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색은 서인에서 노론으로 학맥은 기호학파로 조선 중기 이후 당쟁을 주도해온 세력으로 중심에 서 있는 집안이 광산 김씨이다. 그 집안을 모르고는 조선 중기 이후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워가 대단한 집안이다. 광산 김씨 집안의 족보에서 서포 김만중과 관계있는 부분만 살펴보면
(1) 김장생( 김만중의 증조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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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김집(김만중의 큰 할아버지) 판충주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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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김반(김만중의 할아버지) 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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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익겸(김만중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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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김만기 (숙종의 장인/판서)-김만중 의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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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김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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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김춘택 (청구영언의 저자)
(6)김보택(참판)
(6)김운택(참판)
(6)김민택(교리)
(5)김진규(판서)
(6)김양택(영의정)
(5)인경왕후( 숙종의 왕비)
(4)김만중(우참찬)
(5)김진화(목사)
(5)김진상(판서)
(3)김익훈(김만중의 작은 아버지) (참판)
(4)김만채(참판)
(3)김익경(김만중의 막내 3촌) 대사헌
김만중의 증조할아버지인 김장생은 율곡 이이로부터 학문을 정통으로 이어 받아 스승의 학문 가운데서 禮를 깊이 공부하여 禮學이라고 하는 새로운 학풍을 일으킨 조선 예학의 창시자이며 그 아들 김집이 이어 받아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에게 이어지게 되었다. 서인의 학통이며 종통은 다음과 같다
이이-김장생-김집-송시열, 송준길
이런 가문에서 왜 김만중은 남해 유배를 가고 구운몽이란 우리말로 된 소설을 쓰고 인생의 허무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회한의 마지막을 순간을 맞이 하였을까! 김만중의 인생 길은 남인과의 싸움에항상 맨 앞장에 서서 총대를 매고 나서서 화를 자초하였다.
숙종 14년 장희빈이 왕자를 낳자 영의정 김수항의 상소로 왕자의 탄생 특사로 귀양길에서 풀려났다. 숙종이 서른 나이에 아이를 낳으니 좋아 하면서 석달 뒤에 원자롤 책봉하였다. 이는 숙종의 뒤를 이어 남인 출신의 장희빈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을 의미하며 서인들은 이를 그냥 두지 않았다.
드디어 산림에 은거하던 서인의 우두머리 송시열이 나서서 상소를 올렸다.
“훗날 정비 인경왕후(김만기의 딸)가 왕자를 낳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숙종에게 따지는 상소를 올렸다. 숙종은 대노하여 송시열을 제주도로 귀양 보내고 뒤이어 한양으로 불러 오는 도중 정읍에서 사약을 내려 죽이고 말았다. 서인의 우두머리 송시열이 죽자 지난날 장희빈이 뇌물을 받고 조사석에게 정승 자리를 팔았다고 상소를 올린 김만기 역시 파직되어 남해로 귀양가 위리안치 되었다. 왕자 탄생으로 평안도 선천에서 풀러난지 1년 만이 였다. 이어 김만중의 사위 이이명은 경북 영해로, 숙부 김익훈은 맞아 죽고 장조카 김진구, 작은 조카 김진규, 막내조카 김진서도 귀양을 갔다.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가 함락되자 김상용(김상헌의 아우)과 같이 남문에서 분신 자살하고 어머니 윤씨는 육지로 나오는 배에서 김만중를 낳았다. 그러니 김만중은 유복자로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그런 효자 김만중이 남해 귀양지에서 모친의 부고를 듣고 머리 풀고 통곡하고 난 뒤 붓을 들었다.
‘인생 한바탕 놀음을 “구운몽”으로 엮었다.’ 구운몽은 그렇게 태어났다.
그 내용은 요약하면 이렇다
“김만중이 꿈속에서 성진이라는 사람이 되어 육관도사란 분에게 도를 배우다가 예쁜 팔선녀를 보고 속세의 인간세상을 그리워 하며 부귀영화와 미색을 즐기는 생각에 잠긴다. 이에 육관대사는 성진을 크게 꾸짖고 내 쫓아 버란다.
그 후 성진은 당나라 양처사 집의 아들로 태어나니 이름이 양소유이다.
어릴때부터 재주가 총명하여,
열여섯에 장원급제
싸움터에 나가서는 공을 세우고 이름을 날리며,
여덟명의 예쁜 여자를 아내로 맞아 드리며
승상 벼슬에 태사 벼슬을 더하여 상으로 오천 호를 봉하였다.
열여섯의 나이로 급제하고 서른다섯에 경기도 암행어사를 제수 받았으며, 마흔 아홉에 예조판서,병조판서, 쉰살에 우참찬,판의금부사가 되었다. 비록 싸움터는 아니지만 붓을 들어 정적(남인)을 물리쳤던 일이 몇 차례가 되었던가?
저 양소유가 김만중이고 김만중이 양소유로 비유하였던 것이다.
꿈에서 께어나니 모든 것이 부질없고 허무하였던 것이다. 그는 이미 죽움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세상에는‘자기 다스리기’ 쪽으로 사는 사람과 ‘남을 다스리기’쪽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자기 다스리기’쪽으로 사는 사람은 자신을 낯추고 욕망을 억제하고 뒤로 물러나는 것을 할 줄 안다. ‘남 다스리기’쪽으로 사는 사람은 자기만 앞 세우고 욕망을 실현하려고 한다.
구운몽은 ‘남 다스리기’를 갈망하는 양소유의 허망함을 께닫고 ‘자기 다스리기’ 쪽으로 돌아오려는 서포 김만중의 때 늦은 회한이였을 것이다 그의 말과 글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내몰았는가?.
서포 김만중, 그는 구운몽을 통하여 이 께달음을 말하기 위하여 이 소설을 썼던 것이다.
첫댓글 禮學의 宗長 沙溪 金長生 先生과 後孫 김만중의 家統을 거울 보듯 그리 잘 아는 也川의 該博한 知識이 너무나 神通旁通하도다!!!
그리고 구운몽 해설로 좋은 공부 했네. 감사!!!
좋은 자료 올려주어 잘 읽어보았네, 한 가지 이상한 구절이 있어 문의하네,
김만기가 김만중의 형으로 기록되었는데 김만기는 유복자로,그렇다면 동생김만중은 씨다른 동생이란 말인가?
본문에 오자로 잘못되었네, 잘 지적하여 주어 고맙네,아버지 김익겸이 죽을때 김만기는 4살이였고 그 때 김만중은 뱃속에 있었네, 오자 잘 지적해 주었네.
잘 알았네 광산 김문에 대한 족보를 조사해보려든 참인데 말일세 김일우가 바로 이김문일세.
구운몽은 작가가 어머니를 위하여 하룻밤에 다 쓴 작품이란 말을 들은적이 있는데
자세히 소개해주어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