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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문학 월례토론회 원고 )
최근 동화 인물의 변모 양상
김자연
1. 동화의 변모 양상과 다른 ‘무엇’ 찾기
청탁받은 주제가 한국창작동화의 경향이다. 어떻게 접근할지 며칠 동안 고민하다 최근에 나온 동화책 오십 여 권을 읽은 뒤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뚜렷하게 남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시도하길 몇 번. 생각의 그물코 위로 몇 가지 알갱이가 남았다. 그 중 매번 가장 선명하게 남은 것이 개성적 인물의 성격 창조이었다. 즐겁게 장기 기억 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믿음으로 글의 꼬투리를 열어본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한국 동화문학은 질적 양적으로 다양한 변모를 거듭하고 있다. 창작 방식 또한 기존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다층적이고 발랄한 양상을 보인다. 초반에는 해리포터 시리즈 영향으로 팬터지 동화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였다. 한편에서는 인물의 개성 있는 성격창조가 이루어졌고 저학년 동화가 많이 출간되었다. 중반에 들어서자 장애인을 다룬 작품이 눈에 띄게 많이 발표되었고 가족붕괴 현상을 다룬 동화가 많이 씌어졌다. 특히 과거 동화에서 다루는 것을 꺼려했던 부모의 이혼, 재혼, 국제결혼, 입양, 가출, 어른의 모순된 행동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형상화되었다. 후반으로 들어선 최근에는 동화 영역을 넓혀 대상을 청소년까지 수용하는 양상이다. 가장 큰 특징은 최나미, 유은실, 남찬숙, 김려령 등을 선두로 등장인물의 내면 심리를 여성관점에서 섬세하게 파헤친 성장 동화의 강세다. 창작 기법 측면에서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소통 방식과 소재가 한층 다양해졌다. 단편동화 보다 고학년 장편 동화가 최근에 많이 발표되는 것도 특징적인 요소다. 그러다 보니 오세란, 권혁준, 조은숙, 김상욱 등도 지적한 바 있듯 서사기법으로 동화의 소설화 경향이 두드러진다. 또 1인칭 고백체와 관찰자 서술, 6학년(13살)과 디지털 시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메일을 활용한 소재, 김남중, 김옥 등이 보여주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층적 접근(옴니버스식 구성), 현장감 있는 아이들의 생생한 말투의 문체, 개성적인 인물의 성격 창조, 이금이의 『유진과 유진』처럼 동화에서 금기시(성폭력, 가출, 부모나 선생님에 대한 비판 등)했던 것에 대한 과감한 시도 등이 최근 동화문학에 나타난 주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동화의 이와 같은 다양한 변모 양상은 199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과학기술과 정보산업의 발달로 생활이 보다 편리해졌고 사람들은 시간적 여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각자 자신에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연 교육에 대한 정보 교환과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가 상승되었다. 교육 제도에 따른 적극적인 독자층 형성은 동화의 새로운 변모를 부채질하였다. 교육의 주요 패러다임이 통합적 사고력을 요구하는 쪽으로 변화하면서 어른의 관심이 아이들의 읽을거리로 모아졌다. 통합적 사고력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아이들에게 이제 동화책은 선택이 아닌 필수 영양제임을 부모들이 절실하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읽는, 또는 읽어왔던, 아니 읽어야 할 책에 대한 가치를 꼼꼼하게 따져보기 시작한다. 아이를 위해 독서 모임을 만들고 도서관을 찾아 동화를 읽는 적극적 행동을 보였다. 도서관 대출 담당자 말을 들어보니 몇 년 사이 동화를 찾는 어른들 수요가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좋은 작품은 지속적인 공급 요구를 받았다. 수요가 많고 관심이 높아지자 비평 활동 역시 활발해졌다. 비중 있는 출판사와 어린이 책 담당자들은 너나없이 좋은 아동문학 작품과 작가 찾기에 나섰다. ≪대교≫,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사계절≫, ≪우리교육≫, ≪웅진≫, ≪창비≫에서 주관하는 각종 공모전은 창작 동화의 새로운 붐을 부추기는 데 한 몫 하였다. 역량 있는 신인들이 자기만의 색깔과 열정으로 공모전에 모여들었다. 이러한 사회적 기류가 독자들의 변화된 의식과 맞물리면서 문학적 성과를 보여주는 동화 생산을 가속시켰다. 문학적 성과란 다른 사람과 다른 ‘무엇’으로 ‘공감’과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만약 방정환과 마해송 동화가 같다면, 현덕과 권정생의 작품 세계가 비슷하다면, 1990년의 동화와 2000년의 동화가 같다면 우리는 그 동화를 잘 기억하지도 못하며 동화를 굳이 찾아 읽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니 굳이 아이들에게 읽히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일련의 변화 속에 작가들 또한 다른 사람과의 변별력을 가지기 위한 자기만의 ‘다른 무엇’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한 시도들이 최근 동화의 다양한 특징을 낳는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학으로써 동화는 늘 새로워져야할 당위성을 그 안에 가지고 있다. “한 세계가 열리려면 또 한 세계가 깨져야 한다”는 니체의 말은 문학의 본질적 특성이기도 하다. 기존의 낡은 것을 넘어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는 것, 그것이 문학의 진정한 존재 이유이고 힘일 것이다. 어떤 작가는 "새로워지지 않으면 죽음이다"는 말로 작가의 절대적인 사명을 나타내기도 한다. 흔히 사람들이 작품을 만든다고 하지 않고 창작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전과 다른 ‘무엇’, 다른 작가와 ‘다른 무엇’의 중심에 기법과 관점의 새로움이 있고, 개성이 강한 인물의 성격 창조가 있다. 여기서는 동화 인물의 어제를 개략적으로 더듬어 보고, 최근(2005년 이후)에 발표된 창작동화 중 개성적 인물의 특징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작품(역사, 생태, 환상동화 제외)에 한정하여 인물의 몇 가지 양상을 거칠게 살펴보려 한다.
