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헨티나 할머니> 나가오 나오키, 2006년, 111분
따뜻한 동화 한 편을 읽은 느낌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원작을 읽지 않아 감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영화를 통해 요시모토 바나나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똥그란 눈에 발랄한 여자 아이처럼 찍은 작가의 사진 기억이 난다. 불행히도 내가 소설을 별로 읽지 않을 무렵부터 그녀는 한국에 알려졌다. 그녀의 소설을 나는 한편도 읽지 않았다. 그래 포스트 모던하게 발랄하고 가벼운 소설을 쓰는 재미난 작가려니 추측했을 뿐이다. 그녀의 사진처럼.
그녀의 상상력은 엉뚱하지만 따뜻하다. 무겁고 치명적인 것을 무겁고 치명적으로 다루지 않고 엉뚱하고 재미나게 다루는 게 그녀의 소설기법이자 세계관일까? 아무튼 설정 자체가 동화적이고 엉뚱하지만 또 그래서 긴장하지 않고 영화를 편안하게 볼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럴까? 나는 자꾸 이런 영화가 좋다. 20대엔 고전과 대가의 작품에 갈증을 느꼈다. 제법 심각한 영화를 좋아했다. 하지만 상업적 흥행성도 있고 따뜻한 마음과 아름다운 상상력을 펼치는 이런 영화도 좋다.
라스할데의 <초콜릿>이라는 영화 생각이 나고, <안토니아스 라인>이 생각난다. 사랑의 마법과 치유 모티브 때문이다.
영화를 보다가 놀란 점이 있다. 주인공 여자아이의 사촌친구인 남자아이가 자기 엄마에게 대드는 장면이다. 자기는 나름 자유롭게 살고자해서 아빠를 떠나 술집을 내고 다른 남자와도 자는 엄마를 이해하느데, 왜 엄마는 삼촌과 아르헨티나 할머니의 관계를 도리어 이해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그것이 이중적이지 않냐고? 맹랑하고 옳은 소리다. 물론 요시모토 바나나의 음성이지만, 이 순간 그녀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참 개방적이고 트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고독한 괴짜들에게 꿈꿀 권리를 주는 듯 하다.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없다면 일상이란 얼마나 공허한 것일까?
한편의 따스한 동화를 보고 그런 꿈을 같이 꿔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도 아르헨티나 할머니에게서 꿀 한 통을 선물 받고 싶다.
영화도 좋지만 영화음악도 좋다. 어떤 때는 본 메뉴보다 디저트가 훌륭할 때가 있지만, 이 영화는 모두 좋다. 부디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나오는 타테 타카토의 '물망초'라는 곡을 놓치지 마시길...
= 아래는 무비스트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
줄거리
우리 동네엔 어디서 왔는지 모를 괴짜 여인이 한 명 살고 있어요. 그녀의 아지트 근처를 지날 때면 한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옥상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채 탱고를 추는 이 여인. 우리는 그녀를 아르헨티나 할머니라 부릅니다. 어렸을 적부터 그녀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죠. 애들을 잡아다가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밥으로 해 먹인다는 무시무시한 얘기도 오갔고요.
18살이 되던 해, 그만 엄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이 와중에 아빠는 엄마의 임종도 지키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셨죠. 너무나 슬퍼 잠시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무슨 잠적을 6개월이나 할까요? 아빠 찾으러 다니는 것도 지쳐갈 무렵, 아빠가 아르헨티나 할머니 집에서 그녀와 함께 있다는 소문을 듣고 거의 쓰러질 뻔했습니다. 고양이 밥이 될 거란 두려움도 무릅쓰고 찾아간 그 집. 그 곳에 아빠는 정말 있었습니다.
아빠는 그 곳에서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계셨고 그것의 이름은 '만다라'라고 하더군요. 무슨 에로영화 이름 같은 그것을 만들면서 아빠는 마음의 상처를 달래는 것 같았어요. 아르헨티나 할머니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면서요. 6개월 동안 아빠와 그녀 사이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계속 이 집에 드나들면서 그 비밀을 캐봐야겠어요…
일본 소설 붐을 일으킨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전격 영화화!
요시모토 바나나는 문학 평론가인 아버지 덕분에 어릴 적부터 책 속에 파묻혀 살았다. 본명은 요시모토 마호코. ‘바나나’는 필명이다. ‘열대 지방에 피는 붉은 바나나 꽃이 좋아서’ 그 밖에, ‘외우기 쉬워서’, ‘성별 불명, 국적 불명이라서’ 등이 ‘바나나’라는 필명을 생각해 낸 이유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섬세한 문체에 소녀 취향의 친밀감 있는 표현으로 젊은 여성들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요시모토 바나나 현상’이라는 용어까지 탄생시켰다. 국내에 소개된 그녀의 작품들은 일본 소설의 붐을 일으킨 대표작품들로 꾸준히 사랑 받고 있다. 2002년 발표한 소설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세계 30여 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2007년 전격 영화화되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문학을 통해 심각하고 진지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만 소설을 통해 한 편의 영화를 보거나 좋은 노래를 들었을 때와 같은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문학관이다.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요시토모 나라! 소설에 이어 영화까지 참여!
