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마을활동가가 도대체 뭐야?"
민정례 마을활동가
"쟤는 도대체 뭐하고 돌아다니는지 모르겠다"
처음 마을 활동을 시작했을 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다. 노동, 환경, 인권, 여성, 농민 등 기존 시민사회단체의 활동 영역에 포함되지 않았던, 대상과 실체가 불분명한 마을 운동을 한다고 하니 그래서 무슨 일을 하냐고 많이들 물었다.
마을활동 8년차. 아직도 여전히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면 우물쭈물 대답이 명확하지 않다. 너무 많은 일들 중에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겠고, 마을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나가면서 놀기도 하고 사업도 하고 교육도 하는 그 일을 딱 집어서 한 단어로 표현하기가 힘들어서이다. 일과 놀이와 문화의 경계가 불분명한, 그러면서도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마을활동가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댓골마을학교 이야기
소래산 아래 큰 마을 댓골은 시흥시 대야동의 옛 지명이다. 대야동은 한때 시청을 비롯한 모든 관공서가 있었고, 우시장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된 번화가였다. 지금은 프로스펙스로 유명한 국제상사 공장이 있었는데,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하면서 소규모 공장들이 들어서고 다시 상업건물이 들어서는 산업의 전환을 고스란히 지켜본 곳이다.
지금 대야동은 시청을 비롯한 관공서들이 시흥 곳곳으로 흩어졌고, 낙농업이 축소되면서 뱀내장터라는 우시장도 사라지면서 소규모 공장과 다세대 주택들만 남은 전형적인 원도심이다.
이곳에서 공유공간을 마련하여 마을 사람들을 만났다.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마을학교를 설립하여 독서모임, 요리, 취미 동아리 모임, 학습모임 등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수많은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며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던 것도 있고, 호응이 없어 일찍 접은 것도 있다. 학습, 놀이, 문화, 교육 등 여러 가지 일들을 시도해보니 조금씩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닥쳤다. 사회 전체가 일체 멈췄다. 모든 것이 멈춰섰을 때 마을이 빛을 발했다. 이동이 어렵고 대면이 어려운 시기, 그럼에도 사람들은 직장이나 학교를 다녀야 하고 일상 생활을 해야 했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취약계층에 대한 돌봄이 필요했다.
마을학교에서는 온라인으로 늘 해왔던 프로그램을 이어갔다. 돌봄 수요가 폭증하면서 자체적으로 아이들에 대한 돌봄을 시작했다. 일상을 유지하려 애쓰고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자고 서로 독려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렇게 함께 보듬고 서로를 챙겨주는 활동이 있는 마을과, 그렇지 않은 마을은 확연히 다르다. 물론 처음부터 없었던 곳은 원래부터 없었으니 큰 차이를 못느끼겠지만, 마을학교를 찾는 사람들은 마을학교 덕분에 코로나 때문에 우울한 것도 털어낸다고, 이런 공간이 있어 참 다행이라고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었을 때 의료나 행정 못지않게 치열한 전쟁을 벌인 곳이 학교다. 인근의 학교에서 도움을 요청했다. 출석이 잘 이뤄지지 않거나, 온라인 학습에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마을에서 챙겨달라고 했다. 교사들이 아이들 출석 체크하느라 정작 수업이 힘들다는 것이었다. 또 마을 사람들이 팔을 걷고 나섰다. 대부분 이 동네에서 자라는 아이들이었다. 수업에 빠진 학생들의 명단을 받아 부지런히 전화를 돌렸다. 한 활동가는 열심히 전화를 돌리고 있는데 딸 아이 학교에서 출석을 안했다고 전화가 왔다고 했다. 정작 내 아이는 못챙기면서도 억울한 마음이 없었다. 내 아이, 내 아이의 친구 모두 마을의 아이들이었다.
또 하나 코로나 시기, 택배와 배달음식의 증가로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가고, 실제 쓰레기산이 사회문제가 되었을 때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주택이 많은 원도심은 특히 쓰레기 문제와 맞닿아 있다. 종량제 봉투로 대문 앞에 내놓으면 수거해가는 시스템이 실제 불편한 점이 많다. 쓰레기 문제를 공부하며 우리는 자원순환을 알게 되었고 마을에서 실천하는 자원순환활동가 모임이 만들어졌다.
