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해는 뜨고 지겠지만 아름다운 일출을 바라보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저 꼭대기 암벽까지 1820m... 먼 산길을 걷게 되는 기회도 쉽게 오지 않는다.. 쉬엄 쉬엄 오르다 마지막 몇분에 많이 힘들었다. 칠불암 산신각 칠불암과 꼭대기 신선암이 있는 바위
보물 200호 * 연혁(유래)
이 磨崖佛(마애불)은 東側(동측)에 있는데 兩別(양별)되어서 암벽의 三尊巨像(삼존거상)과 그 앞의 方柱(방주)에 새긴 四方佛(사방불)을 볼 수 있다. 이들 바위에는 架溝(가구) 흔적이 남아있을 뿐 아니라 瓦片(와편)들이 많이 늘려 있어 木造(목조)의 前室(전실)을 구축하였던 것이라 생각된다. 三尊(삼존)가운데의 本尊(본존)은 素髮(소발)의 머리에 육계(상투)가 높이 솟아있으며 얼굴은 豊麗(풍려)하다. 당당한 체구에 힘에 넘쳐 있다. 法衣(법의)는 偏袒右肩(편단우견)에 階段式衣紋(계단식의문)이 생동하고 있으며 옷은 얇게 밀착되어 있다. 仰蓮(앙련)과 伏蓮(복련) 위 二段(이단) 蓮花臺座(연화대좌)이며 光背(광배)는 頭光(두광)만 表現(표현)된 寶珠形(보주형)이다. 兩脇侍菩薩(양협시보살)은 本尊(본존)과 흡사한 手法(수법)이다. 左脇侍菩薩像(좌협시보살상)은 右手(우수)에 淨甁(정병)을 잡고 있으며 右脇侍菩薩(우협시보살)은 右手(우수)를 어깨까지 올려서 蓮花(연화)를 잡고 있다. 「方柱四面像(방주사면상)」은 모두 同一(동일)한 手法(수법)과 樣式(양식)으로 닮았다. 東面像(동면상)의 法衣(법의)는 다소 무겁게 처리된 감이 있으나 육체의 굴곡은 뚜렷이 表現(표현)되었다. 光背(광배)는 頭光(두광)만 나타내고 있고 臺座(대좌)는 仰(앙)·伏蓮(복련)을 생기있게 彫刻(조각)하였다. 右手(우수)에 藥盒(약합)을 들고 있어 藥師如來(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다. 南面像(남면상)은 東面像(동면상)과 모든 점에서 흡사하지만 裙衣(군의)의 띠 매듭은 새로운 形式的(형식적) 스타일이며 짧막한 常縣座(상현좌)의 形式的(형식적) 衣褶(의습)은 圖式化(도식화)되어 있다.
비구니 스님께서 계셨다. 상추며 몇가지 푸성귀를 길러 드시나 보다. 칠불암에서 신선암을 가기 위해서는 다리가 몇번 후들거려야 했다. 산을 즐겨 가지 않기에 더욱 힘들게 올랐다. 그리고 고무신이라 미끄러웠다. 인간사 좋은것과 나쁜것이 함께 존재하는법 힘들게 오른만큼 눈 앞에 탁 터인 정경이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신선암
신선암 앞 바위에서 살금살금 걸어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마음이 쿵덕거린다. 왜일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간의 본능!!!! 어쨌던 칠불암 마당이 내려다 보이는 절벽에 선 나는 무서웠다.
신선암을 다녀오니 스님께서 감주를 내어 주신다. 깨끗하게 씻은 빈그릇이 부끄러워 작은정성을 드렸더니 스님께서 기와에 이름을 적어 주신다. 쉽게 오르지 않는 암자 산행길 그것도 인연이리니 좋은기운이 가득하리라 믿는다. 맑은 마음으로 행복의 내리막길을....걸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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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야생초와 함께 원문보기 글쓴이: 착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