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떼이 같은 사람
글쓴이: 조정래
흔히 안동사람들을 양반이라고 합니다. 허나 필자는 안동출신이지만 왜 타지 사람들이 안동인을 양반으로 격상 대우하는지 잘 모르면서 70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70을 훌쩍 넘기고부터 조금씩 안동양반에 관한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안동지방은 유난히 조금 모자라는 사람에 대한 호칭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쪼데기, 쑥맥이, 모지래이, 터구, 등신, 팔푼이, 푼수, 맨자구, 가마떼이...
이런 호칭이 많이 사용되는 지방일수록 순진무구하거나 소위 어리숙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약고 머리 좋은 사람은 안동지방에서 태어나서 먹고 살기 힘들면 먹고 살기 좋은 넓은 들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조금 답답하거나 순진무구한 사람만 타지방으로 이사 가지 못하고 굶어 죽어도 선친들이 살았던 고향에서 평생을 삽니다만, 경제개발 폭발로 지금은 안동사람들도 많이 흩어져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순진하고 솔직히 답답한 모지래이 같은 분들이 경북 산골지방에 가장 많이 산다고 합니다.
안동 언어에 존칭어보다 해라 언어가 의외로 많습니다. 암튼 안동사람들도 상대방을 얕보는 행동이 있어선지, 안동사람들 말에, "내가 가마이 있으니, 자네가 나를 알기를 가마떼이 취급하는구먼!" 하는 우스개가 있는데, "가마떼이"는 못살던 시절 퍼 담거나 혹은 마당에 깔 수 있도록 볏짚으로 엮은 물건을 말합니다.
비닐이라는 신물질이 나오면서부터 이제는 사라졌지만 1960년대 말까지 안동의 신시장과 구시장을 가르는 천방 사장뚝에는 볏짚으로 각종 씨앗을 담을 수 있는 쌀가마니 혹은 마당에 까는 멍석, 그리고 각종 종다래끼, 가마떼이 제품들을 들고 나와 파시는 할배들이 있었습니다.
서울의 대학교수가 안동 사장뚝에서 가마떼이 파시는 할아버지가 물건을 팔면서 손님이 와도 앉아서 파는 것을 보고, "손님에게 예의 없이 편하게 앉아서 판다"고 한마디하자, 가마떼이 파시는 안동 할배가 서울의 대학교수에게 말씀하시길, "지 가마떼이 물건은 앉아서 파나 서서 파나 값은 매~엥 같음씨더!" 하였다는 구전은 교수라고 촌노를 우습게 여기는 것을 알고 응대한 고품질 안동 우스개 이야기입니다.
아시겠지만 가마떼이는 집안 아무 곳이나 처박아 두었다가, 콩을 담아도 말이 없고 명씨를 낼 때는 조금 건조된 똥거름을 퍼 담아도 말이 없습니다. 사용중 흙이 묻든 재가 묻든 툭툭 털어버리면 다시 깨끗해지는 물건입니다. 즉 농경살림에 사람들이 막 취급하는 물건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막 취급해도 화를 내지 아니하는 쪼데기나 모지래이 급 친구들을 보기도 합니다.
필자의 초등동창 중에도 팔푼이가 있었는데, 그는 항상 싱긋이 웃었고. 10리 산길 오가면서 친구들이 머리에 꿀밤을 주거나 발로 차도 실실 웃으면서 뒷걸음 치지 절대 화를 내거나 덤비지 아니하는 친구입니다.
특히 친구들이 "응진이 불알 까자!" 놀리면 실실 웃으면서 도망칠 망정 화를 내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그 동무 고추는 동무들 중 기중 커서 모지래이가 고추 하나는 제일 크니 더더욱 너도 나도 질투해서 그를 괴롭힌 철없는 짓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를 영 쑥맥이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졸업 후 10년도 더 지나서 고향 읍내 장터서 스치는데, 저를 보더니 그의 특유의 미소로 ‘싱긋이 웃었습니다.’ 그때 친구의 웃음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자기 딴에는 그래도 조정래가 동창이라는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친구였습니다.
세상이 각박해진 탓인지 자고나면 상대방을 무시하는 행동들이 넘치는 나라입니다. 국회를 보면 구역질이 날 정도로 상대방을 무시하고 고함지르는 인간들이 보입니다만 외국인이 본다면 한국말을 못 알아들어도 고함지르는 넘이 나쁜지 좋은지 구분합니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들면서 각종 모임이나 동창모임도 상대방이 자신을 업수이여기거나 무시하면, 자연 하나 둘 마음을 접고 관계도 졸업을 합니다.
가마떼이처럼 받은 상처나 얕잡힌 것을 툭툭 털어버리면 될 일도,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보니, 오래 된 동창이나 지인도 어느 날 그가 하는 행동이나 말을 듣고, 동석하기 싫어지니 자연 거리도 두게 됩니다. 그래서 필자는 친구도 늙으면 재편된다고 우스개로 말합니다.