2. 동화 인물의 어제- 사회 통념을 수용한 전형적인 인물
그 동안 우리 동화가 안고 있는 아쉬움 중 하나는 사건에 치중하여 개성 있는 인물의 성격 창조에 소홀했다는 점이다. 문학이 사람에 관해, 사람에 의해 사람을 위해 써진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문학 활동은 어찌 보면 인간에 대한 탐구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리와인담은 동화는 “보통 아이들이 갖는 공통의 욕구, 동기, 특성 등을 갖춘 친숙한 유형의 인물이면서, 동시에 별난 요소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동화쓰는법,1988) 했고, 나시모토게이스케는 “어린이들은 개성이 풍부하게 그려진 인물에 끌리게 마련이다”(명작동화로 배우는 동화 쓰기,2001)며 동화에서 개성적 인물 창조를 강조하였다. 서사문학으로써 이야기는 ‘사건의 개연성이나 복잡성에 연원하기보다는 인물이 지니는 신비한 마력, 그 인물의 가능성에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만큼 동화에서도 ‘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인물의 성격은 삶에 대한 문제 해결 방식, 대화, 버릇 등을 통해 나타난다. 작품에서 인물을 어떻게 형상화 했는가에 따라 동화를 읽는 재미와 감동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동화에 나타난 인물의 다양한 성격 창조는 매우 긍정적이다. 작품에서 인물을 말할 때 흔히 성격(character)이라는 용어를 대신 사용하는 것은 인물의 여러 요소 중 성격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독자는 동화 속에서 여러 인물을 만난다. 현실 속 인물일 수 있고 현실 밖의 인물일 수도 있다. 그들은 자아를 상실한 인물일 수 있고, 자기반성 및 비판형, 현실 극복 의지가 강한 인물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그들의 말과 행동은 현실의 생활양식을 띈다. 아이들은 동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동일시하거나 이화, 통찰, 재구성하여 세상이 어떤 것이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자연에 대한 인식을 넓혀나간다. 이것이 동화문학이 아이들에게 주는 진정한 가치요, 재미일 것이다. 세계 명작으로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있는 『모모』,『피노키오』,『삐삐 롱스타킹』,『피터팬』,『톰소여의 모험』,『호비트의 모험』,『산적의 딸 로냐』,『찰리와 초콜릿 공장』등을 보라. 어느 작품을 들추어도 그 속에는 독자의 흥미를 끄는 개성적 인물(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징)이 실감나게 창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실감나게 창조된 인물이란 이 세상에 ‘있음직한 인물’로 작품에 그럴듯하게(내적 리얼리티를 가지는 것) 형상화된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동화는 어린이를 주요 독자 대상으로 삼는다는 특수성을 의식하여 개성적인 인물 창조보다 사회의 통념을 수용한 착하고, 모범적인 인물을 더 많이 담아 온 것이 사실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어른들이 바라는 인물을 동화에 더 많이 투영시켜 온 경향이 짙다. 물론 이전 동화에 흥미를 주는 개성적인 인물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방정환『만년샤쓰』의 한창남, 마해송「사슴과 사냥개」의 비호, 현덕『너하고 안 놀아』의 노마와「나비를 잡는 아버지」의 바우, 이주홍「청어뼉다귀」의 순덕이, 권정생『몽실언니』의 몽실이와『강아지똥』의 강아지똥, 정채봉『오세암』의 길손이와 감이는 지금도 장기 기억되는 생생한 인물이다. 동화에 등장하는 개성적인 인물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방정환의 『만년셔츠』,『칠칠단의 비밀』에는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한창남과 상호와 순자 남매가 등장한다. 창남이(만년셔츠)는 눈먼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사는 소년이지만 자기 처지를 원망하지 않는 아이다. 동네에 불이 났을 때도 창남이는 이웃 사람에게 옷을 다 벗어주고 추운 겨울에 홑저고리만 입고 학교에 간다. 체육 시간이 되어 겉옷을 벗어야 하는 상황에서 선생님께 만년셔츠(맨몸)도 괜찮냐고 물을 만큼 성격이 매우 낙천적이다. 현실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굳굳한 모습은 상호와 순자 남매(칠칠단의 비밀, 동생을 찾으러)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물은 개성적으로 형상화한 인물이라기보다는 그 당시 윤리관이나 사회관에 의해 만들어진 틀에 박힌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참혹한 현실에서 어린이에게 무언가 일깨워 주고자 했던 사회 통념이 굳세고 어른 같은 한창남과 상호 남매를 탄생하게 만든 것이다.
