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의 장인 (67) 오가키교리츠은행(大垣共立銀行) 쓰치야 다카시(土屋嶢) 행장
은행이 ‘이혼 론’ ‘여성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론’이라는 대출상품을 판매한다면? 주변 경관을 배려해 은행 외관을 목재로 장식하고 간판마저 달지 않는다면? 24시간 영업하고 1년 내내 쉬지 않는 지점을 개설한다면? 이동식 은행이 집 앞까지 와준다면? 편의점 같은 점포를 내는 은행이 있다면?
일본 중부지역 기후현에 본점을 둔 행원 3205명, 점포 146개의 지방은행 오가키교리츠은행(大垣共立銀行) 이야기다. 세계적으로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이 깊어가는 요즘, 이 은행은 주민들의 삶 속으로 파고드는 서비스로 고객 만족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 은행은 2011년 일본경제신문사가 실시한 금융기관 랭킹 조사에서 내로라하는 일본의 세계적인 메가 뱅크들을 제치고 고객만족도 지역금융기관 1위, 서비스 만족도 종합 3위, 계속 거래하고 싶은 은행 1위를 차지했다.
1896년 문을 열어 창업 120년을 바라보는 지방은행, 게다가 은행 이름도 길고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앞서지만 고객의 목소리를 토대로 한 직원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연간 1900건이나 올라온다. 거의 매년 ‘일본 최초’ ‘금융기관 최초’라는 수식어를 단 신상품이 출시되고 있다. 일본 최초의 연중무휴 점포 개설, 이동 점포 운영, 불임 론, 이혼 론 등 다양한 서비스와 상품을 출시하며 아이디어 백화점으로 불리고 있는 오가키교리츠은행의 경영 철칙은 ‘고객의 눈높이에서 서비스를 준비한다’다.
“서비스업이니까 최고의 서비스를 기업 가치로 삼는 것은 당연하지요.” ‘금융은 서비스업’이라는 경영철학을 관철하고 있는 쓰치야 다카시(土屋嶢) 행장의 입버릇이다. 그는 ‘돈은 이익을 잉태하는 곳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있을 때 가치를 발휘하며, 그 돈이 필요한 곳에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은행’이라고 생각한다.일본 중부지방의 중심지 나고야에서도 쾌속전철로 30여 분을 가야 하는 오가키에 본점을 둔 오가키교리츠은행. 1층의 본점 영업 플로어는 여느 은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다른 은행과는 달리 행원들의 움직임은 기민해 보였다.“우리 은행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의 기준은 ‘고객의 눈높이’입니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내내 ‘고객의 눈높이’와 ‘은행은 서비스업’이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튀어나온다. ‘고객 눈높이 서비스’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두루 구현됐다. 먼저 점포별 영업시간을 지역 특성에 맞춰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오전 7시부터 밤 12시까지, 24시간 내내 등 3단계로 나누었다. 연중무휴 점포도 운영하는데, 은행 일을 보기 위해 휴가를 내거나 회사를 빠져나와야 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란다.1998년 전국에서 처음 개장한 연중무휴 점포(에브리데이 플라자)는 반응이 좋아 6개로 늘렸다. 연말연시, 5월 초의 황금연휴에도 쉬지 않는다. 이 플라자는 편의점과 여행 대리점, 증권사 등을 병설해 종합서비스센터로서 운영하고 있다. 고객의 수수료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다양하다. 현금인출기의 모니터에 게임 기능을 첨가해 은행을 찾는 즐거움을 늘렸다. ATM에 현금카드를 넣으면 모니터에서 룰렛게임이나 777 슬롯게임이 시작된다. 그림이나 숫자가 일치하면 시간외 수수료가 무료가 되거나 모양에 따라 현금 1000엔을 받을 수 있다. 당첨되지 않을 경우 ‘유감’이라고 기재된 거래 명세표 10장을 모아 은행창구에 제시하면 500포인트를 적립해 편의점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 현금인출 시 주사위 눈 1이 나오면 행운의 현금을 얹어주는 주사위 게임도 인기다. 드라이브 스루 ATM도 개설했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은행 업무를 처리하려는 고객을 위해 2000년에 설치했는데, 자동차의 정차 위치와 운전석의 높이 등에 맞춰 자동으로 ATM이 이동하도록 설계했다. ATM에 외부기업의 광고를 붙이기 시작한 것도 일본에서는 처음이다. 스폰서기업으로부터 받은 광고수입을 시간외 수수료 50% 할인 등의 형태로 고객에게 환원하고 있다. 2000년에 운영을 시작한 이동식 점포 ‘수퍼히다 1호’는 금융서비스에서 소외된 산간지역과 농업지역의 고객을 위한 순회 서비스다. 위성통신을 이용한 ATM 기능은 물론 음료 코너를 마련해 외곽지역의 주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여성과 고령자를 위한 서비스도 특별하다. 