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교통
* 승용차: 남해고속도로 진영나들목(14번 국도)→동읍 소재지(30번 지방도)→주남저수지
* 대중교통: 창원역에서 21-5, 21-6, 21-8, 92-1, 92-4번 시내버스를 타거나 창원시외버스터미널에서
391, 393번 시외버스를 이용하여 가월마을 입구에서 하차
▣현지숙박
창녕 우포늪 근처의 소목마을에 있는 민물고기 매운탕집인 우포민박집(055-532-9052)에서는 민박도
가능하다. 그 외의 숙식업소는 없으므로 20리쯤 떨어진 창녕읍내로 나가야 한다.
창원 주남저수지 주변에는 대산읍 방면의 파라다이스모텔(055-251-3991)이나 동읍의 춘광장(055-291-
7513), 주남저수지 입구의 해훈민박(055-253-7767)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그리고 저수지 주변에는 민물매운탕, 오리고기, 토종닭 등을 내놓는 해훈장가든(055-253-7835),
미풍가든(055-253-7345) 등의 음식점이 있다.
부산 낙동강하구의 철새 도래지와 가까운 을숙도휴게소에서는 식사를 할 수 있고, 배를 빌려 타기에
좋은 강서구 명지동과 사하구 하단동 일대에도 숙박업소와 음식점이 많다. [11월여행지] 산청기행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동쪽에 자리한 경남 산청. 산이 얼마나 높고 푸르러 ‘산청’이라 했던가.
수도권에서 산청을 가자면 당일로는 무리이다. 적어도 1박2일 여정은 잡아야 산청의 속내를 조금이
나마 들여다볼 수 있다. 길은 매우 편하다.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를 이용, 산청나들목이나 단성나
들목으로 나가면 산청군 속내를 샅샅이 살펴볼 수 있다. |
산청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지는 삼장면 유평리의 대원사이다. 대형버스는 대원사 입구 매표소까지
만 갈 수 있고 승용차는 대원사 일주문 바로 앞까지도 갈 수 있다. 그 거리가 십리길이니 단체여행
자들에게는 다소 멀게 느껴질 터이다. 그래도 대원사계곡을 따라 진입로에는 보도블럭이 예쁘게 깔
려있고 그 위를 낙엽들이 소담스럽게 덮어주고 있다.
산모퉁이를 돌아 대원교를 건넌뒤부터는 평자와 다름없는 계곡이 이어지고 주변은 금강송이라 불
리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도열, 울울창창한 숲길을 만들고 있다. 대원사는 조계종 제 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며, 경남 양산의 석남사, 충남 예산의 견성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 비구니 참
선도량이다. 그러니 곳곳에 정갈하고 단아한 멋이 배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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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장산 대원사 | 유평리 꿀사과 |
‘방장산대원사’라고 쓰여진 화려하고 웅장한 일주문을 지나고 천왕문을 지나고 2층 누각인 봉상루를 통과한 다음 대웅전 앞마당에 들어서면 대웅전과 원통보전이 또 다른 계단 위에 자리잡고 있고
비구니 도량답게 잎이 무성하고 키가 큰 파초들이 단풍과 낙엽 사이에서 맑은 초록빛을 발산한다.
키가 큰 은행나무는 그 풍경에다 황금빛을 더해주고 있어 대원사는 어느 곳으로 시선을 돌려도 절경
의 빛깔을 선사한다.
대원사는 신라 진흥왕 9년(548) 연기조사가 창건하면서 이름을 평원사라 했다고 한다. 그 뒤 오랜
세월 동안 폐사되었다가 조선 숙종 임금 때 운권이 다시 절을 짓고 대원암이라 했으며 고종 27년 에
대원사로 이름을 바꾼 내력을 지니고 있다.
대원사 답사를 마치고 계속 산속으로 이어진 길을 올라가면 유평리 꿀사과마을이다. 대원사 앞 주
차장에서 지리산 천왕봉 등산로가 시작되는 마지막 집까지의 거리는 4km이다. 차로 씽씽 달리기보다
는 주변 풍광을 찬찬히 음미하면서 올라가야 좋은 소로이다.
지금은 폐교된 삼장초등학교 유평분교 주변에는 음식점들이 여럿 있다. 이 마을에서부터 삼거리를
지나고 새재마을까지 이어지는 길 양편에는 사과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다. 이 사과들을 지리산 유
평계곡 사과라고 부른다. 또는 산청 꿀사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11월말에서부터 12월초에 사과를 딴
다. 산청 꿀사과는 지리산 산록변의 고지대에서 자라 당도가 매우 높다. 파란 지리산의 하늘, 갈색
낙엽 사이에서 산청 꿀사과는 핏빛 단풍 같은 붉은 색을 마음껏 토해낸다. 한 입 베어물면 그 자리
에서 꿀이 입안 가득 고일 듯한 기분이다.
산청 꿀사과마을 주민들은 지리산을 찾는 여행자나 등산객들을 상대로 음식도 팔고 민박도 받으며
생활한다. 대부분 음식점과 민박을 겸하고 있는 것이다. 비둘기봉 산장만 해도 산채비빔밥이며 라면
도 끓여주고 방은 8개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민박집에서 하루자고 해가 뜨자마자 천왕봉 등산에 오
르면 해질 무렵까지는 충분히 돌아올 수 있다. 마을 길 여기저기에 천왕봉 등산로 입구를 알리는 표
식들이 잘 만들어져 있다.
봄이면 야생화가 만발하고 여름이면 피서객들이 모여들고, 가을이면 오색 단풍이 아름다운 유평리
꿀사과마을. 겨울에는 찾는 이가 드물어도 눈만 내리면 주민들이 열심히 제설 작업을 하는 곳이다.
양지바른 산장에서 폭설이 내린 뒤의 고요함을 맛볼 계획이라면 그날 또 이 산골마을을 찾아가도 좋
을 일이다.
이번에는 내원사로 발길을 돌려본다. 대원사 입구에서 진주 방면으로 덕천강을 끼고 조성된 59번
지방도를 따라 5km 가량 남쪽으로 내려가면 내원사 입구와 마주친다.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장당골
과 내원골이 합류하는 지점에 절묘하게 위치한 절이 바로 내원사이다.
신라 태종 무열왕 때 무염국사가 창건하여 덕산사라 했으나 그 뒤 원인모를 화재로 전소되어 그대
로 방치되었다가 1959년 원경스님에 의해 다시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그때 절 이름도 내원
사로 개명했다.
내원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절에 들어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반야교 이다. ‘반야’란 지혜를
의미한다. 세속의 모든 번뇌를 잊어버리는 지혜를 얻고 천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환희를 느껴보
기에 좋은 곳이다. 일주문이나 불이문 간은 입구도 없어 곧바로 맞닥뜨리는 경내. 작은 장독 위에는
감장아찌를 만들기 위해서 인지 썰어놓은 감조각이 산바람 속에서 때깔 곱게 말려지고 있다. 계곡의
물소리가 쉼없이 들려 사찰이 마치 물 위에 떠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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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원사 장독 | 덕천서원의 뜰 | 대웅전 앞마당은 단풍나무가 둘러싸고 있고, 대웅전을 중심으로 비로전, 산신각, 칠성각 요사채가
빼곡히 모여 있다. 대웅전 옆에는 삼층석탑이 소박한 자태로 서있다. 내원사 비로전에 봉안된 비로
자나불도 꼭 살펴봐야 한다. 이 석불은 혜공왕때 만들어진 것으로 내원리 석남암사지에 있다가 내원
사로 옮겨졌다.
이밖에 시천면으로 가면 덕천서원, 단성면으로 가면 보물로 지정된 두 기의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단속사지, 문익점 선생이 목화씨를 가져와 처음 심었다는 목화시배지, 성철 스님의 생가터에 세워진
겁외사 등이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10월여행지] 민족의 혼 샘솟는 단군 후예의 땅
- 지리산‘삼성궁’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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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궁은 민족의 성조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배달민족성전이다 |
‘칭~ 칭~ 칭’
징을 세 번 치자 눈앞에 신세계가 펼쳐진다. 솔향기가 녹아든 청정한 연못 속에도, 소슬한 가을 바람에
구름마저 밀려나간 하늘 자락에도 뚫을 듯 솟아오른 솟대. 그 사이 사이로 ‘둥둥 ’ 북소리가 울려 퍼
지고, 무사들의 장엄한 춤사위가 벌어진다. 보검이 지나다니는 길마다 칼의 노래가 흐른다. 솟대와 솟
대 사이를 훨훨 날아 다니는 무사들의 몸놀림이 자연과 하나가 되니, 어디 몸놀림 뿐이랴? 수자의 눈빛
이 타오르면서 일순 불꽃을 터트린다. 실타래처럼 묶인 억겁의 세월을 풀어 내리는 강렬한 불꽃과 자연
이 하나 되어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 육십리 묵계 계곡을 타고 지리산 품안 깊숙이 안겨든 삼성궁을 가
다.
지리산자락 깊숙이 품은 삼성궁을 오르다! |
| 도인촌과 삼성궁의 이정표 | 지리산 중에는 우리가 미처 모르는 수많은 구도자들이
골짜기마다 나름의 수행처를 두고 해탈을 구하고 있는
데 그중에서도 ‘신선도’ 를 추구하는 젊은 수자들이
모여 일군 이색 마을인 삼성궁. 해발 8백 50m 에 위치
해 있기 때문에 청학동 도인촌에서도 산길을 휘 돌아
1.5 Km 가량 걸어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멀고도 험하
다. 삼성궁은 민족의 성조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
신 신성한 성역으로 이 고장 출신인 한풀선사(강민주
씨)가 손으로 직접 쌓아올린 곳으로 아직은 외지인들
의 손때가 묻지 않은 신비한 마을이다.
청학동으로 가는 길목에는 목장승이 허연 이를 드러내
고 웃고 서 있는데 오른쪽은 도인촌이요, 다른 샛길이
바로 삼성궁이 있는 곳이다. 삼성궁 매표소를 따라 좁
은 산길을 20여분을 올라가다 보면 막바지에서 다다른
다.‘민족통일대장군',‘만주회복여장군’이라고 쓰여
있는 장승과 옹기종기 돌로 쌓아올려진 입구로 보이는
돌문이 보인다. 그리고 걸려있는 커다란 징.
오호라 ~ 여기가 바로 신세계로구나!
삼성궁에 들어가려면 우선 입구인 석문(石門)에 이르러 이 징을 세번 쳐서 손님이 왔음을 알려야 한다.
징을 세 번 치니 과연 석문이 열리면서 고구려시대 복장에 칼을 차고, 긴 머리에 삿갓을 쓴 수자가 홀
연히 나타난다. 다른 일행의 카메라에서 순간 후레쉬가 번쩍번쩍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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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을 세번쳐야 열리는 석문 | 고구려복을 입은 수자 | “사진은 그렇게 찍으시면 안됩니다.“
“네에?”
“상대방에게 먼저 예의를 갖추고 난 후 찍으셔야 하는 겁니다.”
쑥쓰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는 일행 앞에 수자가 엄격한 표정으로 고구려 복장을 내민다. 일행 중 한사
람은 고구려식의 삼성궁 도복으로 갈아입어야 삼성궁 문이 열리는 것이라고 옆사람이 살짝 귀뜸해준다.
석문 입구에는 무단 침입자는 3,300배를 시키겠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으며, 궁내에서 음주, 흡연은 물
론이요, 휴대폰도 엄금이라는 소리에 잔뜩 긴장한 채 수자를 따라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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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향기가 녹아든 청정한 연못과 솟대의 조화가 과히 절경이다 |
어두침침했던 석문이 열리고, 삼성궁에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 눈이 휘둥그래진다. 산자락에 별천지 같
은 넓은 공간이 펼쳐지고, 수천 개의 돌탑과 맷돌, 옹기들의 탑들이 총총 박혀있었다. 지리산 자락을
30여 분간 힘들게 올라와 만난 또 다른 세상. 마치 사차원의 세계로 넘어간 기분이었다. 감히 상상 조
차 할 수 없는 3만여평의 넓은 땅. 그 위로 수백 개의 솟대와 태극문양을 본뜬 연꽃이 녹아든 연못,돌
로 만들어진 움집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맷돌, 다듬이돌 등 우리 전통의 도구들로 가꾸어진 길과
담장의 전경이 아주 짜임새 있게 보인다.
1,300개 돌탑으로 솟대 삼은‘소도’를 돌다!
10만평이 넘는 삼성궁의 넓은 땅을 둘러보는 데 나침반 역할을 하는 건 ‘배달길’이라고 쓰여진 돌이
다. 이 돌을 따라 걸으면 어느 한 곳도 놓치지 않고 궁내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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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0여개의 돌탑 | 솟대쌓기도 수행중의 하나 | 삼성궁의 가장 큰 매력이자, 특징은 단연 돌탑들. 전북 진안 마이산의 돌탑과 흡사한 모양의 원추형
돌탑, 맷돌만으로 쌓은 맷돌탑, 단자로만 쌓은 단자탑 등이 완경사를 이룬 골짜기 여기저기에 솟아 있
는데 그저 돌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바로 신성 지역이라는 것을 알리는 소도 역할을 하
는 솟대. 솟대의 높이는 한길 정도에서부터 10m에 이르러 어마어마하다. 여기서 한풀선사가 하루 20여
톤의 돌을 지어날라 20년 동안 혼자 축조한 이 솟대는 5백개에 달한다고 하니 감탄을 금치 못한다. 지
금도 삼일신고의 정신에 따라 3천 3백 33새의 솟대를 세우고 있고 전국에 흩어진 맷돌을 수집 하고 있
다고 한다. 현재 삼성궁내에 있는 이 솟대들은 어찌보면 위태로워 보인다. 허나 워낙 정교하게 만들어
져 비바람이 불어도 어느 것 하나 무너진 것이 없다 하니 과히 놀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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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치미와 조형미가 뛰어난 돌탑 | 그 외에도 무예를 닦는 타원형의 놀이마당, 산책
로, 환인, 환웅, 단군의 영정이 있는 건국전, 삼
성궁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팔각정 등이 있다.
특히나 배달길을 따라돌다 마지막으로 궁의 한가
운데에 있는 사당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솟대와 단풍, 그리고 연못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아름다운 하모니는 고행의 어려움을 씻
어 내기에 충분하다. 자 그럼 여기서, 하나는 알
고 넘어가도록 하자. 돌탑들의 배치나 조형미에
설치미술가들도 감탄하고 갔다는 이 오묘한 궁은
과연 누구의 작품인고 하니, 바로 한풀선사. 그
에게서 도와 철학, 무예를 사사받은 제자만도 수
백명이요, 지금도 많은 제자들은 그의 수행을 따
르고 있다고 하는데 이 돌 쌓기도 그 수행 중의
하나. 수자들은 매일 새벽 4 시에 일어나 선식을
하고 법문을 읽거나 전통무예를 익히며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열린 하늘 큰 굿‘개천대제’벌어진다! |
| 발갛게 단풍이 든 계곡 | 한풀선사는 일반인 앞에서 무술 시범을 보이지는 않는다. 다
만 삼성궁 최대의 행사인 개천대제날 제례를 올릴 때 한풀이
춤을 보여준다고 한다. 바로 10월의 삼성궁이 단풍으로 발갛
게 물드는 단풍제 기간에 천제날을 받아‘개천대제 열린하늘
큰 굿’이 열리게 되는데 올해는 10월 22일부터 23일까지다.
