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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주 말씀을 통해 바울이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마지막으로 큰 글자로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의 핵심은 십자가외에는 결코 자랑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십자가 자랑은 겉으로 보여지는 어떤 모양을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바울이 자랑한 십자가는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만을 자랑하겠다는 했습니다.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우리가 십자가만을 자랑하지만 또 한 가지 기억하고 다짐할 것은 이제 네 몫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이방인의 전도자로 살았습니다. 설교자인 김승권목사가 져야 할 개인의 십자가를 “지금” 지고 가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은 소망교회 은퇴하셨고 설교자로 자유롭게 강단 설교만 하시는 곽선희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목사님께서 미국유학시절 YMCA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여름캠프에 참여 한 일이 있었답니다. 일주일 동안캠프 생활을 끝내고 마지막에 촌극을 하게 되었는데 무슨 각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 나름대로 일주일동안 준비해 가지고 온 몇몇 팀들이 마지막 날 연극을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청소년들 연극하는 장면을 보는데 이런 장면입니다.
어느 한 조가 나와 연기하는데 먼저 무대 위에는 많은 십자가가 놓여 있었습니다. 큰 십자가, 작은 십자가, 또 보기 좋게 만든 십자가 어떤 것은 흉하게 아주 흉물스럽게 만든 십자가, 그리고 어떤 것은 아주 화려하게 장식물로 만든 십자가 이런 저런 것들로 무대에 널려 있었습니다.
이제 조별 학생들 하나 하나가 여러 가지 색채의 옷을 입고 나와서 십자가 하나씩을 고릅니다. 큰 것을 찾아보다가 "아이고 이것은 너무 크다!" 좀 작은 것을 집었다가 "이것은 내 몸에 맞지 않는다." 들었다 놓고 들였다 놓고 하다가는 맨 마지막에 고르는 것이 뭐냐 하면은 가장 작은 것, 화려한 것, 목걸이 십자가, 십자가 반지, 그리고 모자 위에다가 이렇게 장식으로 만들어 놓은 면류관 같은 그런 십자가 이런 것들만 하나씩 다 들고 무대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대에 마지막 덜렁 남은 십자가가 있는데 큼직막한 십자가는 조별 청소년 어느 누가 진 사람이 없어요.
조금 시간이 흐르고 맨 마지막에 예수님으로 분장한 청년 하나가 나와서 가장 흉물스럽고, 가장 무거운 십자가를 분장한 예수님이 지고 나가는 것으로 연극이 끝을 맺은 내용을 곽목사님이 보고 매우 충격을 받았다고 내용을 읽을 적이 있습니다.
십자가 유례가 있습니다. 엣날 페르시아에서 유례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벌을 받고 처형해야 하는데 중죄인을 신성한 땅에 묻을 수 없기에 나무에 메달아 죽게 하는 풍습에서 유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죽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서양사람들은 사람이 죽었으면, 땅에다 묻고 거기에다 비석 대신에 십자가를 거기에다 딱 박아 놓습니다.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어서 여기 시체가 있다. 그런 뜻입니다. 십자가가 때로는 자비로 십자가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적십자가 있지요 적십자는 공산주의자들도 국경 없이 봉사하는 기관입니다. 유럽 나라들 국기를 보면 십자가가 이미지로 표시된 나라국기가 많습니다.
또한 십자가가 보이면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에 몸 된 교회가 거기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입니다. 오늘 제자들에게 예언한 그대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대로 지신 십자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당신 자신이 말씀하시고 예수님께서 친히 지시고 고난받으시고 묵묵히 지고 가신 십자가입니다.
