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8월 20일) 그동안 벼르고 벼렀던 서울 성곽에 올랐었습니다. 시간 여유가 별로 없어서 창의문(자하문)에서 시작 해 숙정문으로 내려왔지요. 군 복무를 할 때 지긋지긋하게 내달리고, 머리 박고, 기고, 뛰었던 북악산. 33년만에 다시 찾은 그곳에는 아련한 추억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뿌듯하기도 하고, 휑하니 가슴이 허전하기도 하고...... 형언하기 어려운 마음이었습니다. 저 서대문구치소 앞 공동수돗가에서 스페어 통 두 개에 물을 채워 짊어지고 인왕산 암벽을 기어오르던 이등병 시절부터 정릉골짜기에서 악을 토해내며 기압을 받고, 팔각정을 휘도는 선착순에, 북악스카이웨이를 따라 구보로 아리랑고개를 왕복하던 그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다음 기회에는 사직동에서부터 시작해서 인왕산 성벽과 북악산 성벽을 이어 혜화문까지 걸어보리라 마음 먹으면서 성북동 골짜기를 따라 내려왔습니다. 아직 북악산에 올라 보시지 못한 분들을 위해 그냥 주절 거렸기에 부담없이 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ㅎ

자하문을 오르던 길에 들른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택 앞에 있는 백송의 그루터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워 천연기념물로 지정 되었었지만 10여 년 전 태풍 때 쓰러져 말라 죽었다고 한다. 이곳 주민들은 새로 백송을 심어 키우고 있는데 사진 왼쪽 종로구청장의 경고문이 걸린 나무다. 나무를 사랑하자는 경고문이 나무에 흉물스럽게 걸린 모양이 우습다. 공무원들의 생각이란 게......쯧쯧쯧

오래 전에 한 번 가 본 기억을 더듬어 종로구 통의동에 있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살았다는 집을 찾았었다. 백송 바로 앞 집이라서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누군가 장난스레 걸어 둔 추사선생의 작은 영정과 한글로 추사 김정희라 쓴 문패가 있었다.

창의문 입구에 서 있는 고 최규식 경무관 동상. 1968년 1. 21. 김신조 등 124군 부대 소속의 무장 공비들이 청와대를 기습 했었고, 그 때 순직한 그 자리에 동상을 세웠었다. 동상 뒤편의 철책 너머가 바로 청와대 경내다.

별 헤는 밤의 시인 윤동주 문학관. 토요일 오후인 때문인지 문이 닫혀 관람할 수 없었다.

서울의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창의문이다. 서대문인 돈의문과 북대문인 홍지문 사이에 있는 문으로 이곳 계곡의 이름을 빌려 자하문으로도 불렸다.수 백년 동안 사람의 발길에 의해 길들여진 박석이 윤기를 발하고 있었다. 북악산 성곽은 군 작전지역이기에 이곳 통제소에서 성곽 탐방 신청서를 제출하고 신분증을 제시하면 비표를 준다. 이 비표는 목에 걸고 북악산 성곽을 탐방한 뒤 숙정문 통제소에 반납하면 된다. 사진의 여성들은 나와 동행한 태백산맥-조정래사랑 카페 운영자들로서 연세대 대학원 국문학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아직은 학생들이다.

북악산 성곽을 따라 도는 탐방길. 새로 설치한 나무계단이 높고 가풀막져서 숨이 차고 헐떡 거렸다. 무등산 옛길 3길의 깔딱고개만큼 힘 들었다.

342m 북악산 정상의 백악 쉼터에서 남산타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날씨 탓인지 타워도 보이지 않고 산 정상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33년 전 내가 이곳에서 군복무를 할 당시에는 이곳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었는데 지금은 볼 수 없었고 휑하니 허전하기만 했다. 강산이 변해도 세 번은 족히 변했을 세월이 흘렀으니......

1968년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기습 사태 때 온몸으로 총알을 받아 낸 소나무의 모습이다. 지금도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특정지역으로 군사시설 보호구역이기에 사진 찍기도 여의치 못 했었다. 성벽이 길게 보이는 곳으로 감시가 소홀한 틈에~ㅋ

조선시대 성벽 축조의 특징이 적힌 안내판이다.

성북동 골짜기에 있는 삼청각의 모습. 옛날과 달리 지금은 음식점으로 운영 중이라고 한다.

숙정문. 4소문 가운데 북쪽에 있는 문이다. 본래 도성의 4대문은 5상(5常 : 仁,義,禮,知,信)을 기반으로 동문은 흥인문, 서문은 돈의문, 남문은 숭례문, 북문은 홍지문이었다. 홍지문은 태조 5년에 건립했는데 음기가 강한 탓에 홍지문을 열면 도성의 여자들이 바람이 난다고 해서 그 이듬해에 폐문을 했다고 한다. 연산군 때 홍지문에서 동쪽으로 떨어진 곳에 숙정문을 세웠는데 당초에는 문루가 없었다고 한다. 후에 문루를 새로 건립했었는데 1968년의 1.21사태 이후 청와대 경호경비를 위한 군 작전지역에 편입되면서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게 되었었다. 그 후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문루를 복원 했고, 성곽길을 올라 본 노무현 대통령께서 이 아름다운 길을 나만 볼 수 있겠는가 일반에게 공개하라 지시하여 전면 개방하게 되었다.
첫댓글 서울 나들이 다녀오셨군요^ 저도 북악산을 한번밖에 안가봐서 잘몰랐는데 사진구경 잘 했습니다.
장회장님~ 잘 계신가요? 오랫만입니다.~ㅎ 늘 고맙습니다. 33년 전에 수도경비사에서 군복무를 했거든요~ 정말 오랫만이라 감개가 무량했습니다.~ㅎ
읍장님 덕분에 서울구경 한번 잘했네요... 저도 함께 쫄랑쫄랑~ 잘 따라 다닌 기분이 듭니다...ㅋㅋㅋ
~ㅎㅎㅎ 쫄랑쫄랑은요~ㅎ 고맙습니다. 저번에 차 마시러 오신다더니 소식 없으시네요? 김은주 선생님도...... 개학 하기 전에 놀러 오시제~ㅎ
성벽 축조도 시대에따라 달랐다는걸 배우고 가네요,,..........감사함당
하이고~! 선배님 아니십니껴~ㅎ 배우고 가시다니요~ 웬 겸손의 말씀을...... 늘 성원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이렇게 섬세한 사진과 해설까지 곁들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읍장님 덕분에 서울구경함 잘했습니다.
원님 덕분에 나발 분다더니 읍장님 덕분에 서울 구경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