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 KBS에서 방영되는 스리랑카에서 자원 봉사자들의 활동 내용을 보다보니,
지난날 그 지역에 출장 갔던 일들이 생각나서 기억을 살려 적어 나갑니다.
2010년 10월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현지에서 한국어 시험을 시행하기 위하여 출장을 갔다.
"한국어시험"을 합격하여야 스리랑카인이 한국에 갈 수 있는 통과의례 이다.
젊은 청년(근로자)들에게는 Korean Drem를 꿈꾸며 전국에서 콜롬보로 모여 각급학교(대학,고교,중학)에서
수만명이 그 시험에 응시 한다.
자국에서 취업 할 경우 한화로 환산 하면 월15~2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고,
인근 동남아시아(홍콩,싱가폴, 등)로 취업을 하게되면 그보다 2배 가량인 월30~40만원 상당의 급여를 받는다.
특히 동남아시아 국가는 도시국가로서 취업처는 가정부 등의 허드렛 일을 주로 하게된다.
한국에 오게 되면 월 !20~200만원을 받을 수 있고, 기술을 배울 수 있어 그들에게 실로 꿈이 아닐수 없다.
(우리나라도 6~70년대독일.중동 취업)
스리랑카는 오랜 내전으로 정부군과 타밀반군이 치열하게 전쟁을 하였다. 그런 연유로 길가엔 다리 팔이 없는
부상자가 많이보였고,야간에는 군인들이 무장을 하고 곳곳을 경비하고 있었다.
시험을 보는 방법은 1시간은 지필시험이고,1시간은 레코더를 듣고 답을 쓴다.(총2시간)
시험당일 콜롬보는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모든 학교는 휴교를 한다.
인도네시아는 비교적 국내 항공과 교통이 어느 정도 발달 되어 있어 지방에서도 시험을 시행하는데,
스리랑카는 그렇지 못하여 수도(콜롬보)에서 만 시행하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엄격한 시간 관리와 치안유지를 위하여 경찰과 군인이 동원되어 경비를 한다.
시험종사자는 시험본부(관리)는 주재 대사관.상사 가족, 등 한인회가 하고,시험감독은 현지 대학,중.고 선생들이 한다.
아침8시 까지 수험자는 교실에 입실해야하고,그 이후 도착자는 절대 입실를 금지하여 시험을 볼 수 없다.(정문잠금)
시험회의는 책임자가 한구절씩 하면 통역이 통역 하는 방식이다.
회의를 마치고 시험장 정문(사진참조)에 와서 쪽문으로 내다 보니 백여명이 특유의 큰 눈망울(인도의눈물)에서 눈물을
흘리며 군인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옆에서 통역하고 하는 주재 상사직원 부인의 말로는 "저들은 최소한 7시간 이상 차를타고 시험장에 도착 하였으며,
응시 못하게 된 것을 안타깝다고 말하였다"
순간 이들을 시험에 응시 시키는 것도 진정한 보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굳게 치키고 있는 군인에게 "an Open door"하고 말하였다. 옆에서 통역하는 부인의(그들의 실상을 잘알고있음)
환한 모습과 군인들의 일순간 긴장과 기쁨의 웃움이 겹처지는 모습을 보고 내 자신도 그들과 한마음이 되었다.
물밑듯 달려가는 수험자 그리고 주재원들의 빠른 안내(시험실배치)로 모두 시험에 응시 하게 되었다.
두고 잊지 못할 스랑카의 기억이며,보람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새롭게 든다.
사1 초청만찬장 코끼리상옆에서, 사2 시험안내종사자 모습(현지인),사3 정문의군경,사4 시험장안내(늦게도착하여
입실못한 수험자),사5 통신기기등 검색(부정방지),사6 시험장(교실:창문이 없음),t사7 교실흑판(우리초교 때와 비슷)
첫댓글 그때 시험에 합격하여 지금은 우리나라 어디선가 일을 하고 있겠지요,
4년 전 무렵의 이야기이군,
공직생활 은퇴를 조금 남겨 두고 멀리 스리랑카에 가서
보람되고 유익한 일을 하였구나
회덕이의 인간미가 느껴지는 감동스토리구나
어려워도 옜날이 좋았는데<.
본인의 보람된 과거의 흔적과 역사이겠구나.
참 어려운 일을 하시네요, 매우 좋은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