마해송은「토끼와 원숭이」,「사슴과 사냥개」를 통해 시대성을 반영한 인물을 창조했다. 갑동이「토끼와 원숭이」는 섬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오직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외세와 결탁한다. 반면 갑동이네 집 머슴인 돌쇠는 무상원조를 거부하고 자립의 중요성을 부르짖는다. 돌쇠는 떡배와 단배 사람들의 교묘한 술책을 섬사람들에게 폭로하고 그들과 힘을 합쳐 다른 사람의 지배와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슴과 사냥개」에 등장하는 비호는 자기 주체성을 회복해 가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 인물 역시 작가에 의해 개성적으로 탄생한 인물이라기보다는 그 시대 사회상이 반영된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형적 인물은 유형적·고정적 인물이라고도 부른다. 그 성격이 틀에 박은 듯 엄격한 격식에 따라 행동하는 인물이다. 어떤 사회 계층이나 직업, 또는 어느 세대를 대표하는 성격적 특성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비호는 주인의 사랑과 칭찬을 제일로 알고 주인을 위해 숲 속 동물들이 있는 곳을 알려주며 충성을 다한다. 그러나 사람이 쳐 놓은 덫에 걸린 사냥개 비호를 구해주는 것은 자기 주인이 아닌 동물이다. 사슴에 의해 목숨을 구하게 된 사냥개는 양을 구하려고 인간에게 달려들어 죽임을 당한다. 결국 비호는 자기가 동물임을 깨닫는다. 가치의 혼돈이 팽배했던 시대를 떠올린다면, 그 당시 우리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조선인의 주체성을 찾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식이 사냥개 비호(베스)에 투영되어 나타난다.
이주홍의 「청어뼉다귀」에 등장하는 순덕이는 현실에 아무런 대항을 하지 못하고 순응하고 희생하는 인물로 1930년대를 대변하는 전형성을 보여준다. 이원수의 『민들레 노래』에 등장하는 현우 역시 학살된 시체 더미 속에서 어머니 품에 안겨 기적적으로 탈출한 운명적인 소년이다. 권정생의『몽실언니』와『강아지 똥』에는 고통스런 현실에서 희생되어 가는 몽실이와 자기 몸을 기꺼이 희생시키는 강아지똥이 나온다. 강아지똥은 천하고 하찮은 존재로 태어났어도 꿈을 잃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나 강아지똥 역시 민들레꽃으로 상징되는 타인을 위해 자기 목숨을 기꺼이 바친다. 이러한 인물은 대개 개성을 지닌 인물이라기보다 사회의식을 대변하는 꿈과 희망을 들어주는 인물, 전체를 위해 자기 자신을 기꺼이 희생시키고 주어진 삶에 순응하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1990대 이전 동화가 인물의 성격 창조보다는 작품의 효용성과 사건 중심의 구성을 보다 중요하게 여긴 까닭이다. 따라서 이 시기 동화는 시간적 변화에 따른 서술 위주의 기법이 주를 이루었다. 전래동화처럼 줄거리는 남지만 문학적 형상화가 아쉬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다 보니 문학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미적 즐거움보다 교훈성이 도드라진다. 그러나 최근 동화는 자기 세계가 뚜렷한 다양한 인물의 내면적 심리와 갈등에 주목한다. 작품에서 인물이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인다고 할까. 다변화된 현실에서 인물들의 갈등양상이 커지다보니 이를 문학적으로 형상화 하려는 작가들의 문제의식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3. 최근 동화의 인물 - 주체성이 강한 개성적 인물
동화에서 개성적 인물은 전형적 인물보다 자기 고유의 특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어 독자에게 뚜렷하게 기억될 수 있는 인물이다. 최근 발표된 동화에서 이러한 인물을 꼽아보면『영모가 사라졌다』의 영모,『받은 편지함』의 순남이, 『나의 린드그랜 선생님』비읍이,『자존심』의 여러 동물들,『유진과 유진』의 유진,『우리 집에 온 마고 할미』의 도우미 할머니,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의 엄마,『걱정쟁이 열 세살』의 상우,『수선된 아이』의 두껍선생과 버럭할배,『만국기 소년』의 백석이 아버지, 진수, 선아네 할머니,『멋지다 썩은떡』백오십살 선생님과 이슬비, 『밴드마녀와 빵공주』의 은수, 『친구가 필요해』의 은애,『완득이』의 완득이와 똥주 등을 들 수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특징을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아이들, 변화를 추구하는 엄마, 자기 세계가 강한 유쾌한 어른으로 나누어 접근해 보고자 한다.
