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붐(La Boum)
최용현(수필가)
영화를 좋아하는 올드 팬들 중에는 오래 전에 나온 프랑스 흑백영화 ‘금지된 장난’(1952년)의 다섯 살짜리 꼬마 여주인공 폴레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톡 튀어나온 이마와 초롱초롱한 눈, 자그마한 입…. 프랑스의 로맨틱 코미디 ‘라 붐’(1980년)에서 소피 마르소의 엄마로 나오는 여배우가 바로 폴레트 역을 맡았던 브리지트 포세이다.
여성관사인 La와 폭발음 Boum이 합쳐져서 ‘10대들의 파티’를 의미하게 된 ‘라 붐’(La Boum)은 소피 마르소의 청순미에 힘입어 유럽에서만 1500만 관객을 동원하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비디오로만 발매되었다. 1984년에 서울 세종문화회관 소강당과 부산 시민회관에서 열린 월간 ‘스크린’ 창간기념 시사회에서 700여명이 관람했을 뿐, 정식 극장개봉은 2013년에 이루어졌다.
막 이성에 눈을 뜬 13세 여중생 빅(소피 마르소 扮)은 치과의사인 아빠 프랑수아(클로드 브라스 扮)와 만화가인 엄마 프랑수와즈(브리지트 포세 扮)를 따라 파리로 이사 와서 새로운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빅은 자신의 일에 바쁜 엄마와 아빠보다는 신세대 감성에 조예가 깊고 얘기도 잘 통하는 외증조할머니 푸페트와 더 가깝게 지낸다.
어느 날, 빅은 친구의 초대로 간 파티에서 헤드폰을 씌워준 마튜(알렉산드르 스털링 扮)와 친해져서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된다. 처음으로 사랑에 눈뜬 빅은 이런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상대방에게는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고민하다가 푸페트 할머니에게 고백하고 코치를 받는다.
한편, 프랑수아는 치과에 손님으로 온 과거의 애인 바네사와 하룻밤 외박을 하는데, 한쪽 다리에 석고붕대를 붙이고 교통사고로 다쳤다고 아내에게 거짓말을 한다. 그러다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아내를 보고 죄책감이 들어서 바네사와의 관계를 털어놓는다. 분노한 아내는 프랑수아와 별거를 선언하고, 할머니 푸페트와 함께 바네사의 화장품가게를 찾아가 진열대를 박살낸다.
빅은 남친 마튜가 한 여학생과 롤러장에서 데이트하는 것을 목격하고 분개한다. 때마침 자신을 데리러 온 아빠에게 일부러 키스를 퍼붓는데, 이 모습을 본 마튜는 빅이 치한에게 추행당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빅의 학교에 간 엄마 프랑수와즈는 독일어선생 에릭과 면담을 하다가 그와 친한 사이가 된다.
며칠 후, 프랑수아는 아내 프랑수와즈를 집에까지 바래다주는 에릭을 미행한다. 그러다가 불량배들에게 봉변당하는 것을 보고 에릭을 구해준다. 프랑수아는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에릭에게 아내를 내버려 두라고 하면서 주먹을 날린다. 프랑수아는 딸을 데리러 학교에 갔다가 치한으로 오해한 마튜의 공격을 받고 싸우는데, 때마침 빅이 나타나 오해가 풀린다. 그날 밤, 프랑수아는 아내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데….
여름방학이 되자, 마튜는 호텔종업원 견습을 위해 카부르로 간다. 마튜를 만나고 싶어 하던 빅은 푸페트 할머니와 함께 차를 타고 카부르로 향한다. 마튜는 빅을 자신의 비밀 아지트에 데려가서 키스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견습 일정 때문에 새벽에 빅을 그대로 두고 가버린다. 상심한 빅은 푸페트 할머니가 묵고 있는 호텔로 되돌아간다. 아침에 빅과 푸페트 할머니는 그곳 식당에서 서빙 견습을 하는 마튜를 어색하게 조우한다.
한편, 프랑수와즈가 임신을 하자, 남편은 에릭의 아이라고 오해하는데, 이에 화가 난 프랑수와즈는 에릭을 찾아간다. 거기서 아프리카로 휴가를 떠나자는 에릭의 제안을 받고 당일 공항에서 에릭을 만나지만 비행기 탑승구 앞에서 뒤돌아선다. 오는 길에 부부의 추억이 담긴 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남편을 발견하고 그 식당으로 들어간다.
빅은 14세 생일을 맞아 집에서 파티를 연다. 빅은 마튜에게 서운한 감정이 남아있었지만, 마튜가 파티장에 찾아오자 그 감정은 눈 녹듯 사라진다. 빅이 마튜와 함께 춤을 추고 있는 사이, 또 다른 멋진 남자아이가 파티장에 나타난다. 빅이 이번에는 그 남자아이와 춤을 추면서 영화가 끝난다. ‘라 붐2’(1982년)에 대한 예고인지….
‘라 붐’은 중학생인 빅의 첫사랑 이야기와 함께 바람을 핀 남편과 그의 아내가 사춘기 딸을 사이에 두고 별거를 하면서 티격태격하며 엮어가는 중년의 사랑을 투 트랙으로 이어가고 있다. 파리 여중생의 사고(思考)와 행동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는 것 같고, 중년부부의 사는 모습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1980년대 브룩 쉴즈, 피비 케이츠와 함께 3대 책받침 여신으로 꼽혔던 소피 마르소는 13세 때 오디션에 참가하여 700:1의 경쟁률을 뚫고 ‘라 붐’의 빅으로 발탁된다. 갸름한 얼굴에 요정 같은 이목구비, 티 없이 맑은 피부와 검은 생머리가 묘한 조화를 이루며 전 세계 소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면서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헤드폰 장면과 함께 나오는 불후의 명곡 ‘Reality’는 유럽 15개국 차트에서 1위에 오르는 등 빅 히트를 하여 무명이었던 영국출신 가수 리처드 샌더슨을 단숨에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그의 독특한 미성과 결합된 감미로운 멜로디와 가사는 사랑에 빠진 소녀의 설렘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매혹적이면서 순수한 감성이 물씬 묻어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연푸른 눈동자의 브리지트 포세가 나올 때마다 ‘금지된 장난’의 다섯 살짜리 폴레트의 앙증맞은 모습이 떠올랐다. 그동안 영화에서 본 브리지트 포세(1946~ )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금지된 장난’(1952년)은 6세, ‘아듀 라미’(1968년)는 22세, ‘라 붐’은 34세, ‘라 붐2’는 36세, ‘시네마천국’(1988년) 확장판은 42세 때의 모습이 나온다. 이제 그녀도 7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아, 그러고 보니 나야말로 브리지트 포세의 찐 팬인가 보다.
첫댓글 음악이 참좋아요
네,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앳된 소피 마르소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영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