순수 미술의 영역에 과감하게 대중적인 터치를 가미한 팝아트의 새로운 영역 ‘네오 팝’은 20세기 중반 서구에서 출발하여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대중 예술이다. ‘네오 팝’의 선두주자 요시토모 나라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고 있는 대표적인 아티스트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다.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하지만 보기만 해도 그의 그림임을 가려낼 수 있을 만큼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요시토모 나라의 일러스트는 광기를 담고 있는 듯, 반항적인 메시지를 표출하는 듯, 사랑스러운 소녀와 심술궂은 표정의 이중성으로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는 국내에서도 2005년 ‘내 서랍 깊은 속에서’라는 작품전을 개최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하드 보일드 하드럭’에 이어 요시모토 바나나와 두 번째 인연을 맺어 소설 ‘아르헨티나 할머니’에 일러스트를 작업하였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오프닝, 엔딩 크레딧에도 사용되어 동화와 같이 부드러운 공기감을 원작과 서로 나누고 있다.
유머러스하고 감각적인 리듬의 탱고 음악!
탱고란 세상에서 가장 강렬하면서도 로맨틱한 춤이다. 영화 초반에 아르헨티나 빌딩 옥상에서 아르헨티나 할머니가 혼자 탱고를 추는 장면, 후반부 미츠코와 아르헨티나 할머니가 함께 탱고를 추는 명장면에서 흐르는 강렬한 탱고음악은 일본의 젊은 반도네온 연주자인 코마츠 료타의 ‘Nostalgico’ 라는 곡이다. 반도네온은 아코디언과 비슷하지만, 연주의 어려움은 훨씬 더 하다고 볼 수 있는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악기다. 코마츠 료타는 탱고 연주자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반도네온 악기를 14살 때 독학으로 습득, 지금은 일본의 탱고씬을 이끌어가는 거물이 된 뮤지션이다. 전자음악 느낌의 리드미컬하고 유머러스한 탱고 음악과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두 주인공은 잔잔한 호수를 걷는 새들처럼 부드럽고 날렵하다.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음악상에 빛나는 ‘수오 요시카즈’의 음악!
영화와 연극, CF계를 망라하고 총 1000여 편이 넘는 작품의 음악을 담당하며 일본 내 최고의 음악가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스오 요시카즈. 그는 1996년 영화 <쉘 위 댄스>로 이듬 해 일본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최우수 영화 음악상을 수상하며 일본 영화 음악계의 거장으로 자리잡았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그의 선율은 드라마의 감정을 조용하게 북돋아주는 동시에 엉뚱함을 발산하며 재미와 감동까지 느껴지게 한다.
개성적인 목소리로 멜로디를 담아내는 가수 ‘타테 타카코’
타테 타카코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후, 클럽에서 라이브 실력을 키우며 정상까지 오른 실력파 가수이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2005)의 주제곡 ‘보석’을 담은 첫 번째 앨범이 호평 받은 후, 두 번째 앨범 또한 예술적 평가를 받으며 뮤지션으로 거듭났다. 그녀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노래하는 가수가 아니라 진정한 음악을 이해하는 실력파 아티스트다. 영화 <아르헨티나 할머니>의 엔딩곡으로 쓰인 그녀의 곡 ‘물망초’는 심플한 멜로디와 독창적인 목소리가 돋보이는 노래다.
동화처럼 다가오는 행복하고 따뜻한 비주얼의 마법!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을 배경으로 담은 원작 소설과는 달리 영화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따뜻한 공기로 가득한 봄의 기운을 담고 다시 태어났다.
파스텔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파란 하늘, 누군가 그려 넣은 듯한 하얀 뭉게구름, 초록의 싱그러움으로 가득한 아르헨티나 빌딩의 정원 등을 가득 담아내는 화면은 독특한 캐릭터와 신비로운 세트와 더불어 한편의 동화 같은 느낌을 준다. 원작의 느낌처럼 따뜻하고 동화 같은 화면은 <아르헨티나 할머니>의 주제인 상처 치유제로서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하다. 싱싱하고 맑은 향기가 날 것 같은 사랑스러운 화면은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행복한 시간에 잠기게 만든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요시토모 나라의 귀여운 일러스트들은 동화 같은 영화 분위기를 더욱 북돋으며 원작의 세계관을 충실히 표현해내고 있다.
영화의 미술을 담당한 이케야노 리요시는 1940년생으로 미술대학 졸업 후 텔레비전 시리즈 <울트라 세븐>(1967)에서 괴수 디자인을 선보이며 프로의 세계에 입문했다. 그 후 일본의 천재 화가 토슈사이 샤라쿠의 전기 영화 <샤라쿠>(1995) 와 개봉 당시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 <세토우치 문라이트 세레나데>(1997)의 미술을 담당하며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미술상을 2번이나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는 영화 <아르헨티나 할머니>에서 파스텔톤의 비주얼을 사용하여 따뜻한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빛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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