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나은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술 좀 가져와.”
“또 외상?”
“갚으면 되잖아.”
“꽃 피기 전 죽으면 어떡하노
마담은 눈을 흘기면서 술 주전자를 시인 박인환 앞에 새로 채워 식탁에 탁 놓고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담배를 손가락에 낀 채 명동 동방 살롱 문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1956년 이른 봄. 서울 명동 한 복판에 자리한 동방 살롱 맞는 편에 허름한 빈대떡 집의
깨진 유리창으로 노래가 애처롭게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상고머리의 박인환이 작사를 이진섭이 작곡을 하고 임민섭이 노래를 부른다.
불후의 명곡, 명동의 샹송 ‘세월이 가면’이 만들어진 역사적인 순간,
첫 발표회나 다름없는 빈대떡 집. 빈대떡 한 접시 텁텁한 막걸리 잔이 식탁 위에 악보와 함께 어지러이
널려져 있고 애처로운 노래에 감흥을 못 이긴 박인환은 막걸리를 들이키고 큰 몸집과 우렁찬
성량의 임만섭이 목청을 가다듬는다. 길 가던 사람들이 힐끗힐끗 깨진 유리창 너머로 이들을 보며 지난다.
박인환은 ‘세월이 가면’을 쓰고 나서 한동안 흥분하며 술로 세월을 보냈다.
부지런히 원고도 써서 몇 푼 원고료를 받지만 집에 떨어진 쌀을 살만큼 넉넉한 것은 아니었다.
하염없이 쓸쓸한 얼굴로 명동 백작으로 불리던 이봉구와 ‘신라의 달밤’을 잘 부르는 임궁재 등과 함께
국수 한 그릇에 술잔을 비우곤 했다.
불후의 명곡 ‘세월이 가면’이 완성되던 날 이진섭과 함께 어디서 그렇게 낮술을 많이 마셨는지
얼굴이 붉어가지고 당시 단성사에서 상영중인 롯사노 브릿지와 캐서리 헵번 주연의 ‘여정’을 보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 못 가고 ‘세월이 가면’을 애처롭게 술집에 앉아 불렀다.
그리고 사흘 후 친구인 김훈 한테 자장면 한 그릇을 얻어먹은 박인환은 술에 만취되어 집에 와 잠을 자다가
31세로 아까운 인생을 마감했다.
세탁소에 맡긴 봄 외투도 돈이 없어 못 찾고 두꺼운 겨울 외투를 그대로 입은 채 였다.
무슨 이유에선지 눈을 감지 못하여 부음을 듣고 맨 먼저 달려 온 친구 송지영이 감겨 주었다.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못 사주었다면서 김은성이 조니워커 한 병을 죽어 누워 있는 박인환의 입에
부었고 다들 울었다.
그의 상여 뒤로 수많은 선후배들이 따랐고 공동묘지까지 따라 온 친구 정영교가 담배와 조니워커를
그의 관 위에 부어 주었다, 모윤숙 시인이 고인의 시를 낭송 하였고 친구인 조병화 시인이 조시를 읽었다.
인환이 너 가는구나 / 대답이 없이 가는구나 /
너는 누구보다도 멋 있게 살았고 / 멋 있는 시를 쓰고 / .....
세월이 가면 /박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