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_4월4주>
공교육의 철학에 위배되는 일반고의 학사운영 이대로 좋은가?
충북교육발전소 정책위원장/ 서원중학교 교사 이 도 종
충북의 인문계 고등학교에 학사(기숙사)가 일반화 된 지가 기억으로는 어언 십여 년, 2000년 초반 청주의 모 사립 고등학교에서 기숙사를 운영하면서 대학입시 성적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청주와 충북의 각 지역에서 기숙사를 도입하는 것이 일반적이 흐름이 되었고 3, 4년 내에 도내의 일반고 거의 대부분이 기숙사를 갖추는 형국이 되었던 것 같다. 충북의 기숙사 도입이 좀 빠르긴 했지만 이명박 정권 시절 교육부의 기숙형 공립고 정책과 시군 지자체의 후원으로 서울 등을 제외하고는 기숙사는 인문계고의 당연한 장치이자 시설이 되었다. 그렇다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인 10여년 동안 일반고의 학사 운영은 우리 학교사회와 교육에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기숙사 운영에 대해서 어떤 판단을 해봐야 할 시기는 아닐까?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는 연구물이나 결과물은 있는가? 섣부른 판단이지만 그런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근무하던 학교 중에 기숙형공립고 연구학교가 있어서 그 진행 과정을 곁에서 본적이 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주관적 판단이지만 연구학교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50%도 믿지 말라고 하고 싶다. 연구학교마다 99% 이상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보고서가 나오는데 학교 현장은 왜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말하기 어려운가? 이를 짚어 보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리라 생각한다.
기숙사의 확대는 얼마간의 시간차를 두고 전국적으로 진행된 현상이다. 그리고 학교의 학생 성적 분포 및 선발 기준, 대도시, 중소도시 또 지역적 차이 등 많은 변수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기숙가의 유무에 따라 학력신장을 포함한 교육적인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판단하기 위한 정량적 데이터를 마련하는 것은 매우 방대하고 그래서 일개 교사가 접근하기에는 매우 지난한 일이다. 그래서 어떤 구체적 데이터를 들어 기숙사를 둘러싼 교육현상을 진단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한다.
다만 여기서는 내가 관찰하고 주변에서 들을 것들을 바탕으로 나름의 지식과 논리를 가지고 감히 판단하고 말하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고 논의해 보자고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고맙게 생각한다.
그럼 기숙사를 둘러싸고 학교와 지역 사회에서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어떤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구체적인 모습으로 들어가 보자.
1. 학사 운영-공교육에서 공공성을 위반하는 차별기제
입학을 하면 일반 학생들 누구에게나 도서관, 체육관, 강당, 교실, 식당, 보건실, 상담실 등 모든 학교 시설에 이용할 권리가 있다. 교무실, 행정실, 교장실도 용무가 있으면 이용할 수 있다. 학생이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이것들을 이용하는 어떤 자격요건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학교 시설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장소, 공공시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일부 특수한 학생들만을 위한 시설이 있고 여타 학생들이 이용하는 것을 배제하는 곳이 있다. 이곳을 공공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가? 공공시설임에 분명한 학교에 이런 시설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학교의 공공성에 비추어 보면 분명 일부 학생들만을 위해서 운영되고 자격요건을 갖추어야 이용할 수 있는 학사는 공공장소, 공공시설이라고 할 수 없다. 공교육을 표방하는 학교에서 공공성에 위배되는 시설물을 시설하고 운영하기 위해서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공적 인사인 교사의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것은 명백한 공공성을 위반하는 것이다. 학교의 공교육의 철학과 분명히 배치되는 것임에도 대한민국에서는 버젓이 운영되고 있는 현실, 이것에 대하며 비판적인 여론도 형성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고 우리 사회의 공공성의 현실이라는 것이 한편으로 가슴 아프다.
