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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명이 참석한 법회의 기적
영도(순천 보승사 주지)
1) 두 번 찾아가 받은 마정수기
영광 불갑사 수산 스님(호 지종)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하여 구례 사성암, 광양 상백운암, 곡성 태안사 같은 여러 선방을 다니며 참선에 주력하고 시절을 만나면 포교도 했다. 여순사건 때 사건에 참가한 군인들이 숨어서 활동했다는 백운산 대밭에 집이 한 채 있다고 해서 찾아가 그곳을 토굴로 삼고 수행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한 밤중에 꿈인지 생시인지 자꾸 귀에서 중국말이 들렸다.
‘나는 중국어를 공부한 적도 없고 중국에 가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중국어가 저절로 들린단 말인가?’
‘참으로 기이한 생각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함께 공부하던 도반이 책을 한 권 보여 주며 말한다.
”중국의 스님이 극락을 다녀온 이야기를 쓴 책인데 옥과 석륜사에 갔을 때 받아온 것입니다.“
「극락세계 유람기」라는 책을 읽어보니 참 기이한 이야기라 여러 차례 읽는 동안 그 내용이 참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그러면서 이 책이 비록 한국말로 번역 되었지만 완전히 중국말이었다는 점을 생각하고 얼마 전 토굴에서 수행할 때 귓속에서 들렸던 중국말과 묘하게 연결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 저자인 관정 큰스님을 반드시 만나 보아야 하겠다는 원을 세웠다.
2000년 전후 낙안 금강암에서 1년 6개월간 수행하면서 주지 스님의 관세음보살 불사를 돕고 있을 때 내방에 라디오를 하나 나 주어 틈나면 불교방송을 듣곤 하였다. 그런데 라디오에서 ‘중국의 관정 스님이 우리 절에서 멀지 않은 강진에서 법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만사를 제치고 찾아가 친견하기로 결심하였다. 주지 스님에게 말씀 드렸더니 자신도 가시겠다고 해서 주지 스님과 신도들이 함께 가기로 결정하였다.
5월 27일 신도 몇 명이 꽃바구니를 준비해서 주지 스님과 함께 가서 관정 스님께 꽃 공양을 올리고 법회에 참가하여 모두 마정수기를 받았다. 정말 엄청나게 많은 불자들이 운집했다. 전국에서 신도들이 수 십 대의 관광버스를 타고 몰려들었고, 인근 부대의 군인들까지 참가하여 산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언뜻 보아도 1,000명이 넘는 불자들이 참석했다고 보였다.
그곳에서 며칠 뒤인 6월 2일에 광주 향림사에서 다음 법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광주로 가서 그 법회에 참석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또 꽃바구니를 만들어 가지고 가서 공양을 올리고 법회에 참가하여 극락 다녀오신 이야기와 극락 가는 수행법을 듣고 마정수기를 받았다. 광주 향림사도 조실 천운 스님이 크게 불법을 펴고 있는 도량이기 때문에 수 백 명의 불자들이 법회에 참석하였다. 나는 두 번의 법회를 참석하면서 마음에 다짐하였다.
2) 우리 절에서도 법회를
’나도 자리를 잡으면 반드시 이런 법회를 열어 관정 큰스님을 모시고 많은 사람들이 극락에 가는 수기를 받아 법열을 느끼게 하리라!”
그러나 그때만 해도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상황이라 그렇게 큰스님을 모시는 법회는 생각도 못했다. 얼마 뒤 낙안 금강암 불사를 회향하고 내려오면서 순천 금당절 주지 소임을 맡게 되었다. 이 절은 여수 석천사 진옥 스님이 순천에 낸 포교당인데 몇 년간 제대로 운영을 하지 않아 폐사 직전에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소임을 맡자마자 순천사암연합회에도 가입하고 정기법회를 여는 한편 도심포교를 위한 여러 행사도 진행하여 의욕적으로 사찰 중흥에 나섰다. 그리고 시작부터 그 동안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던 ‘관정 대법사 초청 법회’를 조금씩 진행시켰다.
우선 내가 처음 가서 마정수기를 받은 강진 백련사 주지 스님에게 연락하여 어떻게 행사를 준비하였으며, 큰스님을 모실 때 어느 정도 거마비를 드리셨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질문하였다. 주지 스님이 말씀하셨다.
“중국에 계신 관정 큰스님을 따로 모시려면 절차도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다른 분들이 초청하여 한국에 오실 때 일정 속에 넣으면 큰 비용 들지 않고 초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백련사 법회 때 통역을 하였던 대주 스님 연락처를 주었다. 당시 영암 월출산 도갑사 미륵전에서 기도를 하고 계시던 대주 스님에게 전화를 했더니 큰스님이 지금은 법체가 불편하셔서 오시지 못하지만 좋아지면 다시 오신다고 했다며 한국 방문 때마다 일정을 안내하는 서울 강윤철 거사 연락처를 주었다. 나는 바로 강거사에게 전화를 했고, 강거사는 다음에 스님이 오시기로 하면 꼭 연락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건강이 허락하시다면 다시 오신다고 했으니 다시 오실 때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그렇게 큰 행사를 하려면 기획하여 홍보하고 당일 진행을 위해서 최소한의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었다. 주지 소임을 맡은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큰 행사를 벌여 만일 실패한다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금당절 임원들에게 내 계획을 이야기하며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런 큰 행사를 해보지 못한 임원들은 잘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걱정들을 했다. 너무 당연한 걱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탁발이라도 해서 보충하겠다’고 결심하고 개인적으로 몇 사람에게 전화해서 어느 정도 보시 약속을 받았다.
나모아미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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