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전 소설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논의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고전소설이 저자 및 창작 연대가 미상이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 고전 소설의 사적 전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한국 고소설사의 시대 구명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한국 고소설 기원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한국 고소설의 기원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초창기 학자들이 주장했던 (주왕산, 신기영, 박성의, 김기도, 정주동) 「금오신화」를 소설의 효시로 보는 견해가 있고
둘째는 고려 후기 「국순전」, 「국선생전」, 「죽부인전」, 「청강사자현부전」, 「공방전」등 고려 후기 가전을 소설의 기원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며(장덕순)
셋째로 신라 말기에서 고려초기, 즉 9 ∼ 10세기경에 출현한 「조신전」, 「최치원」, 「김현감호」, 「수삽석남」등의 「수이전」 계열의 작품에서 그 기원을 찾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지준모, 임형택, 이헌홍, 김광순)
최근에 와서 앞의 세 가지 주장 가운데 고소설의 기원을 나말·고려 초기로 잡는 견해가 한국 고소설학회를 비롯하여 소장학자들에 의해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서는 소설의 성립을 금오신화로 보고 출발한다.
-고소설의 형성과 『금오신화』-
한국 고전 소설의 본격적인 시발은 김시습의 「금오신화」에서 부터이다. 소설시대를 연 첫 장에 해당하는 금오신화는 삼국시대, 고려시대의 설화문학의 축적과 전기(傳奇)의 발달을 바탕으로 출현된 것이다. 물론 명나라 구우의 전등신화의 영향도 고려할 수 있으나 애정을 자유롭게 전개하고, 국내를 배경으로 하여 공간면에서 친근성을 주며, 낭만적 분위기 속에 시를 적절하게 제시하고 있는 점에서 전대의 설화나 가전체와는 명확히 구분되는 해로운 서사형태를 보여 주고 있다.
「금오신화」의 뒤를 이은 작품으로는 중종 때 호조참판을 지내기도 한 채수(1449-1515)의 「설공찬전」이 있다. 주인고 설공찬의 혼이 저승에 갔다가 돌아와 사촌 동생의 몸에 들어가 저승에서 경험한 것을 진술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그 뒤에는 신광한(1484-1555)의 「기재기이」가 있는데, 거기에는 <안빙몽유록>, <서재야회록>, <회생우진기>, <하생기우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필(1569-1612)의 「주생전」은 주인공 주생이 사랑했던 처녀가 기생이 되자 다른 여자와 사귀어 혼인을 하려고 하다가 군에 입대하는 바람에 이별을 하여 원통함을 달랠 길 없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시대적으로 「금오신화」와 「홍길동전」을 잇는 교량적 작품이고 창작법에서 전기적 가탁법을 쓴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문소설의 출현과 『홍길동전』-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의해 소설이 성립되었다면 본격적 소설시대를 예고하는 조선조 후기(17-18세기)의 소설은 허균의 「홍길동전」에 의해서 시작된다 할 것이다. 최초의 소설인 금오신화가 한문으로 된 것임에 반하여 이 홍길동전은 국문으로 씌여진 최초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홍길동전이 지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소설사적 의의는 이 작품이 영웅소설의 전형을 최초로 확립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신화체계에서 전승된 영웅의 일생은 홍길동전에서 그 최초의 소설적 형상화를 이루게 되었고, 이를 전환점으로 영웅소설은 고전소설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고소설의 성숙과 『구운몽』, 『사씨남정기』, 『창선감의록』-
17세기에는 상당수의 국문소설이 나와 읽혀졌다고 생각되지마는, 언제, 어떤 작품이 나왔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시기에 나왔음이 확실한 작품에는 김만중의 「구운몽」 「사씨남정기」와 조성기의 「창선감의록」이 있다.
이들 작품에 이르러서는 소설 장르의 성숙미를 볼 수 있다. 초창기 소설에서 보이던 서정시, 전설적 특징, 민담적잔재등 비소설적 요소가 청산되었고, 구조가 복잡하면서도 긴밀한 유기성을 지니고 있어 모든 사건이 정연한 질서에 따라 전개되고, 다양한 요소들이 일정한 목적을 위해 통일되어 있다. 묘사가 섬세하고 박진감이 있으며, 문체나 수사 또한 전아하고 세련되어 있다. 독자를 사로잡을 만한 교묘한 기교도 적지 않다. 이러한 면 때문에 주제나 사상도 보다 효과적으로 구현되었다.