1)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아이들
최근 동화에는 어떤 일에 맞서 자기 의견을 솔직히 밝히고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는 행동형 아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자기 마음을 별다른 제한 없이 털어놓을 수 있다 보니 아이들이 자기감정을 보다 쉽게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가족형태가 비정상적이고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으며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내부적으로는 갈등이 누적되어 있다. 아이들이 현실에서 겪는 갈등은 가난『만국기 소년』,『받은 편지함』, 부모의 방임 및 학대『영모가 사라졌다』, 『유진과 유진』, 비행『청소녀 백과 사전』, 미혼모『안녕히 계세요』, 한 부모『밴드마녀와 빵공주』『걱정쟁이 열 세살』,『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부모의 가출『밴드마녀와 빵공주』, 입양『밴드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 노인 문제『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 맞벌이『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등으로 요약된다. 물론 하나의 작품에 한 가지 문제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두어 가지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관점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분류될 수도 있다. 가난한 집안 환경이 자식에 대한 방임이나 학대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소년 소녀 가장의 가족 형태가 비행으로도 이어진다. 또 비록 겉으로는 정상적인 가족 형태를 지녔지만 삶을 살아가는 부모의 태도나 자녀에 대한 양육 방식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집착, 억압과 일방적인 명령, 의사소통의 단절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일반적인 것에서 부족하거나 넘치는 요소를 결핍이라는 단어로 묶을 때, 성장기 아이들에게 이러한 결핍의 요소는 그것이 작든 크든지 간에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유발시킨다. 발달학적 측면에서 볼 때 이 시기(초등- 중 2)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미분화시기여서 행동 특성이 매우 복잡하고 예민하기 때문이다. 평범하지 못한 가족형태는 또래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어 따돌림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자신감을 떨어뜨려 마음의 위축을 가져오기도 한다. 결핍의 요소가 열등감으로 작용하여 상처가 되고 그것이 한꺼번에 분노로 폭발하는 경우도 있다. 유은실의『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에 등장하는 주인공 비읍이를 살펴보자. 이 작품은 특별한 취미를 가진 열 살 비읍이를 통해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추슬러 가는지를 새롭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비읍이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3학년 아이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이해심이 많고 생각도 깊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매우 불행한 아이다. 아빠가 없어 물질적으로 풍부하지 않은 데다 곁에서 비읍이를 돌보아주어야 할 엄마조차 집을 사면서 빌린 대출금을 갚느라 생활에 쪼들리고 피로에 시달려 비읍이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한다. 비읍이는 갖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살 수 없고 엄마에게 마음껏 투정도 부리지 못한다. 유일한 기쁨이 자기가 좋아하는 린드그렌 선생님의 책을 사서 읽는 것이다. 현실에서 억압되고 불만스런 감정을 동화작가 선생님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것으로 해소한다. 아빠 없이 자란 비읍에게 아빠 없이 씩씩하게 생활해 가는 삐삐의 모습은 정신적인 위안의 대상이다. 비읍이는 삐삐라는 인물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런 인물과 만나게 해준 린드그렌 선생님을 좋아하게 된다. 돈을 다 털어 린드그렌 선생님이 쓴 책을 몽땅 사는 비읍이의 행동에서 현실에서 억눌린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심리가 엿보인다. 그러나 엄마는 그런 비읍이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한다. 비읍이가 왜 린드그렌 선생님 책을 샀는지 묻지도 않는다. 다만 엄마입장에서 한꺼번에 많은 책을 산 비읍이의 행동만을 일방적으로 몰아세우고 야단칠 뿐이다. 엄마의 부당한 행동을 이야기하면 말대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읍이의 마음은 더 답답하다. 누군가에게 자기의 마음을 털어 놓고 싶은 데 그럴 수 없는 현실에서 비읍이가 선택한 것은 상상으로 자기와 말을 주고받거나 편지를 쓰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비읍이가 헌책방 언니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언니는 말을 중간에 끼어들지도 않았다. 그냥 중간 중간에 “그러게, 그랬구나” 하고 맞장구를 쳐 주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그렇게 많은 얘기를 해 보긴 처음이었다. 린드그렌 선생님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해 보기도 처음이었다.“(76P) 이 대목은 비읍이가 얼마나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를 필요로 했는지를 알게 한다. 사실 외롭고 쓸쓸할 때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린드그렌 선생님에게 편지를 써서 갈등을 풀어가는 비읍이의 행동은 바람직한 삶의 태도이다. 그러나 엄마는 딸에게 그토록 소중한 책을 쓰레기 같은 책, 균 덩어리 책이라며 폐지함에 버리라고 명령할 정도로 성격이 왜곡되고 무심하기까지 하다. 엄마가 비읍이 입장을 조금만 생각했더라면 비읍이가 가출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펠레의 가출>을 읽고 비읍이는 곧바로 마음을 추수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이 대목은 3학년 아이답지 않게 지나치게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행동이다. 아무리 비읍이가 이해심이 많은 아이라지만 자기 처지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상황설정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비읍이처럼 어떤 대상을 정해 놓고 대화를 나누거나 좋아하는 일을 찾아 푹 빠져 보는 것. 그것 역시 현실에서 겪는 슬픔과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라고 이 작품은 말해 주는 것 같다.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그대로 순응하거나 비판에만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기 생각을 이해시키려는 행동 역시 의미 있게 다가온다. 비슷한 인물로 영모를 들 수 있다. 영모는 공지희의 『영모가 사라졌다』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 책을 좋아하는 비읍이 만큼 ‘조각’을 무지무지 좋아한다. 