이 큰 굿이 열리면 전국의 수자들이 본궁인 삼성궁으로 모여
각종 의식과 행사를 진행하게 되고, 이날만큼은 삼성궁 문을
활짝 개방해 삼성궁에서 직접 빚은 동동주도 파는 등, 누구
든 마음놓고 들어와 구경할 수 있게 한다. 풍물놀이 공연,삼
성궁 수자의 선무, 선도무예, 오방신장춤 등 고구려 악기 체
험, 고대역사체험, 전통문화공연관람 등 다양한 볼거리가 펼
쳐지는데 기회만 닿을 수 있다면 아무라도 무예를 전수받을
수 있다고 한다. 특히나 아름다운 가을단풍과 어우러져 주말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지로 추천돼 오는 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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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눈에보이는 팔각정 | 단풍이 든 움집 | 돌탑 위 단풍 |
여정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한풀선사를 만날 수가 있었다. 허리까지 닿는 긴 머리카락에, 빛이 나는
눈동자, 긴 수염을 가진 전형적인 도인의 모습을 한 삼성궁의 한풀선사. 한 마디 해주십사 하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그는 단 한마디의 말만 던지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호랑이처럼 강인했던 우리 민족은 일본, 중국의 역사왜곡 등에서 보다시피 그간 너무 나약해져 있다.
사대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는 등 주체적인 민족혼을 정립하지 않는 한 민족
의 미래는 없다"
삼성궁에서 돌아오는 길에 기자는 가만히 생각해 본다. 과연 얼마만큼의 솟대가 더 쌓여야 그가 바라는
이화세계가 도래할런지... 마음 속에다 솟대 하나를 쌓아올려본다.
| [8월여행지]수박향처럼 싱그러운 이국적 향취에 취하고
뒤돌아서면 다시 그리워지는 한국의 나폴리
| 한국의 나폴리 통영은 경관뿐만 아니라 도시 또한 이국적인 정취가 강하다 |
통영, 쪽빛 바다 위에 가을을 앉히다
리우데자네이루, 시드니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나폴리, 경상남도 통영은 `한국의 나폴리'
라고 할 만큼 경관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도심의 색채가 사뭇 이국적이기도 하다. 섬과 섬이 겹쳐지
며 만들어내는 한려수도의 미려한 절경이 펼쳐진 가운데 이 곳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앙증맞은 오렌
지색의 지붕들과 에메랄드빛 하늘, 그리고 쪽빛 바다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빚어내는 이국적인 풍광
은 그 누구라도 서정적인 감흥에 젖어들기 십상. 가히‘한국의 나폴리’라 할 만 하다. 음악가 윤이
상, 소설가 박경리, 시인 유치환, 화가 전혁림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나고 자라 예술의 정열을 맘껏
퍼부을 수 있었던 것도 통영의 이 아름다운 풍경 덕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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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자기한 항구 | 이국적 풍경이 펼쳐지는 동경의 장소, 통영
한려수도의 거점답게 통영은 바다 이곳 저곳에 150 여개
의 작은 섬들을 심어놓은 해양도시다. 대전~ 진주 간 고
속도로 개통으로 한층 가까워졌다고는 하나 서울에서 통
영까지 고속버스로 5 시간 남짓 걸리니 사실상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다.
허나 통영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고, 앞으로도 많
은 사람들이 평생에 한 번쯤은 그 이국적 풍경의 별천지
를 탐닉하고 싶어하는 동경의 장소임에는 틀림 없으리라.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 건너 미륵도로 달려보자!
통영을 방문해서 제일 먼저 간 곳은 해저터널이다. 말 그대로 바다 밑으로 땅을 파서 굴을 뚫은 것으
로 이 해저터널은 일제에 의해서 1927년에 착공하여 1932년 만들어진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이다.
그러나 해저터널이 바다 속에서 헤엄치는 고기떼들이 훤히 보이도록 만들어진 해양수족관처럼 거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면 그 마음을 우선 접자.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아주 평범하게 콘크리트로 된 터
널에 불과하기에 크게 실망 하고 돌아가는 관광객도 많이 있다고 한다. 허나 바꿔 생각하면 이 평범
한 터널이 이처럼 관광명소로 유명해졌냐를 따져보면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일본인들이 왜
그토록 많은 경비와 시간, 인력을 동원해서 해저 터널을 건설했는지에 대해 안다면 그리 실망할 것도
없을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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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저터널 옆 용문달양(龍門達陽) | 동양최초의 해저터널 |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바로 이 곳에서 왜군 수천명을 물리쳤다는 민담도 있기도 하지만, 동양 최초의
터널이라는 점과 이 건축물을 통해 일제식민지하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는데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각설하고, 터널 입구 양 옆에는 용문달양(龍門達陽)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는데 이 뜻은 "용문 (물살
이 센 여울목으로 잉어가 여기를 거슬러 오르면 용이 된다고 하는 중국고사)을 거쳐 산양(山陽)에 통
하다" 라는 뜻. 여기서 말하는 산양은 바로 미륵도이다.
눈을 감고 해저터널을 통과해보자. 정말로 바닷 속, 그 한가운데를 걷는 듯한 묘한 착각에 빠질테니.
유명 조각 작품 감상하고 통영대교 야경 맛보기!
- 남망산조각공원과 통영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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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망산 조각공원 | 통영 8경에도 들어가는 남망산 공원과 통영대교
로 들여다 보자. 일단 남망산 공원은 시내 중심
에 있어 통영 주민은 물론 통영에 여행온 객까
지도 아주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세계 10개국 유명 조각가 15명의 작품으로 구성
된 남망산 국제 조각공원은 5000여 평의 부지에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개성있는 작품세
계를 선보이고 있다.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예
술적 자극과 상상력, 넓고 확 트인 공간이 주는
시원함은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기에 충분할 뿐
만 아니라 조각작품마다 문화의 향기 가득 느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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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대교야경 | 특히나 공원의 정상 수향정에 올라서면 한려수
도의 절경은 물론 미륵산의 자태가 한 눈에 들
어오기도 하지만 지척으로 다가오는 통영 대교
와 통영항의 야경도 또한 놓칠 수 없다.
바다를 가로 지르는 통영운하위에 세워진 통영
대교는 밤 바다에 반사되는 196개의 푸른 계열
조명이 연출하는 럭비공 형태의 무수한 색상의
잔치는 보는 이들을 황홀경으로 이끌어 새로운
야간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대교의 화려
한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주변에 즐비하게 늘
어 서 있는 횟집에서 통영 대교를 바라보며 싱
싱한 회를 맛 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 눈과 입
이 함께 유쾌해지니 이것이 바로 '꿩먹고 알먹
고' 아니겠는가?
산양해안도로 타고 내달리며 올망종망 모인 다도해 섬 잡기
- 달아공원 일몰
통영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미륵도는 통영이 품고 있는 150여개의 섬들 가운데 가장 큰 섬이다.
통영에서 충무교나 통영대교를 넘으면 미륵도로 이어지는데 이 미륵도를 일주하는 총 연장 21 km의
해안일주도로인 산양관광도로는 드라이브를 즐기려는 사람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주는, 그
야말로 미륵도의 관능적인 허리를 감고 도는 드라이브 코스 '꿈의 길 60리'이다. 이 도로는 차창밖
으로 펼쳐지는 해안경치가 일품이다. 허리를 한번 꺾어 돌면 아담한 포구 등장이요, 다시 고갯길을
넘으면 푸른 바다가, 만곡된 부분마다 정겨운 해안마을이 펼쳐내는 절대풍광을 맛보라! 차창이라도
열라치면 시원한 갯바람이 달려 들어와 색다른 다도해의 풍미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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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양관광도로 중간지점인 달아공원에서 바라본 일몰 |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다보면 산양도로의 악센트인‘달아공원’에 닿는다.‘달아’(達牙)는
이 곳 생김이 코끼리 어금니와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데, 요즘은‘달 구경하기 좋은 곳’이
라는 뜻으로도 쓰인단다. 달아 공원은 다도해의 수많은 섬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지는 바다풍경이 장관을 이뤄 산양관광도로를 일주하다 휴식을 취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공원 입구 주차장에서 5분 정도 올라가면 나오는 관해정(觀海亭)이 바로 관람 포인트. 정자에 서서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산도 앞에서 여수 반도에 흩뿌려진 수백개의 그림같은 섬, 섬, 섬..
특히나 바위섬에서 돋아나는 석양은 입맞춤을 하고 싶을 정도로 황홀하다. 이래서 이 곳에서의 일몰
을 한려수도 가운데 최고의 장관으로 꼽히는가 보다. 시야 가득 펼쳐지는 붉은 풍광은 마치 파노라
마를 보는 듯 하다.
<초보 산행기> 461m 미륵산 정상에 서서 한려수도를 관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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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기에 편한 미륵산 등산로 | 미륵산 안내도 |
아름다운 풍광을 머릿 속에 저장하고 , 미륵산 중턱 용화사까지 차를 몰고 올라간다. 미륵산 등반을
위해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른손에는 생수하나, 또 다른 손에는 충무김밥 한 통 들고 피크닉
을 떠난다는 생각으로 산을 오른다. 미륵도 중앙에 자리한 해발 461m 의 위풍당당한 미륵산 정상에
오르면 한려수도의 빼어난 절경과 한산대첩의 현장, 통영 시가지를 한눈에 바라볼 수있다는 유혹 때
문에 일정에 없던 등반을 나선 것.
미륵산 숲 속 넓은 흙길에는 잔돌들이 박혀 있는데, 등산로의 흙은 흡사 체로 친 듯 곱고 잘 다져져
서 걷기에 편하다. 널찍한 길을 따라 관음사로 오른다. 관음사는 대숲을 두르고 청기와를 얹은 품새
가 중후하다. 산새의 지저귐과 대숲의 소리를 들으며 한 시간 정도 오르니 ‘미륵산 정상 0.8km, 용
화사 광장 1.1km’라 쓰인 안내판이 보인다. 나무 그늘도 있고 앉아 쉴 만한 바윗덩이들도 놓여 있
으니 목도 축이고 다리도 심심(深深)히 위로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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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산 정상에 서면 통영시가지는 물론 한려수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작은 돌무지 옆으로 나 있는데 지금껏 걸었던 등산로와는 차원이 완전 다르다.
바위가 많이 깔려 있고 숲 그늘이 드리운 능선길로, 어떤 곳은 아주 위험하게 가파른 바위 지대인데
다 균형을 잡기가 까다로우니 딛을 때 조심하도록! 경사가 아주 심한 곳은 스테인레스 계단이 놓여
있다. 드디어 바위지대인 미륵산 정상에 도착.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정상에는 돌탑과 태극기
가 세워져 있었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된 기자의 '기쁨의 환호
성' 이 있다 .
과연 정상에 서니 통영 앞바다가 왜 ‘다도해’인지 알 수 있었다. 한려수도 중심부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섬과 섬이 어우려져 만들어내는 풍광에 숨이 탁 막힌다. 저기도 섬, 저기도 섬.... 온통 섬
들의 별천지다. 저 멀리 까마득히 대마도까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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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섬 달 밝은 밤에...충무공 이순신의 혼을 새기다!
- 제승당
‘한산섬 닭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이순신의 ‘한산도가’ - |
| 충무공 이순신의 혼이 담겨있는 제승당 앞바다 |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자연이 그린 명작들을 감상하며 산양일주도로를 내달려 유람선 터미널에 도착
하다. 이제는 미륵산 정상에서 본 그 섬들 속으로 들어갈 차례. 한산도행 배를 타고 느릿느릿 헤엄쳐
간다. 한 15분쯤 지났을까? 바로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의 그 한산섬에 도달했다. 선착장에서
내려 파도 한점 없이 찰랑거리는 바닷물이 내뿜는, 그리 나쁘지 않는 비릿한 바다 향내를 마시며 충
무공을 만나러 간다.
새소리, 솔향기를 벗 삼으며 들어간 충무공 유적지인 제승당. 이 제승당은 지금으로 말하면 해군작전
사령관실 같은 곳. 충무공이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 받아 본영을 설치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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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공이 시조를 지었던 수루 | 한산대첩을 이룩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충절
이 얽힌 호국의 성지인 이 곳은 건축물만 덩그
러니 있는 여느 유적지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
다. 마치 산수화 한 폭을 펼친 것 같이 풍경이
아름답기로유명하다.
충무공이 한산만을 바라보던 수루에 오른다.
한산만과 멀리는 통영까지 내려다보인다. 수루
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가슴이 확 트일 정도 시
원하다. 나라 걱정에, 부모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까지 더했다면 그의 깊은 시름은 당연지
사. 그의 심고(深苦)가 전이되는 듯한 묘한 감
정에 사뭇치다가, 바람결에 들려오는 이순신장
군의 500년 전의 함성에 빠져들다.
| [7월여행지] 얼음골에서 표충사까지 이어지는 밀양 재약산 산행
경상남도 밀양에 자리 잡고 있는 재약산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취서산, 가지산, 신불산 등과 더불어‘영
남 알프스’를 이루는 명산이다. 재약산의 최고봉은 수미봉(해발1,108m)으로 이 주변에는 우리나라 최대
의 억새 군락지로 손꼽히는 사자평고원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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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의 알프스가 한 눈에 펼쳐지는 사자봉 정상 |
재약산을 오르는 대표적인 코스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즉, 얼음골에서 출발해 가마볼협곡-사자봉-수
미봉-옛 고사리 마을-층층폭포를 거쳐 표충사로 내려오는 코스와,반대로 표충사를 출발해 내원암-진불암
-옛 고사리 마을-수미봉-사자봉-가마볼협곡을 거쳐 얼음골로 내려오는 코스가 있다. 등산에 소요되는 시
간은 두 코스 모두 약 6~7시간이지만 보다 여유롭게 등산을 즐길 요량이라면 아무래도 얼음골에서 출발
해 표충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무난하다.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는 가지산 도립공원의 관문이기도 하지만 밀양에서 얼음골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마을이기도 하다. 밀양에서 남명리까지는 약25km, 남명리에서 얼음골까지는 약4km. 천연 기
념물 제224호로 지정되어 있는 얼음골은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는 신비스런 곳이다. 해마다 4월부터 무더
위가 한층 기승을 부리는 8월까지 돌무더기 속에서 얼음이 얼기 때문이다.더욱 신기한 사실은 실제로 얼
음이 얼어야 할 겨울에는 반대로 따뜻한 온기가 스며 나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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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에도 얼음이 맺히는 얼음골입구 | 여름에 얼음이 맺히는 현상에 대해 과학적으로
는 "바윗돌 틈 속 공기가 바깥으로 나가지 못
한 상태에서 땅 속의 차가운 바위들을 스치며
급격히 냉각되었다가 역시 차가운 지하수와 만
나 얼음골에 와서 순간적으로 배출되면서 영하
로 내려가는 현상"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700m 지점에 자리 잡은 얼음골 일대가 크고 작
은 돌 무더기 계곡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 한
여름에도 1분 이상 손, 발을 담그고 있기 어려
울 정도로 계곡물이 차갑다는 것 등이 이 같은
추론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그동안 많은 학자
들이 얼금골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아직까지 뚜렷한 원인을 찾아내지 못
해 우리나라의 불가사의한 자연현상 가운데 하
나로 남아있다.
얼음골은 사과의 명산지로도 유명하다. 우리나
라 곳곳에 청송, 안동, 황간, 예산 등과 같은
대표적인 사과 명산지들이 있지만 특히 얼음골
사과는 다른 지역의 사과들 보다 당도가 월등
히 높은 것으로 정평이나 있다. 일교차가 크고
한여름에 서늘하다는 좋은 기후특성을 갖고 있
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음골사과는 "부사"라는
고유의 품종보다는 오히려 "꿀사과" 라는 이름
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얼음골을 지나면서부터 그야말로 그동안 듣도 보도 못한 요상스런 등산로가 펼쳐진다. 이름하여 돌무더
기 계곡. 마치 누가 실어다 놓은 듯한 크고 작은 돌무더기들이 얼음골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다. 등산
객들은 덜컥거리는 이 계곡길을 따라 가마볼협곡을 지나게 된다.마치 지옥훈련을 받는 듯한 난코스에 정
신을 빼앗겨 가마볼협곡의 비경을 감상할 겨를도 없이….
