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체도 제말 듣고 디자인 바꿔"
2009년 무명의 중소 세라믹업체 세라트의 은경아 대표(36.)가 프랑스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은 대표가 찾은 목적지는 세계적 패션회사인 L그룹 본사였다.
돈도 인맥도 없던 은 대표는 무작정 L그룹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역시 세계적 명품 브랜드라는 철옹성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현지에서 머물며 뻔질나게 회사 문턱을 넘고 이메일과 전화통화하기를 6개월, 아껴 쓰던 체재비가 떨어질 때쯤 L그룹에서 견본품을 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한 견본품 수준은 이제 갓 걸음마 단계에 들어선 초보 중소기업이 맞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시선에서 '네가 할 수 있겠어?'라는 감정을 느낀 그는 발끈했다. "한국인의 힘을 보여주겠다"며 팔을 걷어붙인 그는 며칠간 밤을 새우며 그들이 요구한 세라믹 가공부품을 제출했다. 그 집념과 가능성에 놀란 L그룹은 시계, 보석류 등 각종 명품에 포함되는 세라믹 부품 납품업체로 세라트를 선정했다.
지난 수십 년간 세라믹 시장은 일본 대표기업 교세라의 독무대였다. 특히 '경영의 신'으로까지 불리는 일본이 낳은 희대의 경영자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은 경쟁자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9년 설립된 중소기업 세라트는 물과 3년 만에 지르코니아 세라믹 분야 세계 시장 점유율 2위에 오르며 교세라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지르코니아 세라믹은 레라믹 중에서도 가장 강도가 높고 디자인이 뛰어나 명품에 사용되는 친환경 소재로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은 대표는 세라트의 성공 비결로 고객업체에 대한 철저한 사후 품질관리와 양방향 소통을 통한 '협업'을 꼽는다.
"명품을 살리는 것은 결국 디테일입니다. 덩치가 커 대응이 느린 교세라와 달리 세라트는 다품종 소량 생산하는 명품 회사들의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게 장점이죠"
특히 명품 브랜드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맞추기만하는 다른 업체들과 달리 세라믹에 대한 전문성을 살려 디자인 등에서 과감한 조언도 서슴치 않는다.
"저희가 세라믹을 알지만 명품을 모르듯, 그들도 명품에 대해선 세계 최고 전문가지만 세라믹에 대해선 저희보다 모릅니다. 이런 생각으로 협업한 결과 베르사체에서 저희 조언을 참고해 디자인을 바꾸기까비 했습니다"
이런 은 대표지만 원래 그의 꿈은 세라믹 여왕이 아니었다. 그의 20대 삶은 세라믹과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뒤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IT본부에서 근무했다. 안정되고 고수입이 보장되는 일자리였다. 그때만 해도 그의 꿈은 증권회사 첫 여성 임원에 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의 삶이 바뀐 것은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지면서부터다. 많은 돈이 필요했던 그는 시계 판촉물 관련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결국 돈을 버는 길은 기업의 오너가 되는 거라는 것을 깨달았죠. 그때부터 제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회사 운영 요령을 배운 그는 2009년 직접 창업에 나섰다. 첫 창업 아이템은 무역상.
"당시만 해도 뭘 해야 하는 지 몰랐습니다. 그냥 '이것저것 가져다 팔면 되겠지'라는 식으로 무역업체를 시작했죠"
무역업체 대표로서 폭넓게 시장 상황을 보던 그는 지르코니아 세라믹 분야가 수요는 많지만 아직 공급이 부족한 '틈새시장'인 점을 눈여겨 보게 됐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직원 3명으로 출발한 회사는 어느새 50명 규모로 커졌다. 특허 세라믹 기술을 통해 제조한 부품 수출이 매출액의 80%를 넘으며 스위스, 홍콩, 뉴욕 등에 지사도 냈다. 그는 향후 목표를 "국내시장 개척과 반도체 등 산업용 세라믹 시장 진출"이라고 말했다.
"결국 여기까지 온 데는 '사람'을 재산으로 여기고 , 기회는 반드시 잡는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