저도 쪼데기 수준입니다만 어쩌다 보니 캐나다, 미국, 벨기에, 프랑스, 일본, 그리고 다시 미국에서 살아봤습니다만, 어느 나라든 국민성이 조금씩 혹은 크게 차이 납니다.
한국인 인성 중 가장 나쁜 면 하나를 꼽는다면, ‘착한 사람이나 조금 모자라는 사람을 얕잡아 본다’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이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우리와 전혀 다른 종족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필자가 프랑스서 근무할 때 회사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강강수월래’처럼 대오를 빙빙 돌면서 자기 마음에 드는 남자를 불러내어(남자는 여자 선택권이 없음) 키스를 세 번 하는 게임이 있었는데, 자랑 같지만 그날 제가 태어나 가장 많은 볼테기 키스 세례를 받은 남자 사원 중 한 명입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유럽인들은 선하고 만만하게 보이는 사람을 우리와 달리 매우 존중하는 풍습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조금 모지래이 사람은 대면한 상대방에게 먼저 상대방 마음을 편하게 하니 그만큼 부분을 자기보다 더 훌륭한 인성으로 꼽는다는 것입니다.
회사 동료들 사이나 대인관계서 그런 사람을 불어로 "본옴"(bonhomme: 좋은남자)이라고 합니다만, 암튼 우리처럼 착한 사람을 가마떼이 취급하거나 절대 얕잡아보지 않습니다.
세계 최대 전자제품 판매망을 갖춘 미국 라디오셱(Radio Shack)에 다닐 때는, 어쩌다 보니 대학도 아니 나오고 겨우 안동 경안고 나온 제가 그 거대한 회사 회장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린(대단한 것은 아니고 그냥 회장님 텔렉스 전달 업무) 적도 있습니다. 같이 근무했던 한국인이 어느 날, "미스터 조는 고졸이고 자기는 서울대 출신이다. 왜 고졸 조정래가 자기보다 봉급이 많은가?" 항의하는 바람에 제가 고졸이라는 것이 드러났지만, 그래도 미국인들은 "So what?" 간단히 그 서울대 출신 항의를 묵살했습니다.
즉 대졸자가 서 푼어치 지식 차이도 아니 나는 고졸자를 얕보는 한국인의 인성을
간단하게 묵살하는 미국인을 보아 온 사람이다.
우리나라서 삼성전자 회장실에 고졸자가 들락거릴 일은 지구가 꺼꾸로 돌아도 실현되기 힘든 나라입니다.
그러한 일이 있다 하여 제가 착한 사람이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제가 회사 아시아지역 거래 내용 텔렉스를 담당한 것은 회사 내에서도 일본인보다 제가 더 편한 사람으로 보여져서 회장실 출입이 선택되었다고 봅니다.
제가 귀국해서도 저는 그런 유명한 회사에서 고졸 자가 미국인들이라면 다 아는 라디오셱(Radio Shack) 회장님 버니 어펠 씨를 모셨다고 하여 우쭐해서 초중고 동창들에게 단 한번도 자랑한 적이 없습니다.
이 글로 처음 알려질 것입니다. 그래선지 동창들 중에도 조정래 알기를 가마떼이 취급하고 사회인들은 저를 이용하여 외국서 벌어 온 돈도 사기로 다 날리고... 암만케이도 저는 안동 가마떼이가 맞는 사람이고, 특히 웃음이 헤프고 목소리도 희마리가 없고 하니 대인관계서 얕잡아 보이는 경우가 발생합니다만, 그러하다고 누구처럼 눈 쪽 째진 채로 입 꼭 다물고 상대방 빈틈 노리는 그런 표정으로 살고 싶지는 않으니 참다가 참다가 결국 피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나이가 70전후반이 아닐까 합니다.
더 진행되면, "인간이 싫다" 급으로 발전된다고 합니다만, 여성들은 업신여김을 받으면 우울증으로 진행되어 주변사람들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그래도 안동 노인인데 가마떼이처럼 냄새 나는 먼지 훅훅 털어버리고, 선비처럼 고독한 행복감을 스스로 재정립하는 노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암튼 저는 쪼데기 한 수 아래 맨자구 급이 아닐까 합니다. 타인에게 쉽게 얕잡아 보이시는 분들 제 글 읽으시고 힘 내세요
귀하가 쑥맥이 급이라면 유럽사회에서는 "본옴" 급으로 존중 받는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리고 이 글 읽는 분들은 착하고 선한 사람, 조금 모자라는 사람 이용하거나 만만하게 대하거나 얕보지 마시길 바랍니다.
2023 늦가을 아침에 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