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창곡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책상머리에 앉아 무엇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길 때는 어떤 구체적인 모습이나 이미지, 영상에서 실마리를 끌어내는 경우가 많다. 내가 산책을 하면서 버릇처럼 흥얼거리는 곡조도 그런 측면이 없지 않는데, 떠오르는 흥취를 나대로 흥얼거리면서 글감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한데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면 그렇지 않는 것 같다. 머리가 어지럽게 귀에다 이어폰을 꼽고서 라디오를 열심히 듣고 다니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그렇게 하고 다니면 노래를 잘 들릴지 모르지만 산책의 묘미가 있을까. 사색을 하는 것도 큰 재미인데 그것을 놓치는 건 아닐까. 그런 의문이 스친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하고 다니는 행동이나 버릇을 두고 무엇이 옳고 낫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성향의 문제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그렇게 하고 다니는 까닭이 무얼까 하고 생각해 본적이 있다. 단순히 뉴스나 노래를 듣기 위함이라면 그렇게까지 하고 다닐 것까지야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보기에 그냥 멋으로 꽂고 다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무슨 이점이 있을까 생각해 보지만 딱히 짚이는 것은 없다. 그러다가 하루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어떤 착안을 해보았다. 남들처럼 그렇게 귀에다 이어폰을 꼽고 다니지는 않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무료를 달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나만의 독창적인 방법인 조용히 혼자 입속으로 노래 부리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니나 다를까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혼자서 즐기는 이점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지루함이 없어지고 간혹 모임에서 부를 수 있는 노래도 하나 둘씩 쌓이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틈틈이 하는 사색은 덤이 되었다.
사실 나는 노래를 그 닥 잘 부르는 편은 아니다. 우선 레파토리가 다양하지 못하여 어디서 노래를 해야 할 자리가 생기면 난감해 질 때가 많다. 아는 노래로는 김소월의 시로 만들어진 ‘부모’와 김정호의 ‘호랑나비’ 가 있을 뿐이다. 그런 만큼 노래 부르는 자리에서 앞사람이 그것을 미리 선점해 버리면 밑천이 달려서 당황하기 일쑤다.
그런 터에 흘얼 거리면서 새 노래를 부수로 익히는 셈이니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최근에 익힌 곡이 두 곡이다. 하나는 ‘부초 같은 인생’과 또 하나는 ‘고장 난 벽시계.’
‘내 인생 고달프다 울어본다고 누가 내 맘 알리요/
어차피 내가 택한 길이 아니냐 웃으면서 살아가보자/
천년을 살리요 몇 백년을 살다가리요/
세상은 가만있는데 우리만 변하는구려
아-아 부초 같은 우리네 인생 아-아 우리네 인생/
가수 김용임이 부르는 곡조를 외어 두었다가 흉내 내어 읊조리다보면 저절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고장 난 벽시계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 노래를 애창곡으로 점찍은 이유가 있다. KBS가요무대를 즐겨 보는데 희망가요 편에서는 이 노래가 빠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구나 좋아하고 공감이 가는 노래가 아니겠는가.
뭐니 뭐니 해도 이 노래들은 우선 따라 부르기가 쉽고 나름의 인생교훈도 담겨져 있는 것 같다. 내 나이도 어느덧 60고개를 넘어 70을 바라보는데 지낸 세월을 돌아 볼 때 이 노래의 가사를 음미하면 걸어온 역정이 자연스레 되돌아 봐 진다.
보낸 세월이 허무하다는 생각에 원망까지는 아니더라도 후회가 되고 회한이 어린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런 심사(心事)에 한세상 웃고 살자고 하니 정신건강에도 바람직하고 긍정적이지 않는가.
이렇게 노래를 흥얼거리다보니 바뀐 것이 있다. 표정이 전보다 많이 밝아진 것이다. 남들도 그렇게 말하지만 내가 거울을 보아도 확실히 얼굴표정이 밝아졌다. 미간에 굵게 패인 주름도 눈에 띄게 희미해지고 눈꼬리에도 생기가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무슨 생활형편이 전해 비해 나아지거나 달라진 것은 아니다. 이런 습관이 긍정적인 힘을 불러와 생활태도를 변화시킨 때문이 아닌가 한다. 오늘도 나는 산책을 하면서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 접어들어 나직이 한 곡조를 빼어본다.
‘세월아 너는 어찌 돌아도 보지 않느냐/
나를 속인 사람보다 네가 더욱 야속 하더라 /
한 두 번 사랑땜에 울고 났더니 저만큼 가버린 세월/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예전에는 이런 트로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 들면 식성이 변하듯이 노래취향도 달라지는 것 같다. 그러한 것은 노래의 리듬도 리듬이지만 의미가 담긴 노래가사에 있지 않는가 한다. 다소 직설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한세상 살면서 시름보다는 웃으며 살자고 권유하는 것은 얼마나 바람직한가. 그리고 보내버린 세월을 아쉬워하기보다 남은 세월을 잘 갈무리하자는 것은 얼마나 긍정적인가. 그런 까닭에 나는 앞으로도 어디서 노래 부를 기회가 생기면 이 노래를 택해 부를 것 같다. 가사도 외우기 쉽지만 곡조도 부르기 좋으니 내가 부르기에 안성맞춤이어 서다. (2012)
첫댓글 산책길에 노래를 즐기시니 축하합니다. 김용임'부초 같은 인생' '고장난 벽시계' 아주 신곡입니다.
은퇴를 해서 노래를 부를 기회가 없어졌지만 노래는 즐거운 것입니다.
입술에 노래가 있고 가슴에 뜨거운 태양같은 정열이 있다면 사는 날 동안 한낮일 것입니다.
요즘 TV를 켜면 노래가 많이 나오는데 그래선지 노래를 흥얼거리곤 합니다. 최근에 따라부르기 괜찮은 노래를 찾아내고는 18번 삼아 자주 불러보곤 합니다. 어느덧 늦가울로 접어드는 나이에 새삼 인생을 돌아보게 하기에 좋아하게 된것 같습니다.
김용임은 저도 좋아하는 가수입니다. 부초 같은 인생, 고장난 벽시계도 많이 애창하고요. 최근에는 훨훨훨 이라는 노래 너무 좋습니다. 이 노래도 연습해 보시지요. 보성출신이니 노래는 기본이 되어 있겠네요. 나중에 한 곡조 들려주십시요.
노래는 잘 못하고 듣기는 좋아합니다. 못하는 노래나마 흥얼거리기도 곧잘 사지요. 한때는 김소월의 시를 노래로 만든 '부모'라는 곡을 좋아했드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