이 작품은 영모의 심리과정을 통해 부모의 폭력성을 반추시키는 동화이다. 영모는 아빠 없이 사는 병구와 친구가 되면서 현실에서 받은 상처를 '라온제나'라는 세상을 통해 극복하고, 희망을 찾아간다. 주인공 영모는 수줍음이 많고 말수가 적다. 누가 일부러 말을 건네기 전에는 도통 입을 열지 않는 내성적인 인물이다. 그런 점은 비읍이와 같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영모의 열등감은 부모의 영향이 크다. 평소 아버지의 일방적인 폭력에 시달려온 영모는 무엇이든 꾹꾹 눌러 참는 버릇이 있다.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내부에는 불만이 가득 차 있다. 영모는 답답하고 억눌린 현실의 갈등을 ‘조각’과 이야기하는 것으로 푼다. 연필, 나무젓가락, 지우개, 분필 등 어떤 재료라도 영모의 손을 거치면 거의가 하나의 조각 작품으로 변한다. 영모가 자기 마음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조각뿐이다. 조각칼을 사기 위해 일 년 동안 용돈을 모은 영모의 행동에서 조각의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다. 자수성가한 영모아버지는 영모의 이런 행동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아이의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비읍이 엄마와 같다. 영모 아버지는 성공의 열쇠는 오로지 공부에 있는 것이라며 영모에게 공부만을 강요해 온 보수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그런 아버지 때문에 영모는 하루도 쉴 날 없이 일곱 개 과외를 한다. 공부에 소홀하거나 아버지 말을 어기면 어김없이 매를 맞는다. 영모는 아버지의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어줄 대리자일 뿐이다. 아들 영모는 숨이 막힌다. 그래서일까. 영모의 가출이 당연하게 보이는 것은. 비현실적 라온제나를 가출의 공간으로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은 영모의 성격과 그가 처한 상황을 디테일하게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만약 영모가 비읍이처럼 린드그렌 선생님이 쓴 <펠레의 가출>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영모는 가출했을 것 같다. 비읍이나 영모에게 현실에서 가장 절실한 문제는 아이에게 먼저 물어보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대화이다. 그러나 비읍이 엄마나 영모아버지는 아이들이 겪는 심리적 갈등과 고민을 이해하기는커녕 어른이 세워 놓은 논리에 그들을 억지로 끼워 넣는다. “요즘 은수가 마음 편하게 속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대는 USB 메모리 밖에 없다” 는『밴드 마녀와 빵공주』의 은수의 고백이 대다수의 현실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자기가 겪는 고통을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될까봐 쉽게 풀어 놓지 못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편지나 이메일이다.『나의 린드그렌 선생님』비읍이,『걱정쟁이 열 세살』의 상우, 『장건우에게 미안합니다』건우,『받은 편지함』의 순남이의 경우가 그렇다. 그들은 통신 매체인 편지와 이메일을 통해 억눌린 마음을 드러내고 자신을 들여다본다. 편지나 이메일을 통한 자기와의 대화는 최근 동화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갈등을 해결 방식이 되고 있다. 디지털 시대를 상징하는 이메일이라는 소재를 통해 아이들의 꿈, 타인과의 관계, 현재 겪고 고민들을 등장인물의 느린 성찰을 통해 보여 준다. 이러한 동화가 갖는 미덕은 섣부른 화해나 이해, 용서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 자신의 앞날을 깊이 바라보고 성찰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인물의 성격은 사건을 통해 구체적으로 들어나는 경우가 많다. 사건에 대응하는 방식이 인물의 성격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의 성격을 현실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순응형(순종형), 소극적 대응형, 행동형(능동형)으로 나눌 때, 최근 동화의 아이들은 행동형(능동형) 인물이 많다. 이들은 현실에서 겪는 갈등을 그냥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반항하는 소극적 대응에만 머물지 않는다. 나름의 방식으로 부딪히고 능동적으로 출구를 찾으려고 한다. 1990년 후반에 발표된『짜장짬봉탕수육』의 종민이,『나쁜 어린이표』의 건우,『문제아』의 하창수,『마당을 나온 암탉』의 잎싹에서도 그런 모습이 발견된다. 이보다 앞서 발표되었던『내 짝궁 최영대』의 영대나『까막눈 삼디기』의 삼식이, 『재덕이』의 재덕이,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아이들이 현실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태도와는 다른 모습이다.
2) 변화를 추구하는 엄마
최나미의『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의 가영이 엄마, 『걱정쟁이 열 세살』의 상우 엄마, 김려령의『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의 하늘이 엄마, 이금이의『유진과 유진』에 나오는 작은 유진이 엄마는 기존 동화에 등장하는 엄마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기존의 동화에 등장하는 엄마의 모습은 남편과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자기 목소리가 없는 수동적이고 나약한 현실안주형이 많았다. 적극적인 인물로 구현된 경우라도 자기반성 및 비판에 그치거나 결국에는 모든 결정이 가족을 위한 것으로 귀결되곤 했다. 엄마 자신을 위해 가족을 등안시 하거나 못다 이룬 꿈을 펼치기 위해 가족을 포기하는 일은 드물었다. 항상 남편과 아이, 부모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엄마모습이었다. 그러나 최근 동화에 등장하는 엄마의 모습은 냉정하고 이성적이며 유별나고 비정상적이기까지 하다. 한마디로 문제성(?)이 있는 엄마다. 단지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족의 행동을 무조건 감싸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달라진 엄마의 모습이다. 변화된 엄마의 모습은 가족에게는 당황스럽고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 이미지, 비정상적인 인물로까지 보인다. 가영이 엄마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바라보며 자기 미래를 염려해 일을 찾아 나선다. 집안일을 소홀히 한다는 가영이의 불만에도 엄마가 하는 일에 대한 당위성을 딸에게 설명하며 이해시키는 행동으로 봐서 이성적면서도 합리적 인물이다. 엄마의 이성적인 성격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돌보는 방법에서도 잘 드러난다. 엄마는 다섯 명의 고모에게 하루씩 돌아가면서 시어머니를 보살필 것을 제안한다. 시어머니의 병 수발이 귀찮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에게 더 큰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막는 게 가족을 위해 현명한 처사라는 것이다. 아빠와의 언쟁에서도 딸의 투정에서도 엄마의 이성적인 냉정함과 침착함이 보인다.
“저기 요즘 어머니 증세가 좀 이상한데, 혹시 치매가 아닐까 싶어."
“얘들도 아니라잖아. 술 드시고 섭섭한 소리 좀 한다고, 어머니를 그런 식으로 취급해?”
“그럼 예방차원에서라도 병원에 가보면 되잖아. 만일 사실이면 빨리 치료 받을 수 있는 거고, 아니면 다행인 거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워! 우리 엄마를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리야!”