찬송가 339장 ♭♩....①내 주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질까? 뉘게 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②내 몫에 태인 십자가 늘 지고 가리라 그 면류관을 쓰려고 저 천국 가겠네 ♪♬
우리는 때때로 내가 지고 있는 십자가가 못 마땅해 합니다...... 너무 무겁다고 내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내 분수에 넘친다고, 때로는 이건 내가 져야할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져야 될 건데, 이게 무슨 팔자가 잘못 되어 가지고 내게 왔다며 번명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져야할 십자가를 벗고 싶어하고 더 가벼운 것, 작은 것을 진다든지 아무것도 안 지면 좋겠다며 푸렴 처럼 늘어 놓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마16장에 있는 말씀과 같습니다. 18-21절까지 예수님 당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묻는 장면이고..... 22-27절은...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이제는 네 몫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두 단락으로 나누어졌지만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신앙고백 한다면 목숨을 내 놓는 일이 있어도 십자가를 포기하지 말고 지고 가라는 말씀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고 매우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는데 예수님 당신 자신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신 것 갖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보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지정된 장소를 가르쳐주는데 그 곳은 가이사랴 빌립보지방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장소는 나와 있지 않아요!!
예수님의 지시를 받은 제자들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여쭈어 봅니다. 오늘 시대라면 전화로 물어 볼 수도 있고 하겠지요 이제 제자들이 설문 조사를 마치고 예수님께 와서 보고를 합니다. ..... 어떤 제자는 예수님을 세례요한이라고 합니다. 보고했고... 어떤 제자는 엘리야라고 합니다. 보고하고.... 어떤 제자는 선지자 중에 한사람이 살아났다며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예수님께 보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이 와서 보고한 것을 보면 당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 천국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다른 어떤 사람이 생각하는 것 보다도 당신 자신과 함께 동거동락하며 함께 자고 함께 생활하고 함께 웃고 함께 공동체 생활하는 12명의 제자들이 어떤 생각을 지금 가지고 있을까? 더 궁금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지금 생업전선을 포기하고 가족도 포기하고 나를 따르겠다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들의 속 마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신앙의 개인 정체성입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교회 오는가?...... 내가 왜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가?...... 학생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이유를 모르면 큰 일입니다. 일요일이면 좀 쉬고 싶은데 우리가 왜 교회에 나옵니까? 왜! 예수라는 단어를 침이 마르도록 들어야하고 부르짖고 있습니까? ....... 우리 모두는 궁금하고 알아야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예수님의 이런 질문에 12제자 중에 베드로가 머뭇거리지 않고 자신이 그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느끼고 배웠던 예수님에 대해 신앙을 고백 합니다.
20절입니다.......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라고 답변 했습니다. 마태복음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런 고백을 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까? 뿐만 아니라 나를 창조하신 분이심을 믿습니까? 우리는 사도신경을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예배 중에 고백합니다. 이렇게 고백한 하나님을 지금 믿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곳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구약에서는 히브리말로 메시야요 신약에서는 헬라어로 그리스도 기름부음을 받는 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예수님이 하시는 사역을 말합니다. 즉 선지자로.... 왕으로.... 제사장으로 지금 예수님이 하나님나라를 위해 이렇게 사역 하시는 분이라고 베드로가 자신 있게 말합니다. 성도여러분!! 이런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보고 박수로 하답하겠습니까? 점수를 준다면 100점 줄만한 고백인가요?
저는 주향교회 목사로써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알고 싶은 것 하나가 있다면 저도 예수님과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든 그것이 우선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주향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을 어떤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는가?.... 개인적으로 듣고 싶고 묻고 싶은 마음입니다.
2주 후에 세례를 받게 될 양영 청년이 요즘 열심히 세례교육을 받고 있는데 1장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신가? 대해 교육받으면서 제가 물어보면 묻는 말에 답변하는데 싱글 벙글 기쁘게 입을 열어 고백하고 메모하는지 교육받는 열의가 좋아 제가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일출석을 좀 소홀히 했기에 얼마나 잘 대답할까? 했지만 그런 염려는 목사개인의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예쁜딸이 기본적인 신앙지식을 다 알고 있어요!!