가마솥을 걸어도 될 정도로 골짜기의 폭이 좁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가마볼협곡. 이 골짜기를 힘겹게 오
르다 보면 등산로 근처에서 조그만 동굴을 하나 만나게 된다. 이 동굴의 이름은 동의굴. 바로 동의보감
의 저자인 허준 선생이 스승인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했다는 곳이다. 물론 그 사실을 입증할 만한 뚜렷한
기록이나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여름에도 오싹함을 느낄 만큼 서늘한 기운이 감돌아 이 같은 추
측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해마다 8월이면 얼음골 일대에서 "동의보감" 탄생을 축하하는 행
사인‘얼음골 동의축제’를 개최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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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풍광의 재약산 등산로 |
가마볼협곡을 지나 산등성이에 오르게 되면 오솔길 같은 등산로가 사자봉(해발 1,189m) 정상까지 이어진
다. 사자봉 정상에 서면 영남 알프스의 연봉들이 아스라이 한눈에 들어오고, 군데군데 무리를 이룬 억새
밭 물결이 잠시 정신을 혼미스럽게 한다. 하지만 노련한 등산객들은 사자봉 정상에서 그리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건너편의 수미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수미봉 아래에 있는 옛 고사리 마을(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음)에서 하산하는 길은 두 갈래로 나누
어진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낸 군사도로가 그 하나이고, 다른 길은 옥류동천 계곡을 따라 층
층폭포를 지나는 등산로이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옥류동천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지루하지 않고 곳곳에서 설악산이나 지리산 못지않은 비경들을 만끽할 수 있
기 때문이다. |
| 사명당 송운대사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표충사 |
하산하는 길에 다소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사명당 송운대사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표충사 경내를 둘러 보면서 산행을 마무리해도 좋다. 신라 진덕여왕 때인 654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표충사의 본래 이름은 죽림사다. 옛 사찰 이름의 유래를 말해주듯 지금도 큰 법당 주변에서는 작은 대나무 숲이 한 공간을 차 지하고 있다. 신라 흥덕왕(826~836년 재위) 무렵에는 이곳에서 영정약수로 왕자의 병을 치료한 연유로 영은사라 불리게 되었고, 조선 시대 때 18대 현종이‘표충사’라는 사액을 내리면서 사찰 이름이 표충사 로 불리게 되었다. 한때 일연 스님(삼국유사 저자)이 1,000여 명의 승려를 거느리기도 했던 표충사 경내에서는 우리나라에 서 가장 오래된 향로인 청동함은향완을 비롯해서 석가여래 진신사리를 모신 3층탑, 송운대사의 유품 300 여 점이 전시되어 있는 유물전시관, 그리고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3대사(서산,사명,기허)의 영정을 모신 표충서원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속살 빨간 수박 한 통, 바람 솔솔 부는 원두막, 그리고 가슴 설레는 옆마을 첫사랑은 없지만‘똑딱똑딱’
빠른 속도로 여름은 깊어간다. 바람 한점 불지 않는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밤이면, 영원한 사랑의 맹
세를 건네던 죽부인도 무용지물. 선풍기도 제 풀에 지쳐 시들시들거리고, 평소 행인들의 발길에 채이면
서도 멀쩡하던 골목 어귀의 전봇대마저 쏟아지는 전력송출에 쓰러져도 여름은 좀체 사그라질 기미를 보
이지 않는다. 채 비비기도 전에 녹아버리는 팥빙수를 먹으며 보내는 슬픈 열대야. 이 여름이 끝나기 전
에 한 뼘의 시원한 그늘을 찾아 도시탈출을 감행해보는 건 어떨까. 하늘거리는 여름 바람 아래 누워 차
가운 계곡물에 발 담그는 고사탁족(高士濯足)의 호사라도 누릴라치면, 시 한 수가 절로 나온다.
수송을 수승이라 새롭게 이름 하노니/ 봄을 만난 경치 더욱 아름답구나
먼 산의 꽃들은 방긋거리고/ 응달진 골짜기에 잔설이 보이누나
나의 눈 수승대로 자꾸만 쏠려/ 수승을 그리는 마음 더욱 간절하다
언젠가 한 두루미 술을 가지고/ 수승의 절경을 만끽 하리라 1년 365일 하루도 쉼없이 세월을 일에 쫓기면서도 가장 그리운 건 한없는 어머니 품 속 같은 풍경이었다.
그대여, 지치고 힘들 때 조용히 숲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그것도 뙤약볕 내리쬐는 여름날의 숲을….
속 깊은 이처럼 울창한 그늘 속,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구부리면 하얀 아카시아꽃이 대롱대롱 매달려 향
기를 내뿜고 민들레 씨앗은 붕붕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덩달아 이름모를 풀들의 춤사위가, 흥에 겨운 벌
레들의 사랑노래가 교향곡을 이루고, 숲을 가로질러 괄괄 흘러가는 계곡물 소리는 마치 여름날의 축복과
도 같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 품속에서만은 언제나 어린아이인 것처럼, 여름 숲에 안기면 가식
도, 욕심도, 미움도 어느새 사라진다. 오히려 인생의‘아름다움’이, 새로운‘활력’이 솟아난다. 깊어
가는 여름, 땀내 밴 피곤한 일상을 잠시 잊고 여름 숲으로 들어가자. 그 품에 안겨 숲 속의 생명들과 호
흡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휴(休)가 아니겠는가.
"물레방아" 소리에 추억 떠오르고,
"지리산 마루금" 에 가슴 설레다
- 렛츠 고! 1일차 물레방아 고을‘경남 함양’ 녹음에 짙은 나무, 수정처럼 맑은 계곡, 아름다운 연꽃으로 둘러싸인 상림의 아름다움
구석구석 찾아가기 이벤트단의 첫 여정은 숲의 풍치를 느낄 수 있는 함양‘상림숲’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조금은 생경스러운‘함양’이라는 고을에 대해 이해가 필요할 터. 경남 함양은 유학을 숭상하던 조
선시대 때부터 ‘좌안동 우함양’이라고 할 정도로 서원과 향교가 많아 인재를 많이 배출한 선비의 고을
이었다. 특히나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과 제10호인 덕유산을 비롯한 고산준령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
자수명한 곳으로 자연의 신비와 명승지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고장이다.
초록 바다에 풍덩… 아름드리나무가 터널을 이루는‘상림숲’ |
상림숲을 거닐면 어느새 다가온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된다
그 함양의 젖줄은 위천.‘상림’은 그 위천의 물가에 있는 고요한 숲이다. 함양을 고향으로 가진 사람들
은 옛 친구보다도 더 그리운 것이 하나있다고 한다. 최치원이 이곳 천령(함양의 옛 지명)군의 태수로 와
서 조성했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인‘상림숲’이 그것이다. 40여 종의 낙엽관목 등 116종의 나무가
1.6km의 둑을 따라 80~200m 폭으로 조성되어 있다. 상림숲의 아름다움은 봄의 신록, 여름의 녹음, 가을
의 단풍, 겨울의 설경 등 일년 내내 그 절경을 맛볼 수 있다. 특히나 여름철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돗자
리를 펴고 누우면 신선의 정취를 느낄수 있다. 옆으로는 수정처럼 맑은 위천이 흘러 탁족을 하기에도 좋
다. 또한 상림의 숲속에 조성되어있는 오솔길은 연인들과 가족들의 대화와 사랑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깊어가는 여름날, 아름드리나무가 하늘을 뒤덮은 상림숲을 거닐면 소리없이 가을이 다가옴을 느끼게된다.
‘덜덜’물레방아 돌아가니, 맛있는 오색 떡이‘한 솥’가득 |
한폭의 풍경을 연출하는 물레방아(좌)와 직접 만들 오색떡(우,위)과 별미인 오곡밥정식(우,아래)
함양은‘물레방아고을’로도 통한다. 곳곳에 집채만 한 물레방아가 돌고 있기 때문이다.‘방앗간에 생긴
일’등 야릇한 상상만 하지 않는다면, 시원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물레방아는 그 자체로 한 폭의 풍경
을 연출한다. 구석구석 찾아가기 이벤트 체험단이 가게 될 물레방아떡마을의 유래는 이러하다. 조선말기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선생이 청나라 문물을 둘러보고 온 후 이 곳 안심마을에 최초로 물레방아를 설치했
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구석구석 이벤트단은 이곳에서 우리방아역사탐방과 함께 물레방아떡
만들기체험을 하게 된다. 멋들어지는 계곡과 솔숲에 둘러싸인 떡 마을은 어느새 떡 방아질하는 소리, 콸
콸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물레방아 도는 소리로 가득 채워질 테다. 별모양, 반달모양, 만두모양 등 오
물조물 떡의 모양을 만드는 아이들의 얼굴에도 행복이 묻어난다.
화난 용이 몸부림치듯 하얀 물줄기 뿜어내는‘용추계곡’ |
맑은 계곡과 울창한 원시림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몇 시간의 등산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더없이 좋은
곳이 바로 용추계곡이다. 이 곳 용추계곡은 깊은 계곡
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진리삼매경에 빠졌던 곳이라하여
‘심진동’이라 불리기도 한다. 수정처럼 맑은 물이 졸
졸 흐르는 계곡을 따라 ‘용추사’에 다다르면 절 앞에
용추폭포가 있다.
우뢰와 같은 소리, 용추계곡의 깊은 곳에서 모이고 모
여서 이룬 물이 용호로 떨어지니 이곳에 서면 여름더위
는 어느새 잊혀지고 만다.
화난 용이 몸부림 치듯 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는 사방
으로 물방울을 튕겨내어 장관을 이루고 폭포앞에 서 있
노라면 가슴 뼈 속까지 시원해진다.
주변계곡의 절경은 옷을 훌훌 벗고 벽계수에 몸을 던지
며, 그 아래서 천년만년 살고 싶어진다.
시인 묵객들이 걸음을 멈추며 노래한 지리산 가는 길‘오도재’ |
오도재는 가는 뱀이 일곱굽이를 치는 듯한 구절양장‘S’자 꼬부랑 도로가 명물이다.
함양의 상림숲, 용추폭포 등 모두 보석같은 명승지지만, 함양에 오면 꼭 가보아야만 하는 곳이 있다. 바
로 지리산조망공원이다. 공원은 오도재 정상에 위치한 지리산 제1문을 통과해야만 만날 수 있다. 함양읍
에서 마천면의 칠선계곡으로 가는 도중의 고개인 오도재는 예부터 하늘과 맞닿은 고개라는 뜻의 ‘천령’
의 땅 함양의 옛 사람들이 장터목으로 가기 위해 괴나리봇짐을 지고 넘었던 험한 길이었다. 특히나 오도
재는 구절양장 ‘S’자 꼬부랑 도로가 명물이다. 마치 가는 뱀이 일곱 굽이를 치는 모습은 입이 떡 벌어
질 지경. 오도재 정상에서 마천방면으로 내려오다보면 지리산조망공원이 있다. 정자각이 있어 풍광을 감
상하여도 좋고, 그냥 쉬기에도 좋다. 이 곳은 날씨가 좋은 날이면 지리산 하봉에서 중봉, 천왕봉을 거쳐
세석평원 벽소령 반야봉까지의 지리산의 유려한 마루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자연암반에 조각된 극락세계‘석굴법당’ … 불교예술의 극치 |
극락세계를 형상화한 석굴법당의 모습, 기묘함이 느껴진다
고개 아래에 내려오면 우리나라 3대 계곡 중에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칠선계곡의 초입에 위치해 있는 서
암정사를 만날 수 있다. 장엄한 지리산의 산세를 배경으로 암굴형의 바위벽에 새겨넣은 수많은 부처, 보
살, 나한의 정교한 조각이 백미요, 그 화려함과 웅장함이 과히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사찰 입구에
불교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대방광문이 있고 바위에 조각된 사천왕상을 지나 도량안으로 들어서면 아
미타여래가 주불이 되어 극락세계를 형상화한 석굴법당이 있고, 도량 위편에는 무수한 불보살이 상주하
는 광명운대, 그리고 스님들의 수행 장소인 사자굴 등이 있다. 이는 모두 자연의 암반에다 굴을 파고 조
각을 함으로서 불교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밀조밀한 기암괴석, 아름다운 정원 등으로
사찰 자체가 마치 잘 꾸며놓은 하나의 조각공원 같다.
그림 같은 "춘향골" 에서
유려하게 흐르는 문학의 향기
- 렛츠 고! 2일차 사랑의 고을‘전북 남원’ |
성춘향과 이몽룡의 절절한 사랑이 전해지는 광한루
우리 고전에서 시대를, 세대를 뛰어 넘는 절절한 사랑이야기의 백미를 뽑으라면 단연코 성춘향과 이몽룡
의 사랑이다. 소위 국민 소설로 불릴 만큼 춘향이야기는 어른, 아이할 것 없이 그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이몽룡과 춘향이가 있는 광한루가 있기에 남원은 사랑의 도시로 통한다. 그렇다고 광한루를
남한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말 그대로 촌사람. 남원에는 광한루 말고도, 춘향테마파크, 흥부마을, 소설
‘혼불’ 의 소살거림이 들리는 혼불문학관 등 여름밤의 서정을 듬뿍 채울 수 있는 소재 또한 풍성하다.
춘향의 사랑이야기, 구구절절 풀어놓은‘광한루와 춘향테마파크’ |
광한루 오작교의 모습(좌)과 춘향테마파크의 전경(우)
저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가 오롯이 전해지는 곳은 남원의 광한루. 춘향과 몽룡이 만났던 곳, 사랑을 나
누었던 곳 등 곳곳에 촬영 흔적이 남아 있다. 춘향전의 무대가 된 까닭에 연인들도 많이 찾는다. 호젓이
산책하기에도 좋은 곳이 또한 광한루.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야기가 현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데에는
광한루의 아름다움이 큰 몫을 하고 있다. 광한루 정자에 앉아서 멀리 내려다 보면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
못, 오작교 · 완월정 등이 어우러져 우아한 경치를 보여주기 때문. 춘향전을 매개로 해 지은 춘향 테마
파크도 큰 볼거리다. 테마파크에는 임권택 감독의‘춘향뎐’촬영 세트장을 비롯해 만남의 장·맹약의 장
축제의 장 등 춘향전을 테마별로 재현해 놓았다. 춘향촌, 춘향관, 월매집 등 사랑과 정절로 행복을 찾은
춘향의 채취가 가득한 광한루에서의 여정은 상상 속의 이야기로 남겨둔 채 혼불문학관으로 이동한다.
소설 속 장면이 책 넘기듯 하나둘 펼쳐지는‘혼불문학관’ |
[7월여행]
여름이 잠시 사라지는 곳, 수승대 |
솔숲과 물과 바위가 어우러져 제일절경의 풍취를 뽐내는 수승대
거창 수승대에 가면 퇴계 이황처럼 그 아름다움에, 그 호사스러움에 도취된다. 수승대의 비경을 격찬하
던 퇴계 이황은 손수 시 한 수를 짓게 되었고, 이 시로 인해 삼국시대때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
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던 곳으로 처음에는 돌아오지못할 것을 근심하였다 하여 근심 수(愁)
보낼 송(送)자를 써서 불렸던 수송대(愁送臺)라는 이름이 수승대로 바뀌게 된 계기가 되었다. 덕유산에
서 제일 맵시가 빼어나기로 소문난 바위 수승대. 잘 생긴 거북 모양의 이 수승대 아래로는 유유히 강물
이 흐르고, 잘생긴 소나무가 그 절경을 감상하며 서 있다. 또한 수승대 경내에는 구연서원, 관수루, 요
수정, 암구대 등이 있는데 솔숲과 물과 바위가 어우러져 제일절경의 풍취를 뽐낸다. 소나무처럼 바람을
맞으며 수승대를 바라보고 있자면, 더위도 근심도 모두 바람따라 물결따라 흘러간다. 널따란 바위에 걸
터앉아 차가운 계곡물에 발이라도 담그면 세월을 낚는 일 외에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세상사 근심걱
정이 그 이름처럼 모두 사라지니, 어느덧 빨리 가라 하던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함께 여름의 유희를
더 즐기자 할지도 모른다.