“가희 아빠, 냉정하게 어머님을 보라고, 예전과 너무 다......”(35˜36P)
“벌써 계획까지? 며느리가 버젓이 있는데 왜 누님들까지 와야 하는데?”(39)
“엄마가 일 나간 다음부터 우리 집이 엉망이잖아. 나는 고모들이 오는 것도 싫어. 예전처럼 엄마가 집안일을 다 하는 게 좋단 말이야” (74-75)
이성적인 엄마에 비해 가영이 아빠와 딸 가영이는 감정적인 성격이다. 아빠는 자기 엄마인데도 시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전적으로 며느리의 당연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 만큼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깊이 배어 있다. 축구시합에 나가고 싶은 딸의 말을 묵살하는 행위에서도 이러한 특성은 강조된다. 딸들 역시 아빠처럼 할머니를 두고 일을 나가는 엄마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봉건적인 사고방식이 그대로 답습되고 있는 점이 발견된다. 집안일에 관련된 모든 것은 엄마의 당연한 몫이라는 가족의 태도에 엄마의 갈등은 증폭된다.
“벌써 계획까지? 며느리가 버젓이 있는데 왜 누님들까지 와야 하는데?”(39)
“엄마가 일 나간 다음부터 우리 집이 엉망이잖아. 나는 고모들이 오는 것도 싫어. 예전처럼 엄마가 집안일을 다 하는 게 좋단 말이야” (74-75)
누구보다도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엄마를 이해해야 될 딸 가희조차 엄마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엄마의 역할만을 강요한다. 일을 위해 가정을 소홀히 하는 엄마의 행동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기적인 인물이다. 엄마는 가족 일을 등한시 하는 게 엄마냐고 따지는 딸 가희에게 “치맛단 꿰매주고, 제 때 속옷 사다주고, 급식비를 제 날짜에 딱 맞춰 내게 하는” 게 엄마가 하는 일이냐고 응수 한다. 엄마를 한 인간으로 보아주길 딸에게 당당히 요구한 것이다. 엄마도 엄마가 원하는 삶을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표명한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가족만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로 살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엄마의 이와 같은 자의식은 같은 여자인 시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생긴 것이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다 병든 몸을 자식에게만 의존하는 시어머니 모습이 자기가 바라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엄마는 결혼하면서 접어두었던 그림을 다시 시작한다. 가족의 만류에도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실천한다는 점에서 엄마는 능동적인 인물이다. 엄마는 더 이상 누구를 위해서 뭘 참거나 희생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희생적이고 수동적인 엄마의 모습에서 자기 삶에 대한 적극적이면서도 주체적인 행동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엄마는 자신이 처한 억압적이고 희생을 강요하는 가족에서 벗어나야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생각은 과거, 현재, 미래의 엄마 얼굴이 그려진 자화상을 들여다보면서 얻어진 것이다. 순간의 감정이 아닌 자신의 삶을 보다 이성적이고 진지하게 들여다 본, 성찰의 시간을 가짐으로 내린 판단이라는 점이 의미를 부여한다. 엄마는 할머니의 삶을 객관적으로 투사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엄마의 변화는 친구 화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되고 이를 기회로 전시회까지 준비하는 과정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태도는 여전히 봉건적인 시각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다. 아내를 집안에만 가두고 가정 일을 혼자 알아서 척척 해내길 바란다. 엄마에 대한 몰이해는 시어머니도 마찬가지다. 딸을 다섯 두고 아들 하나를 본 시어머니는 지난 세월을 한탄하면서도 며느리에게 아들 타령만 하는 전형적인 한국 시어머니 모습이다. 마침내 엄마는 서로 다른 삶을 지향하는 아빠와는 가족관계를 이어가지 않겠다고 결정한다. 가족관계가 해체되더라도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엄마의 결정은 봉건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아빠와 시어머니, 딸 입장에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가족의 입장에서 엄마는 모든 것을 감싸주고, 희생하고 덮어주고 참아내야 하는 게 정상이다. 가영이는 학교에서 축구 시합 문제로 갈등을 겪으면서 엄마의 입장을 조금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 보면 엄마에 대한 이해가 주변 사람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삶의 경험으로부터 스스로 터득된다는 점이 새롭다. 자기가 좋아하는 축구를 여자라는 사실 때문에 못하게 되면서부터 가영이는 구조적으로 여성에 대한 편견과 제한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영이 엄마의 변화된 행동에서 가족구성원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의지 못지않게 가치관이 다른 세대와 세대 간의 이해, 보다 적극적인 대화가 전제되어야 함을 이 작품은 강조한다. 남편과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자기 꿈을 찾아 가족을 등안시 하는 엄마의 모습은 익숙하지 않다. 낯설다. 기존의 모습에서 벗어나므로 부정적이다. 엄마의 빈자리 역할을 자신들이 대신해야하기 때문에 더 불편하고 불만스럽다. 기존과 달리 변화된 엄마의 부정적 이미지는 『걱정쟁이 열 세살』,『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의 엄마의 모습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상우 엄마는 어린 아들에게 사는 건 죽어가는 과정이라고 입버릇처럼 하는 엄마다. 시도 때도 없이 청승맞게 잘 운다. 상우는 이런 엄마를 ‘칙칙하다’고 표현한다.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의 엄마는 인텔리이다. 의사이자, 청소년 문제 전문가, 국내입양단체의 홍보이사이기도 한 엄마를 둔 하늘이는 누구보다 행복해야 한다. 그러나 하늘이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하늘이를 사랑하지만 하늘이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너무나 유명한 부모덕에 하늘이는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덩달아 세상에 입양아라는 사실이 알려진다. 그런 상황이 즐겁지만은 않다. 엄마 입장에서는 별다른 뜻 없이 한 말과 행동이 입양아인 하늘이 입장에서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크게 와 닿는다. 관찰자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본 엄마의 부정적이고 변화된 이미지를 통해 가족 간의 대화의 절실함을 이 작품은 오히려 강조하는 것 같다.
