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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에/시에문학회 원문보기 글쓴이: 반딧불이(양문규)
무욕의 길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에게
어떤 생명이든 죽음까지 제 사랑으로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는 가을입니다. 여여산방의 가을도 저와 같아서 꺼져가는 생명들을 제 살붙이처럼 보듬어 안고 갑니다. 구절초의 향연이 끝나고 산국, 감국이 고적한 늦가을의 정취를 말없이 전하고 있는데요. 그 속에는 아직도 벌과 나비가 사랑을 함께 나누고 있답니다. 내일이라도 된서리가 내리면 저 미물들도 꽃들과 함께 남은 생을 허공에 걸어둔 채 쓸쓸히 사라지겠지요. 이 모두가 큰 사랑입니다.
올 한해는 여러 가지 가슴 아픈 사건이 줄줄이 일어났지요. 무엇보다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특히 꺼져가는 생명 앞에서도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끝까지 신념을 놓지 않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불더미에 생목숨을 매장했던 분들도 있었지요. 용산철거민 참사가 그것인데요. 유가족들과 용산철거민 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차가운 땅바닥에서 오늘도 사태의 해결을 촉구하면서 단식 농성 중에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가을은 어떤 생명이든 죽음까지 제 사랑으로 감싸 안는데 어찌 우리사회는 그것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걸까요.
자승 스님, 먼저 제33대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취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자승 스님께서는 이번 선거에서 94.48퍼센트라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셨습니다. 특히 종단 내 주류와 비주류의 연대 지지가 있었다는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는 온갖 잡음으로 불교계는 물론 많은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종단 안팎은 물론 불교계는 세대교체에 거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종단의 묵은 과제들을 털어내고 비현실적인 제도를 과감하게 개혁하여 침체된 한국불교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요.
우리 사회는 지금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도 합니다. 자본의 논리 속에 모든 것들이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표출된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한 이명박 정부는 오직 부자만을 위한 정책을 초지일관 견지하고 있습니다. 부자 감세로부터 시작된 법안 통과는 신문법과 방송법,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 금융지주회사법 등이 그것입니다. 최근 미디어법 관련 헌재 결정 또한 그렇지 않나요. ‘절차에 하자가 있지만 법률 자체는 유효하다’는 결론은 모든 국민이 혼란스러운데도 말입니다. 또한 경제 살리기 일환으로 추진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환경 평가 등 국민여론을 무시한 채 밀어붙이고 있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교육, 문화예술, 사회, 인권 등 각 분야에서도 대립과 갈등이 확대 심화되고 있는 것은 어떻고요.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초유의 사태를 거치면서 작금의 정치 현실은 민주주의 후퇴를 넘어 개발 독재로 회귀한다는 게 주지의 사실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종교마저도 자본의 논리 속에 갇혀 세인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불교의 현실은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게 평설입니다.
자승 스님, 불교의 핵심 논리는 생명존중사상과 자비정신에 있겠지요. 그런 면에서 스님은 많은 분들로부터 존경이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총무원장에 당선해 “소외 이웃을 향한 자비의 발걸음을 넓힐 것”이라고 밝힌 것도 그동안 과천종합사회복지관장, 은정불교문화진흥원을 맡으며 ‘베풂’을 체질화한 삶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연말이면 물건을 사 달라고 들어오는 할머니, 학생들이 많아서 돌려보냈다가 자승 스님께 심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다는 이야기의 기사를 최근 읽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은정불교문화진흥원의 관계자에게 “우리의 존재이유가 이웃과 함께한다는 것인데, 한 사람이라도 매몰차게 거절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하셨다지요.
그러나 우리의 불교현실은 남에게 ‘베풀고 나누는’ 자비의 정신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광분하는 것처럼 비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최근 ‘문화재관람료’로 야기된 분쟁이 여기에 속한다고 해야겠지요. 동두천시 ‘자재암’, 지리산의 ‘천은사’ 등 많은 사찰이 지역주민, 신도회, 내방객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언론 기사를 읽었습니다.