‘아시아의 아비뇽’이 되고픈 거창, 연극과 사랑에 빠지다 |
탁족의 여유를 즐길 수 있고(좌) 연극도 볼 수 있어(우) 더욱 좋다
세상과 동떨어진 것처럼 고즈넉한 수승대에도 1년에 한 번 시끌벅적한 난장이 펼쳐진다. 바로 프랑스 남
부 도시에서 펼쳐지는 아비뇽 축제를 모델로 삼고 있는 거창국제연극제가 그것. 세계적인 연극축제로 이
름난 아비뇽축제는 도시 자체가 옛 교황청이 있던 세계적인 관광지로 교황청 안뜰과 카페, 성당, 창고,
광장, 교실, 정원 등 정식공연장이 아닌 곳에서 펼쳐진다는 것이 특징. 축제가 벌어지는 3주 간 도시는
연극과 발레, 음악 등 공연예술과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예술가와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거창국제연극제
역시 조선시대 서원인 구연서원과 300년 된 은행나무 아래, 대나무숲, 정자, 폐교, 하천가의 제방, 하천
바위 등 자연과 함께하기에 더욱 신명난다. 산들거리는 바람과 숲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국내외
의 내노라하는 배우들이 자연과 하나되는 몸짓으로 공연을 펼친다. 때문에 거대한 자연의 무대에서 바위
인지 나무인지 구름인지 모를 이들의 공연을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다. 열정적인 공연도 보고 족욕도 즐
기고,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보낸‘한여름 밤의 꿈’같은 날…. 어느덧 이 여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다
음 여름이 서둘러오기를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결코 놀랄 일은 아니다.
끝없는 상상 펼쳐지는 한여름 밤의 꿈‘거창국제연극제’ |
사진 설명 1. 벨로루시 2. 카고 3. 귀신놀이로의 초대 4. 북새통 5. 극단민들레 공연 등
올해 연극제는 독일 인형극단 헬미의 ‘귀신놀이로의 초대’ 와 캐나다 인클라인의 ‘카고’, 독일 스타
피규렌의‘사커맨’등 외국 공연들을 비롯해 국내경연참가작 17편 등 총 210회의 공연을 펼치는 역대 최
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들 작품들은 가족극을 중심으로 실험극, 마당극, 뮤지컬, 발레, 전통예술 등 다
양한 장르가 결합한 형태로 작품간 경계를 넘나들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즐거움으로 관광객들을 사로
잡을 예정이라고. 특히나 한낮에 수승대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물 속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수상무대인 무지개극장은 거창국제연극제만의 자랑거리다. 수승대는 남덕유산의 참샘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계곡 하류의 한가운데인 위천천을 관통하는데 바로 이 위천천가에 수상무대인 무지개극장이 마
련된 것이다. 또한 무지개 극장은 무대 전면이 위천천을 바라보고있어 관객들은 계곡에서 물장구를 치면
서 공연을 만끽, 새로운 피서문화의 전형을 만들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월성계곡 따라 바람이 흐르고, 여름이 흐르고… |
물 흐름이 마치 눈이 흩날리듯 하여 이름 붙여진 분설담의 풍광
거창의 여름피서지로 연극제가 열리는 수승대나 금원산도 좋지만, 호젓한 낭만을 즐기기에는‘거창의 소
금강’이라 불리는 월성계곡이 최고로 꼽힌다. 덕유산 계곡을 따라 맑은 물이 굽이 굽이 흐르고, 다양한
형세를 하고 있는 바위와 그 바위 사이를 질주하는 계곡물이 폭포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소를 만들어 내
기도 해 풍경이 아름다운 월성계곡. 그 폭이 넓지는 않지만 주변 산세가 워낙 거대해 수량이 풍부한 편
이다. 거창읍내에서 거열성군립공원, 수승대를 차례로 지나고 북상면사무소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남덕유산 방향으로 들어가면 병곡리와 산수리로 들어가는 갈림길 삼거리에서부터 월성계곡이 시작된다.
상류로 올라가면 장군바위쉼터 등이 나타나고 월성 1교에 이르기까지 계곡욕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들이
계속 나타난다. 산수마을 입구에서 마학동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좁은 길로 우회전해서 가면 하늘과 맞닿
아 있는 산수리 언덕의 절경을 감상하며 병곡리로 내려오는 코스도 권장할 만하다.
사선대에서 내계폭포까지…월성계곡의 속살을 훑다 |
월성계곡의 하이라이트로 3층 석탑을 방불케 하는 기이한 사선대의 비경
월성계곡은 남덕유산 등산 기점인 황점 매표소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매표소앞을 지나 포장된 도
로를 따라가면 해발 800m 가까이 되는 남령을 넘어 덕유산 종주기점인 함양군 서상면 영각사로 이어지는
데 산세가 아름다워 드라이브 코스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남령 고갯마루에 서면 거창, 함양
일대의 산군과 멀리 지리산 능선까지 조망할 수 있다. 월성계곡 곳곳에 숨어있는 보물을 살펴보자. 계곡
을 따라 가다보면 먼저 옛날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전설을 지닌 강선대를 만날 수 있다. 월성계곡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사선대. 돌 위에서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로 사선대라고 불리우는데 마치 기단
위의 3층 석탑을 방불케 한다. 그 경치가 기이하고 빼어나니 18세기의 화가 김윤겸이 그린 담채 수목도
에 남기도 했다.
겨울날 눈이 흩날리듯, 하얀 물줄기 토해내는 계곡의 여름날 |
아름다운 골짜기에서 뿜어내는 높이 12미터의 아름다운 내계폭포
월성계곡의 심장에 자리하여 소금강을 이루는 주변의 산세와 어울려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 흐름이 마치
눈이 흩날리는 듯 하여 이름 붙여진 분설담의 풍광도 대단하다. 분설담을 에워싸고 있는 산은 흡사 책을
포개어 올린 듯한 채석강을 방불케 하고 수석들의 암반은 성천의 물결에 패이고 패여 물고기 비늘형상을
이룬다. 월봉산 아래 아름다운 선경을 빚어내고 있는 옛 자하동 자리에 한 용소폭포인 내계폭포도 만날
수 있다. 남덕유산 가지의 월봉산 아래 안긴 산간 소분지 속의 지형이 달 안의 계수나무 같다 하여 마을
이름을 내계라하였고 봄철이면 산 벚꽃과 도화꽃이 만발하여 자하동이라 불렀던 아름다운 골짜기에서 높
이 12미터 길이로 물줄기를 토해내 아름답기 그지없다.
아비뇽 축제와 거창국제연극제 … 닮은 꼴 혹은 다른 꼴 |
거창국제연극제가 열리는 수승대 거북바위의 모습
축제가 열리면 도시전체가 축제에 빠져드는 프랑스 아비뇽. 매년 7월이면 프랑스의 가장 오래된 이 야외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수많은 관람객과 공연자들이 아비뇽을 찾는다. 더위를 피해 일찌감치 해안가로 휴
가를 떠나는 프랑스인들도 이 때만은 아비뇽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거리 곳곳에서 펼쳐지
는 공연은 더위도 잊을 정도로 흥미로울 뿐더러 한여름 햇살 아래 도시는 어느 때보다 빛이 난다. 아비
뇽 축제와 비견되는 거창 국제연극제는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공연축제다. 각기 색다른 개성으로 톡
톡 튀는 매력을 발산하는 대신,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사색하는 시간을 안겨준다. 때문에 자연스레 나오는
몸짓은 인위적이지 않다. 거창이 가진 최고의 자연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 여름공연축제는 때문에 질릴새
가 없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재미있는 즐길 거리로 가득한 까닭에 한 번 이 축제의 재미를 만끽한 이
라면, 다음을 기약하게 된다. 장난꾸러기 아이들과 함께여도 시끄럽다할 이 없고, 연인과 함께라면 나란
히 맑은 물에 발을 담근 채 두런두런 사랑의 약속까지 즐길 수 있는 수승대.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자 하
는 이들에게 공연까지 덤으로 얹어주니 이 여름이 어찌 아니 즐거우랴. |
| [6월여행지]발걸음 닿아 길이 되더니
길이 도리어 발걸음을 부른다
-경남 거창 황산마을, 산청 단계마을·남사마을, 고성 학동마을 옛돌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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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갓댁 추억조차 도심에 두고 사는 요즘 사람에게 돌담길은 이색적인 공간이다. 황산마을길. |
목적한 어떤 곳으로 가는 과정을 길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길을 찾아 나선 것은 과정이자 동시에 목적인 셈이다. 돌담길 얘기다. 외갓댁 추억조차
아스팔트 도심에 두고 사는‘요즘 사람들’ 에게 돌담길은 아련한 추억보다 이색(異色)에 가깝다. 걷다
보니 길이 되고 그런 길과 집을 구분하려 쌓아올린 돌담이 이제는 도리어 사람을 부른다. 이제 돌담길
은 발길이 닿아 자연히 생긴 길에서 사람을 불러들이는 이색적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태산준령(泰山峻嶺)이라는 경상도별칭마냥 큰 산과 험한 고개 넘어 자리하고 있는 경남 거창 황산마을과
산청 단계마을, 고성 학동마을, 그리고 이 마을들과 친구 삼아 발길 허락할 곳을 소개한다. |
| 남동향의 나즈막한 주택 주위로 돌담이 둘러진 황산마을 입구 |
“어데서 오셨는교~.”
돌담을 타고 구수~한 사투리가 전해진다. 어디서 왔냐는 이 말은 질문이라기보다 타지 사람에게 건내는
반가운 인사에 가깝다. "어데서 오셨는교~"에 대한 대답이 다름아닌 "안녕하세요.”인걸 보면 말이다.
납작하고 익숙한 나무접시 같은 황산마을
돌담길을 찾아 나선 길. 가장 먼저 발길이 닿은곳은 경남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황산마을이다.마을 초입
부터 느껴지는 푸근함은 단지 시골길이기 때문만은 아닌 듯 싶다. 나지막한 산세 덕분인지 황산마을 돌
담길을 따라 걷는 길은 속이 깊은 밥그릇이 아니라, 납작한 접시 같다. 마을이 대체로 평탄해서다.
마을 동쪽의 호음천을 따라 마을 주택들은 대부분 햇볕 좋은 남동향을 바라보고 있다.마을 북쪽에는 문
화재로 지정된 거창 신씨 고가(경남민속자로 제 17호)가 고즈넉이 자리잡고 있다. 이 집은 1927년 건립
한 부농주택으로 전통한옥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
| 돌담사이 기와로 멋낸 소박한 예술품 | 민박 가옥으로 지정된 곳도 있으니 하룻밤 묵으
며 전통마을의 정취를 깊이 느끼는 것도 권할만
하다. 성인 장정의 키를 넘기는 담 높이에 두께
는 30㎝가량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황산마을과 신씨고가와 더불어 빼놓지 않고 감
탄해야 할(?) 경관 중 하나는 돌담 사이에 기와
를 이용해 꽃모양을 심어 놓은 것이다. 흙과 돌
로 얼기설기 쌓은 담 속이지만 서민들의 미적감
각만큼은 어느 프랑스 예술가 못지 않다.
>>거창 황산마을 자세히 보기
이황의 시조를 선창삼아, 노래가락이 절로 흥얼~수승대 |
| 이황의 싯구가 새겨진 수승대 거북바위 | 황산마을 돌담길 투어에 함께 해야 할 또 한 곳은
수승대관광지다. 북쪽으로는 덕유산국립공원과 서
쪽으로 금원산 자연휴양림이 감싸고 있는 이곳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부터 그림 좋기로 유명한 곳
이었다.
수승대역사는 삼국시대부터 시작하지만 자주 회자
되는 것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거북바위다.1543년
퇴계 이황 선생이 유림차왔다가 수승대(搜勝臺)라
이름 붙일 것을 권하는 사율시(四律詩)를 보내 서
원을 짓게 됐다. 그리고 이 서원에서 후학을 가르
치던 요수 신권 선생이 거북바위옆면에 싯구를 새
겨 놓은 것이 거북바위와 스승대 유명세의 시작이
라고 할 수 있다.
싯구가 새겨진 이 바위는 거북바위라 불리는 만
큼 측면에서 바라보면 몸을 낮추고 있는 거북과 닮아있다. 주위의 소나무와 수승대 계곡을 병풍처럼 둘
러싸고 있는 산과 어우러져 수승대는 속세의 근심 걱정을 잊을 만큼 경관이 빼어난 곳이라는 불교적 해
석도 충분히 어울린다.
>>수승대 자세히 보기 |
수승대는 4계절 언제 와도 좋은 곳.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계절별로 계절감을 느낄 수 있어 좋
다. 봄에는 나들이 장소로 여름에는 야외수영장 및 물썰매장, 가을에는 낙엽거리,그리고 겨울에는 눈썰
매와 얼음스케이트장에서 한바탕 얼음지치기가 한창이다. 취사장,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있어 가
족단위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매년 7월말부터 8월 중순까지 20일 동안은 거창국제연극제가 수승대에서 열린다. 자연속에서 이뤄지는
거창국제연극제는 대표적인 지역축제로 자리매김했다.
>>거창국제연극제 자세히 보기
황산마을이 친구하자 하는 산청 단계마을과 남사마을 |
<옛부터 등따습고 배부른 마을로 꼽힌 산청단계마을, 까치발로도 안이 안보이는 높은 담이 특징이다>
아래로 아래로.
경상도 하고도 남도, 경상남도 하고도 아래로 아래로. 거창 황산 마을의 돌담길의 ‘친구뻘’ 되는 곳
은 경남 산청의 단계마을과 남사마을이다.
산청 단계마을은 등따습고 배부른 마을로 꼽혔던 곳. 산청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대표적 가옥으로
는 1630년에 건립된 단계 박씨고가와 경남문화재자료 제120호인 권씨고가도 꼽힌다.단계마을 돌담의 특
징은 까치발을 하고도 안팎을 들여다 볼 수 없을 만큼 높다. 돌담이라기보다 토담에 가깝다.
도로의 상당부분이 시멘트길로 정비돼 있어 시골길의 보송보송한 흙밟는 맛은 떨어지지만 시야보다 한
참 높은 돌담의 넝쿨만큼은 예술이다. 특히 이곳 단계마을은 1983년‘한옥형 소도읍가꾸기 사업’을 시
행해 전체 경관도 한옥에 맞게 정비돼 있다. 덕분에 자연경관과 더불어 일체된 분위기의 전통 한옥분위
기를 느낄 수 있다. 단계초등학교 교문과 동사무소 정문이 한옥으로 조성된 게 단적인 예다.
>>산청 단계마을 자세히 보기
거문고 소리 같은 청아함 산청 남사마을 |
| 고즈넉한 산청 남사리 최씨고가 사양정사 | 문화재청이 문화재로 등록예고한 돌담길은 아니지만, 산
청에는 거문고 소리같이 청아함을 간직하고 있는 돌담길
이 있다. 이곳에서는 돌담도 돌담이지만,돌담 안쪽의 산
청 남사마을 자체를 느껴 볼 것을 권한다.
기자가 하루를 묵은 곳이기도 한 산청 남사리 최씨 고가
사양정사 (사양정사(泗陽精舍)는 연일 정씨 선조의 위패
를 모신 재실로 "사양정사"라는 말은 사수천의 남쪽이라
는 뜻)는 건물 자체가 주는 운치가 가을밤처럼 깊다. 건
축학도들이 카메라 하나 메고 방문해 공부할 정도.
우선 건물 자재인 느티나무 기둥은 세월의 풍파를 온 몸
으로 감싸안았는지 왁스칠이라도 한 마냥 반질반질하다.