2016년 두 명이서 문을 열었던 작은 공간이 2022년 현재 돌봄과 자원순환을 축으로 크고 작은 모임과 활동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를 감싸는 튼튼한 관계망
마을 활동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마을 안에서 관계망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내가 사는 마을에 나를 아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마을은 떠나기 싫은 마을이 된다.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우면서도 마음이 풍족해진다. 집 앞을 나서면 아는 얼굴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된다.
이러한 관계망이 넓어질수록 마음은 더욱 풍족해진다. 아무리 시설 좋고 주변 환경이 좋은 주택에 살더라도 인사하는 이 아무도 없는 곳은 어느날 훌쩍 떠나도 하나도 아쉬울 것 없다. 하지만 비록 환경은 안좋아도 나를 알고 챙겨주는 주변 이웃이 있는 곳은 그냥 떠날 수 없다. 이사가고 싶은 욕망조차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서로 챙겨줄 수 있는 마음과 따뜻한 말의 힘이다.
우리가 응답하라 1988에 그렇게 열광했던 것도 어느새 잃어버린 이웃과의 끈끈한 정을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관계망이 넓은 곳에서는 자녀도 바르게 자란다. 나와 부모님을 아는 이웃이 많은 동네에서는 쓰레기도 함부로 버릴 수 없다. 행동거지를 단정히 할 수밖에 없다. 내 자녀도 이웃의 자녀도, 자녀의 친구들도 모두 마을의 아이들이다. 내 아이가 잘 자라려면 내 아이의 친구들도 함께 잘 자라야 한다. 밟고 일어서야 할 경쟁자가 아닌, 함께 잘 자라야 할 공동체이다.
이렇게 이웃이라는 따뜻함으로 만들어진 공동체가 마을에 필요한 일을 시작한다. 한 두 사람 모여 수다를 떨다 보면 이야기로만 그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기어코 행동으로 나서게 된다. 쓰레기를 줍기도 하고, 벽화를 그리기도 하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시설이나 활동을 만들기도 한다.
투철한 사명감도 아닌, 나와 이웃을 위한 일이니 기꺼이 마음과 시간을 낸다. 마을에 필요한 일들을 기획하고 인적물적 자원을 연결하고 실제 일을 수행해 낸다. 마을 일을 하다보면 자신의 부족한 면을 발견하게 되지만 나의 부족함도 모두 옆에서 메워준다. 함께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한 사람 한사람이 기획자이자 연결자가 되어 성장하다보면 어느새 그 사람 자체가 마을의 중요한 인적 자원이 된다. 마을을 바꿀 수 있는 방법들을 찾다보면 어느새 동정이나 시정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내 아이를 위해서, 혹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들이 참여 민주주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현장이 된다.
마을 활동의 지속가능성
수다꽃이 피고, 필요한 일을 기꺼운 마음으로 하고, 그렇게 성장해가는 마을 활동은 굉장히 재미있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 있다. 시간과 품을 많이 들이지만 실제 내 손에 쥐어지는 보상이 없다. 그런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포기한다. 시간이 돈인 세상이고, 돈을 벌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회이니까.
함께하는 활동이 너무 좋지만 경제적인 사정으로 그만둘 수밖에 없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최근에야 마을 공동체라는 단어가 행정이나 사회 전반에 익숙해지면서 이제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무형의 인적 네트워크 자산을 어떻게 가치로 매겨 무슨 재원으로 돈을 줄 수 있을까.
더 심각한 일은, 이러한 일의 중요성을 인식해 행정에서 일자리를 마련하지만 정작 활동가들은 지원하지 않는다. 동 주민센터에서 '마을 코디네이터' '주민자치지원관' '골목 매니저' 등의 명칭으로 기간제 일자리를 마련한다. 하지만 정작 활동가들은 지원하지 않고, 마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행정업무로 알고 지원하면서 일자리가 본래의 역할을 찾지 못하거나 곧 사라진다.
활동가들이 행정 기간제 일자리에 지원하지 않는 이유는 행정 업무에 얽매여 정작 현장에서 활동을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한 우려와, 기간제 일자리의 특성상 1년, 혹은 1년 미만의 불안정한 일자리이며 경기도 생활임금 수준의 급여이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이 외면하는 자리에는 직장인이 들어와 행정 서류와 보수적인 행정 해석으로 활동가들의 활동을 통제하고 제한하려드니 차라리 없는게 도와주는 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름과 역할이 자유로운 활동가들의 활동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보상이 필요하다. 가장 이상적인 방안은 경력과 활동이 증명된 활동가에 한해 기본소득 개념으로 보상이 이뤄지는 것이지만 부정적인 요소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남은 방안은 보조금 사업에 인건비를 포함시켜는 것인데 이 또한 쉽지 않다. 대부분 보조금 사업이 인건비 편성에 보수적이다. 보조금으로 인한 횡령 및 남용을 막으려는 조치이긴 하지만 이러한 엄격함이 실제 많은 일을 수행하는 활동가들에게 무료봉사를 강요하는 꼴이 됐다.
