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주일 강론 : 예수님의 수난(마태 26,14-27,66)>(4.2.일)
1. 사순시기 40일도 이제 마무리에 접어들었습니다. 오늘은 전례력으로 1년 중 가장 거룩한 한 주간, 다시 말해서 성주간이 시작되는 ‘주님 수난 성지주일’입니다. 이번 주간 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시작으로 해서 그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기념할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구원역사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사건들로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토대가 되는 엄청난 사건들입니다.
‘성지(聖枝)주일’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 때 시민이 환영할 때 흔들었던 ‘나뭇가지’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예루살렘 시민처럼 성지를 흔들면서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제대회에서 성지를 많이 준비했으니 여러분 댁에 있는 십자가 숫자만큼 성지를 갖고 가셔서, 그 십자가 뒤에 정성껏 꽂아 두시기 바랍니다.
2. 어릴 때 청각장애를 앓다가 결국 청각을 잃은 할머니가 뼈암으로 호스피스 병동에 갔는데, 그 할머니는 시각장애 할머니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서로에게 눈과 귀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청각장애 할머니가 암의 고통으로 몸져눕자, 안마로 생계를 꾸려온 시각장애 할머니들이 조를 짜서 매일 병원에서 청각장애 할머니의 온몸을 몇 시간씩 마사지해줬기 때문에, 청각장애 할머니는 편안하게 선종할 수 있었습니다.
암을 치료하는 의사들이 암환자에게 제일 많이 듣는 말은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습니까?”입니다. 시한부 기간을 알려달라는 말인데 의사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같은 항암제를 써도 일찍 죽는 환자가 있고,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래 사는 환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생명은 수학 공식과 다릅니다. ‘생존율 1%’라고 해도 그 1% 안에 들면 100% 삽니다. 항암치료가 힘들어도 암이 몸 여러 곳에 퍼져있으면 항암치료해야 하는데,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 드신 분들의 수술을 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잘못하면 수명이 단축될 수 있어서 굉장히 신중해야 합니다.
3. 2015년에 70세였던 소설가 복거일 씨는 2년 반 전에 간암에 걸렸지만, 글을 쓰고 싶어 항암치료를 안 받고 병원에도 안 가면서 책 3권을 썼습니다. 그분의 암세포는 세상에 남길 글이 있었던 그를 기다려줬습니다. 암환자의 경우는 갑작스러운 사고사(事故死)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이것저것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때문입니다.
2015년 3월 29일 돌아가신 모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남들에게 베풀기 좋아하신 모친은 여동생 가족들이 오면 음식을 준비해서 “많이 먹어라.”라고 말하시며 계속 음식을 만드셨습니다. 어느 정도 음식을 먹고 나면 “얼른 먹고 퍼뜩 가라.”고 하셨는데, 외조카들 생각에는, 우리와 놀아주지도 않고, 얘기도 잘 하지 않는 야속하고 시크한 할머니라고 섭섭해했습니다. 하지만 모친이 암 투병 하면서 여동생들 집과 병원에 계셨을 때 여동생들이 모친을 정성껏 보살피자 외할머니가 어떤 분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정이 많고, 마음도 이쁘고, 손재주도 좋고, 유머가 있고 아낌없이 주는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사춘기 때문에 부모 속을 태웠던 조카들이 있었지만, 모친 덕분에 현재는 청소, 빨래, 설거지, 아르바이트도 잘 하고, 부모에게도 나름 성실하게 효도합니다.
4. 오늘 수난복음은 ‘예수님의 최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유다인들의 왕’이라는 죄로 십자가형을 받았는데, 그것은 유다인들에게는 ‘신성모독죄’이고, 로마인들에게는 반역죄였지만,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억지로 만든 죄목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당한 진짜 이유는 말하지 않아야 할 내용을 공공연하게 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군중은 그분의 충고를 듣지 않고, 다른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해결책은 그분의 입을 영원히 다물게 하는 것, 그분을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죄 없는 그분을 죽일 준비를 철저하게 했습니다. 재판도 깔끔하고 그럴듯하게 잘 갖춰 진행했고, 여론몰이도 잘했습니다. 비록 로마제국의 식민지 상황이었지만 합법적으로 범죄자를 단죄하고 처형했으니, 그분의 죄가 꾸며졌다는 사실만 빼면 흠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했던 군중은 며칠 만에 마음이 급변해서 그분을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분이 3년 동안 천국의 복음을 전하셨지만, 그들은 찬성이나 반대를 분명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과 잘 지내면서 그분을 적대시한 사람들이 있었고, 또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면서도 그분께 동정심을 느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수난과 고통을 받게 되자,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사도 베드로, 요한과 이스가리옷 유다는 그분의 제자였고, 아리마태아 요셉, 니코데모와 유다인들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들은 스승을 부정하기도 했지만 예수님 부활 후에 다시 모인 이후로는 변함없는 마음으로 교회를 굳게 지켰습니다.
특히 골고타 언덕에서 예수님 곁 십자가에 매달린 도둑 중에 오른쪽의 도둑은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님께 간청해서 천국을 얻었지만, 왼쪽에 있던 도둑은 회개 없이 죽었습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는 약속을 예수님께 직접 들은 우도의 이름은 ‘디스마’였고, 3월 25일에 축일을 지냅니다.
그에 비해 아주 불행한 영혼이었던 이스가리옷 유다는 종의 몸값인 은전 30냥에 스승을 팔아넘겼고, 최악의 선택 때문에 자기 스스로 지옥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정말 불행한 결과입니다. 절대로 유다처럼 살지 않아야겠습니다.
5. 우리 인생의 최종 목적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분의 수난에 늘 동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충실히 지고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이번 성주간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되도록 온 힘과 온 열정을 다해야겠습니다. 성주간을 값지게 보낼 수 있는 은총을 주님께 간절히 청하며 미사를 계속 봉헌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