고령자를 위한 각종 상품 중 1995년부터 시작한 ‘스마일구락부’가 대표적이다. 연금 관련 계좌를 개설한 고객을 대상으로 무료 건강 세미나를 개최하고, 연극이나 이벤트에 초대하는 등 다양한 행사를 기획했다. 2008년 3월 3일 여성 행원만으로 구성된 팀 ‘엘즈 프로젝트’를 발족시켜 여성의 시선에서 여성을 위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기획 개발하도록 했다. 그 해 출시한 상품이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성에게는 에스테나 성형 등 ‘미’를 실현할 수 있는 대출상품이다. 지역사회와 더불어 성장한다는 지역친화적 경영 또한 주목할 만하다. 세련된 거리에 어울리도록 은행 간판을 달지 않은 지점이 있는가 하면, 지역 특성에 맞춰 1층에 이탤리언 레스토랑을 입점시킨 지점, 고풍스러운 거리에 맞춰 지점 외관을 모두 나무로 장식한 지점 등이 있다. 2011년에는 와세다대학 이공학부와 MOU를 체결했다. 와세다대학과 공동으로 세미나 등을 개최해 기술과 산업동향에 대한 최신 정보에 뒤처지기 쉬운 지방 중소기업에 첨단 정보를 제공하고 대학 전문가들의 기술적 조언을 얻어내기 위해서다.고객지향형 경영은 점포의 내부 설계에서도 나타난다. 다른 금융기관은 점포 입구에 ATM을 설치해 용무가 없는 고객의 내부 진입을 차단하는 설계인데, 오가키교리츠은행은 ATM을 안쪽에 설치해 현금인출 용무밖에 없어도 은행 안쪽까지 들어와 은행 내부의 편의시설을 두루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고객지향형 점포의 절정은 2008년 9월에 개설한 ‘편의점식 점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편의점식 점포의 콘셉트는 스피드다. 퀵 카운터를 설치해 간단한 업무를 신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업무를 처리해줄 직원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자신에게 맞는 직원을 모니터로 선정함으로써 과거의 용무를 다시 설명하지 않아도 되어 업무 처리의 연속성이 있고, 고령자나 여성 고객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다. 무료 음료코너가 마련되어 있고, 각종 잡지가 진열돼 있어 용무가 없는 사람도 들어와 차를 마시면서 무료로 잡지를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상담 부스를 세 종류로 나눠 가정주부를 위해 부엌을 그대로 재현한 ‘키친 룸’, 가족 방문자를 위한 ‘거실 룸’, 고령자를 위한 ‘일식 룸’을 마련해 마치 집에서 금융 상담을 받는 것같이 편안한 느낌을 받도록 했다.이처럼 고객의 눈높이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상품화할 수 있었던 것은 쓰치야 행장의 경영철학이 큰 몫을 차지한다. 평탄했던 지방은행을 혁신적인 은행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쓰치야 행장이 시작한 것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아이디어 공모였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행원들도 아이디어가 하나씩 상품화되고 구현되는 것을 보면서 태도가 달라졌다. 이러한 실천적 활동과 변화는 지역주민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고 지역과 함께하는 고객을 위한 은행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만족스러운 고객의 시선은 직원들의 동기부여로 이어졌고, ‘우리는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원’이라는 선순환으로 확대 재생산되었다.“행원들이 은행이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곳이 아니라,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하는 곳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이제 우리 행원들은 돈을 빌려주는 ‘갑’이 아니라, ‘돈을 빌려주는 것 자체가 고객에 대한 서비스’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고객에게 다가가는 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은행의 아이덴티티라고도 할 수 있는 간판까지 포기할 수 있는,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서비스 정신이 앞으로 어떤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을지 지켜볼 만하다.
글쓴이 염동호님은 경희대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호세이대 겸임연구원으로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 (일본서적・편저), 《괴짜 경제학》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