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C 성서연구 - 제21강 열왕기하 남북왕조의 형성과 멸망
(31) 위기 속에서 누구를 찾을 것인가 열왕기하 16장 1-9절
예후왕조 이후 왕조가 세워지지 못하고, 계속해서 반역에 반역에 반역으로 왕이 세워지며 악을 행하던 북이스라엘이 망해가던 때에, 하나님은 남유다에 요아스, 아마샤, 아사랴에 이르는 끝이 좋지 않았던 왕들과 다른 요담이라고 하는 왕이 지도자로 세워지게 됩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역대하 27장 6절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역대하 27:6)
그는 비록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는 왕이었습니다. 요담은 아버지 웃시야 왕이 통치 초기에 가졌던 초심을 잃고 실수했던 것(대하 26:19)과 달리, 끝까지 자신의 신앙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요담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가려고 최선을 다하자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시며 요담이 암몬 자손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하시고, 점점 유다가 강대해지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늘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섬김이 우리의 헌신이 완벽하질 못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최선을 다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시고, 우리를 도우시며, 그분이 준비하신 좋은 것을 베풀어 주십니다.
여러분 초심을 잘 지켜나가고 계십니까? 어느새 얼마 못가 중간에 흐트러지고 마는 것이 연약한 우리입니다. 그렇다고 낙심하고 포기하고 주저앉아서는 안됩니다. 다시 그 초심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물으시는 것입니다. 내가 남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어제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느냐? 어제의 나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늘 우리는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초심이 중심이 되고, 중심은 이제 진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진심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달려가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의 충성이지만, 최선을 다한 헌신을 기억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 놀라운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더욱 가득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평생을 살았던 요담이 죽고 이제 그의 아들 스무살 아하스가 왕이 되는데, 본문이 그 시작입니다. 보란 듯 통치초기부터 아버지의 길을 버립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3-4절)”
보십시오. 그 동안 차마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이 하지 않은 일까지 오늘 이 아하스는 행했던 것입니다. 무엇이지요? 자녀들을 불에 태워서 바치는 인신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레위기와 신명기에 가증하다고 말하시고 엄하게 금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되니, 점점 더 강성하게 해주실 수 있는 하나님을 버리고 헛된 것을 붙잡으니, 아들을 잡아 바치고, 산당과 산꼭대기와 나무아래에서 제사를 드리고 분향을 한들, 나라는 다시금 곤두박질 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람왕 르신을 일으키시고, 북이스라엘의 베가를 연합하게 하시는 것이지요? 그리곤 남유다와 전쟁을 벌이게 하십니다. 평행본문 역대하 28장을 보시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아람 왕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이 쳐서 심히 많은 무리를 사로잡아 다메섹으로 갔으며 또 이스라엘 왕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쳐서 크게 살육하였으니 이는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십이만 명을 죽였으며”(5-6절) 그뿐인가요?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형제 중에서 그들의 아내와 자녀를 합하여 이십만 명을 사로잡고 그들의 재물을 많이 노략하여 사마리아로 가져가니”(8절)
땅을 빼앗기고 백성이 죽임을 당하고 아내와 자녀들은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그마치 30만명이 넘는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역대하를 보시면, 에돔사람들도 쳐들어 옵니다. 블레셋 사람들도 쳐들어 옵니다. 도와달라고 남아 있는 화친을 요청했던 앗수르가 오히려 공격합니다. 뭐라고 기록하나요?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이 그에게 이르렀으나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를 공격하였더라 아하스가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서 재물을 가져다가 앗수르 왕에게 주었으나 그에게 유익이 없었더라”(20-21절)
그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28:19)
그 정도면 정신을 차려야 할텐데, 어떻게 했을까요?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이르되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였더라”(28:22-23)
그는 더욱 미련한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자신을 친 아람왕의 신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람신을 위한 제단을, 여호와의 성전 기구들을 다 부수고 구석구석 다 그 우상들을 세웠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죽을려고 용을 쓴 것인지, 망할 일만 했던 것이지요.
하나님을 모시지 않으면 반드시 우상을 숭배하게 됩니다. 물질이라는 우상, 쾌락이라는 우상, 명예라는 우상 등 우리 마음을 유혹하는 많은 우상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그 우상에 빠지게 되면 어리석은 아하스처럼 죄를 짓게 되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들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이 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 삶에 자리 잡고 있는 우상은 없는지 오늘 여호와의 제단을 헐어버리고 내게 세우고 있는 우상의 제단은 없는지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보십시오. 아하스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악한 길을 걸으니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유다를 위협했습니다. 아하스는 이 위기가 어떻게 주어진 것인지를 돌아보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분께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잘못하고 있을 때 우리를 돌이키고자 하나님이 여러 가지 위기를 주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회개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죄로 인해 위기와 고난이 왔다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과 회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지요? “아니, 그것이 죄로 인한 것인지, 뭐 저 사람들이 악해서 그런 것인지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 직접 좀 말씀을 해주시면 그래도 돌이키지 않겠습니까? 상황과 환경만 보고 우리가 어떻게 회개해야할 때인지를 압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신 때문이 아닙니까?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하면서 또다시 우리의 죄와 악을 이유삼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탓하곤 하는 것입니다. 이 위기 앞에서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안하셨을까요?
안하셨을 리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 내용이 생략이 되어 있는데 이사야를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 아하스를 그냥 두셨을 리가 없으심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7장이 오늘의 이야기를 또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굴 보내셨다구요?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십니다. 오늘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연장시켜주시는 말씀을 선포했던 선지자, 르신과 베가의 공격을 받아 곤경에 빠진 아하스에게 하나님은 바로 그 이사야를 보내십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하나님을 찾지 않으니, 하나님이 보내셨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말씀을 듣겠지 하시며, 르신과 베가를 잠시 아하스 앞에 묶어 두고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뭐라고 이야기를 했을까요?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자 하였으나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1-7절)
그러면서 이사야는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하나님께 구하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이지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11절) 그랬더니 아하스가 뭐라고 이야기했는지요? 12절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12절)
하나님께 구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곤 그가 했던 일이 바로 앗수르에게 화친을 청하고 아람의 신상들을 예루살렘 성전에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묶어두셨던 저 르신과 베가의 목줄을 푸셨던 것이지요. 저, 부지깽이 같은 것들로 끝내 유다를 심판하시고 말씀하신 대로 에돔 블레셋으로, 그리고 앗수르로 말미암아 저 이스라엘은 끝내 망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절대로 미련하고 연약한 우리에게 환경과 상황을 보고 잘 판단하라고만 하시지 않으십니다. 늘 말씀을 함께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과 환경을 보고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져도 돌이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기회인 것을 모르고 끝내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징조를 보고 두려움을 이겨내고 믿음을 굳건히 하는 것이 자존심 상할 일입니까?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입니까? 얼마나 비뚤어진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오늘 아하스의 모습을 통해서 때때로 나타나는 우리들의 모습도 보실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께 구하지 않으면, 별 것도 아닌 부지깽이가 거대한 쇠몽둥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붙잡아 두시고 우리에게 말씀을 주실 때, 인간적인 도움과 방법이 아닌,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을 구하시는 복된 분들이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인간의 눈의 한계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놀랍게 일하시고 놀랍게 역사하십니다. 그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놀라운 간증으로 고백되시는 복된 생애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