-고소설의 성행-
고소설은 17세기를 거쳐 18∼19세기로 넘어오면서 독자가 날로 증가하고, 낭독·출판 등의 소설 관련 직업이 출현함에 따라 더욱 성행하였다. 이 시기에 성행한 작품은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군담소설, 가정소설, 가문소설, 염정소설, 우화소설, 풍자소설, 판소리계 소설 등이 있다.
「홍길동전」에서 출발한 영웅소설은 귀족적 영웅소설과 민중적 영웅소설의 두 계열로 발전하였는데 전자로는 「조웅전」, 「유충렬전」, 「현수문전」 등이 있고 후자로는 「임진록」, 「박씨전」, 「임경업전」을 들 수 있다. 전자의 경우 대개 중국을 배경으로 하여 어려움에 처했던 양반 자제가 영웅으로 등장하여 위기에 처한 부모와 나라를 위하여 충효를 실현하는데 이들을 창작군담소설이라 한다.
「사씨남정기」의 전통을 이어받아 가정 내에서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경제적·심리적 갈등 요인으로 심각한 갈등을 빚는 가정소설이 나왔다. 가정소설은 계모가 전처소생의 자식을 학대하는 양상을 보이는 계모형 가정소설과 한 남편을 두고 처첩간에 갈등을 빚는 쟁총형 가정소설로 나눌 수 있다. 전자로는 「장화홍련전」, 「김인향전」, 「콩쥐팥쥐」, 「황월선전」 등이 있고 후자로는 「사씨남정기」를 비롯하여 「소씨전」, 「소현성록」, 「일락정기」,「 월영낭자전」, 「정진사전」 등이 있다.
「금오신화」에 출발점을 두고 있는 염정소설 역시 크게 성행하였다. 남녀의 애정을 표현한 염정소설에는 「운영전」, 「영영전」, 「숙향전」, 「숙영낭자전」, 「백학선전」, 「양산백전」, 「옥단춘전」, 「채봉감별곡」등 이 있다. 이들 작품에는 남녀의 애정을 통하여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를 성취하려는 이상에의 지향이 나타나 있다.
동물을 의인화한 이야기인 우화는 오래 전부터 구전설화로 전해 왔는데 조선 후기에는 우화소설이 성행하였다. 우화소설로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구토지설을 소설로 개작한 「토끼전」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 다른 작품으로는 「두껍전」, 「서대주전」, 「장끼전」 등이 있으며 이들 우화소설은 19세기에 이르기까지 활발하게 창작되면서 세태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우화는 기존의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세태를 고발하는 언론의 자유를 확보하는 데는 유리하였지만 문제의 상황을 자세하게 다루기는 어려운 형식상의 제약이 있어서 근대로의 이행기 소설에 머물고, 근대소설로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세태를 풍자하는 소설도 많이 나왔는데 대표적인 것은 연암 박지원의 작품이다.
연암의 작품으로는 ① 「허생전」 ② 「양반전」 ③ 「호질」 ④ 「마장전」 ⑤ 「예덕선생전」 ⑥ 「민옹전」 ⑦ 「광문자전」 ⑧ 「김신선전」 ⑨ 「우상전」 ⑩ 「열녀함양박씨전」 등이 있는데 ① ∼ ③은 사대부 계층을 통해 양반들의 허구성을 풍자하고 있다. ④ ∼ ⑨는 천민계층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재 등용의 부조리, 교우관계의 비진실성, 신선사상의 비현실성 등을 풍자하고 있다. ⑩ 에서는 독수공방하는 과부의 고통을 통해 개가금지로 인습화된 열녀의식을 풍자하고 있다.
판소리가 성행함에 따라 작품의 형성과 전승 및 변이에서 판소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 작품이 생겨났는데, 이러한 작품을 판소리계 소설이라고 한다. 이들 작품으로는 과거에 판소리로 불려졌고, 현재까지도 불려지고 있는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토끼전」 등이 있고 과거에는 판소리로 불려졌지만 현재는 불리지 않는 「옹고집전」, 「배비장전」 「장끼전」, 「숙영낭자전」 등이 있다. 이들 작품은 문체와 수사법이 다양하며, 현실감이 있는 인물 설정을 하였고, 구성과 주제가 다면화되었다. 이러한 문학적 특성을 지닌 판소리계 소설은 소설을 보다 흥미롭게 하여 대중적 호응을 얻을 수 있게 하였고, 수사법, 어휘, 문체 등 소설의 기법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 고전 소설사의 교육활용 방법 ]
고전 소설의 흐름에 대한 교육은 자칫하면 지식의 전달과 암기라는 주입식 교육으로 끝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현상은 누차 지적되어온 현실이었고 지양할 내용으로 제 7 차 문학 과목 목표로도 제시되어 있다. 물론 문학이론이라든지, 문학사에 관한 지식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문학 작품의수용 및 상상력의 구체화, 모방과 재창조 등의 활동이 문학사의 갈래, 문학사의 시대 구분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문학사의 흐름에 대하여 어떻게 활동 중심의 교육을 실시할 수 있을까?
