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박소정
“자, 찍을게요!”라고 말할 때 나는 사진 찍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있다.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나에게도 단 한 장의 사진은 있다. 누군가가 잘려 나간 사진. 앨범을 뒤적이며 사진을 오리던 젊던 어머니의 뒷모습. 가위가 서걱거릴 때마다 깨끗하게 도려내어진 아버지의 웃는 얼굴. 어머니가 버리고 싶었던 것과 간직하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어린 나는 알 수 없었다. 부모님이 헤어진 뒤 어머니와 사는 일상이 시작된 이후 나는 한 번도 아빠를 찾지 않았다.
초등학교 미술시간이었다. 가족사진을 끼울 액자를 꾸며야 했는데 나는 사진을 준비해 가지 못했다. 어머니는 면박을 받고 오는 딸을 위해 다시 한 번 가위를 들었다. 이번에는 각각의 사진에서 사람을 오려 한 장의 가족사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나만 유달리 크고 어른들은 작아서 어린 내가 거인같이 보이는 기묘하고 웃긴 사진도 선생님은 인정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때 느꼈던, 예쁜 액자를 완성시킨 아이들을 보면서 느꼈던 기분이 무엇인지 그때에는 알 수 없었다. 무언가를 기록해두는 일이라면 글쓰기가 좋았다. 글쓰기는 감정을 표현해내는 기쁨을 주지만, 사진은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불가능을 말하는 증언 같았다. 중학교 때에는 어머니가 내 핸드폰을 찾아 새아버지에게 맞은 자기 얼굴을 찍었다. 굳은 피를 닦지도 않고서 신고할 증거라며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들을 지우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때의 기억들이 너무나 강렬해서 나는 사진 찍자는 말이면 늘 음지에 서서 촬영이 끝날 때까지를 기다리곤 했다.
어른이 되어서 글을 쓰기 위한 소재를 찾기 위해 앨범을 찾아보았다.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을 찾아 떼어내는데 사진 뒤에 다른 사진 한 장이 더 있었다. 아버지와 내 사진이었다. 내가 아버지의 한 쪽 다리를 끌어안고 아버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의아했다. 누군가를 향해 그렇게 행복한 얼굴을 짓는 나를 처음 보았다. 아버지와 헤어지고 나서 울지 않았기 때문에 어릴 때 헤어져서 아버지에 대해 슬퍼할 기억도 기록도 없다고 믿었다. 그렇데 우연히 발굴된 한 장의 사진은 내가 누군가를 한껏 의지하고 사랑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머니는 왜 이 사진을 버리지 못했을까. 내 웃음을 간직하고 싶었을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에 슬프지 않은 것이 아니라, 기억할 것 자체가 없다는, 그래서 맘껏 슬퍼할 수 없다는 것도 나의 슬픔은 아니었을까. 그 사진은 오랫동안 인정하지 않은 나의 슬픔이었다.
어머니는 작년에 우연히 아버지를 봤다. ATM기 앞에서였다. 어머니는 그렇게 이십 년 만에 그 자리에서 아버지를 잠깐 본 것이 꿈꾼 것 같았다고, 아이까지 낳고 살았던 사람들이라도 이렇게 남이 될 수 있는구나 싶었다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는데도 왜인지 어머니가 느꼈던 그때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만 같았다. 나는 사진 속에서 보다 살이 찌고 늙었을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려보았지만 상상이 안 갔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우리도 변했다. 변하면서 잃은 만큼 얻은 무언가도 있다. 아버지와 헤어진 어머니가 새아버지를 만나 동생을 낳고 다시 가정을 이룬 것처럼 어떤 선택은 또 다른 인생을 살게 하고 무엇이 더 좋은 삶이었는지 알 수는 없다. 나는 어떤 사람과 만나고 헤어질 때면 우리가 삶이라는 앨범에 담을 수 있는 무엇이란 지금 이 순간뿐이라는 것 혹은 이 순간이 만들어낸 어떤 사랑이라는 것을 기억한다. 어머니가 자르기를 멈추고 단 한 장의 사진만을 보관해두었을 때의 그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