3) 자기 세계가 뚜렷한 유쾌한 어른
『우리 집에 온 마고 할미』의 도우미 할머니 ,『멋지다 썩은 떡』의 백오십살 선생님 ,『내 이름은 백석』백석이 아버지, 『완득이』의 똥주 선생님 또한 자기 세계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개성적인 인물이다. 그들의 톡톡 튀는 독특한 성격은 동화의 재미성을 한 층 북돋워 준다. 동화에서 주변 인물인데도 주인공 같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유은실의『우리 집에 온 마고 할미』의 도우미 할머니는 싫은 것은 싫다 하고 요구할 것은 당당히 요구하는 겁 없는(?) 할머니다. 시원시원한 성격이지만 사실 이런 할머니가 우리 주변에는 흔치 않다. 그동안 동화에 등장한 할머니이 대부분은 아랫사람에게 베풀고 허물을 끌어안으며 손자손녀에게 인자하고 자상한 모습이었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나이 들어 힘없고 경제력도 없어 자식들의 보살핌을 기대하거나 눈치를 보았다. 지나온 삶을 한탄하거나 아님 병들어 자식들에 갈등을 던져주는 이미지가 더 강했다. 그런데 윤이네 집에 온 도우미 할머니는 기존 할머니 모습과는 다르다. 할머니는 똥이 굵어 변기가 막힐 정도로 건강하다. 인자하고 따뜻해 보이기는커녕 무섭고 괴팍하다. 자기가 하지 말란 것을 어겼을 땐 젊은 사람에게 화도 팍팍 무지 잘 낸다. 주인집 딸아이를 오냐오냐 달래고 어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 것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래서 윤이는 할머니를 무서워한다. 하지만 그런 할머니가 일을 할 때 모습은 너무나 재미있다. 찌개를 끓이면서, 버섯을 볶으면서, 생선을 구우면서, 왼손으로 나물을 무치고 발로 걸레질까지 한다. 유쾌하면서도 웃음이 절로 난다. 엄마 아빠가 바빠서 음식도 못 만들고 청소도 못하고 한마디로 살림을 제대로 못하는데, 도우미 할머니가 와서 맛있는 음식도 뚝딱 해놓고 청소도 뚝딱 해놓는다. 이야기도 재밌게 해준다. 누구든 정말 그렇게 당당하고 재미있는 할머니가 우리 집에도 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할머니가 일주일 만에 갑자기 사라지는 상황설정은 당황스럽고 아쉽다.『내 이름은 백석』의 백석이 아버지는 아들 석이와 '대거리 닭집'을 운영하는 인물이다. 이 작품은 못 배운 게 한이 되었던 아빠와 그런 아빠를 조금은 부끄러워하는 석이의 인간적인 유대를 통해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한다. 백석이의 아버지는 사람들이 ‘닭대가리’라는 별명을 부르면 “꼬끼오” 대답하며 벙긋벙긋 웃을 정도로 성격이 호탕하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인물이다. 그 덕분에 맛있는 통닭을 만드는 집으로 유명해 먹고 사는 걱정은 없다. 그러나 아들 백석이가 자라면서 새로운 문제가 찾아온다. 백석이가 사학년이 되었을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천재 시인의 이름과 똑같은 멋진 이름을 누가 지어주었느냐며 관심과 칭찬을 받자 백석이는 자기 이름에 대해 아빠에게 묻는다. 이름이라도 쉽게 쓰라고 아들에게 그냥 지어준 이름인데 그 이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선생님의 관심에 아버지는 당황한다. 백석이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체면을 지키기 위해 시집을 사오게 한다. 백석의 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못 배운 아버지의 부족함은 여지없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러한 사실을 자식 앞에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아버지로서의 자존심을 잃지 않는다.
“나중에 아빠처럼 닭을 자르고 살아도 말이지...... 나라 이름이 바뀔 때는 잘 알아 둬.”