먼저 충분한 작품의 감상이 요구된다. 사실 문학 작품의 수용에 관여하는 지적 정서적 활동의 층위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텍스트에 관한 서지적 이해, 판단
② 텍스트 언어의 해독
③ 장르적 관습, 정치, 특성의 이해
④ 작품과 관련된 사회적, 문화적 요인, 환경 및 작가에 관한 이해
⑤ 작품에 대한 느낌, 심미적 반응의 형성
⑥ 작품 해석
⑦ 작품에 대한 소감, 평가
현대작품을 읽는 경우 ①에서 ④까지의 과정들은 생략되거나 학습자가 그런 과정을 통과한다는 의식이 거의 없을 만큼 투명하게 받아들여지거나 간략하게 처리된다. 그렇지만 고전 문학의 경우는 이와 달리 ①에서 ④ 까지의 과정 모두에 걸쳐서 적절한 도움이나 교육 없이는 넘어가지 못한다. 바로 이런 문제 앞에서 전통적 고전 문학 교육은 주변적 지식나열이나 어구 해석 위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①에서 ④ 내용 또한 무시할 수 없지만 ⑤에서 ⑦에 대한 내용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⑤ ∼ ⑦ 에 대한 선행이 있은 후 학습자 스스로에게 ① ∼ ④의 내용을 살펴 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의 일차적 목표는 ① ∼ ④의 항목이 아니라 ⑤ ∼ ⑦의 항목이기 때문이다.
이때 교사들은 적극적인 상상력을 끌어내 줄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의 다양한 토론과 토의를 이끌어 주어 시대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키워줘야 할 것이다.
이것은 또한 문학의 효용성으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 문학 교육의 올바른 방향일 수 있다. 현대 문학과의 거리가 있는 고전소설이야말로 상상력 발휘의 좋은 작품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될 때 소설의 흐름에 따른 사회적 변화, 문화적 환경, 작가의 주제의식 등 이차적인 지식항목을 자연스레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차적 목표인 작품의 감상이 이뤄진 뒤 우리는 소설에 담겨있는 진실성을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고전 소설의 흐름에 따른 삶의 지향점이 무엇이었는지 스스로 살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였는지 또 무엇을 추구해야하는지 인생의 모습을 배울 필요가 있다. 문학의 또 다른 가치는 작품을 통한 이런 깨달음이 아니겠는가?
바로 이런 부분들이 문학사의 흐름에 따른 교육부분이어야 한다고 본다.
이때에도 교사는 강의, 강독식 수업이 아닌 학습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이끌어 내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학습자가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개인적 부담이 있을 수 있으므로 (현대문학과 거리가 있는 고전 작품이므로) 협동 학습 모형과 프로젝트법등을 제시하는 것이 좋은 듯 싶다. 협동 학습 모형은 주제를 정하고 역할을 나누어 조사하고 발표하는 것이 전형적이고, 프로젝트법은 일정한 목표와 기간을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자율적으로 탐구하여 결과를 제출 또는 발표하게 하는 방법이다.
고전 소설의 흐름을 통해 우리는 작품의 배경적 상황, 작가와 작품과의 관계, 작품들을 통한 사회·문화의 전반적 모습등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고전소설사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내용은 소설사 흐름에 따른 일차적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문학은 문학인 것이다. 문학을 문학으로 대해야 하듯 우리는 고전 소설을 문학으로 봐야 할 것이다. 혹 고전 소설사의 흐름으로 사회적, 문화적 모습을 찾는데 의의를 둔다면 문학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잃는 것이 된다.
문학을 교육하는 우리들은 고전 소설의 흐름을 관찰이나 평가의 대상으로 들여다 보지 않고, 고전 소설을 문학으로 바라볼 때 진정 문학의 가치인 감동과 진실성, 그리고 무한한 상상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