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만에 아들놈이 오자 콩쥐처럼 일을 시키고 우리는 근처 도장마을로 나들이를 나갔지요.
도장마을에서는 '밭노래' 축제가 열리고 홍어회가 있는 찰밥 점심을 맛나게 먹었답니다. 그곳에 사는 은우근교수의
초청을 받았지만 나 역시 꽤 궁금했던 마을 축제였으니...
아직 문도 열지 않은 새끼마을도 언젠가는 풀꽃축제라도 열 날이 올거니까
무대도 보고 마이크도 보고 뷔페식도 보고 전시도 보고 주차장도 다 둘러 보았죠...
집에 돌아와 또 아무개네 약도 짓고 약방문도 쓰고 콩쥐처럼 일을 잘한 아들놈 모처럼 칭찬도 하고
청국장집 개운한 무국도 훌훌 마시는 가족시간을 즐겼답니다.
자식이 뭔지 코딱지만 할 때는 데리고 놀기도 좋드만 다 커 버리니 눈치보며 말을 하게 돼요.
딸과 지 엄마가 별 보러 나가는 걸 따라 나섰지요. 하는 수 없이 아들놈도 뒤를 따릅니다.
마을의 복판 시멘트 위에 따뜻한 자리를 깔고 누워 별을 헵니다.
구름이 커튼을 열고 우리 누운 자리 위에 보석을 깔아 놓아요...
나는 가망가망 기타를 치며 옛 추억에 잠기고
별은 하염없이 제 식구를 불리다가도 가끔 돌팔매 장난처럼 길게 유성을 날립니다.
깊은 밤 공중에서 비행기가 자로 잰 듯 제 항로를 따라 세번을 더 지나가는 것을 보고서야
일어나 자리를 개킵니다.
일년 가운데 이런 밤바람이 몇 날이나 올까...
간밤이 아직도 아쉽습니다.
지붕 위에 올랐습니다. 아침노을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카메라 주둥이를 들이대지만
녀석은 늘 내 눈의 감동을 달콤하게 입맞추지 못합니다.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에서 한번 굽어보았죠. 지난 몇 달의 내 곱사등이 흔적들이 차르르 깔려있습니다.
땅바닥에 엎드려 쥐며느리처럼 벽돌을 만지고 사슴벌레처럼 쇠손을 쥐던 저 자잘한 숙제들...
흙에게 묻고 내가 답하고 삽에게 욕하고 내가 웃고...
갤러리 외장은 그럭저럭 마쳤지요.
오방정색 가운데 여긴 흰 색이니 백호, 도담마을로 드는 서편 길 벽입니다.
가을, 결백, 진실, 순결, 폐장, 금(金)
도담에 들어서는 정면. 이 붉은 색은 남쪽을 향해 있죠. 주작.
양, 생명의 근원과 신비, 여름, 벽사의 주술, 혼례, 생성, 창조, 정열, 권력, 심장, 화...
가운데는 노랑.
양, 빛과 흙의 색. 오색 중 가장 고귀한 색. 비장, 토(土)...
흑. 북쪽. 현무, 죽음 - 최상의 권위!
음, 물(水), 지혜, 겨울, 신장...
마을의 아래, 서재준샘의 터에서...
그러므로 여긴 마을 중앙 입구. 어젯밤 둔눠 있었던 자리.
동으로는 청색입니다. 양, 나무(木), 청룡, 소생, 풍요, 생명력, 간장...
이짝에 모두 다섯이었는데, 포도시 남은 한 그루의 소나무가 짠하기도 하고
잃어버린 지난 소나무 얼굴들이 내 눈에 박인 흙가루처럼 따갑습니다...
청색은 장차 이 마당에서 자라게 될 약초들의 초록을 키우는 해뜨는 곳이죠.
잔디가 아직도 초록초록합니다... 난 장성중지가 좀 보드라운 키 작은
잔딘줄 알았는데 조금 억세어서 그리 융단처럼 미끈하지는 않더군요.
후문에서...
마을 앞으로...
데크에서...
데크 아래로...
ㅎ 지붕 위에서...
지붕 아래로...
정문 계단을 오르고...
정원석을 밟고 넘다들며 지난 여름 한 철을 불개미처럼 기어다녔지요.
갤러리 화장실에서도 잘 보이는 천태산과 개천산.
동으로 문을 여는 갤러리 입구...
연못 가에서...
또 연못 뒤에서...
혹 아틀리에 창문으로도 서로 통하는...
집안이고 집 밖이고 사통팔달의 구조며 동선입니다.
황과 적의 중간 지점을 깐 점토블럭들... 남은 갯수를 헤아려 요렇게 이곳 저곳 끝나가고 있죠.
아심찮게도 갤러리의 안쪽 내벽과 조명은 텅 비어 남았습니다.
속으로 궁시렁거리길, 좋아, 내가 용접기만 있어봐라. 대문도 아치도 선반도 다 만들거다!
재료만 갖추면 내가 화장실 타일은 못 붙이냐? 며 씩씩거립니다.
하지만 이는 또 기술자의 몫이라 쉽지는 않을 터이고
옛다, 저장고의 외벽에 황토몰탈은 내 손이 더 귀하닷.
아놔~ 저장고 안벽의 황토핸디코트도 내 어깨가 더 고급일게다!
시간이 문제지 아니냐! 바닥 마감의 셀프레벨링 작업은 눈 감고도 우습고,
페인트, 에폭시.. 그거 사놓기만 하면 내가 원래 붓쟁이 페인터 깜냥 아니더냐!
시공자들 거 믿을 게 못 돼!!
두런거리며 마음을 굳혔습니다.
