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그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땅 하늘은 멀다해도~ 내가 살던 어릴 때 살던 홍천은 마을의 파란기와집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틀어놓은 군가소리에 깨고 잤다. 누구도 시끄럽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았고 우린 그저 자연스럽게 노래를 듣고 외우고 따라불렀다.
군인들이 시가행진을 하는 날에는 우리들도 거리에 나가서 목청껏 군가를 부르고 나누어준 태극기를 들고 와서는 시가행진 모형을 만들어서 수명씩 모여서 줄을지어서 행진하고 태극기를 대문 위에 높이 걸고서 차렷하고 경례를 하였으며 경건하게 우리나라의 안전을 위한 기도도 하였다.
어떤 맑은 날에는 동네형들과 함께 화양강가에 가서 한국전쟁때 버려진 포탄껍데기를 주워다 모아놓으면 형들이 팔아서 엿등을 나눠먹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에는 나는 잠시 집에 돌아와 있던 때에 형들이 주운 고철덩이를 두둘기다가 폭발하여 우리 아버지가 다친 아이들을 리어커에 싣고 병원가던 모습도 생각난다. 누군가 죽지는 않았다고 하였였다.
미군 헬리콥터가 강 건너에 착륙하는 때에는 많은 사람이 구경하러 강둑으로 나갔는데 모래 먼지가 강너머로 날아와서 눈을 뜨기도 어려웠던 기억도 난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자유는 그렇게 푸른하늘의 종다리 노래처럼 거리와 거리에 메아리치고 그렇게 줄을 지어서 행진하고 보이지 않았던 조국을 향해 일직선으로 서서 경례를 하면서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우리들의 자유를 침략한다는 적들을 공격하고 방어해야한다고 하여서 우리들은 숙제로 붉은쥐를 잡는 그림을 그려서 간다거나 무슨 포스터를 그려서 그러니까 거기에는 녹색과 붉은색이 들어가는 그런 그림을 그려서 학내에 전시하고 모두들 그 그림을 보면서 쥐를 박멸하고 실제 쥐약을 마을마다 나눠주기도 하였으며 모두들 무슨 기생충약을 의무적으로 먹어야 했다.
그리고 어떤 날은 국민교육헌장 이라고 외워야 한다고 하였는데 나는 잘외우지 못하여 손바닥을 맞았던 기억도 얼핏난다. 어휴! 손바닥이 매우 아팠다. 이런 것들은 우리들의 소년시절까지도 손바닥을 맞거나 어떤 선생님들은 발바닥도 때리기도 하였는데 그런 시간에는 아이들 모두가 쥐죽은 듯 침묵하였었다.
그리고는 오락시간도 했는데 선생님께서는 누구누구를 지목하여 나와서 웃기라고 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라고 하기도 했었다. 가끔 나는 지목받아서 바보같은 짓으로 아이들을 억지로 웃기기도 하곤 했었다.
그렇게 자유는 여러 가지 종류로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자라났고 청년시절에는 술집에서 귀속말로 자유에 대해서 말하기도 하고 국가와 사회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먼저 옆자리에 누가 있는지도 살피기도 하고 여기저기로 자리를 옮기거나 하였었다. 그런 시대를 지나고 문민시대가 왔으며 우리들은 남북한의 대통령이 평양에서 상봉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시대를 살아왔으며 평화 교류 협력의 시대에 개성공단도 협력하고 금강산도 구경하였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선진국이 되었고 첨단산업이 발전하고 한류문화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면서 매우 긍지높은 나라의 국민으로 해외여행도 한번은 다녀본 사람들로 되었으며 자동차도 하나씩은 가지고 산천을 유람하였다. 보고 듣는 것이 많아지니 세상사에 대한 생각도 높아지고 다른사람들의 삶의 괘적에 대해 존중하는 풍토를 가지게 되었으며 차도에 차를 대놓고 싸우는 일들은 없어졌다.
외국군과의 합동연습이 여전히 남한땅에서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기도 하지만 한국의 군대가 외국에 파견되거나 다른나라에 출동하여서 합동훈련을 하거나 국방산업의 발전으로 위상이 급격하게 신장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구의 서방에서 중동에서 무지막지한 전쟁의 포격과 폭격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콩가루가 되는 도심지를 뉴스에서 보면서도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시리아. 우크라이나 같은 나라들이 전쟁전에는 꽤 괜찮은 문화생활을 하던 나라들이란 것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내전으로 외국군들이 들어와서 국가의 자원을 들어내가고 현대적 드론전쟁터로 인명피해가 늘어나고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콩가루가 되는 현실을 보면서 제발 우리들에게는 우리가족에게는 이런 일이 있지말기를 바라는 이기심도 작용한다. 이제까지도 어렵게 그러면서도 기어이 살지 않았던가? 여기다가 그 무슨 위험한 사회와 전쟁상황이 겹치고 겹친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데 난데없이 붉은여우와 쥐들을 박멸하자면서 국가수반의 친위쿠데타가 있었으며 정상적인 법적 질서와 재판절차를 무시하는 일들이 무겁게 덮쳐오고 심지어는 전쟁상황인 외환을 유인하여 내란을 편성하고 민족적 평화 발전을 원천 차단하고 핵전쟁도 하겠다는 말단의 세력들에 의한, 그 옛날 서북의 유산을 재확립하고 사람을 재판없이 처단하는 시대로 전변하자는 불불명한 종교이념이 세력화되고 법원을 점거하고 정치인 테러를 양산하는 폭력의 재생을 시도하고 있는 현상이 거리를 뒤덥고 있다.
이런 것들은 우리나라가 발전해 왔던 문화근거도 아니고 세계가 다극화하는 오늘 날에 맞는 시대정신도 아니다. 우리민족은 유라시아 철도망의 출발지로서 새롭게 개척되는 북극항로의 시발점으로서 세계문화관광의 종착지역으로서 그 위상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주변국들이 우리남북과의 교류를 희망하고 남북과의 정치문화경제교류를 확보하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런 능동적 시대에 반동적 조류를 뒤집어쓰고 나서는 사교집단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여기에 편승하는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들은’ 또 누구인가?
민족적 양심에 충실하고 신사적 행동에 민감하였던 우리 흥사단우들은 결코 넘어서는 안되는 경계선을 획정하고 자신들의 처지와 실정을 민감하게 조사할 것이며 한가지를 하더라도 질서와 양심에 입각하여 상식적인 규칙을 준수하고 도산선생의 정신인 민족적 자주독립정신을
다시금 되새기고 협동 대공하면서 성숙된 인격성과 양심적 도덕심을 가지고 결코 종교적, 정파적 사익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는 일들에서 멀어져야 할 것이다.
2025. 3.12 공의원 김교근(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