 동화 같은 삶 속에 담긴 느리고도 단순한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느끼게 했다. 그녀는 영화를 통해 "지금이 생에서 가장 행복해"라고 말한다. 18세기의 농경생활을 고수하는 '아미시(Amish)' 공동체의 생활방식을 따르는 타샤튜더. 그녀의 집에서 시간이 천천히 흐르듯 행복 또한 차곡차곡 채워졌다. 불행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기에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삶을 살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메아리쳤다. 나는 아내와 손을 잡고 영화관을 나서면서 행복에 겨워 말없이 걸었다.
첫댓글 저도 이 다큐, 보았답니다. 타샤의 둘째 며느리가 한국인이죠. <타샤의 정원>을 생각하게 하는, 고성의 연꽃피는 연못 가까이에는 <헬렌의 정원>이 있답니다.
버몬트 주에는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도 살았지요. 아마....
선생님께서는 타샤투더 할머니의 전원을 잘 아시군요.
행복한 다큐 감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