2. 상위권 학생들의 노력과 일반학생들의 좌절감이 교차하는 학교
근무했던 학교에서 학력신장을 학교운영의 중심 모토로 삼는 관리자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학력신장 방안을 모색하는 토론장이 1시간 반 정도 마련된 적이 있었다. 어떤 의제가 있었을까?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그 토론회 자리에서 학사를 어떻게 운영하여 성적우수자를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토론에 참여한 교사들 얘기의 80-90%를 차지하였다면 믿겠는가? 학력신장을 말하는 자리에서 일반학생들의 학력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일류대학에 몇 명 합격했는가가 그 학교 교육의 성과라고 평가하는 풍토를 안다면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입시중심의 교육생태계에서 그 생리에 젖은 학교와 교사들이 학력신장을 위해 자원을 투입할 대상은 이들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선택은 힘을 받아 아마도 일부학생 중심의 학사운영이 답인 것처럼 의식을 지배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전체 교사들은 물론 아니겠지만, 일부 관심권 학생 외의 일반 학생들은 학력신장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을 다수의 교사들의 의식에서 확인하는 자리에 있었던 것은 씁쓸했다. 교사들의 학력관과 우리 사회의 학력관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이 인지적 학력만이 학력이었다는 것. 그날 일반학생들의 자존감이나 좌절감은 교사들의 의식에서 별로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자신과 미래에 희망을 갖지 못하는 학생들에 의해서 교실이 붕괴되고 있어서 우리 사회의 커다란 문제로 부상한 것이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그나마 성적이 상위권인 일부 학생들 외에는 많은 학생들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좌절한 학생들은 무기력한 모습을 통하여 학교의 분위기를 흩뜨린다. 어떤 때는 직접적인 방해 행위를 공부하려 노력하는 학생에게 가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학교에서는 상위권 학생들만을 끌고 올리려고 하는 사이에 관심을 받지 못한 학생들은 수업과 학교 분위기를 끌어내려서 같이 죽자고 하는 형국에서 해결책은 일부 상위권 학생만을 위한 학사운영이어야 하는가는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과도한 입시중심 성적위주의 학교풍토에서 상처를 받으며 자라온 학생들을 고려한다면 차별을 기본 기제로 운영되는 학사운영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들은 끊임없이 일반교사들과 노력하는 학생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함께 굶주림보다 차별이라고 한다. 차별은 학생들의 관계를 상하게 하고 학교의 분위기를 망가뜨린다. 학생들의 관계가 좋아야 학생들이 안온한 상태에서 학교생활에 임하게 되고, 학교 분위기가 건설적이고 희망적이지 않겠는가. 그런 풍토가 되어야 자신만을 위한 노력이 아닌 사회의 발전을 바라보는 건전한 시민이 길러지지 않겠는가. 일부 학생들을 위한 학사운영은 학생들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일이고 학교분위기를 망치는 일이 아닌가 싶다.
3. 엘리트들이 만드는 그들만의 리그, 책임성을 배울까, 차별의식을 심화시킬까?
학교에서야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겠지만 축구, 농구 같은 스포츠 동아리나 여타 동아리를 만들 때 학사생들은 학사생들끼리만의 모임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생활하면서 공유하는 공간과 시간이 많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사람으로서의 자연스런 현상이기도 하겠지만 또 한편으로 학교와 교사들의 관심과 지원을 더 많이 받는다는 측면에서 가지게 되는 우월감과 차별의식도 작용하지는 않을까 싶다. 졸업을 해서 동창회를 해도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듣는다. 어떤 학교의 경우 기숙사생과 일반 학생의 식당과 식사 메뉴도 다르게 했었다는 것을 확인한 경우도 있다. 일부 학부모들이 학사생만을 위한 교과 관련 특강 등에 교사의 지원을 당연하시 하는 등 학교에 일반 학생들과의 차별대우를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교교육의 중요한 기능의 하나로 사회 통합의 기능을 든다. 그것은 처지와 상황이 다른 학생들이 학교생활 중에 서로 만나고 관계를 맺고 사회의 구성 원리에 대한 견해를 배우면서 서로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게 지식의 기반을 쌓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와 같이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되는 풍토는 오히려 소통과 관계의 형성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하는 조심스런 생각을 하게 된다. 가능한 긍정적으로 보아 학사운영을 인재들을 키우는 엘리트 교육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그런 식의 엘리트 그룹의 형성이 과연 학생들로 하여금 엘리트로서의 책임성을 갖추게 해줄까, 엘리트의 차별의식을 심화하게 될까? 책임감 있는 엘리트의 전통이 깊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그들에게는 어떤 사회적 심상이 심어질지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
함께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첫째 여타 학교 시설물과 달리 이용 자격요건이 있는 일반고의 학사 운영과 관련하여 과연 학사가 공공성의 원칙에 맞는 공공시설이 맞는가? 둘째 학사운영과 관련하여 차별이 기본 기제로 작동하는 학교는 개별적인 개인이 자라는 곳인가, 공적 책임의식을 가진 시민이 자라는 곳인가? 셋째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게 하는 학사, 거기에서 성장하는 엘리트는 책임성을 가질까? 차별의식을 심화시킬까?
그 외에도 학사운영과 관련하여 함께 생각해 볼 꼭지들이 있으나 이번의 글은 여기까지로 마감하려 한다. 내 판단에 근거하여 감히 말하건대, 학사는 무용지물, 아니 오히려 해로운 존재이다. 학사에 대한 지원을 폐지하고 시설을 여타 학교 교육과정 운영에 필요한 것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한편으로 많은 교사들이 학사 운영에 관여하며, 많은 부모가 학사에 자녀들을 보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나의 고정된 시각 때문에 학사 운영과 관련하여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학사운영이 부정적인 측면보다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아서 학사가 필요하다는 설득력있는 설명을 듣게 된다면 지금까지의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4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