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무척이나 많다. 그 유명한 적벽대전이나 제갈량의 육출기산등등...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영웅들이 한 곳에 모여 그들의 자웅을 겨루었으니 이것이 바로 반동탁 동맹인 '18로 제후'이다. 후한의 정권을 장악한 역적 동탁을 토벌하고자 조조의 격문 아래전국 각지에서 쟁쟁한 군웅들이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원소를 맹주로 추대하며 낙양을 향해 진군했다. 그러나 그들의 서릿발 같던 기세는 온데 간데 없이 여포와 화웅이라는 걸출한 장수들에 막혀 흐지부지한 상태로 해체되었다.
2. 의미있었다.. 그러나!
반동탁 전쟁은 유비,조조,손견등등 수 많은 영웅들의 출현을 예고하였다. 즉 삼국지의 진정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의미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 같은 걸출한 영웅들이 집결하여 하나의 적인 동탁을 상대로 고전하고 결국 동탁을 못잡았다. 이는 이해할 수 없다. 통솔자나 휘하 장수들, 군세수나 전쟁명목에 사기마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어느 하나 뒤질것이 없는데 아무런 공적없이 이 토록 물러설 수 밖에 없었는가?
3. 18로 제후들이 물러난 이유
이유는 바로 '나관중'이다. 나관중이 역사적 사실에 비해 너무나 많은 윤색을 가하였다. 아까도 말했지만 반동탁 전쟁은 바로 삼국지가 시작되는 기점으로 황건의 난 보다 비중을 더 두었다. 따라서 영웅의 숫자나 규모를 확대하여 좀더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려고 했던 의도 때문이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하여....그렇다면 지금부터 '18로 제후들'의 진실에 대해 밝혀보겠다.
4. 과연 조조가 격문을 띄웠는가?
'18로 제후'의 시작은 바로 조조가 천자의 이름을 거짓으로 빌어 전국에 격문을 띄우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진정으로 격문을 띄운 자는 바로 '동군태수 교모'이다. 정말 의외이다. 코에이사의 '삼국지'시리즈를 해 보신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그의 능력치는 바닥이다. 또 정사나 연의에서도 비중이 그리 높지 않은 엑스트라급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예상을 뒤엎고 역적 토벌의 최 일선에 나서 충성심을 불태웠으나 결국 아쉽게도 연주자사 유대에게 군량 문제로 죽임을 당하였다.
5. 원소는 제를 올리지 않았다?!
격문에 응하여 제후들이 모인후에 단을 쌓고 맹주인 원소가 하늘에 제를 올린다. 하지만 이 역시도 꾸며진 것이다. 일련의 행동들은 사실이나 단을 쌓고 제를 올린이는 원소가 아니라 당대의 명사였던 '장홍'이란 사람이다. 아무래도 후에 조조와 대결하는 원소를 부각시키기 위해 바꿔 놓은것으로 보인다.
6. 18로 제후들이 모두 참전 하였는가?
다음으로 과연 정말로 '18로 제후들'이 모두 참전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후한서] [원소전]에 의하면 당시 참가한 제후는 10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더구나 직접 동탁군과 교전한 제후들은 겨우 하내태수 왕광, 상당태수 장양, 장사태수 손견, 그리고 의병 조조뿐.. 나머지 제후들은 모두가 나관중이 일부러 끼워 넣은 것이다. 이 역시도 삼국지 주인공들이 활약하는 전투이므로 규모를 부풀려 반동탁 전쟁의 의미와 비중을 실으려고 했던 의도로 보인다.
7. 온주참화웅, 호뢰관 삼전여포..
이 전쟁에서 뛰어난 무예를 선보이며 나타나는 장수들이 있으니 바로 여포,화웅,관우,장비이다.이들은 '온주참화웅','호뢰관 삼전여포'등으로 멋지게 데뷔한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허구이다. 화웅의 경우는 관우가 죽인것이 아니며 연의에서 처럼 그다지 무예에 대해서 정사등의 사서에 언급이 없다. 다만 '장사태수 손견이 양인에서 동탁의 도독인 화웅을 참수하였다.' 라고만 나올뿐 그의 능력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또 '호뢰관 삼전여포' 역시 나관중이 유비형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허구이다. 실제로 반동탁 동맹에 참전했는지 여부도 불투명 하다. 다만 [촉서][선주전][영웅기]에는 '영제의 죽음을 맞이하여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지자, 유비도 군사를 일으켜 동탁 토벌에 나섰다.' 라고 나와 있다. 이로 보아서는 분명 참전했으나 그의 신분상 제후의 반열에 오르지못한 상황이므로 사서에 특별히 기록되지 않은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여포와의 결전은 허구임에 틀림이 없다.
8. 결론
군사적인 상황으로 보나 결집력으로 보나 위와 같은 상황으론 연합군은 동탁을 결코 잡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에 규모의 전투가 아니었던 그저 국지전에 불과한 전투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제후들은 적과의 교전을 꺼려 했으며 회피했다. 그저 명성에 떠밀려서 어쩔수 없이 진을 치고 전쟁이 끝나기 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 그들의 심정이었다. 이런 정신적인 자세로 전투에 임했으니 패배를 할 수 밖에... 어쨌든 조기에 폭정을 일삼는 동탁을 막을 수 있었건만....백성들의 고통만 더 해졌을 뿐이다. 또한 무너져 가는 후한을 일으킬 수 있었던 참으로 아까운 마지막 기회가 아니었나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