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촌의 저수지
와촌을 끼고 있는 팔공산은 골이 깊다. 팔공산 기슭과 팔공의 지산支山 격인 무학산, 계전리 뒷산이 품고 있는 32개의 못을 모두 돌아봤다.
하늘만 쳐다보고 농사를 지었던 옛날에는 물을 기름처럼 귀히 여겼다. ‘내 논에 물 들어갈 때와 자식 입에 밥 들어갈 때 행복하다.’ 하지 않았는가. 지난날, 저수지를 준설하는 것은 농민의 숙원 사업이었다. 와촌의 못들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근대에 걸쳐 건설됐다. 몽리민의 땀 흘린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지게로 흙을 날라 둑을 쌓고 삽으로 못 바닥을 파내고 새로운 물길을 열었다. 미국으로부터 원조 받은 밀가루로 못을 막은 곳도 여럿 있다. 밀가루가 노임이었다. 소위 ‘밀가루 못’이라 불렀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공무원 시절 내가 맡은 일은 밀가루로 공사하는 부서였다. 지금은 건설 업무에 해당하리라. 오늘날, 건설 업무에 민원이 잦은 것처럼 밀가루 공사엔 부작용이 많았다. 설계대로 자재가 투입되지 아니하고 날림공사가 더러 있었다. 못둑에 물이 새고, 제방이 격류에 견디지 못했으니 부실 공사임은 틀림없겠다.
와촌의 32개의 못 가운데 여러 못이 제 기능을 잃었다. 극심한 식량난을 통일벼가 해결하고, 인스턴트식품이 쌀의 수요를 밀어낸 지 오래다. 나락을 심었던 다랑논 대부분이 자두·복숭아밭으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절실했던 물의 가치가 낮아지니 못마저 모습을 잃어갔다. 굴이 막히고 매래가 무너졌다. 흙모래가 물길을 막아버렸다. 칙사처럼 대접 받던 저수지가 푸대접을 받고 있는 현실에 금석지감今昔之感이다.
다행스런 곳도 여럿 있다. 소월1리 양곡지, 갈밭에 내곡지는 못둑을 높이고, 대동1리 독자지는 굴 공사가 한창이다. 못이 물이 가득하면 지하수 개발에 풍부한 수원이 될 것이다. 어디 뿐이랴! 저수지에 파란 물이 찰랑이면 산자수려山紫水麗 그 자체일 듯. 요산요수樂山樂水.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을 산을 좋아한다 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