이중으로 된 방문의 조각과 장식들이 섬세하고 고풍스럽
기도 매한가지. 사랑채는 정면 다섯칸과 측면 세칸 규모
로 앞 뒤 툇간이 있으며, 팔작지붕 건물이다. 현재 연일
정씨 후손이 거주하며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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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박자박 걸으면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남사마을돌담길 | 남사마을은 예로부터 선비와 명문가들
이 많이 살았던 남사마을은 앞서 언급
한 최씨 고가(경남 문화재자료 제 117
호), 이씨고가(경남 문화재 자료 제 1
18호), 이사제(경남문화재자료 제 328
호)를 비롯해 여러문중의 고가들이 고
즈넉하고 단아한 고가의 품격을 보여
준다. 남사마을에서는 서당체험, 염색
체험 등을 비롯한 민속 체험들과 고가
에서 민박이 가능해 가족 단위 여행객
,체험교육장으로 손색없다.
>>경남 산청 남사마을 자세히 보기
학의 양날개로 품은 마을 고성 학동 마을에는 |
<감탄을 자아내는 급경사의 돌계단으로 이뤄진 고가(좌)와 고성학림최영덕 고가 사랑채(우)>
경남의 마지막 돌담길 코스는 고성 학동마을이다.
행정구역상 경남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다. 학동마을은 1670년 경 전주 최씨의 선조가 맨처음 입촌해 지
지금까지 약 32년간 마을을 형성해 거주했다. 마을의 지세는 마을 뒤 수태산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산이 있으며, 마을 앞은 좌이산이 솟아 있어“좌청룡 우백호”의 지세에 학이 양날개로 마을을 품에 안
은 듯한 현상을 하고 있다. 학동마을은 본래 기와집이 많았던 마을인데, 초가지붕은 1970년대 새마을사
업으로 기와로 개량된 곳이 많다.
학동마을에서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돌담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퇴적암판석(납작돌,두께 2~5
㎝)과 퇴적암 풍화도양인 화토를 결합해 담장을 만든 것. 고성학동마을에서 문화재로 등록된 고가는 문
화재자료 제 178호 고성학림 최영덕 고가다.
학동마을에서 칠순나이만큼 오랜세월 생활해 오신 할머니 한분은 흐드러지게 떨어진 불두화(佛頭花)잎
을 쓸며“내가이렇게 할라꼬 한게 아이라~”라며 혀를 끌끌 차셨다.집안의 돌담 일부를 시멘트로 보수
한 것을 내내 마음에 두고 계신 듯 했다. 하지만 시멘트로 보수된 부분을 제외하면 고성학림 최영덕 고
가를 포함, 학동마을의 돌담은 독특한 돌담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돌과 흙으로 만들어진 돌담이 아
닌, 오직 돌만 쌓아만든 돌담이 보존돼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도 한다.
>>고성 학동마을 자세히 보기 |
| 공룡발자국화석 산지 고성 | 고성에서 공룡빼면 팥없는 찐빵
경남 고성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공룡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공룡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경
남 고성이기 때문. 고성은 대한민국 최초의 공룡 발자국 화석 발견
지(82년 1월)이자 미국 콜로라도,아르헨티나 서부해안과 더불어 세
계 2대 공룡발자국 화석 산지이기도 하다.
지난 5월, 6월에 걸쳐 세계 공룡엑스포가 열리기도 했던 고성은 평
일에도 일상적으로 고성공룡박물관이 상시 개장되고 있어 관람객의
발길을 끈다. 고성공룡박물관에는 공룡 진품7점과 복제 37점, 일반
화석108점, 모형공룡 17점 등 총 169점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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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
| 진양호의 저녁 노을과 일몰은 진주 8경 중에 으뜸이다. |
논개여! 그대는 어찌하여 뼈마디가 부서질 듯한 차디찬 연녹색 심강(深江)에, 목숨보다 소중한
그것이 무엇이간들 숭고하고 순결한 그대의 영혼을 던졌는가? 옥가락지 낀 그대의 가녀린 손,
약소 국가가 짊어져야할 역사의 울분을 껴안은, 의기어린 열 손가락 마디마디에 그대가 그토록
지키려한 자랑스런 조국의 모습을 새겨주고 싶어라.
논개여! 거센 외침의 역사를 품은 푸르른 남강 속으로 사라진 의로운 여인이여, 양귀비꽃보다
도 더 붉은 마음, 노을보다 더 고우니 그대의 넋은 우리들 가슴 속에 영원히 흐르리라.
|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 이하 생략
(변영로‘논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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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풍광의 도시 ‘진주’ 그리고 진주성
진주 8경이라 불릴 만큼 우리나라 도시 중 가장 아름답다는 진주.
대전 - 진주 간 고속도로가 열리면서 진주는 하루 만에 찍고 돌아올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문화와
예술의 혼이, 천년의 역사가 올올히 살아 있는 진주는 임진왜란 삼 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 전투의 대
첩지로, 의기 논개가 적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충절을 다한 충정의 도시다.
진주를 뒤덮고 있는 굽이굽이 푸른 물결 남가람(남강)을 따라 도시로 들어 가 보자. 도심에서 그리 멀
지 않는, 길 떠난 나그네도 한 시름 쉬었다가 가고 싶은 곳, 바로 진주성의 아찔한 절벽과 성벽이 마
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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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에서, 앞에서, 어느 쪽에서 봐도 절경인 촉석루 | 논개의 충절이 녹아든 촉석루와 의암 |
촉석루 그림자 남강에 잠기고 흰 구름 두둥실 떠 물새들 노니네
- 진주성의 꽃 촉석루
진주성으로 가는 길은 보슬비가 한창이었다.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 속으로 몸을 던진 그 날의
날씨는 어땠을까? 조금 생뚱맞은 상상을 해봤다. 과연 오늘처럼 옷을 시나브로 적시는 보슬비였다면 왠
지 더 서글펐을 것 같다. 그 날 내렸던 비는 논개의 눈물일까? 아니면 조국을 잃어버린 한 많은 민중들
의 눈물이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우리 조국의 딸들을 농락한 왜적과 나라를 판 변절자들이 앉은 촉석루
의 더러움을 씻어주는 비였을까?
촉석루는 남강이 품속으로 안겨드는 곳에 푸른 물결과 장엄한 벼랑위에 단정하고도 위엄 있게 자리잡고
있어 영남 제일의 절경을 자랑한다. 특히나 강 건너 편에서 촉석루를 바라보면 하늘을 향해 휘어진 처
마의 곡선이 하늘에 닿아 있고 남강 가 바위벼랑 위에 장엄하게 높이 솟아 진주성을 어머니 젖가슴처럼
품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멀리서, 옆에서, 안에서 보아도 그야말로 절경. 밀양 영
남루, 남원 광한루와 함께 우리나라 삼대 누각 중 하나로 촉석루는 고려 고종 28 년(1241)에 창건하여
8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다.
의암 위에 찬 비, 춘삼월 꽃잎처럼 살포시 날려 와 너울거리네
- 두려움조차 감동으로 승화시킨 곳, 의암과 의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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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개의 영정이 모셔진 의기사 | 논개가 순절한 의암 |
남강의 푸른 물결 위에 떠 있는 고고한 바위, 위험한 바위라 하여 위암이라 불렸던 이 바위는 전설 때문
인지 촉석루를 떠받치는 벼랑보다도 강하고 당당하게 느껴진다. 후에 이 바위는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한 후 의암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단다. 의암은 촉석루 오른쪽 계단 밑으로 내려
가야 있다. 조그마한 문을 통과하는 순간 촉석루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 졌다.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11m 의 절벽, 자제력이 무의미해져 후들후들 거리는 다리, 마치 금방이라도 저 연녹색 물결 속
으로 스르륵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묘한 흡입력. 게다가 흐르기를 멈추었는지 연녹색의 너무나 고요한 물
결 위에 의기 논개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 환영(幻影)이 느껴져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고작 해 봐야 그 때 그녀의 나이 방년 19세. 현재의 내 나이보다도 한참이나 어린 여인네가 감당하기 어
려운 고통이었을진데 어찌하여....
의암에서 다시 올라와 촉석루 입구 반대쪽으로 가면 의기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인 '의기사'가
있다. 논개의 구국충정을 심심(深心)히 위로하고자 기자는 정성껏 절을 올렸다.
“그대의 붉은 마음 노을보다 더 고우니 4백년 물굽이도 이제금 푸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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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 가는 길은 아주 멋진 산책로가 된다 | 역사적 의미가 깊은 국립 진주 박물관 |
그대들의 애국 충정, 승리의 나팔 소리 되어 남강에 울려 퍼지도다
- 국립 진주 박물관, 호국사, 창렬사 외
촉석루를 나와 성벽을 따라 걸으면 아주 멋진 산책로가 펼쳐 진다. 주변이 아주 잘 꾸며져 있어 저절로
발길이 늦춰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길이였다. 더욱이 평일이라 인적이 드물고, 분위기 있게 보슬비까지
내려 감흥이 최고조로 차올랐다. 길을 따라 한 5분쯤 걸어갔을까? 임진왜란 역사의 보고 ‘국립 진주 박
물관’ 이 나온다. 이 곳에는 임진왜란 관련 유물 800여점과 김용두 선생의 기증품 1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는 두암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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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도청의 정문으로 사용된 영남포정사 | 박물관을 나와 잘 다듬어 놓은 정원같이 오롯한
길을 따라 걸으면 경상남도 관찰사 영의 정문이
었다가 한 때 경남도청의 정문으로 사용 되기도
했던 영남 포정사가 보인다.
포정사 내려가는 길의 좌측에는 진주성의 수호상
인 김시민 동상이, 포정사를 지나 좀 더 위로 걸
으면 임진 왜란 시 승군의 근거지가 되었던 호국
사와 진주성 싸움에서 장렬하게 순절한 분들의
신위를 모시기 위한 사당인 창렬사(이 곳에 충무
공 김시민 장군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가 보이는
데 두 곳 모두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갈 수는 없었
지만 그들의 당찬 위용이 느껴져 경외스럽기까지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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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시 승군의 근거지인 호국사 |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신위를 모신 창렬사 |
발길이 닿는 곳, 어느 곳이든 쉼터이고 사색의 공간인 진주성. 오래전 역사속으로의 여행은 진주 8경중
에 하나인 진양호의 노을을 보기 위해 진한 미련을 남긴 채 되돌아왔다.
길은 언젠가 다시 돌아올 미련을 남기고 떠나는 것이 아름다운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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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물길이 모여 만들어진 아름다운 호수 진양호 |
붉은 노을에 노 저어라, 저무는 것이 이다지도 아름다울 줄이야
- 저녁노을의 풍광 진양호
문득 사무치가 바가 있을 때 진양호로 달려가세
거기 해 어스름 스러지기 직전의 노을을 보세
때로는 저무는 것이 이다지도 아름다울 줄이야
붉은 물감 진양호에 풀어놓은 날.
진주 시내에서도 가볍게 가볼 수 있는 도도한 지리산의 물길이 모여 만들어진 아름다운 낭만의 호수 진
양호. 특히나 저녁노을이 아름다워 진주 8경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진양호 내 시원하게 트인 널직한 진
양호반과 지리산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휴게 전망대는 ‘일년 계단' 과 연결되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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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요계의 황제 남인수 동상 |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는 일년계단 |
그 외에도 백두산 호랑이 사자, 기린 등 40여종 300여 마리의 야생 동물을 직접 관람할 수 있어 어린이
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진양호 동물원, 놀이동산인 진주랜드, 가족 쉼터와 물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물문화관이 있다. 그리고 남인수 광장에선 가요계의 황제, 남인수의 노래가 구성지게 울려 퍼지고 진양
호가 내려다 보이는 찻집에선 붉게 스미는 저녁노을의 풍광까지 감상할 수 있어 호반의 정취를 물씬 느
낄 수 있다.
“밀양요? 똑같아예, 딴 데하고.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예.”
영화‘밀양’속에서 신애(전도연 분)의 동생이‘밀양이 어떤 곳이에요’라고 묻자 종찬(송강호 분)이 이
렇게 말한다. 비밀스런 햇볕을 찾아 아무 것도 없는 경상남도의 작은 도시 밀양을 찾은 한 여자와 그 여
자의 주위를 맴돌며 구애의 몸짓을 하는 한 남자의 러브스토리이자 삶을 다룬 영화 <밀양>. 얼마전 60회
를 맞은 세계 3대 영화제인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도연이 주연한 영화이기도 한‘밀양’의 대부
분의 장면은 그 제목처럼 밀양에서 촬영됐다.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작은 도시 밀양(密陽)의 지명과 ‘비
밀스런 빛(Secret Sunshine)’이라는 뜻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영화‘밀양’.
비가 내린 후 구름 사이로 내비치던 한 줄기 햇살, 타는 듯 머리 위에서 작열하는 태양 등 매일 뜨고 지
는 태양이지만, 불리는 이름도 내리 쬐는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그 중에서도 비밀스러운 햇볕은 어떤 것
을 말하는것일까? 비밀스런 햇볕이란 의미를 지닌 작고 아담한 도시‘밀양’으로의 여행에 영화‘밀양’
이 함께 동행했다.
영화 속‘밀양’, 밀양 속 영화‘밀양’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밀양역. 역내 대합실에는 영화 "밀양" 의 스틸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가볍지않으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슬프지만 절망하지는 않는다. 두드려주며 괜찮다 위안을 안겨주기도 하
고, 슬픈 이에게는 다시 웃을 수 있도록 웃음을 안겨주기도 한다. 때문에 과장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저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소소한 일상을 담고 있다. 그래서 더욱 가슴 절
절하다. 그리고 신애의 피아노학원과 종찬의 카센터, 극 중 인물들의 소소한 일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시 밀양. 비록 영화는 끝이 나고, 배우들은 퇴장할지라도 밀양의 하루는 똑같이 흘러갈 것이 뻔하다.
영화를 보고 코끝이 찡하거나, 가슴이 먹먹하도록 감동이 느껴지면 지금 밀양행 기차를 타보자. 아니 신
애처럼 자가용을 몰고 드라이브 삼아 나서보는 것도 좋다. 혹여 길가에서 타이어에 펑크라도 나면, 순박
한 얼굴의 종찬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불현듯 우리의 일상속에서 아주 특별한 일이 생길 것만 같
은 밀양으로 지금 떠나보자.
소도시의 정취가 오롯이 남아있는 가곡동 일대 |
영화의 주무대가 된 가곡동 일대 도로와 영화 속 교회인 밀양남부교회
쉼 없이 흐르는 푸른 남천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정’이 넘쳐나는 곳, 누구에게든 따스하고 정
겨운 땅인 밀양. 먼저 영화의 주요 부분이 촬영된 곳은 밀양역 근처 가곡동 일대다. 이신애준 피아노학
원과 약국이 있던 곳으로 주인공 신애와 아들 준이가 밀양으로 내려와 생활하게 되는 주된 공간이며, 영
화의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는 곳이다. 이창동 감독이 이곳을 촬영지로 선정한 이유는 바로 소도시의
정취미가 오롯이 남아있기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정작 영화 속 장면들을 만들어낸 세트장은 볼 수
가 없다. 영화촬영이 끝나자마자 모두 철거되었기 때문. 영화 속 그 감동을 다시 재연하고파 찾는 이들
에게는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남아있는 곳은 남자주인공 송강호와 전도연이 함께 다녔던
밀양남부교회. 약 9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밀양의 대표적인 교회다. 그리고 시청 서편 서광 카센터는 영
화 속 마흔을 바라보는 노총각 종찬이 홀로 운영하는 카 센터. 종찬의 주변인과 우리네 일상이 영화가
아닌 마치 현실인양 비춰지는 곳이다. 또한 신애의 기분 전환을 위해 종찬이 특별히 친구가게에 예약을
하지만 결국 바람을 맞게 되는 장소인 중화요리점은 교동에 있는 다래현이다. 주인이 직접 요리하는 손
짜장이 별미다.