사찰에서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재보호법 제44조 제1항, 제2항은 분명 ‘문화재를 관리하는 자는 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동두천시 주민들이 소요산 내 ‘자재암’을 상대로 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에서 “관람료를 징수토록 한 것은 문화재를 관람하는 자에가 관람한 결과로 징수하는 것이 마땅하며, 문화재를 보관 관리하는 곳이 대부분 사찰 내부인 점에 비추어 사찰내로 들어와서 문화재를 관람하는 자에게만 관람료를 징수함이 타당하며 단순히 사찰소유의 땅을 지나간다는 이유로 문화재가 보이지도 않으며 문화재를 관람할 의사가 없이 단순 등산만을 목적으로 한 순수 등산객에게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는 것은 위법이다. 따라서 문화재를 관람할 의사가 없는 순수 등산객들에게서 징수한 부당이득금은 반환하여야 한다.”는 법의 판결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자재암’은 입장문을 통해 “국민관광지 소요산의 95페센트가 자재암 소유로 매표소에서 정상까지 모든 등산로가 자재암 경내”라며 “법원의 판결은 이 같은 사실을 무시한 것으로 사찰과 문화재에 대한 인식 부족에 기인한 것이 아닌지 우려를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재암’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관람료의 금액과 징수 위치 등을 모두 포괄해 소유자나 보유자 또는 관리단체에 자율권을 부여하고 있다.”며 “역사문화보존구역인 소요산을 국민관광지로 개방함과 동시에 문화재인 보물을 공개해 문화재관람료를 받아온 행위에 법적인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이 입장문만 보면 분명 ‘자재암’이 문화재관람료를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요산의 95퍼센트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재암처럼 사찰이 모든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을 통과하지도 않는데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는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충북 영동 천태산 ‘영국사’가 그러하지요. 영국사가 위치한 천태산은 대부분 임야를 영동대학교와 통일교재단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역주민은 물론 천태산을 찾는 내방객, 임야의 소유자 영동대학교, 통일교재단이 반대하는 문화재관람료를 불법으로 징수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영동군과 지역주민들은 천태산을 찾는 내방객들로부터 무수한 욕을 먹고 있는 현실입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충북 천태산 영국사 추지 청원 스님이 취임한 이후 천태산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223호)는 가을철만 되면 감옥 아닌 감옥에서 한철을 보내고 있답니다. 영국사측에서 은행나무 철책 밖 둘레에 열두 자 각목을 박고 파란 망으로 둘러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은행을 따기 위해 은행나무에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기 그랬다.”고 하지만 모두들 믿지 않아요. 왜냐면 예전에는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그동안 천태산 은행나무 은행알은 영국사 신도들은 물론 아랫마을 누교리를 비롯한 영동 주민, 나아가 천태산을 찾는 많은 내방객들이 서로 나누어 가졌습니다. 더욱 한심한 작태는 영국사 옆 날망집 장애자의 집 가는 길을 영국사가 끊었다는 데 있습니다. 어찌 스님이 이런 작태를 벌일 수 있단 말입니까. 마을 주민들과 천태산을 찾는 내방객들은 스님에게 한결같이 욕을 하고 있답니다. 부처의 자비정신은 어디에 있냐고요.
스님과 절이 욕을 먹는 이러한 일은 비단 영국사만이 아닙니다. 지난봄 전 몇 명의 지인들과 함께 실상사를 찾은 적이 있었지요. 도법 스님을 뵙기 위해서였는데요. 구례에서 실상사로 가기 위해 성삼재를 넘어야 했지요. 그런데 천은사 못 미쳐 도로를 가로막고 돈을 내라고 하는 겁니다. 문화재보호비가 그것이었습니다. 이런 억지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땅이 모두 천은사의 땅인지 확인은 하지 않았지만 설령 전체 면적이 천은사 소유라 할지라도 단지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문화재보호비 및 관람료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삼재 횡단로를 차로 지나가거나 걸어갈 경우 관람료를 내야할 법적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성삼재 가는데 ‘문화재보호비’, ‘문화재보호구역’, ‘전남지방문화재자료제35호’ 는 관람료 징수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리산 천은사 주지는 “관람료가 천은사를 비대하게 만들어주었다. 천은사 사찰운영비의 70~80%를 관람료로 충당하고 있기 때문에 관람료가 없으면 사찰 운영이 안 된다. 그래서 국도에서 관람료를 계속 받아야 한다.”라는 ‘아름다운산하 현장조사팀’의 증언은 불자를 포함해 우리 국민들을 참으로 슬프게 합니다. 불교신자인 저도 이러할진대 타종교를 신봉하는 일반 국민들에게 천은사가 어떻게 비춰질지 자명한 것 아니겠는지요.
