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검도 채플
이 집에 오신 당신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주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평화를 빕니다.
문이 있지만 언제나 열려 있는 이곳은 주인이 없는 집입니다. 굳이 주인을 찾으면 이 집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당신이 이 공간에 머무는 동안, 이 집은 당신의 집입니다.
고요와 침묵과 경건함으로 비워진 이 공간이 당신에게 기쁨과 평화로 채워지는 '영혼의 쉼터'가 되길 빕니다.
동검도 성모자상
모든 것이 낮은 목소리로 다가오는 섬
동검도는 강화도 남동쪽, 1.6km의 작고 아름다운 섬으로 바다 속을 유영하는 거북의 형상을 닮았습니다. 동검도 채플은 거북의 어깨에 해당하는 곳으로, 낮은 언덕에 자리한 일곱 평의 작은 성당입니다.
키가 큰 갈대 사이, 이름 모를 철새들의 울음소리와 갈대들이 부딪는 선음(禪音)을 들으며 채플에 들어서면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과 끊없이 펼쳐진 갯벌 너머로 민족의 영산이 마니산과 초피산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어 섬 아닌 섬이 되었지만, 동검도는 거대한 연안 생명의 보고, 갯벌에 둘러싸인 섬입니다.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으며, 낮은 산, 작은 포구, 모든 것이 나즈막한 목소리로 다가오는 곳입니다. 세상이 생기는 날부터 어김없이 하루 두 번, 밀물과 썰물이 소리 없이 들고나는 섬입니다.
저 바닷물이 사람에게 경계의 눈길을 주지 않고 드나들 듯이 동검도는 사람들에게 잊힌 섬입니다. 아직도 태고의 고요와 평화의 작은 섬입니다. 그래서 동검도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의 실상을 일깨워 주는 곳입니다
.당신이 몹시 외롭고 쓸쓸하다면
당신이 지금 무척 화가 나 있다면
당신이 무언가로 인해 몹시 불안해하고 있다면
당신이 이 세상 모두로부터 외면당했다면
당신이 까닭 모를 불안에 힘겨워하고 있다면
당신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면
당신이 누구에겐가 억울한 일을 하소연하고 싶다면
당신이 어떤 절박한 일로 쫓기고 있다면
당신이 죽고 싶을 만큼 큰 절망에 빠져 있다면
당신이 돌이킬 수 없는 실패로 괴로워하고 있다면
당신이 그 어떤 죄책감에 한없이 시달린다면
당신이 누군가의 피할 수 없는 오해로 마음이 괴롭다면
여기 빈 방에 앉아서, 저 광활한 갯벌을 바라보십시오.
하늘과 바다와 산으로 이어진 저 생명의 갯벌을 바라보십시오.
갤러리 개관전을 맞이하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죽음도 마지막 말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가늠키 어려운 장대함. 이성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인식의 지평 너머에 있는 것에 대한 '신비스럽고, 두렵고, 매혹적인 것(Mysterium tremendum et fascinana)에 대한 그리움에서 나의 작업은 태동하고 소멸한다.(중략) '태동과 소멸'이 한 지점에 존재한다는 것은 초자연적 존재 앞에 나 자신이 철저한 피조물이라는 전율적 경외심을 말한다. 압도적인 신비 앞에 희망의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깊이 느끼는 좌절과 실패가 그 지점이다. 그 지점을 나는 '블로 로고스(blue logos)'라고 명명하고 생애를 걸쳐 작업을 해왔다. '푸른색'은 이 누미노제적 체험의 등가물이다.(중략)
루돌프 오토가 지적했듯이 '거룩한 존재 앞에 얼마나 미약하고 연약한 존재인지 통감하는 체험'은 모두가 '푸른색'으로 표현되고 그 푸르름의 변형으로 형태 지워지는 모든 언어는 암호 같은 나의 개인적 도상(personal iconograpy)으로 표현된다.(중략) 나에게 이 푸른색과 빛은 '희망 속에 좌절'을, '상승 속에 추락'을 체험하는 장을 재현하고, '넘어설 수 없는 아득함'과 '근접할 수 없는 무한함'을 호소하는 등가물이다. 나에게 있어 유리화는 이 체험을 감성적. 미학적. 직관적으로 가장 근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예술적 방편이다.
유리는 재료 그 자체로 고유의 신비로움을 지니고 있다. 이 신비로움은 강직한 결정과 그 투명한 명료성에서 온다.(중략) 유리는 내부세계와 외부세계 그 경계에서, '현세와 내세' 사이에서 초월적 문턱의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초월과 내재의 틈새에서의 상징으로서 유리는 존재한다. 그리스도 영성의 관점이 현세를 초월하여 내세로 향한다면 유리화는 외부로 펼쳐지는 우리의 시선을 내부로 향하게 한다. 이러한 역방향의 미적 순화 효과는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무터뜨린다.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는 아니지만, 빛을 투과시킬 수 있는 유리는 빛의 존재성을 더 집중적으로 표상하여 우리 감성과 지성에 다가오게 하는 역할을 한다.
빛은 신과 인간의 세계를 매개하는 영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빛은 인간 내면에 비치는 초월적이고 신적인 요소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상징적 요소'(헤겔)가 된다. 이러한 유리의 명료함과 투명함으로 얻어지는 '빛과 색채의 예술'이 바로 '유리화'이다.(중략) 절대 순수의 상징으로서의 하느님, 어쩌면 인격마저 여윈 신성, 저 너머의 벌거벗은 하느님. 나의 유리화 작업은 그 초월적 신성 앞에 말로써 언표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빛나는 갈증의 표현이다. 신 안에 살면서도 끊임없이 신을 찾아 헤매고 배고파 굶주린 내가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그에게 보내는 존재론적 갈망의 암호이다.
2022년 동검도 채플에서 조광호
명상의 길잡이
저 멀리 피안의 수평선으로 이어진 창밖의 십자가와 산사나무는 채플 안의 유리화(가시관)과 일직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가시 돋힌 산사나무의 꽃말이 '유일한 사랑'이듯 우리에 대한 예수의 한없는 사랑도 화려한 왕관이 아니라 고통의 가시관으로 표현됩니다.
모세의 가시덤불에서 하느님이 나타나셨듯이 희생의 고통 속에서 탄생 되는 생명의 본질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이 영원하듯 생명도 영원하고, 이 아름답고 귀한 선물인 생명은 '영원한 기쁨'이 됩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구하는 기쁨과 행복은 물론, 부활의 삶도 극락왕생의 희망도 그 누군가를 위한 당신의 작은 사랑의 희생으로부터 이루어 질 것입니다.
첫댓글 뉴스에서만 봐 온것
꽃피는 봄날에 한번 가고
싶어요.
참 좋은곳이 많아요~~
또 이런곳도 있구나 한번 꼭 가봐야겠구나 ~~
날씨좀풀리면 떠나봐용
와~~ 이런 곳이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다녀와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