자연이 밀양에 준 대형냉장고 …
불가사의한‘얼음골’의 비밀 |
얼음은 사라졌지만, 시원한 냉기는 여름철 더위를 물리치기에 충분하다
영화세트장은 사라졌을지라도, 밀양에는‘보석’과도 같은 관광명소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삼복더위에
주렁주렁 얼음이 얼고, 삼동 한 겨울에도 얼음이 녹아 더운 김이 오른다는 신비의 계곡이 있다. ‘밀양
의 신비’라 불리는 얼음골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시대 의학자인 유의태가 죽으면서 제자인 허 준에게
자신의 유체를 해부하게 해 의술을 연구케 한 곳으로 전해진다. 주변 지형은 동, 서, 남 3 면이 깎아지
른 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올해에는 유감스럽게도 얼음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밀양시
에서는 올 초 봄비가 많이 내려서 얼음이 모두 녹아 없어진 것이라 이유를 밝히고 있다. |
얼음골 주변 가마볼 폭포수와 계곡의 모습들
허나 얼음골의 결빙 지점은 영상 1~2도를 유지하고 있고, 계곡정상에서부터 내려오는 시원한 냉기가 온
몸을 엄습한다. 얼음골에서 얼음을 보지 못해 실망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얼음골 외에도 계곡이 마
치 가마솥을 걸어놓는 아궁이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가마볼 폭포수, 둘레 30m, 높이 10m의 대형 물엉
덩이‘호박소’등 볼거리가 충분하기에 실망감은 금세 날아가 버릴 터 .
호국불교의 기치 올린 사명대사의 본거지‘표충사’ |
표충사에는 국보 제75호인 청동함은향완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밀양의 신비 중 또 다른 하나는 표충사인데 가는 길에 다시 영화촬영지와 마주하게 된다. 바로‘길벗’
식당이다. 영화 속 종찬의 소개로 신애와 남동생이 지역 유지를 소개받는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표충사
는 653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죽림사라 불리던 것을 흥덕왕 셋째 왕자가 이 곳 약수를 마시고 악성피부
병을 치유하고 영정사라 칭했다. 이어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사명대사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국가에서
표충사라 명명한 절이 바로 오늘에 이른다. 불교와 유교가 통합된 한국사찰의 유연성을 엿볼 수 있어서
그 가치가 더하는‘표충사’에는 국보 제75호인 청동함은향완과 삼층석탑, 사명대사의 금란가사와 장삼
을 비롯한 대광전, 만일루, 팔상전, 명부전 등 법당건물이 모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밀양 4대 신비 중 하나인 표충비
사명대사와 연관된 유적지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표충비이다. 이 비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것은 국가에
중대사가 있을 때를 전후해 비석에서 땀이 난다 하여 땀 흘리는 비로 유명하며, 사명당의 충의정신에 대
한‘영험’이라 하여 신성시하고 있다.
애절한 풍경소리 만들어내는
밀양팔경 중 제1경‘영남루’ |
당대 명필가와 대문장가들의 시문 현판이 즐비한 영남루
조선시대 3대 명루 중 하나로 선정될 만큼 아름답기 그지없는‘영남루’도 빼놓을 수 없는 밀양의 명소.
내부 구조는 물론 정자에서 바라보는 밀양강천의 아름다움을 이루 말할 길이 없다. 먼저 내부를 들여다
보면, 기둥과 기둥 사이를 연결한 충량과 퇴량, 대형 대들보가 모두 화려한 용신으로 조각되어 있는가하
건물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당대 명필가와 대문장가들의 시문 현판들이 즐비하다. 영남루를 휘감아돌아
광활하게 펼쳐지며, 밀양강을 끌어안은 풍광은 아름다운 그 자체이다. 누각의 처마 끝, 눈을 감으면 시
한 수에 풍류를 즐겼을 성현들의 즐거움이 배여 있는 듯 하다. |
밀양강을 끌어안은 풍광이 아름다운 영남루
누각 초입엔 대중작곡가 박시춘의 생가가 있고, 영남루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조선 명종때 죽음으로써 순
결을 지킨 밀양부사의 딸 아랑을 추모하는 아랑각도 있다. 아랑의 애틋한 전설을 뒤로 한채 위쪽 무봉사
에 오른다. 무봉사는 밀양강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 그림 같은 풍경을 지닌 사찰로 예로부터 시인 묵객
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바로 이 곳에서 밀양의 4대 신비 중 하나인‘태극나비’를 볼 수
있다.
영화를 만든 8할이 사람이라면,
나머지는 도시‘밀양’ |
아랑의 애틋한 전설이 깃든 아랑각
영국의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박지성 선수의 이름을 딴 수원의 박지성길과 지성공원이 있듯이 영화
‘밀양’의 주 촬영지였던 밀양에는 주연배우 전도연과 송강호의 이름을 딴 길이 생겼다. 가곡동 인근도
로의‘전도연로’와 ‘송강호로’등 영화의 촬영지는 계속 이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과 여행객을 위해 보
존될 예정이다. 최고의 감동을 안겨준 영화‘밀양’에 대한 도시 밀양이 바치는 오마쥬인 셈이다. 관객
이 사랑하고 세계가 인정한 영화 <밀양>의 감동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도시 밀양. 영화를 만든 8할이
사람이었다면, 그 나머지는 고즈넉한 도시 밀양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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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여행지]
육십령 동편, 함양 화림동 대전진주간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이전 전라도에서
경남 함양 땅을 밟기 위해서는 여지없이 거쳐가야 하는
육십령에는 사연도 많았을 것이다. 서해안에서 나는 천
일염을 소등에 바리바리 짐을 지우고 경상도 땅에 팔러
가는 소금장수에 관한 애환은 남달랐을 듯 싶다. 함양
땅에서 장수로 넘어가자면 굽이굽이 도는 산모롱이를
육십리를 걸어가야 한다하여 육십령이라고 했다고도 하
고, 현재 육십령 정상 휴게소가 있는 곳에는 왕께 바치
는 조공이며, 서해안에서 나는 소금을 내다 파는 소금
장수들을 노린 산적 떼들이 들끓어 사람의 수가 60명은 되야 무사히 재를 넘을 수 있다 하여 육십령이란
지명을 얻게 됐다고도 한다.
육십령에는 정상을 전후로 두개의 휴게소가 있다. 장수 쪽과 함양 쪽의 휴게소인데 함양 쪽 휴게소가
원조 격이다. 하지만 넓은 주차장이 마련된 전라도 방향 휴게소에서 바라본 장수 일대의 경치가 빼어나
다. 육십령 고개에서 함양의 화림동을 향하다 다소 급한 내리막이 끝나는 지점 좌측에 덕유산국립공원
표지판이 있다.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면 남덕유산 기슭에 조용히 자리 잡은 상남리가 나오고 포장이 끝
난 곳은 국립공원 남덕유산 매표소로 이어지는 등산로와 남령을 너머 거창으로 가는 길이다. 남령을 전
후해 다소 험한 비포장길이 있어 승용차를 이용한 여행객이라면 영각사를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
다.
울창한 수림에 둘러 쌓인 영각사는 해인사의 말사이다. 신라시대 창건한 사찰로 조선 영조때 상언이
장경각을 짓고 하엄경 판목을 봉안하였던 곳이다. 상언이 이 절의 승려들에게 커다란 수해가 날것을 대
비해 절을 옮기라고 예언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다 큰 홍수로 절이 떠나갔다고 한다. 그 뒤 1907년 화재
로 소실되었다 곧바로 중창되었으나 6.25 전쟁을 격으며 또 한번 소실되었다 1959년 다시 중건되었다.
건물로는 극락전과 화엄전. 삼성각 요사채등이 자리하고 있다.
함양군 서상면소재지에는 임진왜란 때의 의녀 논개의 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묘역이 있는 방지마을
의 진입로는 도로개설공사가 한창이나 승용차가 다니는데는 지장 없다. 도로 우측에는 남덕유산에서 발
원한 물과 옥산천, 송계천의 물이 합쳐지며 대전~통영간고속도로(중부고속도로)와 26번국도 사이를 흘
러 내려간다. 16세기 이 지방 일대 사림문화의 꽃을 활짝 피웠던 정자문화의 보고라 일컫는 화림동 계곡
은 황석산 들머리인 봉전리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봉산휴게소에 차를 주차하고 계곡 아래쪽으
내려서면 도로에서 볼 수 없던 아름다운 정자와 바위 청정지수를 만날수 있다. 화림교라는 무지개다리
를 건너면 화림동 계곡을 굽어볼 수 있는 거연정이 나온다. |
| 거연정과 현대판(?) 무지개다리 | 정자 주위를 맴도는 검푸른 계곡 물은 깊이를 가늠
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거연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
의 규모를 지니고 있다. 거연정의 아름다움을 감상하
기 위해서는 도로로 다시 올라와 계곡을 횡단하는 잠
수교 중간쯤에서 바라보는 것이 감상 포인트. 짙푸른
녹음과 집채만한 바위를 에 돌아 나가는 청정옥수,
마치 구름 위를 건너는 것 같이 놓인 무지개 다리인
화림교.
거연정에서 두손을 입에 모아 외치면 그 소리가 끝
나는 곳쯤에 군자정이 놓여 있다. 조선 중종 모헌공
이원숙이 무오사화를 피해 낙향하여 세운 것이라는
군자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각지붕으로 되어 있다. 정자 자체를 놓고 보면 꾸밈없이 단아한 군자
의 기품을 느낄 수 있지만 바로 옆에는 식당이 있어 어쩐지 식당의 부속 건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
| 동호정 나무계단 | 군자정에서 하류 쪽으로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에 중국의 동호를 연상하
며 이름을 지었을 듯 싶은 동호정이 자리하고 있다. 장만정의 후손이 1890
년에 세워졌다는 동호정은 송림에 둘러 쌓여 있으며, 정자를 받치고 있는
기둥이 구불구불한 자연목을 그대로 살려 운치를 더해 준다. 동호정 계단은
마치 도끼로 내려쳐 다듬은 듯 깍여 있어 이를 오르내리는 연인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손을 잡게 해 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호정 앞에는 이백평
규모의 암반이 들어 나 있는데 이 암반을 차일암이라고 부른다. 태양을 가
린다는 뜻의 차일은 아마도 사림문화가 한창 꽃 피웠을 무렵 이 곳에 차일
을 치고 제마다 기예를 겨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때의 흔
적이 였는지 암반에는 영가대, 금적암등의 한자가 새겨져 있다.
본래 안의계곡이라고도 불리우는 화림동계곡에는 팔담팔정이라하여 8개의
정자가 세워졌다고 하는데 현재는 4개의 정자만을 볼 수 있다. 4개의 정자 중 주위 풍광은 단연 농월정
이 뛰어나다. 천평 무릉반석 위에 덕유산, 황석산, 괘관산등 천미터 대의 고산에서 발원한 물들이 이 앞
지나간다. 1721년 지족당 박명부가 풍류를 즐기기 위해 지은 농월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이며,
가운데에는 한 칸 짜리 바람막이 작은 방을 두고 있다. 지붕은 팔작형이며 추녀 네귀에는 활주를 세우고
정자 삼면에는 계자난간을 둘러쳐 놓았다. |
| 농월정 계곡(안의계곡) | 농월정 정자에 앉아 천평 반석을 바라보면 그 옛날
비들이 이 곳에 이름을 지어주지 않을 리 없다. 달과
함께 노니는 곳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반석이름은 월연
암이다. 곧 달빛이 어리는 바위라는 뜻이다. 농월정을
지은 박명부는 조선 선조때 학자이기도 하고 의병대장
이기도 했던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농월정 아래
에는 박명부의 업적을 기린 휘호가 적혀있는데 "知足
堂杖銶之所" 주석을 달자면 "지족당이 지팡이를 짚고
신을 끌던 장소" 라는 뜻이다.
아이들을 대동한 가족여행이라면 이 곳 화림동 계곡
인근에 있는 경상남도산촌유학학교에 들려보기를 권
한다. 안의면에서 거창 방면 26번 국도상에서 용추휴게소에서 계곡으로 들어서면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데 한국의 자생식물을 화단으로 조성하여 일일이 팻말을 붙여 자연학습에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간단
한 극기시설물을 만들어 놓아 언제든 자녀와 함께 들려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학교 측에서 개방을 해 놓
았다[4월여행지] 경남 남해 1024번 해안도로, 감추어둔 비경 |
| 망운산 철쭉 군락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
여행을 하다 보면 조물주가 편애한 땅인 듯, 볼거리가 몰려 있는 지역을 간혹 만나게 된다. 갈 곳이 넘
쳐 나는 이 지역들은 한번 여행으로 경이로운 그 모습을 모두 보고오기 어려운 곳들이다. 경상남도 남
해도 그 중 한 곳이다.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돌아보는 곳곳이 모두 사진 명소일 만큼 아름다
운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다. 거기에 계절의 붓칠까지 더해져, 봄날의 남해는 어느 곳 하나 버
릴 곳이 없다.
새로 놓인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너도 보고 보리암과 물미해안도로 등 굵직한 볼거리들을 보고왔다해서,
남해를 다 여행했다 말하지 말자. 유명세에 밀렸을 뿐이지 그보다 못하지 않은 남해의 볼거리들이 줄줄
이다. 이번에 떠나보는 남해 여행에선 1024번 해안도로를 따라 숨겨진 남해의 비경들을 만나본
다. |
| 물건리 어부림(좌)과 남면 평산의 바다풍경(우) |
정겨운 농촌마을, 가천 다랭이마을
남해에는 해안관광도로가 두개 있다. 하나는 물건항과 미조항을 잇는 물미해안도로(3번 국도)로 여러
영화의 배경이 되었을 만큼 그 아름다움이 빼어나다. 다른 하나의 해안관광도로는 남해읍 남면의 해안
을 구비구비 따라가는 남면해안관광도로(1024번 지방도로)인데, 물미해안도로보다 뒤지지 않는 명소들
이 산재해 있다. 이 도로 최남단에 위치해 있는 가천마을은 일명 다랭이마을로 불리고, 가천을 지나
항촌, 사촌 등 아름답고 고즈넉한 어촌 마을들이 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경사진 산비탈을 일구어 만든 계단식 논과 밭을 다랭이(다랑이)라 부른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고
경사진 고랑길 때문에 일일이 지게로 날라야 하는 수고로움 탓에 언제부턴가 우리 산하에서 사라진 이
농작지는 농부의 부지런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쌀 한톨이 귀하던 옛시절에야 척박한 이 땅에도 열심
히 농사를 지었겠지만, 쌀 걱정 없는 세상이 도래하면서 농부들은 더 이상 생산적이지 않는 노동에 매
달리지 않는다. |
| 가촌다랭이마을 풍경. 밭에서 딴 마늘쫑을 다듬는 막걸리집 주인할머니(좌) |
도시에서 낳고 자란 기자가 실제로 다랭이밭을 처음 본 것은 국내가 아니라 발리 등의 동남아사아에서
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그 모습을 드디어 이번 남해 여행에서 마주하게 된 것이
다. 농부의 정성이 듬뿍 담긴 아름다운 다랭이밭이 이렇게 남아있었단 말인가. 처음 마주하고서는 그
저 푸르름이 층층이 이어지는 그 특이한 모습에만 눈길을 빼앗겼다.