적이 일년을 빨딱 뛰어넘는 이 시간들도, 무겁고 아슬하고 뻑적지근했던 그
순간들과도 잔잔히 안녕을 고할 입술을 바르고 있다 이거죠.
못에는 수련을 안 피워도 물 맑으면 되었고,
잔디는 꽃빛이 곱지 않다 하여도 새파라니 되었고,
바람처럼 가볍게 차돌처럼 단단하게 나를 고쳐 앉아야하지 않겠나 점을 치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열 댓번 삭감하고 수렴하고 꿰매서 이 가을을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애당초 부풀었던 거도 애당초 몰랐던 거도 애당초 떠돌던 것도 죄
가다듬어 곰처럼 개구리처럼 웅크리고 미동도 없이 겨울잠에 들어야겠어요.
ㅎ
잠결에 밤톨도 줍고 풀뿌리도 캐고 또 지난 농사 끝에 까불거리던 수수며 참깨며 녹두며 결명자들 말리어
새로 입성한 도담의 한 해 한 페이지를 도담도담 갈무리해야겠습니다...
내년 봄으로 꽃을 심고 또 나무도 심어 푸르러지면 갤러리 속도 닦아 깔끔해지면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동안 성원해주신 여러분... 캄사합니데이~~!
첫댓글 아하~ 화순군에서 보내온 도장골 밭노래축제 보도자료가 이거였군요.
아깝다, 한번 가볼걸. 그러다 콩가루 풀풀 날리면서 인절미 한입 물고 계시는 회장님과 딱 마주치면?
얼매나 놀랍고 기뻤을 참인디...
얼마전에 도장리밭노래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됐다던데, 이런 멋진 마을축제를 열었네요.
이 담에 필경 도담마을축제도 걸판지게 열리게 될텐데 그땐 제가 가서 떡메치기 솜씨를 보여드립죠.
그나저나 이 멋진 도담풍경을 보면서 걱정이 되는 건 뭘까요? 누가 옴빡 띔어가 버릴까 걱정돼요.
너무 이쁘고 훌륭해서요. 거리라도 가까우면 이리저리 오가며 불침번이라도 설텐데 원...
음... 전남타임스가 왜 취재를 안 하나 했지. 나도 첨이라 워찌 흘러가는지 염탐하는 수준이었죠. 지원예산으로 하는 일이지만 또 마을마다 하는 일도 아닌지라 특별했죠. 내가 7년 전에 가르쳤던 학교가 있고 그 때 만난 학부모도 있어 남달랐어요. 거기서 만났으면 참 즐거웠겠군..ㅎ
와우^^집 지으실때 추카 인사를 드렸던 것 같은데..이제와선 집과 멋진 갤러리 완성을 추카 추카드립니다. 한 작가의 오래 준비된 작품 전시회를 보는 것처럼 동안의 크고 작은 호흡과 손길이 느껴집니다. 그 곳에서 한 잔의 차와 자연 한 잔의 막걸리와 마른 홍어내음이 이 곳까지 전해져 옵니다.
데크 위에서 자네 연미복을 볼 수 있을지...^^ 너무 높은가? 해남 두륜산 서남단의 경사도 이 정도의 높이였던 것 같은데 자네 발성소리가 참 맑았제. 가을빛 마냥 행복하시게...
도담마을 터를 고르고 다듬어 집과 갤러리를 짓는 과정을 지난 3년 전부터 지켜만 보았네요^^; 연못과 황토벽돌길과 정원석 하나하나에 선배님의 정성어린 손길과 감성과 높은 안목이 느껴집니다. 긴 호흡으로, 땀흘려 삶터를 일구어가는 선배님이 존경스럽네요. 아내와 아이들과 한 번 꼭~ 찾아뵙고 이야기 나누며 배우고 싶습니다.
어제 백두선 전화 받았네. 마파람과 곧 한번 오신다니 기다려지군. 포도시 하는 일이라 가르쳐줄 것은 하나 없네만 보고자와서 그러라 했네. 내외 간에 손잡고 오시게.^^
갤러리 외장, 정말 아름답네요. 심플하고.
역시 오빠의 감각은!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자심했을까... 그게 또한 삶의 희열이기도 했겠지만요.
쑥스럽게 감각은~^^ 자심한 고생은 돈이 하였고 내가 부린 손의 고생은 되레 두번도 세번도 아니 올 행복한 순간들이었어. 그럼... 지친 눈의 밤별은 얼마나 달고 서두르는 아침 안개는 또 얼마나 고소하였는지... 고마워~~!
설레며 몇 밤만 자면 볼 수 있으리라 기다려집니다. 가을 밤 별을 봐야 하는데 텐트 갖고 갈까요?
10월도 중반으로 달리니 곧 만나겠군요. 저도 손꼽아 기다릴게요.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완성하기까지 쏟아부은 땀이 얼마였을까요? ^^ 정말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우리네 평범한 사람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생강나무님, 시집도 냈고 바람 쐬러 요번 선암사 행장 한번 꾸리심은..?? 땀요? 연못에 고인 저 물웅덩이 만큼 흘렸어요^^!
기다림의 미학이 절실한 도담의 풍경화네요..
마당에 심어놓은 잔디보다..선생님 마음에 깔린 주단이 더 초록일것 같네요..
기다리다 보면 풀꽃 축제는 절로 열리겠죠?...애틋한 주인의 마음을 닮은 도담의 풀꽃 축제가
새삼 보고싶어 집니다...^^
요리 삼매에서 나와 오랫만이군요 해빈... 동안 솜씨가 더 늘었겠죠? 풀꽃요리로 승화하여 건강전도사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