아마! 우리교회 출석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개인적으로 문답식으로 물어보면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자신 있게 고백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 예수님 제자들의 마음을 알고 계셨을까요? 비록 베드로가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고백했지만 예수님은 그것으로 만족하고 계시지는 않습니다...... 한걸음 나아가 더 중요한 책임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22-27절 예수님께서 더 중요한 책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핵심이 있어요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나에게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가는 길에 끝까지 따라 올 수 있는 자가 진정한 제자인 것을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비로소 예수님께서 감추었던 비밀이 있습니다. 22절...... 내가 고난 받고... 제사장 장로들로부터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지만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야하리라....... 어떻게 보면 기독교의 매우 중요한 보석 같은 교리를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23절.....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성도여러분!! 제 십자가를 지는 것은 지느냐! 마느냐! 고민하고 결정할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제 십자가를 지기 싫다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지느냐 마느냐 난관 앞에 망설일 수밖에 없는 매우 중요한 걸림돌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목숨입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가는데” 최고의 걸림돌 자기 목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앞에서 냉정합니다. 살고자하면 잃고 목숨을 잃고자 하면 산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명량”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임진왜란이후 정유재란때 일본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와 남쪽 온 바다를 점령할 때 명량해전이 있지요 이때 이순신장군에게 남은 배는 12척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적들은 133척이나 됩니다. 병사들의 사기는 모두 다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속에서 이순신장군이 외친 말이 기억납니다. "신(臣)에게는 아직, 12척(隻)의 전선(戰國)이 남아 있나이다." "필사즉생(必死則生),필생즉사(必生則死)-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외친 부르짖음이 지금도 귓전에 생생합니다.
이 말이 이렇게 유명하지만 그러나 이미 2000년 예수님께서 눅 9:24.... 먼저 하신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 내 앞에 어떤 난관이 봉착하여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했습니다.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두 제자를 데리고 어떤 길로 들어서셨습니다. 거기서 주님은 두제자에게 무게가 똑같은 십자가 하나씩을 건네주시며, 주님은 이 길이 끝나는 곳에 먼저 가 있을 테니 그곳까지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지시한 다음 자취를 감추셨습니다. 첫 번째 제자는....... 가볍게 십자가를 매고 가는데 반해, 두 번째 제자는 ......... 지독히 힘들어하면서 뒤쳐져 따라왔습니다. 십자가를 걸머진 지 하루만에 첫 번째 제자는 길 끝에 당도하여 십자가를 스승에게 넘겨드렸습니다. 주님은 첫 번째 제자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아주 잘 했다."
두 번째 제자는..... 이튿날 저녁이 되어서야 길 끝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제자는 십자가를 주님의 발 밑에 내 동댕이치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저한테는 다른 제자보다 훨씬 더 무거운 십자가를 내주시다니요! 제가 이제야 온 것도 그 때문입니다. !" 불평했습니다. 주님은 마음이 상한 채 슬픈 얼굴로 두 번째 제자를 바라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둘 다 똑같은 무게였느니라." 두 번째 제자는 말합니다. "그런데도 앞사람은 아주 쉽게 십자가를 옮겼는데, 유독 저만 십자가를 옮기느라 쩔쩔 맸다 이 말씀입니까?"
주님이 그에게 타이르셨습니다. "십자가를 탓하지 말아라. 그 까닭은 십자가를 지고 오는 동안 줄곧 불평을 늘어놓은 너에게 있느니라. 네가 불평할 때마다 십자가의 무게는 늘어 났느니라 앞에 온 제자는 십자가를 지고 있는 동안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에 그 사랑이 십자가의 무게를 덜어준 거란다!! 그래서 힘들이지 않고 옮길 수 있었다..... 구전(口傳)에 의하면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로마 사람들이 주문하는 십자가를 만드는 전문 목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어릴 때에 아버지 요셉을 도와 열심히 목수의 일을 하셨으므로 예수님도 십자가를 만드는 전문가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십자가를 만드는 전문가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전문가이셔서 지금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절한 십자가를 친히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23절.....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할 때 주가 위로해 주시리라 아침 해 같이 빛나는 마음으로 너 십자가 지고 가라 참기쁨 마음으로 십자가지고가라 네가 기쁘게 십자가 지고가면 슬픈 마음이 위로 받네 ♪♬
네 몫의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