계단식으로 들어선 다랭이밭에는 남해의 온 대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마늘이 촘촘히 심어져 있다. 마
을 안으로 들어서서야 다른 곳이 아닌, 남해에서 다랭이밭을 마주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
답은 이곳의 부지런한 농부들이 쥐고 있었다. 먹고 사는데 지장 없는 세상이 돌아왔다 해도, 아무리
비탈길의, 아무리 작은 다랭이밭이라 해도, 놀리지 않고 부지런히 농사짓는 성실한 농부들이 이곳 남해
의 농부들이다. 그들의 근면함 덕으로 다랭이밭의 농산물들이 푸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것이리라.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부지런한 농부들이 사는 곳이 남해일 거라는 지인의 말이 다시금 되새겨진다. |
| 남해 남면 1024번 해안도로를 달리면 만나게 되는 사촌마을(좌)과 가천다랭이마을(우) |
설흘산과 용봉산을 위로 두고, 도로에서 해변으로 내려가는 언덕배기에 가천마을과 다랭이밭이 함께 들
어서 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좁은 골목길을 구석구석 누비며 집 구경도 하고, 암수바위나 밥무덤 같
은 재미난 관광지도 둘러본 후에, 시골할매 막걸리집의 평상에 앉는다. 밭에서 막 뽑아온 마늘쫑에 된
장 찍어 안주 삼고, 컬컬한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킨다. 가천마을의 여느 집들처럼 막걸리집 담 너머에
도 남해의 푸른 바다가 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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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운산 정상에서 바라본 광양 방향 |
하늘이 내린 남해바다 전망대, 망운산
자고로 산이란 정상에서 내려다볼 때 시원하게 바라보이는 조망이 좋아야 한다. 힘들게 올랐던 수고로
움이 경치를 보는 순간 시원하게 풀리기 때문에, 산을 오른 맛의 절반 이상은 정상의 경치가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망운산(해발 786m)은 무엇보다도 전망에 있어서 남해바다 최고라 말할 수 있는 산
이다. 가천마을에서 1024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약 15분 거리에 위치한다.
망운산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자면, 저 멀리 서북쪽으로 어슴프레 보이는 지리산 천왕봉을 비롯해, 하
동의 금오산, 광양의 백운산 등 남해를 애워싼 한반도 남쪽의 산봉우리들이 사방면에서 파노라마로 펼
쳐진다. 그뿐인가, 바다를 바라보면 시야는 더욱 넓다. 서쪽으로는 전남의 광양, 여수가, 동쪽으로는
사천, 고성의 섬들이 올망졸망히 떠 있어, 남해안 중심의 경치를 말 그대로 한눈에 목도할 수 있다. 비
행기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고서야 이런 탁월한 전망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하늘이 내린 천
혜의 자연 전망대에 탄복이 절로 난다. |
| 봄날 남해의 대지는 자운영밭(좌) 아니면 마늘밭(우)이다. |
5월의 망운산은 더욱 특별하다. 산행길 뿐 아니라 정상부에 넓게 자리한 철쭉 군락에 꽃분홍 꽃망울이
일제히 터져 봄기운이 물씬하다. 꽃구경, 경치구경에 하루 해가 짧으니, 철쭉 꽃 너머 남해바다로 붉
은 해가 지는 일몰까지 보고 하산한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1024번 해안도로에서부터 등산할 경우 4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다소 험한 코스라 만만히 볼 수 없는 산
행길이지만, 망운산 중턱에 위치한 화방사까지 차로 갈 경우 1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이마저
도 부담스럽다면 정상까지 계속 길이 나있기 때문에 아예 승용차로 이동할 수 있어 시간이 넉넉치 않거
나 가족을 동반한 여행객들에게 반가운 일이다. 특히 일몰을 보고 하산한다면 차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
하다. 서면 중리마을에서 KBS중계탑 방향으로 끝까지 오르면 망운산 정상이나, 가파른 길이니 운전에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망운산 자세한 정보 보기 |
| 호구산에 위치한 남해 용문사 풍경. 푸른 차밭이 인상적이다. |
용문사, 계곡물 시원하고 녹차밭 푸르른…
온통 마늘밭 아니면 자운영밭인 남해의 들녘은 봄볕으로 더욱 화사하다. 1024번 도로를 달려 들녘을 지
나 호구산(550m)으로 오르려니 오월의 녹음이 마냥 싱그럽다. 계곡소리 시원한 차도를 오르면 산 속에
파묻힌 용문사를 만나게 된다. 숲의 정취와 어우러진 용문사 뒷편으로는 녹차밭이 넓게 자리하고 있
다. 산의 정기와 차밭의 푸르름을 느껴보기에 이만한 사찰이 없을 것 같다. 산신각 뒤로, 파릇한 새순
이 돋아나는 차밭을 따라 올라서면 숲과 사찰 그리고 남해바다가 만들어내는 정경이 감탄을 자아낸다.
용문사를 애워싼 호구산, 금산의 산줄기들이 삼각형을 이루고 그 가운데에 호수처럼 담겨있는 앵강만
의 남해바다가 들어가 있다.
용문사에는 볼거리도 풍성하다. 임란 때 소실되었다가 숙종 때 재건된 천왕각에는 사천왕이 모셔져 있
는데, 탐관오리를 발로 밟고 있는 특이한 모습에서 민초들과 가깝게 지내온 용문사의 이력이 느껴진다
불자가 많아 법당이 비좁아 뜰에서 법회를 올릴 때 부처님 상을 내걸었던 괘불대, 임란 때 1,000명의
승병들의 밥을 퍼 담아 쓰던 거대한 구시통(밥통) 등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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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여행지] 춘삼월의 거제도는 온통 꽃 세상이다. 길가에도, 바닷가 언덕배기에도, 외딴 섬 산비탈에도 막
피기 시작 한 봄꽃들이 눈부시도록 아리따운 꽃 세상을 이루었다.
거제도에서도 특히 14번국도의 종점과 가까운 남부면, 일운면일대의 산자락과 바닷가에는 다사롭고도 화
사한 봄기운이 가득하다.
거제도에서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하는 것은 역시 동백꽃이다. 염려(艶麗)한 선홍빛의 동백꽃은 이미 정
월부터 하나 둘씩 피어나기 시작해서 3월 중하순경이면 절정기에 들어선다. 동백꽃은 거제도의 어디나 흔
하지만, 특히 동백나무 가로수가 줄지어 늘어선 14번 국도, 옥포와 장목면 사이의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
는 58번 지방도, 거제 해금강의 진입로에서는 그야말로 ‘꽃멀미’가 날 정도로 동백꽃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의 동백은 사람의 손길을 많이 탄 덕택에 나무의 외형도 하나같이 단정하고 꽃부리도 유난히 탐스럽
다. |
| 지심도의 아름다운 동백 숲길 | 천연의 동백숲을 보려면 장승포항에서 배를 타고 지심도(只心島)
로 들어가야 한다. 한겨울에도 따뜻한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에는
동백숲도 흔하고 동백섬도 많다. 하지만 지심도처럼 섬전체가
동백나무에 뒤덮여 있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동
백섬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섬으로 꼽힌다.
육지에서 바다 건너보이는 지심도는 커다란 숲 하나가 바다에 두
둥실 떠 있는 듯한 형상이다. 너비500m, 길이 1.5㎞ 가량의 섬에
는 후박나무 소나무 동백나무등 37종에 이르는 식물이 우거져 있
는데, 전체면적의 60~70%는 동백숲이다. 더욱이 이곳의 동백숲은
지각없는 도채꾼들의 손을 거의 타지 않아서 등걸의 굵기가 팔뚝
만한 것부터 한 아름이 넘는 것까지 아주 다양하다. 워낙 동백나
무가 빼곡하다보니 소나무와 다른 상록수들은 눈에 잘 띄지도 않
는다.
지심도는 산책로가 아주 잘 닦여 있다. 선착장과 마을사이의 비
탈진 시멘트도로 말고는 대체로 평탄한 오솔길이다. 조붓한 이길
을 따라 두세시간만 걸으면 섬 전체를 샅샅이 둘러볼 있다. 붉은
꽃송이가 수북하게 깔린 동백나무 터널, 아름드리 나무들에 둘러
싸인 아담한 학교(폐교)와 농가, 한낮에도 어스레할 만큼 울울창창한 상록수림, 동박새와 직박구리의 아
름다운 노랫소리…. 이렇듯 정감 어린 오솔길을 자분자분 걷다보면 별천지에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지심도의 동백꽃은 1월초부터 피기 시작해서 봄기운이 절정에 이르는 4월중순경에는 대부분 꽃잎을
떨어뜨린다. 약 5개월 동안 지속되는 개화기의 어느 때에도 동백꽃을 구경할 수 있지만, 꽃이 가장 많이
피는 시기는 3월 초순에서 3월 중순 사이이다. |
지심도행 도선(渡船)이 들고나는 장승포항에서는 다시 14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향한다. 장승포항에서
거제해금강까지의 70리 길은 줄곧 바다를 바라보며 달리는데,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세파에 찌들었던 마
음이 한꺼번에 확 풀릴 만큼 시원스런 해안드라이브코스이다. 꽃이 없는 철에도 아름답고 편안하다. 특
히 3월 중순에 들어서면 막 꽃망울처럼 터트리기 시작한 복사꽃, 산벚꽃, 유채꽃, 진달래가 나그네의 마
음과 눈길을 사로잡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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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차마을과 홍포 사이의 해안도로변 풍광 | 여차몽돌해변의 봄날 풍경 |
남부면 다포마을에서 시작돼 여차마을과 무지개마을을 거쳐 면소재지인 저구리까지 이어지는 해안
도로는 거제도뿐만 아니라 남해안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장 풍광 좋은 해안도로 중 하나이다.
이 길이 지나는 해안절벽 아래로는 눈이 시도록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고, 그 바다에는 병태도, 대매물
도, 소매물도, 가왕도 다포도 등의 크고 작은 섬들이 오롱조롱 떠 있다. 특히 까마득한 벼랑길에서 내려
다보는 여차리 몽돌해변의 풍광이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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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동해상공원의 비너스가든 | 거제도 남동부해안의 봄꽃을 찾아가는 여정에서는 해금강과 외도를
빼놓을 수 없다. 거제 해금강은 중언부언할 필요도 없을만큼 이름
난 명승지이고, 외도는 이창호씨 내외의 오랜 땀과 눈물로 새롭게
단장된 해상공원이다. 이 외도해상공원은 700여종의 수목들이 울창
하고, 숲 사이사이에는 비너스 가든, 조각공원 등 13개의 테마정원
과 지중해풍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머나먼 이국땅의 어느 휴양지
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외도 가는 배는 장승포항, 학동해수욕장,
구조라, 해금강 등지의 유람선터미널에서 수시로 출항한다.
선진만 벚꽃 여행
4월은 벚꽃 감상 여행의 계절이다. 벚꽃하면 우선 진해의 군항제를 떠올리게 되지만 "나무 반, 사람 반"
이라는 표현이 제격일 정도로 인파가 붐비는 것이 흠이다. 진해에 비해 벚꽃을 한가로이 감상할 수 있는
명소가 사천시 사천만에 자리한 선진공원이다. 벚꽃은 어느 날 밤 이슬 맞으며 갑자기 피어났다가 한 며
칠 반짝하고 바람 심한 날 꽃비로 떨어지는 일생을 보여준다. 그토록 동족성이 처절하기에 제 날짜에 맞
춰 벚꽃이 만개한 모습을 감상하기란 동백꽃이나 산수유 등 다른 꽃들에 비해 힘든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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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공원 벚꽃 |
남해고속도로 사천IC를 나가면 3번 국도가 삼천포로 이어진다. 용현면 신복리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2.6km를 들어가면 선진 공원에 닿는다. 이 공원은 평소에는 한적한 공원이지만 해마다 벚꽃이 만개하면
하늘을 가리는 황홀경을 연출하는 이색지대이다. 선진공원은 선진리성(사적 제50호)안에 자리잡고 있다.
임진왜란 와중이던 조선 선조 30년 (1597)에 왜군들이 이곳에다 성을 쌓고 침략의 거점으로 삼았던 요새
였다. 돌과 흙으로 쌓은 성은 현재 약 1km의 성곽이 남아 있다.
이 공원에는 벚나무 7백여 그루가 있다. 선진공원에 벚꽃이 만발하면 "꽃에 가려 하늘이 안보이고, 사람
에 가려 땅이 안보인다’고 할 정도이다. 공원입구에서 53개의 계단을 오르면 3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공
원 공간. 벚나무 사이로 선진만의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사천시에서는 만개시기에 맞춰 벚꽃축
제도 펼친다. 선진 공원 아래 선진리 바닷가마을은 전라북도 부안이나 김제 진봉반도처럼 백합조개가 많
이 나는 곳이다. 식당에서는 백합조개를 재료로 해서 죽이나 탕으로 요리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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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만의 일몰 풍경 | 곤명면의 다솔사 |
진양호에서 일부 민물이 가화천을 따라 사천만으로 흘러드는데 이처럼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지점이
사천만이고 그 바다에서 백합 조개가 서식하고 있다. 하동의 금오산 뒤로 떨어지는 낙조를 만날 수 있는
바닷가이기도 하다.
사천시 서쪽의 곤명면 용산리로 가면 다솔사라고 하는 예쁜 이름을 가진 절집을 만난다. 한글 이름만 듣
고는 소나무가 많을 것이라는 추측이 들기도 하지만 다솔사의 다솔은 한자를 풀어볼 때 많은 군사를 거
느린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홍송을 비롯한 소나무숲이 울창한 곳이라 한글 이름에서 연상되는 추측이 결
코 틀린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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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경내에 도달하기까지 빽빽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사이사이로 측백나무, 삼나무 등이 들
어앉았다. 다솔사는 신라 지증왕 4년(503)에 연기조사가 창건해 영악사로 불리다가 선덕여왕 5년(636)에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 뒤 의상대사가 영봉사로 고쳤다가 도선국사가 다시 다솔사로 바꿔
불렀다. 1979년 광진스님에 의해 응진전에 모신 아미타여래불상 속에서 불사리 108과가 나오자 대웅전을
적멸보궁으로 증개축한 뒤 불사리를 적멸 보궁에 모셔놓고 있다. 적멸 보궁 안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열반 직전의 부처님 모습인 와불상이 모셔져 있다.
적멸 보궁 오른쪽 뒤에 있는 응진전은 시인이자 독립 운동가이기도 했던 승려 만해 한용운선생이 머물며
수도한 곳이다. 김동리 선생도 이곳에서 농촌계몽운동을 펼쳤으며 단편소설 ‘등신불’을 이곳에서 집필
했다. 또 다솔사는 차밭으로도 유명,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답사를 자주 오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다
솔사 경내 바로 아래에는 옥천청명(055-854-5279)이라는 작은 다원이 그윽한 차향기를 흘려보낸다. |
| 비토도 해안일주도로 |
사천시의 숨겨진 여행 명소는 서포면의 비토도라는 작은 섬. 서포면 선전리와 다리로 연결돼있어 승용차
로 건너갈 수 있는 여행지이다. 해안도로가 잘 정비돼 아늑한 바다 풍경을 감상하면서 싱싱한 회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별미집으로 비토횟집, 남향횟집, 명승횟집 등이 있다.
| 4월 초면 십리벚꽃길에는 꽃비가 내린다(좌), 악양 들녘에 만발한 자운영꽃(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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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뒷산 삼고, 섬진강을 앞 강 삼은 경상남도 하동군의 화개(花開)는봄의 고장이다. 3월이면 개
화하는 매화를 시작으로, 4월 초순이면 5km 벚꽃터널에 꽃비가 내린다. 그 뿐인가. 산비탈마다 자라고
있는 야생차나무에는 연두색 새순이 돋아나고 마을 앞 섬진강에 봄볕이 흐른다.
