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이 턱에 차는 무더위에 기운 빠지는 여름철이다. 찬 음식으로 더위를 식혀 보지만 열기는 금방 차오른다. 여름을 잘 나기 위해 기 살리는 밥상이 필요하다. 더운 여름, 뜨겁게 주방을 달구지 않고도 차려낼 수 있는 보양식 밥상, 보리굴비 한 상을 준비했다.
보리 항아리 속 굴비
조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바닷고기 중의 하나이다. 우리 조상들은 4월 곡우 무렵 많이 잡히던 조기를 두고두고 먹기 위해 염장 보관했다. 그러다 겨울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덕장에 널어 꾸덕꾸덕하게 말렸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한 굴비는 이듬해 귀하디귀한 밥반찬이 됐다.
냉장고가 없던 시대에는 봄, 여름 기온상승에 대비해 귀한 굴비를 저장할 방법을 찾아야 했을 것이다. 보리굴비는 또 그렇게 탄생했다. 보리 항아리에 굴비를 재워 짠맛은 좀 빼고, 보리의 구수한 향은 더했다. 하지만 이름의 유래만 전할 뿐 저장시설이 발달한 요즘에는 구경하기 힘들다고 봐야겠다.
입맛 돋우는 고릿한 냄새
세월이 흘러 오늘날이라고 굴비가 흔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제대로 된 참조기굴비는 한 두름에 수십만원이 넘는다. 요즘 들어 국산 참조기가 귀해지면서 ‘백조기’라고 불리는 부세굴비가 보편화됐다.
덕분에 서민 식탁에도 오를 수 있을 만큼 가격도 저렴해졌다. 참조기를 닮은 부세 덕에 이제는 누구나 한 마리씩 들고 뜯을 수 있는 굴비의 시대가 온 것이다.
단백질, 칼슘이 많고 소화가 잘돼 기운을 북돋운다는 생선 조기(助氣). 고리고리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며 입맛을 돋우고, 짭조름한 맛으로 밥을 부르는 진정한 밥도둑이다.

얼음녹차에 밥 말아 굴비 한 점
여름철 굴비 밥상에는 더운 김 오르는 국이나 찌개가 필요 없다. 쌉쌀한 녹차 한 사발을 국 대신 올린다. 녹차의 플라보놀(flavonol) 성분은 비린내를 없애고 생선살을 쫀득하게 하는 한편, 소화를 돕고 신진대사율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굴비와 환상의 짝꿍인 셈이다.
“차고 매운 자극적인 맛으로 여름을 나려는 분들이 많은데요. 기운이 좀 달리는 분들에게는 소화 잘되고 영양가 있는 굴비가 보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함안의 국보반상 김경남 대표는 잊혀져가는 맛을 제대로 선보이겠다는 생각으로 굴비반상을 메뉴화했다. 30cm가 넘는 부세굴비에 김해 장군차를 우린 녹차가 국물로 나온다. 보양식단답게 전복장과 명란젓이 고정 반찬으로 차려진다. 김 대표에 따르면 담백하고 덜 자극적인 밥상이어서 그런지 건강밥상을 선호하는 40대 이상 손님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얼음 동동 띄운 녹차 사발에 밥을 말고, 손으로 쪽쪽 찢은 굴비 한 점을 밥술 위에 올리고 먹는 굴비 밥상. 꿀꺽 한 술에 시원한 기운이 몸속의 열기를 한풀 꺾는다. ‘어, 시원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촬영협조 국보반상 (함안군 산인면 산인로 331) ☎ 055)583-8252
글·사진 황숙경 기자