“그리고...... 똑똑한 친구를 한 명은 꼭 사귀어라. 아빠는 ‘나린다’가 맞는지 ‘내린다’가 맞는지 물어볼 친구가 한 명도 없다. 내 친구들은 죄다 무식해서 말이지......” (18P)
"이것 봐. 여기 이 닭 보이지? 이렇게 목이 길게 달려 있는 게 신선한 거야. -중략- 아빠는 언제나 목 달려 있는 닭만 팔아. 아빠는 닭을 잘 알아. 닭은 언제나 목이 길게 달려 있는 게 맞는 거야.“(20P)
비록 많이 배우지 못해 천재 시인 백석과 그의 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버지는 어린 아들 앞에서 비굴하지 않다. 모르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것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듯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며 정직하게 살아 온 아버지 모습을 아들에게 당당하게 보여준다. 아버지의 진솔한 행동이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모가지를 잡힌 닭들이 날아갈 듯 가뿐해 보이고, 고개를 치켜들고, 팔을 번쩍 들어 올린 아빠의 모습이 아들 백석이에게 커 보인 것도 아버지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멋지다 썩은 떡』의 백오십살 선생님과『완득이』의 똥주 선생님 역시 최근에 발표된 작품에서 개성적이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인물이다. 호기심과 궁금증이 많은 발랄한 2학년 슬비의 눈에 비친 담임선생님은 그야말로 산신령 급이다. 나이가 무려 150살이 되었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이니까. 그걸 증명해 보이라는 아이들 성화에 선생님이 고심 끝에 커낸 카드는 뭉게구름을 불러와 운동장을 한 바퀴 돌게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선생님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마냥 신나고 즐겁다. 백오십 살 도사의 이미지에 맞게 뭉게구름을 타게 되는 놀라운 사건도 지나치게 황당하지 않아 재미있다. 어른도 깜빡 속아 넘어갈 뻔 했던 그 사건을 처리하는 상상력과 주인공 이름을 썩은 떡으로 지을 정도로 백오십살 선생님은 엉뚱하다. 그러나 아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성품이 따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오십살 선생님이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넓혀 줄 수 있는 선생님이라면 똥주 선생님은 특별한 방법으로 아이를 이해하고 이끌어가는 선생님이다. 주인공 완득이가 옥탑방으로 이사온 날, 괴짜 담임 똥주 선생님을 만난다. 공교롭게도 선생님이 맞은 편 옥탑방으로 이사를 왔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감추고 싶은 완득이의 비밀을 애들이 보는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옆집 아저씨의 욱하는 성질에 맞서 고래고래 소리도 지른다. 입도 거칠다. 완득이는 그런 똥주 선생님이 너무너무 싫다. 그러나 똥주 선생님은 조금은 터프하고 조금은 황당하지만 자기 방식으로 세상과 단절해 있는 아이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려고 애쓴다. 그래서 똥주선생님이 꺼낸 카드가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일이다. 하지만 잘못한 일이 있으면 아이들을 위해 일침을 아끼지 않는 행동에서 아이들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비록 겉으로는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서슴없이 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아이들을 자유롭게 만든다. 아이들 상처를 있는 그대로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는 것이 똥주 선생님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인 것이다.
4. 마치며
최근 발표된 동화에서 개성적 인물에 초점을 두고 몇 가지 특징적인 요소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최근 동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전형적 인물에서 개성적 인물, 작품 내에서 성격의 변모를 보이는 입체적 인물, 문제 해결방식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행동형이 많았다. 성격 창조에서도 설명과 묘사 방식에서 벗어나 대화나 상황으로 인물의 독특한 개성을 구현하는 경우가 많다. 문학 작품이 주는 가치는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그럴듯하게 보여줌으로써, 현실을 반추하고, 자신의 문제를 정화시켜(카타르시스, 통찰, 대리만족) 현실을 재구성하도록 돕는 의미가 크다. 이것이 문학작품이 도덕 교과서가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나라와 나라의 경계가 인터넷 선으로 허물어지고, 개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다원화된 사회 구조 속에서 자기 세계가 뚜렷한 개성적인 인물의 다양한 생각과 내면적 심리를 동화를 통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개성적 인물은 작품에 활기를 불어 넣어 독자의 지루함을 달래주고 삶의 의외성으로 읽는 재미를 더해주기도 한다. 인물의 다양한 특징과 새로운 가치관으로 다양한 독자층을 흡수할 수 있고 효율적인 사회관계를 맺도록 도와준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화의 개성적 인물이 작품에서 보다 큰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이 내적 질서에 맞게 보다 치밀하게 구성될 필요가 있다. 등장인물이 독특한 개성만 있다고 재미있고 훌륭한 동화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 가족구조의 축소와 분화, 가족기능의 약화, 가족해체의 증가, 성역할 변화에 따른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확산. 한국가족이 겪고 있는 급격한 변화는 그 동안 가족이 담당하여 온 전통적 기능의 약화로 이어져 현재 많은 문제를 양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족 간의 유대가 소원해지고 특히 아이들과 어른들의 대화가 단절되고 있다. 엄마의 변화된 자의식 또한 가족 내에서 새로운 갈등 요소가 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 융화시켜나갈 것인지는 앞으로 우리 동화가 풀어나갈 또 다른 숙제이다. 부모의 맞벌이, 빈부의 양극화, 전통적인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며 자기 일을 찾는 어른들의 변화된 의식은 지금 여기의 아이들이 겪어야 할 새로운 현실이요 변화된 환경이다. 물론 동화는 아동문학의 장르로써 문학성 못지않게 근본적으로 아동을 고려해야 하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의 현실은 어른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것이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어른들의 문제는 곧 아이들의 현실이 되기도 한다. 시대와 환경이 변하고 독자층이 변하고, 더 섬세하게 말하면 아동의 발달수준(지금 3학년은 옛날 중학교 수준)도 변했다. 동화가 인물의 새로운 성격창조에 더 주력할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다만 동화의 개성적 인물이 보다 큰 감동으로 다가와 시간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작품으로 남기 위해서는 인물의 개성이 설득력으로 다가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쾌하면서도 재미있고, 능동적, 긍정적, 부정적 이미지를 가진 다양한 인물이 보다 많이 창작되어 동화문학 마당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김자연 약력
1985년 <아동문학평론>에 동화 「단추의물음표 새들」이 신인문학상에 당선되고,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까치네 학교」가 당선되었다. 2000년 전주대에서 “한국 창작동화의 환상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전주대 교육대학원에 재직하면서 아동문학과 독서교육을 강의하고 있다. 동화집으로 『항아리의 노래』외 4권, 연구서로『한국동화문학 연구』,『아동문학의 이해와 창작의 실제』,『유혹하는 동화쓰기』,『상호중심독서지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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