자승 스님, 스님께서는 그동안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과 재무부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며 행정가로서의 면모도 갖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앙종회의장으로 일하면서 갈등 조정 능력도 탁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지금이라도 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사찰 문화재를 보호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과 제도 개선을 적극 모색해야 합니다. ‘자재암’의 문제를 두고 사법부가 내린 판결도 그런 취지가 아니겠는지요. 무작정 관람료를 없애라는 말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불교의 가장 큰 미덕은 무소유에서 베풂의 삶으로 가는 길이겠지요.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여 불도를 이룬 후 싯다르타 고오타마께서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천하를 내 집 삼아 평생 떠돌아다니시다 열반에 드셨습니다. “한 나무 그늘 밑에 삼일 이상 머물지 말라”고 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은 철저한 무소유의 삶에서 비롯한 된 것으로 사료됩니다. 우리 불교에서 무소유에서 베풂과 나눔을 실천하신 무수한 스님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불교현실은 몇몇 스님들부터 비롯된 잘못된 처신으로 우리 불교가 마치 자본의 노예처럼 비춰지기도 합니다.
저는 평생 손에서 괭이와 지게를 놓은 적이 없었다는 혜월 스님을 존경합니다. 무소유의 삶을 철저하게 실천하신 스님이시니까요.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열심히 했던 일이 땅을 파고 농사를 짓는 일이었다고 하지요. 항상 가는 곳마다 거친 땅을 일궈 혜월은 ‘개간 선사’라고 불리기도 했다지요. 이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굶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백장(百丈) 선사의 큰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스님들은 어떠한지요. 대부분 스님들의 얼굴은 윤기가 흐르는 백옥이고요. 의복은 매끈한 다림질로 날이 빳빳하게 서 있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어지간한 절의 주지는 개인 토굴은 물론 자가용에 기사까지 두고 있습니다. 그러한 스님을 사람들이 농담과 야유의 대상으로 삼은 지 벌써 오래입니다. 참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자승 스님, 그동안 스님께서 나눔과 베풂의 자비 정신을 펼치셨듯이 부디 혼탁한 세상을 청정하게 만들어 주세요. 비현실적인 제도를 개선하여 합리적인 불교가 될 수 있도록 힘써 주세요. 소외된 이웃에게, 약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어 주세요. 무엇보다도 먼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문화재관람료 징수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불자는 물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불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지난밤 비를 맞으며 천태산 은행나무는 노오란 잎을 하르르 하르르 떨구었습니다. 비움으로 충만한 삶, 무욕의 길을 아주 명징하게 보여준 것이지요. 이 모두가 큰 사랑이 아니겠는지요. 뭇 생명을 제 살붙이처럼 껴안고 가기 위해 자신을 더없이 가볍게 하는 것이겠지요. 더 큰 잎을 달기 위해, 더 큰 그늘을 내리기 위해, 실한 열매와 아름다운 단풍을 선사하기 위해 모든 것들을 비워내는 천태산 은행나무는 아름다움을 넘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천태산 은행나무는 천 년 나무 등걸 속에 큰 울음을 내장한 채 묵상의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그것은 다시 꽃들이 피어나고, 그 속에 벌과 나비가 사랑을 나누며 또 한 시절을 아름답게 만드는 새로운 봄을 뿜어내기 위한 여정이겠지요. 부디 우리 한국 불교의 미래도 그런 봄날이기를 두 손 모아 빌어봅니다.
-<<시에>>(2009, 겨울호)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세상사가 다 모순덩어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