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 일정으로 브리즈번을 다녀왔다.
나는 밤에 중간에 한 번은 반드시 일어나서 한 두 시간 키보드 참선(?)을 하다가 자는 습관이 굳어 있다.
그런데 첫 날 밤은 김동관 씨 집에서 불을 켜면 너무 밝아서 아내가 잠을 잘 수가 없기 때문에 불을 켤 수가 없었다. 미리 책상 스탠드를 준비해 놓지 못한 실수 였다. 결국 잠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말았다.
다음 날은 전기와 수도가 없는 김동관 씨의 농장 창고에사 잠을 잤다. 물론 중간에 깼지만 불이 없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별 수 없이 해가 떠서 창문으로 빛이 들어와서 노트북을 쓸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다시 말하면 자연에 맡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간은 가뭄, 홍수, 태풍 등 자연의 기능을 거역할 수 없고 작은 자연은 순응하여야만 한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자연환상은 늙는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요즘 내 주변은 온통 죽음을 기다리는 부모님들에 관한 이야기 뿐이다. 동이 트기를 기다리면서 캄캄한 창고 안에서 죽음이라는 자연에 관한 명상을 했다.
2박 3일 동안 바쁘게 4가정의 이야기를 듣는 강행군이었지만 알찬 일정이었다.
특히 재미 있었던 것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3살, 4살 짜리 손자들의 입에 숫가락을 데고서 먹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들을 겁을 주었다 달랬다 하면서 먹이려고 애를 쓰는 코미디였다. 40년 만에 보는 그 모습은 최근에 후배 목사 님이 노쇠해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어머니를 어떻게 해서라도 먹여 보려고 숫갈을 들고 삼키기를 기다리던 모습과 교차해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또 다른 인상적인 일은 3가정이 배우자의 사별을 경험한 가정이었다. 그들이 각기 사별을 극복하고 살아온 이야기에 깊히 공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운명을 극복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당면한 현실을 극복하기 급급해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그런 삶이야말로 니체가 외쳤던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미국 서부의 개척자들이 개척을 하기 위해서 간 것 이 아니고 살기 위해서 마차를 타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려갔던 것과 같은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회피할 수가 없어서 살아 온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운명을 개척한 것이다.
나는 자신의 운명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신앙적 논리를 별로 좋아 한다. 왜냐하면 내 운명의 주인은 신이 아니라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출발 1 시간을 앞두고 김보성 자매가 자기가 아는 사람이 인터넷에서 내 글을 많이 보았다고 고마운 마음으로 만났다. 그런데 그가 어려서 어머니가 자살을 했는데 교회가 가니까 아이들이 “제 엄마 지옥에 갔다”고 쑤군거려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어쩐지 젊은 사림이 내 글을 좋아했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때때로 교회가 해로울 수가 있기 때문에 조심해서 다녀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