빼어난 산수에 오랜 역사를 갖춘 것으로도 모자라, 꽃이 열리고 새순까지 돋아나는 봄의 화개
이쯤 되면 어지간히 안목 높은 여행객이라도 무릎 꿇게 된다. 졌다. 이 봄에 너를 누를만한 여
행지가 또 어디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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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개의 산과 밭에는 온통 야생차가 자란다(좌), 쌍계사의 선녹색 상사화 위로 동백이 떨어져 있다(우) |
봄바람에 꽃비 내리는 십리벚꽃길
화개의 산수는 지리산을 배경으로 구례, 함양과 등을 맞댄 채 앞으로는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광양과
마주한 형상이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발원한 화개동천이 줄곧 화개동을 따라 흘러가 섬진강을 만나 합
류하는 시점에 화개장터가 자리한다. 강 건너 앞 마을인 섬진마을(광양시 다압면)에는 지금 한창 매화
가 만발했다. 이 매화가 질 때쯤, 화개의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는데, 5km에 이르는 십리벚
꽃길에 온통 벚꽃이 휘감기는 4월 초가 화개의 봄이 절정인 때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초입에 이르는
이 길에는 벚꽃이 터널을 이루어 꽃비를 내리니 그 낭만적인 분위기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예부
터 이 길을 걸은 남녀는 결혼을 하게 된다 하여 혼례길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다.
십리벚꽃길이 처음 생겨난 것은 화개면의 면장이던 김진호씨가 신작로를 조성하며 가로수로 1,200 여
그루의 벚나무를 심은 1930년대 초반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이름이 높아가고 있는 이 벚꽃길에서 해마
다 벚꽃축제가 열린다. 올해의 축제는 4월 3일~5일인데, 이때는 벚꽃잎 만큼이나 무성한 여행객이 전국
에서 몰려온다. 벚꽃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축제보다 다소 이르거나 늦게 찾는 것이 좋다. |
| 쌍계사 입구에 위치한 야생차시배지 | 연두빛 새잎 돋는 야생녹차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녹차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200년 전으로, 삼국사기에 보면 당나라에서 차
나무 종자를 가져다 이곳 화개에 심은 것이 그 시
초라고 기록되어 있다. 쌍계사 초입에 이곳이 야생
차 시배지 임을 추원하는 비가 세워져 있다. 화개
일대의 산과 밭에는 온통 차나무가 자라고 있고,
공식 다원이 20 여개, 비공식으로 녹차를 재배하는
곳이 800 여개에 이르니 화개의 거의 모든 가정에
서 야생녹차를 키우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야생녹차는 뿌리가 1m 이상 깊게 박혀 자라기 때문
에, 병충해에 강하고 생명력이 끈질기다.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이 불을 질러 없애려 했으나 야생차의
강한 생명력으로 다시 싹을 틔우고 살아나 지금처
럼 번성하게 되었다.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 조성되면서 일본차를 가져
다 심은 보성의 다원은 그 탓에 일본차와 별 차이
없는 맛을 낸다. 하지만 이곳 화개의 차 맛은 우리
전통 고유의 맛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우리 차
는 일본차보다 쓰고 떫은 맛이 덜하고 감칠맛이 도
는 것이 특징이다. 일년에 2회~4회 수확하는 녹차
는 향과 맛에서 가장 뛰어난 차로 우전을 꼽는데, 겨울을 지내고 처음 돋아난 연녹색의 첫 잎을 곡우
전에 채엽한 것이다. 우전의 차 잎은 마치 참새의 혀만큼 돋아 났을 때 딴다 하여 작설차라 불린다. |
| 덖어낸(센불에 빨리 볶아낸) 차를 비비고 있다(좌), 고소성에서 바라본 섬진강(우) |
화개의 차밭은 보성처럼 보기 좋게 조성된 차밭이 아니다. 차나무들이 바위틈에, 산자락에 말 그대로
야생으로 자라듯이 보인다. 모양새는 없지만 이 곳의 야생차밭은 세계 3대 야생차밭 중 한 곳으로 꼽
힐 만큼 뛰어난 품질을 인정 받는다. 지리산 자락이라 밤낮의 일교차가 심하고, 물 빠짐이 잘 되는 토
질 등 화개의 자연환경이 차 맛의 근본이지만, 향을 가미하는 중국이나, 맛을 가미하는 일본과는 달리
자연 그대로의 향과 맛을 살려내는 제다 방법도 감칠맛 도는 한국차의 비법이다. 4월 초부터 화개의
산과 밭에는 우전에 쓰일 야생차 첫 잎이 돋아난다. 그 여리고 부드러운 연둣빛 새잎은 마치 솜털이 보
송한 아기들을 보는 것마냥 신선하고 앙증맞다. |
| 화개의 유서깊은 고찰 쌍계사 풍경 |
봄 산의 고찰, 쌍계사 와 칠불사
화개에는 역사 깊은 사찰이 두 곳 있다. 하나는 국보부터 문화재까지 다양한 유산을 고루고루 갖춘 쌍
계사이고, 나머지 하나는 여러 면으로 쌍계사 보다 볼거리는 적지만 아자방의 신기함으로 유명한 칠불사
다. 두 곳 모두 삼국시대에 지어져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유서 깊은 곳이다.
쌍계사 는 신라가 배출한 천재, 최치원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 중 대웅전 앞에 위치한 진감선사
대공탑비는 최치원이 짓고 쓴 것으로, 사산비 중 하나이다. 쌍계사 일주문을 들어서니 동백나무 아래상
사화의 푸른 잎이 우거져 마치 여름날의 풍경 같다. 상사화 위쪽으로 조용하게 수행중인 마애불이 눈길
을 모은다. 큰 암석을 세워, 돋을새김으로 부처님을 새긴 이 마애불상은 그 모습이 부처라기 보다는 수
도중인 스님같아 정다워보인다.
쌍계사 에서 화개동을 따라 8km, 지리산 토끼봉 아래 위치한 칠불사 는 신라시대 옥보고가 아악을 정리한
곳으로, 그 시대에 만들어진 불가사의한 온돌방 아자방(亞字房)이 지금도 전해 내려온다. 독특한 온돌
구조 때문에 1979년 세계건축협회에서 펴낸 [세계 건축사전]에 까지 올라 있는 아자방은 안타깝게도 원
형이 1949년에 불 타버려 구들만 보호되다가 1982년경 복원되었다. 아亞자 모양의 방은 이중식 온돌 구
조로, 훼손되기 전에는 한번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한 달 이상 온기가 유지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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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유화개 펜션(좌), 작년에 완공된 섬진대교를 건너면 화개장터다(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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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따라 굽이굽이 꽃의 왈츠
어머나, 처녀 봄바람 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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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은 꽃으로 봄의 시작을 알리고 꽃으로 봄을 완성하는 아름다운 강이다>
봄이 피어오르는 푸른 ‘봄맞이강’, 그 위로 꽃 지도가 그려진다.
열 아홉 살 처녀의 슬픔을 머금은 산수유 꽃이 샛노란 꽃망울을 터트리고, 지고지순하게 연분홍 꽃을 피
워내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매화와 하얀 꽃구름 마냥 한꺼번에 폈다 눈보라처럼 쏟아져 나리는 벚꽃잎들
을 모아 섬진강 강바람이 살짝 띄워 보냈나 보다.
아름다운‘꽃강’섬진강의 봄은 왔는가 싶으면 가고 느낄만하면 사라진다. 무상함으로 점철되는 짧은 봄.
김춘수의 시처럼‘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어’,‘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어 주는’강렬한 입맞춤
을 건네고 싶다면 봄이 태어나고 봄이 완성되는 섬진강에서의 낭만적인 여정은 어떨는지.
그대 들리나요? 섬진강이 연주하는 봄의 선율이... |
| 맑은 물 섬진강~! |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질러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섬진강.
조용남이 노래한 인심좋은 그곳,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못 견디겠다는 섬진강의 봄이 더욱 깊어진다. 우
리나라 5대 강 중의 하나인 섬진강은 한강처럼 장대하지도, 동강처럼 멋 떨어지게 굽이치지도 않지만 어
머니의 젖가슴처럼 넉넉하고 포근해 사람들에게서‘어머니의 강’이라 불린다. 전북 진안에서 발원해 이
강에 정을 붙이고, 뿌리를 내린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과 삶을 담아 800리를 흐르는 섬진강. 특히나 봄날
의 섬진강은 푸른 산을 굽이돌아 흐르고 흘러 구례와 하동에 이르러서는 폭이 넓어지면서 각양각색의 꽃
들과 어울려 황홀한 한 폭의 수채화를 완성해낸다.
노란 꽃물 터지는 구례 산수유마을에 봄이 피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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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곡에 흐드러진 산수유꽃 | 국내 최대 산수유마을인 산동면 | 어느 한 군데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는 섬진강이지만 굳이 그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꼽으라면 단연 섬진
강 중류인 곡성 ~ 구례 간 19번국도, 봄으로 가는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 섬진강의 양쪽 산 기슭에도,
도로의 양 길가도 온통 꽃물결로 일렁인다. 이 국도를 타고 가다 구례읍에서 살짝 못 미치면 노란 물감
을 쏟아내는 산수유 꽃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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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수유꽃과 계곡의 아름다운 조화 | 물 좋기로 유명한 지리산 온천랜드에서 만복대 방향으로 10 여
분차로 올라가다보면 국내 최대의 산수유마을인 산동면 상위마
을이 나온다. 상위마을은 매년 봄 상춘객들이 노란 꽃 구름인
산수유꽃을 감상하기 위해 몰려드는 명소. 상위마을에 이르면
노란 산수유꽃 무더기가 구름처럼 마을 전체를 감싸 보는 사람
들을 한껏 매료시킨다. 무더기로 있을때 더욱 아름다운 산수유.
특히 계곡에 흐드러지게 핀 산수유는 기나긴 겨울 뒤끝의 황량
함을 단 숨에 바꿔 놓을 기세로 노란 물감을 풀며 반짝반짝 봄
노래가 한창이다. 마을돌담길을 따라 피어난 산수유는 봄을 맞
는 열여덟 처녀의 두근거리는 가슴처럼 수줍은 듯 살짝 미소를
지으며 객을 맞는다.
산수유에 너무 많이 취하진 말자. 먼 길을 달려와 산수유 꽃만
보고 돌아간다면 아쉬운 일. 내친 김에 남쪽으로 더 내려가 섬
진강변에 핀 벚꽃도 구경하고 가자.
꽃 , 꽃, 꽃 멀미나도 달리고 싶은 섬진강 2백리 |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섬진강변은 벚꽃구경을 온 사람들로 붐빈다>
‘봄(春)’ 하면 ‘벚꽃’ 을 ‘봄(見)’ 을 빼놓으면 섭섭할 일.
산수유 마을에서 나와 구례에서 하동으로 이어지는 19 번 국도를 달리면 봄의 절정이 손에 잡히는 듯 하
다. 비바람도 침범 못할 하얀 꽃 지붕을 덮어쓴 도로는 온통 벚꽃천지이다. 만개한 벚꽃 사이로 섬진강
이 보이고, 산과 강이 어우러지는 풍경은 그저 ‘환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아쉬운 것은 너무 많은 사
람들이 이 도로를 찾는다는 점이다. 봄날, 그것도 주말 이 도로를 찾는다면, 차와 사람이 뒤엉키며 그야
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벚꽃의 정취에 빠져 있다가도 꽉꽉 막힌 도로를 보
면 한숨이 나오는 것은 인지상정. 기자처럼 성격 급한 사람은 창밖으로 보이는 꽃 세상이 사라질까 아쉬
워 아예 차에서 내려버려 벚꽃 길을 도보하기도 한다. 조금 걸으면 어떠리. 벚꽃비가 떨어지는 벚꽃 길
을 걸으며 낭만을 곱씹는 것은 물론이요, 차에 구속당해 이래 저래 못하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
을 수 있는데 말이다. 이런 번잡함이 싫다면 19번 국도를 과감히 벗어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꽉꽉 막힌
도로에 갇혀서 여행 온 즐거움을 잃어버린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는 법.
돌자. 9번, 861번, 865번 국도에서도 벚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으니까! 하동에서 벚꽃이 가장 아
름다운 곳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초입에 이르는 6㎞ 구간의 ‘십리 벚꽃길’.
우수수 내린 하얀 십리벚꽃비 속을 걸어보아요 |
<하동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십리벚꽃길(좌)과 벚꽃 무더기(우)>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의 시오리 길은
언제 걸어도 길 멀미를 내지 않게 하였다’
오죽하면 김동리 선생의 단편소설 ‘역마’에서 십리벚꽃길을 이렇게 표현했을까? 19번 국도의 끄트머리
쪽 경남 하동으로 가면 벚꽃의 명소,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를 잇는 십리벚꽃길이 나온다. 반 백년을 넘게
2차로에 도열된 벚나무가 흰 터널을 이루는데 마치 높은 하늘의 구름이 머리위로 내려앉은 것 같은 기분
이다. 꽃이 만개하면 ‘꽃 터널’ 이요, 벚꽃 잎이 하늘하늘 떨어지면 그야말로 ‘꽃길’ 이요, 그 길을
걷는 주책없는 웃음은‘행복’이다.
그 황홀한 모습으로 십리벚꽃길은 "혼례길"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감동적인 ‘청혼’ 을 준비
하고 있는 연인이라면, 이 곳에서 고백해보라. 백발백중일 테니. 이쯤 되면 다리를 편하게 해 주던 차는
쓸모가 없어지니 꽃빛에 취해 모두 차를 길옆에 버려두고 걷기 시작한다. 봄바람을 맞으며 뽀얀 속살을
드러낸 벚꽃 길을 걷다보면 섬진강마저 길벗 되어 흘러간다. 혹여 꽃길 안이 아니더라도 꽃길 밖에서 보
는 십리벚꽃길의 풍광도 최고다. 눈보라치듯 연분홍 꽃에 젖어든 봄날의 도로변은 우리 기쁜 젊은 날의
모습 같아 풋풋하기까지 하다.
벚꽃에 취했다면 산사의 고즈넉함도 맛보고 가야지 |
벚꽃에 도취되어 걷다가 놓치게 되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곳이 바로 쌍계사다. 사실 쌍계사는 절보
다는 절로 가는 벚꽃길 명소로 더욱 유명한 사찰. 하지만 절 자체로도 주목 받을만하다. 쌍계사를 들어
가는 일주문, 금강문을 지나 대웅전까지 이어진 길은 말 그대로 속세를 떠나는 길이다. 쌍계사에서 주목
해 보아야할 것은 최치원이 쓴 국보 47호 진감선사대공탑비와 금당 옆으로 난 길을 쭉 따라 올라가면 만
날 수 있는 지리산 10경중 하나요, 우리나라 2대 폭포로 꼽히는 불일폭포. 이 외에도 쌍계사는 웅장하면
서도 오밀조밀한 맛이 느껴지는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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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에서 경건하게 절을 드리는 모습(좌)과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과 "공양상"(우)>
쌍계사 외에도 섬진강변에는 이름 있는 고찰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고승대덕의 산실 화엄사를 들리면 좋
다. 조선시대 사찰양식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대웅전과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 가장 큰
규모인 각황전이 있고 특히 가장 아름다운 불교유물의 하나로 네마리 사자가 탑신을 받치고 인간의 희로
애락을 상징하는‘4사자 3층 석탑’은 화엄사를 세운 연기조사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기리며 세운 탑.
또한 4사자 3층 석탑과 조화를 이루는 ‘공양상’ 이 있는데 한쪽 무릎을 세우고 연화좌 위에 정좌한 공
양상의 경건한 자태는 한국적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있어야 할 건 다 있고요, 없을 건 없는 화개장터 |
|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화개장터 |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에....’
쌍계사를 나와서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조용남의
구수한 목소리가 돋보이는 ‘화개장터’ 도 살짝
둘러볼 만하다. 김동리 소설의‘역마’의 무대이
기도 한 화개장터는 경상남도와 전라남도를 이어
주며 해방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5대 시장중 하
나로 전국의 어느 시장보다 많은 사람이 붐볐던
곳. 옛날 같으면 전국에서 몰려든 보부상들로 시
끌벅적할 텐데 지금은 관광용으로 조성된 먹거리
장터가 고작이다. 허나 아직은‘인정’이 "덤"으
로 얹혀지는 시골의 인심이 남아 있어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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