마을과 함께 성장하는 사람들
2000년대 이후 서울 마을공동체지원센터 설립 이후 각 지자체마다 마을 공동체와 관련한 부서나 중간지원조직이 만들어지고 마을마다 마을조직이 생겨났다. 10여년의 시간동안 사람과 마을 조직들이 서로 만나며 사람과 사람, 사람과 공간 사이가 수많은 선으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관계망 속에서 여러 가지 마을 사업들을 진행하며 기획자이자, 연결자, 리더로 성장한 사람들이 생겼다. 사람뿐만 아니다. 마을도 함께 성장했다.
마을 활동가들의 경험들이 축적된 마을은, 당장 마을조직이 와해되거나 사업이 잘 진행되지 않더라도 그 경험만은 계속해서 쌓여 또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산이 되었다.
이제 마을 활동은 단순히 모이고 알아가고 결속력을 다지고 관계망을 넓히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스스로의 관심사와 필요에 따라 주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댓골 마을이 돌봄과 자원순환에 뛰어든 것처럼, 각 마을마다 특징을 살려 각각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이 그 지점이다. 마을 공동체 조직들이 어떠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갈 때 기존 전문성을 지닌 시민사회단체들이 결합하면 마을과 시민단체가 폭발적인 응집력을 보일 수 있다.
이렇듯 마을에서는 그 마을의 특성이나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수많은 주제를 담을 수 있다. 마을과 이웃이 좋아서 자발적으로 마을일을 하던 사람들은 기획력과 실무력, 조직력까지 갖춘 활동가로 성장했다. 특정 주제에 대한 전문성은 좀 떨어져도 한 사람이 가진 역량 면에서 마을활동가도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 못지 않다.
현재 시민사회단체가 직면한 치명적인 약점은 대중조직이 없다는 점이다. 대중 친밀도는 떨어지고 몇몇 뛰어난 활동가가 단체를 이끌어가는 상황이다. 시흥을 돌아보면 상황은 더욱 여의치 않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새로운 젊은 활동가들을 키워내지 못하고 활동가와 함께 노화되고 있다. 오랫동안 활동해 왔던 시민사회단체들은 새롭게 생겨나는 환경, 청년, 마을 활동가들을 한 그릇에 품지 못하면서 때로는 반목하고, 때로는 경쟁하고 있다.
호혜적 관계, 환대의 공간
마을 운동이 새로운 대중 운동 방식이라 감히 말할 수 없다. 마을 운동에도 한계는 명확히 존재한다. 여전히 참여율은 떨어지고, 주민 대표성을 가지기도 애매하다. 하지만 현재 시민사회단체와 같이 회원의 자발적인 참여와 후원으로 조직을 유지하기엔 뿌리와 허리가 너무 허약하다.
필자는 시민사회단체들이 과감히 마을속으로 걸어 들어가 새로운 대중들을 만나기를 바란다. 아이들 학원비는 하나도 아깝지 않지만, 천원 이천원 때문에 감정이 상하는 유릿장 같은 관계. 주고 받는 것이 부담스러워 아예 아무것도 안받기를 선택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어 늘 외로운 사람들. 무슨 마트에 파 한단 가격까지 비교분석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 속에서 마음을 주고 받다 보면 나 역시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색하게 살아왔음을, 그리고 사람들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얼마나 마음 든든한 일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숫기가 없고, 나서서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던 보통 사람들이 어느 덧 사람들 앞에서 사회를 보고 강의를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뉴스에 관심없고 정치인 싫어하던 사람들이 우리 지역구 시의원 도의원에 관심 가지고, 사회적 사안에 대해 주관을 가져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경제적 보상없이 활동할 수 있는 것은 환대의 공간 마을이 있기 때문이고, 호혜적 관계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돈을 벌지 않는 활동을 하겠다고 과감히 선택하는 순간, 영혼은 욕망에서 자유로워지고 물질적 욕망의 자리에 앎과 성장이 자리잡는다. 이 모든 것이 나와 이웃이 사는 마을이기 때문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