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그룹이 팬오션(옛 STX팬오션)을 인수하면서 곡물사업 진출이라는 새로운 전기(轉機)를 마련했다. 하림은 국내 최대 축산기업이다.
이번 팬오션 인수는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의 오랜 염원이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김 회장이 곡물사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우공이산(愚公移山·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이 큰 성과를 거둠)을 기업 경영의 모티브로 삼고 일해 왔다. 농장에서 사료, 육가공, 유통을 거쳐 곡물사업으로 가는 하림의 변신은 ‘한 계단(목표)을 오르면 반드시 다음 계단을 바라본다’는 김 회장의 경영철학과 맥이 닿아 있다. ‘한국판 카길’을 향한 대장정(大長征)에 오른 김 회장을 만나 하림의 미래상과 식량안보 등의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봤다.
-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닭 모형을 껴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신영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당초 이날 회의는 치열한 공방이 예고됐었다. 4500만주 주주의결권을 확보한 팬오션 소액주주들은 “인수 과정에서 새로 작성된 변경회생계획안에 20% 감자안이 포함된 것은 부당하다”며 절차 중단을 요구한 상태였기 때문. 하림 역시 회생안이 부결될 경우 인수 자체를 재고하겠다는 입장을 펴는 등 팽팽한 기 싸움이 이어졌다. 접전이 될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기관들이 대거 하림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팬오션은 지난 2013년 6월 이후 계속된 법정관리에서 벗어나게 됐다. 하림은 지난해 11월 팬오션 인수전에 참여한 이후 8개월여 만에 인수를 확정지었으며 팬오션 주주총회, 이사진 구성 등을 거치면 늦어도 7월 말 경 모든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하림은 팬오션 인수를 위해 1조79억5000만원을 써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 팬오션을 인수로 하림그룹은 내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하는 30대 대기업 집단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진은 옛 STX그룹 계열 당시 팬오션의 벌크선. /조선일보DB
팬오션 인수로 하림은 현재 4조8000억원(국내 기준)인 자산총액이 5조원을 넘어선다. 이럴 경우 내년도 공정위가 매년 상위 30개씩 발표하는 대기업집단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986년 하림식품을 세운 이후 30년 만에 재계 30위 대기업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1980년 이후 설립된 제조업체 중에서 내년도 30대 그룹 진입을 바라보는 곳은 하림그룹이 유일하다.
하림그룹은 하림(닭 가공), 제일사료(사료), 팜스코와 선진(이상 양돈·사료), NS홈쇼핑 등 보유 계열사 수만 85개(2014년 말 기준)에 달한다.
육계·육가공이 주력이며 사료 생산이 그 아래에 있다. 육계(肉鷄·닭고기) 부문 점유율은 31.1%로, 2위 기업(12.3%)과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생산된 사료의 경우 지난해 324만톤이 국내에서 팔렸으며 76만톤은 해외로 수출했다. 사료 생산에 있어서도 농협과 함께 ‘빅2’체제를 이루고 있다.
하림 경영 시스템의 특징은 기초산업인 축산업을 식품과 연계시키는 통합경영(Integration Management)이다. 농장과 공장, 시장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도 통합경영의 일환이다. 육계 부문의 경우 직접 병아리를 키우지 않고 위탁농가와 사육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병아리를 비롯해 사료, 약품 등 종계(種鷄)와 관련된 모든 서비스를 지원하면서 닭고기를 공급받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농가입장에서는 안정적인 판로를 갖출 수 있고 반대로 하림 입장에서는 대규모 농장을 직접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수직계열화 방식이 하림을 국내 최대 축산기업으로 만든 비결이다. 때문에 하림은 B2C(도매와 소매 거래)기업 같아 보이지만 B2B(도매간 거래) 기업 성격도 갖추고 있다. 하림에서 판매하는 닭고기 중 소매로 판매되는 제품은 절반 수준이다. 나머지는 도매로 나간다. 당장 우리가 생맥주 한잔과 함께 먹는 치킨 중 상당수가 하림에서 공급한 닭고기일 수 있다. <②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